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장날과 우리어메
풍산장날이면 우리어메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날이다.
볏짚으로 구남매의 고무신 발 크기를 재고 깨와 콩을 자루에 되 넣어 양단 저고리에 올림머리를 한 어메가 "오라이" 하는 빨간모자 차장이 겨우 매달려 가던 버스를 타고 먼지 날리며 피실재를 넘는 날이기 때문이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동생을 엎드리게 하고 등에 올라가 어메가 꼭꼭 숨겨놓은 찬장에 얺힌 사카린 봉지를 꺼내 한사발씩 동생들과 나누어 달콤하게 배를 채우며 감꽃을 주워 먹으며 몇대밖에 없던 버스를 눈이 빠지게 기다린 행복감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우리어메가 탄 버스가 도착하면 온 동네가 잔치 분위기로 떠들썩 했던 풍산장날-
나일론 바가지에 고무 다라이며 엑쓰란 빤스며 명태와 간 고등어 물외등등..
우리들의 간식꺼라라고 하긴 너무나 멀기만 한 장 보따리- 먹을꺼리라고는 젖가락으로 명태 눈깔을 후벼 파 먹으며 보기만 해도 좋고 맡기만 해도 좋은 어메 치마냄새를 맡고 우리 구남매가 무럭무럭 자라나지 않았던가!
특히 풍산들의 갯무우와 배추는 맛이 일품이라 임금님께 진상이 되었던터
얼추 농사가 마무리 되면 우리어메 풍산장날 황소가 끄는 구루마에 일꾼을 앞세워 김장꺼리를 가득 사 와선 무우는 구덩이에 묻어두고 뒤란 가득 배추를 절여 단지 단지 땅속에 묻어 그해 겨울을 나던 유년의 시절....
풍산장날은 안동 .예천. 옹천. 풍천.의성. 길안.진보. 청송까지 미치어
상리. 구담 .중리. 하리.만운.매날 괴정.소산. 새랄. 까칠개.하회. 오미.가일.가매.대박골까지 경북의 북부지방 골골이 살던 사람들의 있어서는 풍산장날이 그 주민들의 생일날이었으며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생의 현장이며 소통의 장이었던 오일만의 특설무대였던 곳이다.
특히 일제 치하때는 주로 장날을 거점으로 만세운동이 전개 되었듯이 전 성철,김후성. 권 영헌을 중심으로 수십명이 풍산장터에서 만세시위를 벌인 곳이며 항일 농민운동 단체인 풍산 소작인 이준태. 권오설.김남수와 같은 양반가문의 청년 지식인들이 이끈 모임으로서 5,000 여명에 이르렀으며 1924년과 1926년 풍산소작인회 정기총회를 열고 결의사항을 채택 한 곳이기도 한 역사적인 장이기도 하다.
하루 삼십리길을 가느다란 다리로 풍산중.고등을 다녀야 했던 나의 학창시절-
추수감사절 부채춤과 운동회 연습을 할때쯤이면 캄캄한 피실재가 호랑이 보다 더 무서웠던 기억들...
설익은 새벽밥을 한숟갈 뜨고 친구와 타박타박 걸어가던 그길도 풍산장날이면 신이난다
예천과 안동을 넘나드는 말구루마 보부상이 있어 믿는 구석이 있어 무섭지 않고 든든했기 때문이다.
풍산 우시장의 소 판 돈을 노리는 도적들이 끊이지 않았다는 군계선 피실재를 거뜬히 넘을수 있기 위해 주인의 허락도 앖이
책 가방을 말 구루마에 올려놓고 따각따각 말 발굽소리에 발을 맞쳐 친구와 식은땀을 흘리며 넘던 그 고갯길-
어메 치마꼬리를 잡으며 따라가 허름한 중국집에서 생전 처음으로 짜장면을 먹어 보고 기절 할뻔 햇던 곳.
국솥이 걸린 국밥을 어른들이 둘러앉아 사 먹던 곳.
농부들이 고추와 콩과 깨를 팔아 손에 돈을 쥐어 볼수 있는 곳.
자지러지는 가위소리로 각설이가 되었던 엿장수.
동춘서커스 줄타기의 아찔한 순간들의 긴박한 순간들.
담배연기 자욱한 다방에서 처녀 총각들이 선을 보던 곳.
자식을 나눈 사돈과 허름한 선술집에서 간 고등어에 막걸리 한잔을 나누며 안부를 묻던 곳.
' 애들은 가라" 며 구수한 입담으로 사로 잡던 약장수들의 모습이 풍경처럼 펼쳐지던 곳.
필름이 낡은 풍산극장에서 " 황야의 무법자"와 김희갑. 황정순 주연의 "팔도강산"과 풍산고등 졸업후 내가 막무가내로 좋아했던 k군과 윤정희 주연인 "낙조" 영화 를 보며 첫사랑을 떨리는 가슴에 새겼던 곳.
여동생의 처녀때 빛바랜 순박한 사진이 샛별사진관에 붙어 있는 곳.
그야말로 있을건 다 있고 없을건 없다는 돛데기 시장 같았던 엣 풍산장날ㅡ
무엇보다 꿈과 희망과 만남이 있어 가슴 설레이던 곳이었으므로
옛 추억을 더듬고파 풍산장을 가보았지만 옛날의 그 장터는 아니었지만
하늘나라에 계신 양단 치마 저고리의 우리어메와 뿔뿔히 흩어져 사는 남매들의 보고픈 얼굴과 나의 첫사랑 k군도 어디서 나처럼 늙어 갈 모습과 장터를 스쳐간 숱한 사람들의 냄세가 떠 올라 한동안 멍하니 선채 발길을 멈추어 보지만 아득한 옛 추억의 향수가 밤꽃 향기와 난전에 펼쳐진 간고등어 어물 냄새가 나를 반겨주니 이 또한 살아가는 인생사 즐거움이 아니련가 생각해 본다.
하이얀 칼라 교복의 한 소녀가 어느새 회갑을 맞은채 흰머리 휘 날리며 풍산장터에 서서 옛 기억을 더듬고 있으니
세월의 빠름과 시대의 급변하는 격세지감 앞에 마음 비우고 그저 고개 숙여 빈 웃음을 웃어 보지만
머얼리 풍산 들의 바람이 체화정의 호령문을 거쳐 썰렁한 풍산장터를 스쳐 지나 갈 뿐이다.
더러는 따뜻하게 더러는 차갑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