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에서는 여시아문 -깨달음의 길 특별전시회를 보고 온 내용을 간단하게 삼가 한산이씨 일가분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대중매체에서도 이 소식을 몇차례 연일 보도하고 있고 대한민국 국민들 중 일부는 이 기사를 읽고 즉시 일본에서 반환해야한다는 댓글과 지지를 덧붙인 내용도 보았다
그 기사를 읽어보신 분이면 이런 귀중한것이 하면서 내심 반환을 꿈꾸어 보았을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인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을 최초로 찍어서 보첩 현대적표현으로 쉽게 표현하면 책 4995개를 만들었다는 것이며 이것을 목은 휘 색 선조님이 하셨는데 태종때 일본에 준것이 이제는 가장오래된 기록 유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1탄에 이어 2탄을 게시하면서 저자는 동국대학교 박물관 특별전시실 주제어 여시아문 - 깨달음의 길을 알아보고자 백과사전을 들여다 보았다.
여시는 ‘이와 같이’, 아문은 ‘내가 들었다’의 뜻으로 들은 교법을 그대로 믿고 따라 기록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불교경전에는 첫머리에 ‘여시아문일시불재(如是我聞一時佛在) …’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경전의 내용은 불타가 어느어느 장소에서 설교한 것으로 내가 확실히 들었으니 의심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뜻에서 써놓았다.
이는 불타가 죽으면서 제자들에게 불경의 첫머리에 두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불지론》에는‘여시아문은 자기가 들은 것을 모두 나타낸 것이며 불교를 전하는 자의 말이다. 여시한 일을 나는 옛날에 일찍이 여시하게 들었다’라고 했으며,
《대지도론(大智度論)》에는 ‘모든 불경에 어떤 근거로 첫머리에 여시란 말을 사용했는가’라는 물음에, ‘불법의 대해(大海)는 믿어야 들어갈 수 있고 지혜가 있어야 능히 제도(濟度)한다.
여시란 곧 이 믿음이란 뜻이다’라고 하였다.
출처 두산백과
위 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기록한것이니 믿고 실천해라는 의미인것이다
기독교의 성경과 같은 의미의 불경인것 이였다
그래서 대중매체는 어떻게 다루었을까?
궁금하여 기사를 담아보았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은 재조(再雕)대장경이다.
초조(初雕)대장경이 몽골 침입으로 불타자 고종 23년(1236) 대장도감을 설치해 다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해인사에는 재조대장경판(국보 제32호)이 잘 보관돼 있지만 정작 이 판으로 찍어낸 고려시대 판본은 국내에 남아 있지 않다. 경판으로 찍어낸 가장 오래된 판본은 일본 교토 오타니(大谷)대학에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팔만대장경 판본이 60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온다.
동국대박물관(관장 정우택)은 고려 우왕 7년(1381) 목은 이색(李穡·1328~1396) 등이 공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발원해 찍은 고려대장경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판본 제10권을 6일 개막하는 특별전 '여시아문(如是我聞)-깨달음의 길'에서 공개한다고 3일 밝혔다.
동국대 개교 1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특별전에는 오타니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희귀 경전이 대거 소개된다.
오타니대학에는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판각된 팔만대장경 판본 4995첩이 587상자에 보관돼 있다. 상자별로 10권 단위의 마지막 권 끝에는 '1381년(우왕 7) 재상이었던 염흥방·염제신 등 16명이 공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시주해 인출했다'고 쓴 이색의 발문이 붙어 있다.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이 대장경 판본은 경기 여주 신륵사에 봉안됐다가 조선 태종 14년(1414) 일본 국왕에게 선물로 보내졌다.
이후 야마구치(山口)현 보광왕사(普光王寺)→안예엄도(安藝嚴島) 신사→동본원사(東本願寺)를 거쳐 1962년 오타니대 도서관으로 옮겨졌다.
최연식 동국대 교수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팔만대장경 판본인 데다 이색의 발문이 있고, 일본 왕실에 선물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는 귀한 판본"이라며 "경판이 해인사에 보존돼 있어서 그동안 상당히 많은 판본을 찍어냈지만 판은 찍을 때마다 닳기 때문에 고(古)판본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국내에 있는 팔만대장경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865년 찍은 강원도 평창 월정사 소장본이다. 대부분의 국내 팔만대장경 판본은 20세기에 찍은 것들이다. 최 교수는 "조선시대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과 전란 등으로 국내에 있던 불교 경전 등이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 기사 중 일부 발췌 (저작권사전허가미필)
위 기사 이외에 몇가지를 더 심층분석한 결과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게시하고 있었고 누구도 더이상의 깊이 있는 내용을 알려주는 이가 없어서 또한 배움이 짧고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결하지 않고는 답답한 나머지 이 분야의 권위자이시고 목은 아카데미 회장이신 안유재교수님에게 물음을 청하니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대중매체마다 기록한 공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목은 휘 색 선조님이 이 판본을 찍어내시고 기록한 것입니까?
- 아니다. 이 기록물은 명목상 경제적 정치적인 이유로 일부가 첨가되었을 뿐이며 실질적으로 부친이신 가정 휘 곡과 윗대 선조님들의 명복과 안녕을 위하고 한산이씨 후손들에게 주는 보배인 기록이라는 것이였다.
이런 경위로 생각을 해보니 이 팔만대장경판본은 한산이문의 살아있는 유산인 동시에 세계의 유산인 것이었다.
동국대학교에서 이번에 110 주년 기념으로 출판한 도서 여시아문 책자의 일부를 자료를 게시하면서 저작권 관련 내용은 동국대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고 싶다.
더 자세한 경위는 목은 아카데미 회장이신 안유재교수님이 게시한 자료를 보시기를 바라면서 2탄 각 대중매체 및 도서 소식을 끝으로 마무리 하고자하며 한산이씨 일가분들 모두의 소중한 보배요 세계적인 유물인 만큼 신속한 지원과 성원으로 빨리 전체내용이 책자로 나와 한산이씨 모든 가정에서 읽어보면서 이야기 꽃이 피어나기를 바라면서 뜻깊은 어버이 날 보내세요.
문양공파 대은 이수영 후손 이대원 삼가글을 게시하다.
위)동국대학교 특별전시실에 전시된 목은 선조님 판본 관람전시 내용
2)동국대학교 110 주념 기념 여시아문 책자에 소개된 목은 선조님 내용
첫댓글 오늘, 목은 할아버지께서 제자인 도은 이숭인선생에게 전하며 기를 지어 돌에 새기도록하여 탄생한 <<여흥군신륵사대장각비>>비문을 번역하였습니다. 이미 여주시청에서 번역한 것이 있으나 소유권을 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번역이 눈에 거슬려 새로 번역하였습니다. 번역이라서 개략적인 내용은 같을지라도 표현의 수준이 다르기에 오도됨이 없이 상세히 그 경위를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번역에 대한 저의 노력도 있어 우선 '목은아카데미' 회원지에 게재하기로 합니다. 목은아카데미 회원이면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좋은 결심으로 노력하여 번역하시니 그 수고에 갈채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