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2강 정의가 강물 같이(아모스5:21-24절)
□ 형장 이슬로 사라진지 25년 만에 무죄 판결
전두환 정권시절 대표적 공안조작 사건인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985년 억울하게 사형당한 김정인(당시 41세)씨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이 열린 16일 서울고법 312호 법정.
재판장인 형사8부 성낙송 부장판사가 “무죄”를 선고하자 김씨의 부인 한화자(67)씨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두 손에 꼭 쥔 손수건을 연신 눈으로 가져갔다. 숙연하던 법정은 이내 눈물바다로 변했다. 정면 법대에서 판결을 선고하던 재판장과 배석 판사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진도가족간첩단’은 79년 신군부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식 몇 주 전인 1980년 8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이 전남 진도에 사는 김씨와 친척들을 간첩혐의로 체포해 불법구금과 고문 끝에 허위자백을 받아낸 뒤 기소한 사건이다.
남편의 명예를 되찾은 한씨 할머니는 지난 30년 세월의 한을 더 이상 드러내지 않았다.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천국에 있을 남편도 뛸 듯이 기뻐할 겁니다.”
공평한 재판이 집행되고, 정의가 실천되는 그런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입니다. 전두환대통령 시절에는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여당 이름도 민주정의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이 가장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백담사만 가지 말고 자신이 만든 삼청교육대학교에도 가게 했어야 합니다.
제 5장
1.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러면 살리라.
1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지금 이스라엘은 굉장히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모스 선지자는 슬픈 노래(장례나 국가적인 위기 때에 부른 노래)를 지어 부르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잔칫집에 가서 “아이고~ 아이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이렇게 애곡한 것과 같습니다. 여로보암2세 때의 이스라엘은 경제, 정치, 안보 면에서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잘 되고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부도 직전의 회사와 같고 전쟁 전의 고요와 같다는 것입니다. 얼마 안 있으면 슬픈 노래를 부를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탕자처럼 완전히 망해서 괴로워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허랑방탕한 생활을 할 때는 권면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았습니다. 망한 다음에야,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먹지 못하는 고통 가운데서야 아버지의 사랑이 깨달아졌습니다.
좋을 때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실패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그래도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좋을 때든지, 어려울 때에든지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이스라엘이 엎드러져서 다시 일어나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기원전 721년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망해서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벗어난 이스라엘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습니다. 십분의 일로 줄어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십분의 구는 사로잡혀 간다는 것입니다.
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스라엘이 사는 길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이니 살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길갈이나 벧엘에 있는 금송아지, 즉 탐욕을 쫓는 삶은 패망의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을 쌓았던 곳이 우상숭배지로 바꿔졌다는 것입니다.
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여기서 요셉의 집은 북왕국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인진쑥처럼 괴롭힘을 받고 공법과 의로움을 땅에 던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잘못을 회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아야 산다는 것입니다.
8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하나님은 하늘의 별들을 만드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바닷물을 끌어와서 지면에 쏟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이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14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우리가 말로 아무리 함께 하신다고 말해도, 우리의 행위가 우상숭배를 하고 있고, 죄악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은 떠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중국 남부에 태풍 ‘꼰선’의 영향으로 비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만약에 기상대에서 태풍이 오는 것을 알면서도 미리 예보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하다가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옛날 사라호 태풍 때에 울릉도에서는 태풍이 오는 그 날도 사람들이 오징어 잡으러 나갔다가 많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기상예보가 중요하듯이 성경을 통해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보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이 남유다 여호사밧왕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 치러 간 전쟁에서입니다. 여호사밧왕이 먼저 하나님께 물어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4백명에게 물었더니, 다같이 일심단결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걱정 말고 전쟁에 나가라고 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여호사밧이 다른 선지자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미가야 선지자를 부르게 되는데, 이 선지자는 아합왕에게 한 번도 좋게 예언한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지 않았습니다. 악을 행하는 아합에게 좋게 예언을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런데 4백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편이 되기보다는 왕이 듣기 좋은 말들만 했습니다. 숫자적으로 우세했습니다. 다수결로 밀어 붙이니 결국 미가야 선지자의 말은 무시되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전쟁에 나갔다가 아합왕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병사가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서 죽게 되었습니다.
선을 구하고 악을 버릴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해야 합니다. 악한 것을 과감하게 떨쳐 버려야 합니다.
2.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게 하라.
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주일날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복이 임해야 정상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화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날을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행실을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천국은 가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날은 빛이 아니고 어둠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축복이 아니라 심판이 날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21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절기로 모이고 성회로 모이면서도 악을 행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기나 성회로 모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임이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위한 것이 되면 우상숭배가 됩니다. 더군다나 축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예배가 전락되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과부의 두렙돈은 받으셨지만, 바리새인들이 드리는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벨의 제사나 과부의 두렙돈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나 바리새인들의 제물은 자기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기 위한 성회나 제물은 하나님 앞에 열납되지 않습니다. 자기를 위한 예배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찜찜하기 때문에, 지옥 갈 것 같으니까, 할 수 없이 드리는 예배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드리는 예배,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 감사해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23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역시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흥에 겨워서 부른 노래는 잘못입니다. 여기서 우리 학생들이나 청년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악기를 동원해서 흥겨운 ccm을 부르며 율동하는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 되면 안 됩니다. 한마디로 자기 기분 내기 위한 것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했으면 하나님께서 제발 내 앞에서 그 노랫소리를 그치라고 했겠습니까? 네 비파 소리도 듣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감동이 임하는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새롭게 되는 성령의 은혜가 있는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이 말씀이 아모스의 중심사상입니다. 한문으로 법(法)자는 물수 변에 갈거 자가 합쳐진 것입니다. 법은 물 같이 순리로 흘러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역행해서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의가 흐르는 세상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공정하고 의로운 재판이 있는 나라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즉 억울한 사람들이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
3.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의 행위
6:3-4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이렇게 좋은 세상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쾌락을 추구하고 악을 도모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에게는 궂은 날이 없을 것 같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아침대에 뒹굴면서 늦잠이나 실컷 자고 침상에서 기지개 켜고 수입쇠고기 질겨서 못먹겠다고 양고기 어린 송아지 고기를 먹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6: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대접으로 포도주나 마셔대고 온갖 귀한 기름과 향수를 몸에 붓고 환난에 대해서는 일부러 잊으려고 했습니다. 환난은 대하여는 근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이 임박했는데도 사람들은 노아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에 무슨 비가 와서 세상이 망한다고 하느냐고 노아에게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시대에도 사람들은 선지자의 소리를 듣기를 싫어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해도, 지옥의 형벌이 있다고 해도 듣기를 싫어합니다. 영원히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형통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영적으로 점점 죽어가고 있는데 잘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 8: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월삭이나 안식일이 다가오는 것을 귀찮아했습니다. 안식일에 곡식을 팔며 돈이 얼마인데, 벌써 안식일이냐!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에바는 작게 세겔은 크게 하여서 거짓 저울을 가지고 사람들을 속여서 부당이득을 취했습니다.
8:2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 여름과일 한 광주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여름 과일은 잘 무릅니다. 쉽게 부패됩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부패한 여름과일 한 광주리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노력의 댓가로 땀의 댓가로 부자가 된 것이 아니고 수단을 가지고 가난한 자를 학대했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이었습니다.
8:7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탐욕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의 지도층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그 모든 죄악을 기억하였다가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잊지 않고 꼭 기억했다가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9:2 그들이 파고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며
땅을 파고 스올에 숨어도, 하늘로 올라가서 거기에 숨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잡아내겠다는 것입니다. 심판이 임박하다고 아모스를 보내서 외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몽둥이를 하나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앗수르입니다. 그 앗수르 몽둥이를 들고 외치는데도 겁을 낼 줄도 모릅니다. 너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형편이었습니다.
4.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리라.
9:9 보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체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이 다 멸망하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여 알곡을 모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진짜 알곡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우리의 신앙이 쭉정이가 돼서는 안되겠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 같으나 속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속에 꽉찬 알곡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겉도 보시지만 속을 더 중요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말씀과 기도로 무장할 때입니다. 아모스 시대 즉 여로보암 시대처럼 세상이 너무나 악하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갑니다. 악한 마귀도 졸지도 쉬지도 않고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덤벼오고 있습니다.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방심하면 안 됩니다. 살만하다고 바쁘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방심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이 병들고 생각이 병들게 됩니다.
9: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무너진 다음에 후회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실 때에 깨닫고 기도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라 할 때에 열심히 찾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9: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하나님을 찾고 그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야 합니다. 잘못된 생각이나 가치관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도록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9: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