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 - 기철학
기철학에 대해 배우며 기철학의 사상적 배경 및 기철학의 대표 학자인 왕부지의 생애에 대해 궁금했다. 먼저 기철학의 사상적 배경은 기철학이 중시되던 17세기의 중국은 사회 내부의 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백성들의 삶이 많이 어려워졌다. 백성들은 지배 계층의 사치와 군비의 증액으로 인해 생활하는데 많은 부담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착취와 수탈을 당했다. 그러나 통치자들은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헤아리지 않았고 통치 집단 내부에서는 오히려 붕당 현상이 가속화 되어 권력 투쟁에 여념이 없었다. 이러한 정치 상황은 백성들로 하여금 명나라 왕조에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만들었으며 백성들은 한ㅊ편으로 자신들의 삶터를 떠나 유랑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직을 결성하여 항거하기도 하였다. 백성들의 저변에 깔린 정부에 대한 불만 의식은 이자성 등의 농민군에게 흡수되었다. 농민군들은 귀천균전, 균전면부의 구호를 내걸고 봉기하여 16444년 3월 북경을 함락하여 명나라 왕조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이 농민군 역시 새로 일어난 청나라에 의해 1644년 5월에 북경을 점령당하였고, 청나라의 복임은 그해 9월에 심양에서 북경으로 천도하였다. 16세기 말기와 17세기에는 또한 강남 지역에 농업과 수공업 및 상품 경세가 소규모로 발달했으며 서양의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천주교 사상과 자연 과학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송나라와 명나라 시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리학 못지 않게 기학의 발전과 자연 과학의 수용에 힙입어 선험적인 앎의 추구보다 경험과 검증을 중시하는 학풍이 위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기철학자들은 이전과 다른 세계관을 세워가며 실천적으로 대응했다. 그들은 과학적 세계관을 가진 선배 학자들의 영향 뿐 아니라 격동의 시대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그들이 살던 시대의 현실을 분석하며 새로운 세계관을 세워 나갔다. 그들은 민족과 백성에 대한 애정을 깊게 간직하며 그들의 할 일을 실천적으로 수행했다. 그들은 대부분 격변하는 당시의 사회를 목도하면서 형이상학적이고도 초역사적인 철학 이론들을 비판했다. 그들은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학문적인 역략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의 본질적인 측면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학문 영역은 철학과 역사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학 등 광범위한 분야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철학의 분야에서 선진 유학, 성리학, 양명학은 물론 도가와 불교에 대해서도 깊게 연구하였다. 그들은 어느 분야든 소홀하게 취급하지 않고 깊이있게 분석한 수 자신의 이론을 첨가 시키는 연구 방식을 취했다. 그들은 비실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철학 이론들을 분석하여 비판하였고 실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론들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특히 송나라와 명나라 시대 주류 철학에 속했던 성리학과 양명학은 물론 불교와 도가 이론 가운데 치밀하지 못하다거나 실제적이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선진 시대의 순자, 후한 시대의 왕충, 북송의 장재, 명나라 때의 왕정상 등의 영향을 받았다.
다음으로 왕부지의 생애에 대해 살펴보았다. 왕부지는 형이상학적인 세계관을 비판하고 변증법적 세계꽌을 토대로 하는 기철학을 종합하였다. 그는 관념화된 비 실제적인 이론을 비판하고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실제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철학은 중국 철학사 뿐만 아니라 세계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왕부지의 철학관 즉 세계관에 대해 살펴보았다. 왕부지는 성리학자들이 공리공담을 일삼음으로 인해 현실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과학적인 세계관을 경험하고자 했다. 그는 자연을 기의 모음과 흩어짐으로 설명하면서 태극과 음양의 관계에 대해서도 태극을 추상적인 리로 설정하여 구체적 현상인 기 즉 음양을 낳는다는 성리학자들의 이원론적인 본체론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태극을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음양의 대립 통일의 범주로 설정한다. 그는 항상 운동하는 음과 양이 합하면 태극이 되고 나누면 음과 양으로 분리된다는 논리로 태극을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음양과 같은 범주로 설정했다. 즉 그는 태극을 물질 운동 속에 존재하는 대립 통일의 법칙으로 해석하고 동정을 음양의 동정으로 보았다. 그는 리가 음양의 동정을 초월하여 고고하게 홀로 존재하지 않고 음양의 동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는 자연을 인간의 의지에 관계 없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운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태허는 곧 기이고 기는 운동하는 것‘이라고 하여 항상 운동하는 물질적 존재인 기를 세계의 근거로 상정하였다. 왕부지에 따르면 천하는 오직 구체적인 기로 충만되어 있고 도란 기의 조리이기에 구체적인 사물은 이 조리에 의해 구성되지 않는다. 이는 형이상학적 불변의 보편 존재에 의해 변화하는 현실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개체들의 자유가 제한되는 성리학자들의 세계관과 다른 관점이다. 왕부지에 의하면 하늘과 인간을 포함한 이 세계는 모두 음과 양의 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태허로서의 기는 구체적인 기들의 존재 근거로서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움직이고 변화한다. 리 또한 세계의 존재 근거가 아니라 기의 법칙이다. 그는 이 세계가 기로 충만해 있는데 이 기의 응결에 따라 형체가 이루어지고 기의 흩어짐에 따라 형체가 사라지는 것으로 여긴다. 이 형체는 하늘, 땅, 인간, 동물, 식물, 사물 등 다양하다. 리는 기보다 앞서 존재하지 않고 기의 운행 과정에 형성되는 조리이다. 이 조리는 기를 초월하는 영원불변한 보편 법칙이 아니고 그 기가 활동하는 동안에 역할을 하는 기의 리이다. 리와 기에 대한 그의 관점은 리를 기보다 앞선 것으로 여기는 성리학자들의 관점이 아니라 리에 앞서 존재하는 기를 우주의 본체로 여기는 기철학의 관점이다. 그는 리를 기와 분리되지 않고 항상 기와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왕부지에 의하면 이러한 리가 인간에게는 도덕적인 본성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하늘의 핵심 원리인 원, 형, 이, 정을 자각적으로 본받은 인, 의, 예, 지의 도덕성이다. 그런데 왕부지는 사잔 역시 감정이 아니라 본성으로 생각한다. 왕부지에 의하면 인간은 항상 마음에서 도덕성을 발현해야 하는데 사단 역시 칠정과 같은 감정이 아니라 본성이다. 이는 사단을 도덕 감정으로 여기는 성리학자들의 관점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왕부지의 지행관에 대해 살펴보았다. 왕부지는 성리학이나 양명학이 행함을 선험적인 앎을 드러내는 것으로 취급한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즉 그는 성리학이나 양명학이 행함의 범주를 도덕적 실천 중심으로 설정하는 태도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행함에 대해 도덕적 실천 뿐만 아니라 과학 실험과 생산 실천 등 역사 속에서 행하는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으로 생각했다. 그는 알믜 대상에 대해서도 선험적인 도덕 내용에 국한 시키지 않고 자연과 역사의 법칙 등으로 확장했으며 앎의 방법과 과정에서도 감각과 지각을 근거로 하는 감성적 앎과 개념, 판단, 추론을 기초로 하는 이성적 앎의 통일을 중시했다. 그는 앎의 방법에서 현상적인 앎과 본질적인 앎 중 어느 한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나머지를 소홀하게 취급한 거싱 아니라 현상적 앎과 본질적 앎이 통일될 때 비로소 바람직한 앎이 형성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전의 많은 철학자들이 내적 직관 방법을 선호한 것과 달리 서양으로부터 전해진 자연 과학 방법을 수용하면서 객관적 논증 방법을 중시했다. 이는 사물을 연구할 때 어떤 원리를 먼저 제시한 수 그것을 체즉하라는 관점이 아니라 실제적인 일을 연구함으로써 하나의 권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으로 관찰과 실험을 통한 검증을 중시하는 관점이다. 그는 전통 펄학의 격물치지에 대해서도 단순히 글을 외워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 사물에 대헌 고찰과 실험을 통해 그 본질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설명하면서 내적 직관의 불립문자나 돈오 드으이 방법을 지향하는 불교의 선종을 비판하고 과정을 성실하게 밟아가는 학문과 사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사물을 성실하게 관찰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선인들이 쌓아 놓은 업적을 배우고 익힘은 물론 그 내용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는 직관의 방법을 통해 순간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과 다르고 감각적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추상적인 사유와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물의 본질이 파악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철학사에서 앎과 행함의 관계 문제는 주로 앎과 행함 중 앞섬과 뒤. 가벼움과 중요함, 어려움과 쉬움 등의 문제로 드러나지만 왕부지는 앎과 행함을 통일의 관계로 설정한다.
왕부지의 지행선후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왕부지는 행함의 앞섬과 앎의 뒤설의 기반 위에 행함의 앞섬에 대해 더욱 치밀한 논리를 전개했다. 그는 앎에 대해 감각 기관의 활동으로부터 시작하고 활동이 진행되면서 계속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생산 행위와 과학 실험 및 사회 변혁의 행함을 통해 정확한 앎이 도출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즉 그는 사회적 앎을 통해 산재해 있는 모순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모순을 제거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는 전통의 시대에 사회를 관념화시키지 않고 자신의 시대 문제를 역동적으로 해결해 가는 이론 근거로 작용했던 행함의 앞섬과 앎의 뒤설을 현대 사회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면서 현대의 문제를 풀어 가는 이론 근거의 하나로 설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지행경중의 문제에 관해 앎과 행함의 앞섬과 뒤 문제에서 많은 철학자들이 비록 앎의 앞섬을 주장했을지라도 가벼움과 중요함의 문제에서 동중서와 정이 등 일부를 제외한 공자와 주희 등 대부분의 중국 전통 철학자들은 행함을 중시하는 관점을 취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했을지라도 그 행함의 내용은 선험적으로 갖추어진 도덕적 내용의 앎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 속에서 경험하는 구체적인 행위의 활동에 주목하며 행함을 중시하는 왕부지의 이론과 차이를 갖는다. 왕부지는 왕양명의 앎과 행함의 합일설에서 말하는 행함 역시 선험적인 양지를 현실 생활에 드러내는 행함이기에 진정한 의미의 앎과 행함의 통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앎에 대해 행함으로부터 나오며 도덕적인 가치 역시 인간의역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출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앎은 반드시 행함에 의지하고 행함을 통해야 가능하가. 이러한 그의 주장은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자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다음으로 지행난이의 문제에 관하여 앎과 행함의 어려움과 쉬움의 문제는 앎과 행함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기에 정도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정이와 손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국 전통 철학자들은 행함 중시의 관점에서 행함이 어렵고 앎은 쉬운 것이라고 했다. 왕부지 역시 이러한 관점이다. 그러나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자들은 특별한 조건을 살펴보지 않고 단순하게 어느 것이 쉽거나 혹은 어렵다고 해서는 안괸다는 관점이다. 중국식 사회 주의 철학에서는 쉽거나 어렵다는 문제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전화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에 따르면 어느 경우에는 앎이 어렵고 행함은 쉬우며 어느 경우에는 행함이 어렵고 앎은 쉬울 수 있는데 이러한 상태는 또 다른 상황에 의해 전화될 수 있다. 이는 앎과 행함의 어려움과 쉬움 문제를 고정시켜서 보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지행통일에 관하여 왕부지는 앎의 자율성을 승인한다. 그는 앎과 행함의 기원 문제에서 행함이 앞서지만 과정 중에 앎이 행함에 반작용하며 행함을 지도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앎과 행함은 서로 관계하며 서로를 이끌 수 있다. 이 부분은 중국 유가 철학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합리적인 사상으로 중국 현대 철학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부분이다. 특히 모택동은 이것을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 이론에 기여하게 하여 생산 관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이론으로 활용하였다. 따라서 중국식 마르크스 주의에서 주장하는 앎의 자율성은 실제를 벗어난 사유의 방임이 아니라 객관 법칙에 부합하고 실제에 부합하려는 것이기에 자각적으로 객관 세계를 개조함은 물론 주관세계도 개조하고 주관과 객관, 앎과 행함의 주체적이고 역사적인 통일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왕부지와 중국 현대 철학에서는 앎과 행함의 통일이라는 공통점을 드러낸다. 왕부지는 특히 양명의 앎과 행함의 합일설과 자신의 앎과 행함의 통일관은 다르다는 관점에서 양명의 앎과 행함의 합일설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양명이 말하는 합일은 모음을 말하면서 나눔을 말하지 않고 같음을 말하면서 다름을 말하지 않는 등의 다양성 속에서의 통일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무차별의 동일이라고 지적한다. 즉 통일은 구체적인 현실이 빚어내는 다양한 갈등적 요소들을 행함을 통해 하나하나 모아 나아가는 것인데 왕양명은 미리 정해진 관념적인 양지 속으로 행함을 귀속시키는 의미의 동일만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차별적인 동일은 결국 상호작용을 발생시킬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 될 수 없다고 왕부지는 지적한다.
- 토론 주제
왕부지의 기철학에서는 앎은 감각기관의 활동으로 시작되어 진행되고 발전할 수 있는 ‘행선지후(行先知後)’를 주장하였고, 주희의 성리학에서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오랜 시간 사물을 관찰하는 앎이, 실천보다 먼저라 하여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주장하였으며, 왕수인의 양명학에서는 앎은 실천의 시작이고 실천은 앎의 완성이기에 앎과 실천은 한 몸이라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한다.
행선지후, 선지후행, 지행합일 중 어느 것을 지지하는가?
왕부지의 기철학에서는 앎은 감각기관의 활동으로 시작되어 진행되고 발전할 수 있는 ‘행선지후(行先知後)’를 주장하였고, 주희의 성리학에서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오랜 시간 사물을 관찰하는 앎이, 실천보다 먼저라 하여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주장하였으며, 왕수인의 양명학에서는 앎은 실천의 시작이고 실천은 앎의 완성이기에 앎과 실천은 한 몸이라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한다. 행선지후, 선지후행, 지행합일 중 어느 것을 지지하는가?와 같은 토론 주제에 대한 저의 입장은 왕수인을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저는 지행에 관련한 부분에서 지와 행의 선후를 정하여 행동하는 것보다 지와 행은 선후도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아닌 두 가지의 개념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어느 하나를 먼저 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실생활과 관련지어 더욱 깊게 생각해 본다면 지와 행은 실생활에 있어 모두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하나의 선후도를 정하기 보다 두 가지 모두 생활 속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기에 지행은 분리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왕수인의 입장에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