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다. 아침에 일찍 집에서 나와 자정까지 일하다
귀가하므로 실제로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그것은 우선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시키고 과소비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며
또한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의 생활 리듬과 라이프 스타일을 획일화 시킨다.
그럼에도 대개의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좀처럼 놓여나지 못한다.
중고등학생들의 경우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면 또래들과의 대화에 낄 수 없다고 한다.
쇼 프로그램과 광고, 연예인, 혹은 드라마가 그들의 주된 관심사인 까닭이다.
인터넷이 어느 가정에나 일반적으로 또한 획기적으로 보급되면서 그에 대한
음성적 폐해를 지적하는 말들이 무성하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이제 신문처럼 상대적으로 건전한 매체로 평가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무엇이든 의미가 변하게 마련인 모양이다.
며칠전에 나는 어떤 드라마에서 우연히 최불암씨를 보게 되었다.
알다시피 최불암씨는 한국적 아버지상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나 역시도 그런 평가에 동의한다.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전원일기]라는 드라마에서 그렇게 이미지를 굳힌 듯하다.
당시 최불암(김회장)씨의 아내 역은 김혜자씨가 맡아서 했다.
김혜자씨 역시 훌륭한 연기자임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오래간만에 텔레비전에서 최불암씨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 단지 반가운 마음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감동이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변함없음과 한결같음 때문이었다.
언제 보아도 그 털털하고 중후한 이미지, 연기에 대해 아직도 긴장을 잃지 않는 장인 의식,
필연적으로 그에 따르게 마련인 성실함과 겸손함, 정갈한 자기 관리....,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최불암씨 뿐만 아니라 그 비슷한 연배의 훌륭한 연기자들이 또 있다.
이순재, 사미자, 반효정, 김수미, 고두심 그리고 내가 미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중견급 혹은 원로급 연기자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1C27345492D4DC30)
사람은 누구나 한번 위로 올라가면 아래로 내려오길 거부한다.
정상에서 내려 올 때가 되면 아예 사람들 눈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도 현역으로 게다가 조연으로,
그 어떠한 특별한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다.
내가 감동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들이 나이와 관계없이 매순간에 오로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자기 나이와 변화를 수긍하고 적극적으로 눈앞의 삶을 받아들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오래전에 나는 어느 잡지에서 [전원일기]에 출연하는 김혜자씨의 연기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가는 기억할 수 없지만, 글의 주된 내용은
김혜자씨 연기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가지 예를 들었다.
밤늦게 외출했던 회장님(최불암)이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두드리자
부인인 김혜자가 신발을 끌고 마당을 걸어 나가는 장면이었다.
그때 김혜자의 '신발 끄는 소리'에서 바로 그녀의 진가를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 소리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의 초조함과 불안, 반가움과 안도감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시청자들은 얘기하지 않는다.
그건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사소한(?) 대목일 뿐이니까.
그런데 그게 정말 사소하기만 한 대목일까?
언 땅에 묻어둔 김장김치나 된장 항아리에 속에 박아둔 무 장아찌처럼
오래 묵은 것일수록 깊은 맛이 나게 마련이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렇듯 사소한 몸짓에서부터 깊은 맛이 우러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윤대녕 산문집 :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중에서
첫댓글 멀더님의 글인줄 알았어요~ ^^
한자한자 깊이를 느껴가면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