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 노팅힐 카니발[ Notting Hill Carnival ]
hanjy9713
2023.11.15. 19:44조회 14
노팅힐 카니발
[ Notting Hill Carnival ]
요약 영국 런던의 노팅힐 지역에서 매년 8월 마지막 주말에 열리는 카니발
1. 축제 정의
노팅힐 카니발(Notting Hill Carnival)은 영국 런던의 노팅힐 지역에 주로 거주하던 아프로-카리브(Afro-Caribbean) 이민자들이 1964년에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처음 시작한 거리 축제다. 이 축제의 기원은 19세기 초 카리브 해 지역의 카니발, 특히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는데, 카리브 지역의 카니발은 노예제와 노예 무역 폐지를 기념하는 의미를 지녔다. 따라서 ‘카니발’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음에도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순절을 앞두고 열리는 카니발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또한 개최 시기도 기독교의 카니발과 달라서, 노팅힐 카니발은 매년 8월 마지막 주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개최되며, 월요일은 영국의 법정 공휴일이다.
노팅힐 카니발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다양한 음악 밴드들이 끊임없이 연주를 하고, 카리브 해 서인도제도의 이국적 전통 음식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워 어른과 아이 모두 즐길 수 있는 흥겨운 축제다. 노팅힐 지역 서인도제도인들 거주지에서 이민자들이 벌이는 지역 축제로 시작된 카니발은 엄청난 성장을 거듭해, 현재는 매년 1백만 명 이상이 참가하고 1억 유로가 넘는 경제적 가치를 생산해내는 대규모 축제로 발전했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거리 축제이자 브라질 리우 카니발(Rio Carnival)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거리 축제이며 세계 10대 축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노팅힐 카니발이 열리는 그레이트 웨스턴 로드(Great Western Road)
매년 1백만 명이 함께하는 노팅힐 카니발은 세계 10대 축제에 속한다.
2. 축제 유래
노팅힐 카니발은 19세기 초 카리브 해 지역에서 열리던 카니발에 그 기원을 둔다. 특히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전통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데, 카리브 해 최남단에 위치한 트리니다드토바고는 1498년 콜럼버스를 통해 유럽에 알려진 이래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은 지역이다. 백인 지배층이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원주민과 다른 아프리카 국가의 노예들을 받아들이면서 여러 민족의 문화가 공존하게 된 트리니다드토바고는 1797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카리브 해로 들어온 유럽인들이 기독교 문화를 전파하면서 식민 지배층이 즐기던 카니발은 점차 원주민과 아프리카 흑인 노예 문화와 뒤섞여 독특한 축제로 형성돼갔다. 이후 이 지역의 카니발은 노예제와 노예 무역이 폐지되면서 핍박을 받던 원주민과 흑인들이 자유를 만끽하고 해방의 기쁨을 표현하는 화려한 축제로 발전했다.
런던의 노팅힐 지역에는 카리브 해 출신의 흑인 이주민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고향에 대한 향수와 자신들의 전통을 되새기고자 거리에서 축제를 열기 시작했다. 초기의 축제는 매주 주말 런던의 얼스코트(Earls Court)에 모여 공연하던 스틸 밴드(steel band) 연주자들의 공연이 주를 이루었다. 연주자들은 노팅힐 거리를 따라 행진하며 흑인 거주민들을 거리로 이끌어내 다함께 어우러지는 축제 분위기를 형성해갔다. 겉보기에는 카리브 해의 전통 음악, 춤과 함께하는 흥겨운 축제였지만 흑인 이민자들에게 이 행사는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되새기며 떠나온 고향을 상기시키는 의미를 지녔다. 또한 노팅힐 카니발은 원류가 된 트리니다드토바고 지역의 카니발처럼 고통 받던 하층민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표현하는 기회, 얼굴과 몸을 하얗게 치장하고 유럽인들을 조롱하는 우스꽝스런 옷차림으로 거리를 나서며 낯선 땅에서의 울분을 표출하는 기회가 됐다.
3. 축제 역사
1950년대 후반, 영국에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가진 이민자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연방 국가(Commonwealth of Nations: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캐나다를 비롯한 아시아의 말레이시아·인도·스리랑카·방글라데시, 아메리카의 자메이카·트리니다드토바고 등 54개 국가들)에서 수많은 민족이 노동력이 부족한 영국으로 몰려들었다.
런던 서부에 위치한 노팅힐은 흑인 이민자들이 밀집한 지역이었다. 1950년대에는 아프리카와 카리브 해 지역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유색 이주민 인구가 늘어나자 영국 사회에는 정치적·경제적인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백인 노동자 계층이 흑인들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게 된 것이다. 급기야 1958년 8월, 백인 사회와 이민자 계층 사이의 갈등이 노팅힐 인종 폭동으로 이어졌다. 백인 갱 집단이 흑인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2주에 걸쳐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폭동은 가라앉았지만 인종 갈등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지역 위원회는 냉랭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노팅힐에 거주하던 이민자들의 문화를 공유하고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고심 끝에 카니발을 개최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1959년 세인트 팬크라스 시청사(St. Pancras Town Hall)에서 첫 번째 카니발이 개최됐다. 행사를 주최한 사람은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으로 미국에서 저널리스트이자 정치 운동가로 활동하던 클라우디아 존스(Claudia Jones)였다. 이후 존스는 ‘카니발의 어머니’(Mother of the Notting Hill Carnival)라고 불리게 됐다.
클라우디아 존스(Claudia Jones)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으로,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정치 운동가였던 클라우디아 존스는 흑인 민족주의 운동과 정치 운동을 주도하다 추방돼 영국에 정착했다. 그녀는 초기 노팅힐 카니발을 주도했다.
세인트 팬크라스 시청사(St. Pancras Town Hall)
1959년, 첫 번째 노팅힐 카니발은 세인트 팬크라스 시청사에서 실내 행사로 개최됐다. 오늘날의 카니발 모습이 갖추어진 것은 1964년에 이르러서였다.
시청사의 실내 행사로 시작된 카니발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규모가 확대돼갔다. 그리고 1964년, 지역 공동체의 지도자이던 론 래슬릿(Rhaune Laslett)이 새롭게 거리 축제를 조직하면서 오늘날의 노팅힐 카니발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매주 주말마다 런던의 얼스코트에서 연주하던 스틸 밴드가 노팅힐 주변 거리를 다니며 퍼레이드를 시작했고, 시 낭송, 연극, 영화 상영 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 열렸다.
스틸 팬(Steel Pan) 연주
노팅힐 카니발은 카리브 해 서인도제도의 전통과 현대 문화가 어우러진,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발전했다.
노팅힐 카니발은 1960년대 중반에 거리 축제를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성장해왔다. 사회적으로 유색인 이주민들의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소속감을 높이고, 다문화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해온 것이다. 초기에는 카니발 진행을 맡은 정식 직원이나 사무실이 없었기 때문에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의 프랭크 크리클로(Frank Crichlow)가 운영하던 맹그로브(Mangrove) 레스토랑이 비공식적인 조직 사무소로 사용됐다. 그러던 중 1966년에 설립된 런던 프리 스쿨(London Free School)이 지역 공동체 회관의 역할을 하며 주민과 다양한 단체들의 협력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1976년 무렵 노팅힐 카니발은 카리브 해의 독특한 분위기를 살린 축제로 자리 잡았고, 참가자도 15만 명을 넘어섰다.
노팅힐 카니발은 1980년대에 들어서며 영국의 정세 변화에 따라 존속의 위기를 겪었다. 극심한 빈부 격차와 높은 실업률로 인해 하층민들의 생활이 악화될수록 인종간 충돌도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영국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인종차별과 억압은 그치지 않았고, 이에 불만을 품은 젊은 카리브 해 출신 참가자들과 경찰들 사이의 충돌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때로 카니발이 폭동으로 번지면서 정치적인 행사로 여겨져 영국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노팅힐 카니발이 열릴 때면 인근에는 경찰 병력 수천 명이 배치된다. 그러나 이러한 반감 표출이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결과만 남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흑인 계층의 불만을 드러냄으로써 영국 사회로 하여금 인종차별에 대해 인식하게 하고 대처 방안을 만들게 하는 등 순기능도 해왔다.
노팅힐의 좁은 거리에 엄청난 인파가 몰리면서 사고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계속되고 있다. 역대 런던 시장 가운데는 켄 리빙스턴(Ken Livingstone) 시장처럼 카니발 리뷰 그룹(Carnival Review Group)을 조직해 안전하게 카니발을 개최하기 위한 지침을 만들고자 노력한 이도 있었다. 그는 2004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카니발 장소를 하이드 파크(Hyde Park)로 옮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리 축제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리빙스턴의 제안은 실현되지 않았다.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이 다방면으로 계속되고, 찰스 황태자를 비롯해 많은 유력 인사들의 지지로 노팅힐 카니발은 중단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 노팅힐 카니발은 런던의 다문화적 다양성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 행사로 발전해나갔다. 현재 노팅힐 카니발은 매년 음악가 5만여 명과 1백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함께하는 유럽 최대의 거리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 이후로는 노팅힐 카니발 트러스트(The Notthing Hill Carvival Trust Ltd.)가 설립돼 카니발을 주관하고 있다.
4. 축제 주요 행사
1) 가장행렬
가장행렬은 노팅힐 카니발에서 가장 돋보이는 행사다. 카니발 기간 동안 노팅힐의 거리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분장을 한 채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며 행진하는 참가자들로 넘쳐난다. 초기에는 주로 트리니다드토바고를 비롯해 카리브 해 지역에서 이주해온 이민자들이 중심이 됐으나, 점차 범위가 확대돼 이제는 아프가니스탄, 쿠르드, 방글라데시 등 여러 다른 나라의 이민자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 카니발에서는 특히 정치 풍자적인 노래와 춤, 가장행렬이 눈길을 끈다. ‘마스’(Mas, 가장무도회(Masquerade)에서 유래한 용어)라고 불리는 가장행렬은 유럽인 지배층을 풍자한 것으로, 유럽인들의 복장과 외양을 흉내 내고 얼굴은 하얗게 분칠하거나 흰 가면을 쓰기도 한다.
매년 가장행렬 경로가 조금씩 변경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레이트 웨스턴 로드(Great Western Road)와 래드브로크 그로브(Ladbroke Grove)를 따라 행진한다. 전체 경로는 약 5킬로미터 정도이며, 곳곳에 수많은 무대와 음향 장치들이 설치된다. 카니발 둘째 날인 일요일에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위해 짧은 경로를 따라 행렬이 진행되고, 공휴일인 월요일에 본격적인 퍼레이드가 열린다.
노팅힐 카니발 가장행렬
퍼레이드는 오전 9시경부터 시작되고, 음악 밴드와 함께하는 화려한 가장행렬은 대개 저녁 7시경에 마무리된다. 축제 내내 스틸 팬(Steel Pan: 드럼통을 이용해 곡조를 낼 수 있도록 만든 타악기)과 민속음악 칼립소(Calypso)에 맞춘 흥겨운 음악이 어우러진 파티는 퍼레이드가 끝난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스틸 팬(Steel Pan)
드럼통을 이용해 곡조를 낼 수 있도록 만든 타악기 스틸 팬 연주가 축제 내내 노팅힐 거리에 울려 퍼진다.
2) 음악 공연
음악은 노팅힐 카니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카니발 기간 내내 카리브 해의 전통음악과 다양한 현대음악 공연을 거리 곳곳에서 즐길 수 있다. 트리니다드토바고 지역 카니발에서 유래한 스틸 밴드와 칼립소 음악은 물론, 소카(soca: 소울과 칼립소를 합성한 음악)와 레게, R&B, 펑크, 하우스 뮤직을 연주하는 스태틱 사운드 시스템(Static Sound Systems)까지 다양한 음악을 만날 수 있다. 거리에 설치된 공연 무대에는 지역 밴드들은 물론 세계적인 음악가와 밴드들도 참여한다.
① 칼립소(Calypso)
칼립소의 기원은 트리니다드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아프리카 노예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예들은 서로 말하는 것조차 금지 당해 가족과 고향에 대한 소식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이에 이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이것이 칼립소라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노예들은 의사소통 수단으로 삼는 동시에 지배자인 유럽인들을 조롱하는 방법으로 칼립소를 이용했다. 1830년대 영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칼립소를 부르는 노래 대회가 매년 열리기 시작했다.
② 소카(Soca)
소카의 대부라 불리는 로드 쇼티(Lord Shorty)는 ‘칼립소의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 인도 전통 악기를 더해 새로운 음악 장르를 만들었다. 칼립소와 마찬가지로 소카는 사회에 대한 논평과 해학을 구사한다. 1980년대부터는 연애와 성적인 내용을 표현하기 시작해, 성적 자유와 관련된 내용을 통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했다.
③ 스틸 밴드(Steel Band)
스틸 밴드는 트리니다드의 대나무 드럼(Tamboo Bamboo)에서 유래한 것으로 1930년대 초에 크게 유행했다. 식민지 지배를 받던 트리니다드인들은 아프리카 드럼을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대신 말린 대나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대나무 크기를 조절해 서로 다른 음색을 내면서 곡조를 연주하는 것이다. 1940년대에 들어 대나무 대신 드럼통을 사용하게 되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됐다.
스틸 밴드(Steel Band)
스틸 밴드 연주자들의 공연이 초기부터 노팅힐 카니발을 이끌어왔다. 카리브 해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스틸 밴드 연주자들이 노팅힐 거리를 따라 행진하며 다함께 어우러지는 축제 분위기를 북돋운다.
④ 스태틱 사운드 시스템(Static Sound Systems)
1970년대 후반, 카니발 참가자들은 좀 더 좋은 음악을 전달하기 위해 카니발 주변에 안정적인 이동 음향장치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이러한 음향장치 수십 세트를 이용해 라틴 재즈, 레게, 힙합 등 다양한 음악을 완벽한 음색으로 재현하고 있다. 또한 브라질의 아프리카 노예 음악인 삼바도 유입되면서 런던 거리에서 흥겨운 삼바 리듬까지 즐길 수 있다.
3) 음식
노팅힐 카니발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바로 음식이다. 카리브 해 지역의 전통 요리들을 중심으로 이국적인 음식 노점상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후각과 미각을 자극한다.
① 저크 치킨(Jerk Chicken)
자메이카에서 유래된 요리로, 매운 고추를 비롯한 여러 향신료로 재운 고기 요리다. 주로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많이 사용한다. 올스파이스(allspice)와 스카치 보닛 페퍼(Scotch bonnet pepper: 카리브 해 서인도제도에서 주로 자라는 칠리 페퍼의 일종)로 양념하는 대표적인 카리브 지역 음식이다.
저크 치킨(Jerk Chicken)
노팅힐 카니발 기간에는 카리브 해 지역의 전통 요리가 중심이 된 음식 노점상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저크 치킨은 자메이카 출신 이주민들이 즐겨 먹는 대표적인 카리브 지역 음식이다.
② 염소고기 커리(Goat Curry)
원래 커리는 인도에서 기원한 것이지만, 염소고기 커리는 특히 자메이카에서 매우 인기 있는 요리다. 서인도제도의 커리에 비해 순한 맛이 특징이며, 서인도제도의 전통 요리법과 스카치 보닛 페퍼를 더한 향신료를 사용한다. 염소고기는 상대적으로 지방이 적어 건강식으로 널리 사용되며 주로 밥과 함께 먹는다.
③ 라이스 앤드 피스(Rice&Peas)
쌀과 강낭콩, 동부(cow pea), 나무콩(pigeon pea) 등으로 만드는 음식으로, 곡물과 콩의 조합이 완벽한 단백질을 형성한다. 콩은 올스파이스와 마늘을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삶는다. 밥은 소금, 스카치 보닛 페퍼, 스캘리언(scallion: 봄양파라고 불리는 덜 익은 녹색 양파)과 코코넛 밀크를 더해 끓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팅힐 카니발 [Notting Hill Carnival] (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류정아, 오애리,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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