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작년 2022년 디날리 원정 훈련의 일환으로 동계 휘트니 훈련원정 때 우리의 가이드 격으로 함께 훈련산행에
동참하였던 고 임연일씨 딸의 서사 부고장 입니다. 임연일씨는 서부 고산 등반을 즐기는 베테랑 산악인 이었으며 차분한 성격에
산행시에는 꽤나 냉철한 판단력으로 산행을 주도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고인의 명복옥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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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버지 대신 딸이 인사드립니다.
7월 2일 자정 여름밤 어느날,
산이 좋아 산을 탄다던 저희 아버지께서는 산행중 예상치 못한 눈사태 사고로 인해 머리에 출혈과 갈비뼈 부상을 입으시고
구조요청을 기다리다 끝내 버티지 못하시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7월 3일 오전 11시경, 여느때와 같이 새볔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잠을 자던중 1층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무력한 울음소리에
잠결에 놀란 쿵쾅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내려오자마자 보이는 어머니의 발을 동동구르며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과 옆에서 같이 울고계시는 아버지 지인의 모습에 저는 본능적으로 곧 듣게될 소식을 직감했습니다.
손발이 저려오고 차가워지는느낌,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 손발이 떨려오는 그 느낌에 저는 멍하니 서서 저의 아버지의 부고를
처음 접하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시간과 터질것만 같은 심장, 시신이 아직 수습 되지 않아 아직
살아계실지 모른다는 실마리 같은 희망을 붙들고 초조하게 현장에 있는 구조대원과 아버지 지인의 연락을오매불망 기다린 끝에
다시한번 전해지는 사망소식…그때 저의 세상은 무너졌습니다. 순간 몰려오는 막막함과 무기력함에 길잃은 5살 아이처럼
통곡하며 울다,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과 쉴새없이 흐른 눈물에 따가움이 느껴진 순간 실감했습니다.
아, 아빠는 이제 못돌아오는거구나.
아버지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순간들이 스쳐지나가며 왜 더 잘해주지 못했는지, 왜 더 나은 딸이 될수 없었는지에 대한 끝없는
자책의 구렁텅이에 저를 던졌습니다. 산행 가기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한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못했던 내 자신.
아빠랑 나눴던 마지막 문자. 산에서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얼마나 아프셨을까… 남은 우리 가족이 얼마나걱정되셨을까.
무엇보다 그 고통속에 혼자서 눈을 감으셨을 생각을 하니 이미 너덜너덜해진 가슴이 찢어질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고는 빠르게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우리집 모든 재정과 서류들을 도맡아서 처리해오신 아버지께서 부재중인 지금은,
그 누구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는것이였습니다. 또 안치실에 전화를 해 다음 절차가 무엇인지 설명을 듣고 장례식은
어떻게 할건지, 화장 할건지 묻을건지를 고민해야 되었고, 생각보다 높은 장례식 가격에 저희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다
느끼기도 전에 냉정한 현실의 벽에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한달전 말기된 아버지 전 직장의 생명보험에 미국에서 장례식도
가본적 없는 어머니는 너무나도 막막한 마음에 더더욱 울음을 크게 터트리셨고, 저는 빠르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됐지만,
하루만에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꾸기엔 너무나도 컸습니다.
매일 아침 쇼파에 앉아 아침햇살을 받으며 독서를 하고, 퇴근 후에 항상 반겨주며 어깨를 토닥거려주던 저의 아버지께서는
산을 무척이나 좋아하셨습니다. 모든걸 포기하고 저희 남매, 가족을 위해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정착하고, 화려하고 인정받던
한국에서의 삶과는 반대로 바닥부터 시작해야 됐던 고된 미국생활에서 유일하게 아버지를 설레게 만들었던건 산행이였습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렸을적엔 항상 산행으로 집을 며칠 비우던 아버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저는
“아빠, 그렇게 산이 좋으면 산에서 살아!” 라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그말이 씨가 된듯 2023년 7월 2일 자정, 저희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산에서 거두셨습니다.
아버지의 많은 온라인 지인분들에게 저의 아버지 부고 소식 전해드림과 동시에 저의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이글을 써봅니다.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저희 가족에게는 큰 힘이 되어 돌아옵니다. 저의 부족하고 경황없는 긴글 읽어주신
분들과 그동안 저희 아버지와 함께해주신 온라인 지인 한분 한분 에게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후원링크는 아래에 첨부해두었습니다
사소한 금액도 저희 가족에게 큰힘이 될거에요.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https://www.gofundme.com/f/snowslide-accident-that-took-away-our-dad
첫댓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이 이 큰 슬픔을 이겨내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