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교를 건너서 소래역으로 향했다.
철로옆에 줄을지어 서있던 횟집들도 재개발 공사로 인해 모두 철거되어 흉뮬스레 서있었다.
소래역 방향으로 이어진 수인선 선로
소래철교 방향의 수인선
선로옆에는 망둥어를 햇빛에 널어 말리고 있다.
이곳주변에도 곧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서 이 선로도 사라질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남아있던 수인선의 흔적들이 올해안에 대부분 사라질것으로 보여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보존은 못할 망정 가차없이 없애버리는 현실..
버림받은 선로...
소래역 진입직전의 선로
저멀리 나무들이 보이는곳이 소래역 정거장이다.
소래역 정거장 직전에 레일은 이렇게 끊겨서 사라져 버렸다.
소래역 정거장에서 바라본 달월역,소래철교 방향의 수인선
어디 한 곳도 성한곳이 없을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있다.
소래역 정거장의 모습이다.
움푹 패인 자리가 소래역 폴사인이 서있던 자리인데 폴사인은 두개가 있었다.
하나는 코카콜라 광고가 붙어있는 것이었고 , 다른하나는 광고가 없었다.
나무들은 아직 그대로 자리에 남아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레일도 없고..
폐허로 변한 소래역 역사건물과 흔적만 남은 정거장..
소래역 정거장의 모습이다.
레일이 겨우 모습을 드러낸 자리를 보니 코 끝이 찡해왔다.
이렇게 변할수가 있던가...
소래역을 지나 남동역으로 가는 선로는 몇미터를 못가서 저렇게 소래초등학교가 레일을 가로막고 있었다. 저곳에는 레일옆으로 논이 펼쳐져 있었고, 오봉산이 수인선 레일을 굽어보고있었는데..
흙으로 뒤덮힌 자리에는 건널목이 하나있었다.
그저 지나온 시간들이 야속할 뿐이다.
내 유년시절의 추억도 저렇게 묻혀버리다니..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1989년 8월 우리가족은 이곳에서 14시 48분 소래역을 출발하는 송도행 3칸 협궤열차를 타고 송도유원지로 나들이 갔었는데...
그당시 너무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 무심한 시간들아..
왜 이모든것을 앗아갈려고 하는가...
이제 이곳마저 사라져버리면 지난날의 향수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아파트 공사가 시작됨을 알리는듯 지난해 까지 역사주위를 감싸고 있던 나무들도 모두 뿌리채 뽑히고 땅은 파헤쳐져 있다.
이곳 소래역도 사라지게 될곳으로 보인다.
소래역
소래역사의 모습이다.
좌측폐쇄된 문이 역사 개표구였고, 우측 문이 역무실이다.
역무원은 한사람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역사는 사택을 겸하고 있었다.
굳게 닫힌 소래역 개표구,출구
1992년 9월 소래역 신역사건물이 세워지며 그 이후 이곳은 폐쇄된채 방치되어왔었다.
나무기둥이 서있는 자리에 역무원이 서서 기차표를 회수했었다.
소래역..
1989년~1990년 KBS 1TV 일일연속극 (울밑에 선 봉선화 ) 에서 극중 배경이던
1900~1950년 까지 전남 순천시, 순천역 촬영장소로 이곳을 배경으로 했었다.
마지막회 장면에서 모진 시집살이를 시키던 매정한 시어머니 역할을 하셨던
고인이 되신 강효실님, 시어니의 혹독한 시집살이에 굿굿이 참고 견뎌오던 며느리 역할에 김미숙님..
집안의 몰락과 함께 병이든 시어머니는 끝까지 자신을 버리지 않던 며느리에게 그동안의 잘못을 용서해달라는 뜻으로 두손을 꼬옥 마주잡는 장면이 나오며 드라마는 끝맺음을 하게 되는데 이 장면이 바로 저기 자동차가 주차된 소래역 정거장에서 촬영되었다.
텅빈 소래역사안은 기분나쁠정도의 침묵만이 있을뿐이다.
레일에 서서 잠시 폐허가 되버린 소래역사 건물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역사안의 모습
폐쇄된 매표창고이다.
소래역..
비록 사라질지라도 내 기억속에는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다.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그곳..
허름한 창고처럼 보이는 소래역...
추억의 책장속 한귀퉁이에 소래역은 서있다.
하루 왕복 6번 꼬마협궤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바다옆을 달리던 기찻길..
송도가는 기차는 아침 07: 03 오후 14: 48 저녁 19: 50
수원가는 기차는 아침 06:20 오전 11: 15 저녁 18: 50
그렇게 달리던 꼬마기차...
그립다..
너무나 그립다...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꼬마기차가 달리고 있다.
송도~남동~소래~달월~군자~원곡~고잔~일리~사리~야목~어천~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