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이었던가. 정란은 이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돈 없고 직장 없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무척 사랑했다. 그 남자
는 시 나부랭이를 쓰는 시인이었다. 여자는 결혼할 때가 되었다.
집에서는 그 남자는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다. 시집가서 벼 빠지
게 가난하게 살 거냐고. 여자는 맘이 흔들렸다. 대학 때는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던 남자가 사회에 나와 보니까 왜 그렇게 초라하게
보이던지.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여자는 같이 지낸 세월만큼
마음이 아팠지만 남자와 헤어지기로 맘을 먹었다.
여자가 말했다. 그만 헤어지자고. 서로 다른 길 가자고. 그러니까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던 그는 근처
상점으로 가 가장 용량의 튀밥을 사왔다. 침대 등받이보다 더 큰
용량 말이다. 그걸 그녀 품에 안겨주면서 "네가 이걸 다 먹을 때
까지 그 맘 변하지 않으면 우리 그때 헤어지자! 널 잡지 않겠어.
내가 약속학게!"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기 덩치만한 튀밥을 안아
들고 집까지 걸어갔다.
여자는 처음에 그가 미워 열심히 튀밥을 먹었다. 빨리 그와 헤어져
집에서 선보라는 다른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잘살겠다며 그녀는
열심히 먹어댔다. 그러나 비닐포대에 튀밥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녀는 아귀아귀 먹던 것을 조금씩 아껴 먹게 되었다. 하루에
겨우 한 알씩. 아니, 아예 안 먹는 날도 많았다.
그 튀밥이 바닥나는 데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여자는 기다림이 분해
서라도, 정말 이제 튀밥을 다 먹었으므로 약속 지키라고 말하기 위
해 남자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그사이 남자는 이름난 시인이
돼 있었다. 베스트셀러 시집을 냈고 그리고 대중가요 작사가로도
각광을 받은 그는 돈도 많이 버는 사람이 돼 있었다.
그녀는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는 "아, 모든게 네가 3년이나 걸려
아주 천천히 튀밥을 먹어줬기 때문이야. 결코 짧지 않은 그 세월
이었므르로 그동안 내가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었던 거지.
세월을 먹으며 기다려준 네 사랑이 나를 성공하게 만든 거야."라며
그녀를 포옹했다.
그들은 그렇게 결혼했고 그후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는 실화를 읽었
던 걸 떠올리고 정란은 승우에게 튀밥을 사달라고 했던 것이다.
국화꽃향기 그 두번째 이야기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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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명구절
|소설|
김하인의 "국화꽃 향기 그 두번째 이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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