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등산(그림 중앙)을 배경으로 기념하다.
▲벼락산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등산로는 시작한다.
▲월각산(좌측)과 천등산(우측)
▲월각문
▲양천이재 화장실과 천등산 입석대
▲천등산 표석이 귀엽다. 귀여운 놈을 끌어안아 기념하다.
▲사동마을 위
▲알바한 일행. 기념이나 남기자고 사진 한 판 올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생활은 고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웃는 아낙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졌다.
굴까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있노라니, 아줌마가 자꾸 굴을 꼬챙이에 걸어서 주곤 하셨다. 간간한 바다의 맛이 속을 즐겁게 채워갔다.
고흥 천등산 산행기
12월로 들어서면서 초겨울 한파가 북쪽에서 밀려왔다. 전국은 눈보라에 휩싸이고 서해안과 중부내륙지방으로는 적설 예보 소식이 들렸다. 잠에서 깬 새벽하늘은 무겁게 내려와 마른눈을 뿌리고 있었다. 심란했다. 요 며칠 대륙의 고기압이 산행에 걸림이 되면 어쩌나하는 염려가 막상 현실로 닥치고 보니, 이제는 오늘만은 산행하는 시각만이라도 피해 가 주었으면 한 바람으로 바뀌었다. 이 사람! 수장노릇이 그리 쉬운가. 강암님 말씀이 귀에 걸려왔다.
아침에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설 시각엔 눈은 잠시 소강상태였다. 동 아이시에서 외곽도로에 진입 너릿재를 넘어갈 때까지 진눈깨비는 시야를 어지럽혔다. 약식조반을 춘양휴게소에서 먹을 무렵엔 하늘이 드러날 정도로 청명했다. 청명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더했다.
산행 기점 풍양면 송정 들판은 온통 녹색물결로 넘쳤다. 봄에 수확할 어린 마늘 잎들이 해풍과 엄동을 맞설 채비를 갖춘 듯했다. 어린것들이 대단해.
오전 10시 20분. 산행코스는 송정 주차장에서 송정교회 앞을 지나 송정마을 표석을 보고 마을 입구로 가면 다리에 이정표가 천등산 방향을 가리키고 서있다. 임도는 개울과 동행한다. 임도가 끝난 지점에서 시멘트포장 쪽다리를 건너면 비포장도로로 접어들고 몇 보 가지 않아 비포장도로도 끝난 지점에 이정표가 서있다. 본격적으로 능선 길로 접게 된다. 등산로는 고도를 높여 가며 산객의 호흡을 조절하게 한다. 월각산에 이르기까지는 그렇다. 양천이재로 내려가다 길은 얼마가지 않아서 넓은 임도를 타고 간다. 재 삼거리에서 마당바위로 오르는 동안 눈을 만났다. 눈은 군대의 이동처럼 국지적으로 내렸다. 조망권이 넓어진 지점에서 해안을 내려다보면 어촌마을은 가을하늘 모습이었다.
일행 대다수는 마당바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천등산 정상을 지나서 벼락산을 바라보며 칼 능선을 타고 갔다. 얼마가지 않아 시그널이 두 갈래로 나뉘어 방향을 재시하고 있는 걸 무시하고 직진하고 말았다. 알바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정표 없는 지점에서 멈추고, 개념도를 꺼내 봤어야 했다. 원점회귀하려면 좌측으로 내려서야 하고, 율치 시동마을로 가려면 우측으로 내려서야 했다. 무시하고 직진한 길은 자꾸 우측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아니다 싶어 뒤따른 일행을 시그널 두 갈래 길로 올려 보내고 앞서 내려간 일행을 쫓아갔다. 방향이 아니다 라는 걸 알면서 앞선 일행과 합류했다. 되돌아서 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내려왔다 했다. 길은 걷기에 편해 그냥 예상하지 못한 능선을 타고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낮은 산봉우리 갈림에서 계곡으로 내려서기를 30여분, 시동마을 위길 삼거리. 시스목재로 오르기로 했다. 되돌아가는 동안에 깨닫게 된 것은, 등산은 건강을 위한 것이지만 계획에도 없는 길을 걷는 건 어리석음의 소치라는 것이다. 늦었다고 느껴졌을 때 갈 곳이 아니면 바로 언제라도 돌아서야 한다는 지혜를 만끽했다. 함께한 일행이 누구를 책망하지 않고 이해하고 위로해 줘서 고마웠다. 지혜와 무지는 한 생각에서 시작한다는 것도 체험했다.
뜻하지 않은 알바로 심신이 무거워졌다. 시스목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 40분. 간단히 목을 축이고 걸음을 재촉했다. 3시 10분. 차에 탑승 굴 매장으로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