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성장은 성적인 성장뿐 아니라 생각과 가치, 태도와 행동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다. 성년이 된 소녀시대는 선정적 전략이 판치는 오늘날 걸그룹 세계에서 세련된 이미지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소녀시대가 지난 2월 신곡 〈미스터 미스터〉(Mr. Mr.) 발표를 앞두고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한겨레 자료 |
아무튼 소녀시절의 등장은 그들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오히려 소녀시대를 환기시킨다. 지난 2월24일 싱글 <미스터 미스터>(Mr. Mr.)로 ‘그녀들’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수많은 걸그룹이 있(었)다. 원더걸스, 카라, 티아라, 2NE1, 에이핑크, f(x), 브라운아이드걸스, 미스에이, 포미닛, 걸스데이, 시크릿, 씨스타, 애프터스쿨, 나인뮤지스, 달샤벳, 레인보우…. 40대 후반 아저씨가 나열할 수 있는 걸그룹만도 이만큼이다. 모두 누구나 할 것 없이 아름답고 개성이 있다. 그야말로 우리 대중가요계는 걸그룹의 춘추전국시대다. 하지만 최고는 소녀시대다. 소녀시대는 팬카페 회원 수가 약 27만 명으로, 이 기준에서 2위인 원더걸스(8만 명)의 3배가 넘는다. 여자 솔로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유가 14만 명 정도임을 보더라도 소녀시대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여성 아티스트임이 틀림없다. “지금은 소녀시대”라는 그녀들의 구호대로 지금은 그녀들의 시대다.
소녀시대는 9명의 소녀(?)로 구성된 걸그룹이고, 2007년에 데뷔했다. 2010년 일본에 진출해 싱글 <지>(Gee)를 발표하고 오리콘 차트 2위에 올랐다. 일본에서는 외국 가수가 오리콘 차트 3위 안에 오른 일이 30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한다. 2011년에는 월드와이드 앨범 <더 보이스>(The Boys)를 내고 2012년 1월31일 미국 CBS의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했다. 소녀시대의 인기와 영향력은 나라의 경계를 넘어 아시아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들의 데뷔 무대를 보면서 ‘소녀대’를 떠올렸던 구세대 아저씨의 감수성으로는 소녀시대의 등장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았다. 아홉 소녀들은 그 이름을 외우기는커녕 얼굴을 식별하기도 어려웠다. 마침 ‘모닝구 무스메’와 똑같이 9명이었고, 같은 회사에 슈퍼주니어 같은 남성그룹이 있었으니 그들의 정체성은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들의 노래는 ‘록의 처절함’에 찌들어 있던 이 귀에 들어오기에는 지나치게 얕고 가벼웠다. 물론 하나같이 예쁘다는 생각은 했다.
지금의 주류 대중음악이 그렇듯 소녀시대 또한 댄스와 스타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주얼 중심의 그룹이다. 여기에 찰떡같이 귀에 붙으라고 만든 ‘후크’가 더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랫말을 외울 수 있는 노래는 없지만, “지 지 지 지 베이비 베이비”(<지>)는 안다. 스타일이나 댄스나 모두 나름의 미학을 가진 대중예술의 한 부분이고, 후크송 또한 단지 ‘반복’된다는 이유만으로 상업적이라거나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스>(Single Ladies)는 높게 평가하면서 소녀시대의 노래들에는 야박하게 점수를 매겨야 할 이유가 없다. 실제 록의 역사상 명곡으로 손꼽히는 걸작들 가운데에도 후크송이 적지 않다. 댄스와 스타일 또한 마찬가지다. 세대가 거듭되는 동안 음악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변했다.
그동안 7년의 시간이 흘렀고 소녀시대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게 되었지만, 그들의 음악은 이제 우리의 대중적이며 보편적인 문화 코드들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지나치게 얕고 가벼워 귀에 들어오기 힘들었던 노래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들린다. 서태지의 <난 알아요>의 가사가 들리느냐로 신세대와 구세대를 판단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 그 노래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신해철의 <재즈카페>가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들렸던 시절을 지나 드렁큰타이거의 랩 <난 널 원해>를 고전으로 생각하는 시절이 되었듯, 소녀시대의 노래 또한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전에는 없던 감수성의 회로를 우리 문화 속에 꾸려넣었다.
전에는 소녀시대의 군무를 보며 수많은 소녀들의 압도적 이미지에서 오는 스펙터클이 상당히 선정적이라 생각했다. 만약 한두 명의 소녀가 똑같은 안무로 춤을 춘다면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 모습이 아홉 소녀의 군무에서는 차이와 반복의 짧지만 강한 효과를 발생시켜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AOA의 <흔들려>, 걸스데이의 <섬싱>(Something), 포미닛의 <거울아 거울아>의 퍼포먼스에 비한다면 그들의 무대는 선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착하고 건강하다.
세상의 모든 소녀들은 결국 ‘소녀시절’이 된다. 윤아, 수영, 효연, 유리, 태연, 제시카, 티파니, 써니, 서현(아홉 맞다) 또한 다르지 않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성년이 된 걸그룹들이 대개 레인보우처럼 ‘블랙’으로 상징되는 선정적 전략을 취하는데 비해 ‘세련됨’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소녀가 성장해 어른이 된다는 건 단지 성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녀의 성장은 몸과 마음, 생각과 가치, 태도와 행동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다. 어쩌면 세련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선정적 이미지를 최소화했던 일종의 ‘고급화 전략’이 소녀시대의 주된 마케팅 포인트였을 것이다. 적어도 소녀시대에게 이는 좋은 선택이었다. 수도 없이 많은 아티스트가 켜졌다 꺼지는 우리 대중가요계에서 데뷔 7주년에도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걸그룹은 이들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 인기는 쉽게 소모되지 않는 마디고 단단한 능력과 이미지에 있다고 믿는다. 음악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들의 자리는 또 다른 차원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의 성공이 다만 아름다울 뿐이다.
유효기간 다된 명품 떼에서 홀로 설 때 [18호] | |
[대중문화 속 인물] ‘숙녀’가 된 소녀시대 | |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소녀시대 수영은 정경호와의 열애를 부인했던 이유로 “소녀시대가 아닌 개인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비단 수영뿐만이 아니었다. 태연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도 그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 한류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이는 아이돌 가운데 부동의 지존으로 불리는 소녀시대지만, 멤버들은 팀 바깥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원적 불안감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2007년 <다시 만난 세계>라고 하는 지극히 SM적인 사운드로 등장한 소녀시대는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전복적인 문법을 갖춘 팀도 아니었다. 소녀시대 이전에 SM 여자가수 ‘No.1’이던 보아가 불렀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 멜로디에서 소녀시대는 뭔가 보아의 폭발력에 비해 산만해 보였고, 9명의 역할에 대한 규정도 모호해 보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소녀시대를 두고 ‘본격적인 연습생 대방출’이라 빈정댔고, 또 어떤 이들은 ‘SM의 전략이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일처제에 대한 회의와 탐구가 언제나 대중문화의 소재가 되는 것처럼, 다양한 것을 향한 대중의 욕망은 무려 9명의 캐릭터를 동시에 ‘론칭’한 SM의 전략에 관심을 보였다. 소녀시대는 그렇게 ‘백지영, 이효리, 이수영’의 다소 올드한 삼분지계가 이어지던 여자가수의 흐름에 묘한 변곡점을 형성해냈다. 여기에 충성스러운 팬덤을 가진 SM이 ‘작심하고 낸 걸그룹’이란 입소문이 겹쳐지며, 막대풍선을 흔드는 10대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녀시대는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를 외치며 향후 가요계의 흐름을 예고했고, 막대사탕을 흔들며 “키싱유”를 외칠 땐 미래의 걸그룹들이 어떤 경로를 밟아 성장할 것인지를 예감케 했다. 소녀시대는 가요시장의 거품이 꺼진 이후 자신들의 타깃오디언스(표적수용자)가 누구인지를 가장 영리하게 설명해내고 가장 확실하게 설정했던 팀이다. 멀리서 지켜보되 구매력과 영향력을 동시에 갖춰 지켜준다는 ‘삼촌팬’ 현상을 끌어냈고, ‘연예인 공화국’에서 절대 증거를 기다리던 10대들에게는 그 자체로 희망과 성공을 증명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렇게 소녀시대는 8년의 역사를 쌓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소녀시대 이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법 자체가 소녀시대를 ‘표준’으로 작동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소녀시대의 성공은 이후 모든 기획사가 묻고 따질 것도 없이 ‘떼’로 불리는 걸그룹을 기획하는 배경이 됐다. 이제는 계보학을 쓰고 당대의 서열을 논할 수 있을 정도로 서사의 강을 이루는 2000년대 후반 이후 걸그룹사는 소녀시대를 출발점으로 하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소녀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는 군인들의 ‘떼창’이 더 기억나는 <지>(Gee)를 시작으로 <소원을 말해봐> <오>(Oh!)를 잇따라 폭발시켰던 2009~2010년은 대중문화의 거의 모든 것을 소녀시대가 ‘장악’했던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장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 시기 소녀시대가 단순히 인기 있는 연예인이 된 것을 넘어 소녀시대의 기획사가 다른 사회·문화적 맥락을 잠식해가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바야흐로 다른 산업의 첨병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9년 소녀시대가 발매한 싱글 <햅틱모션>은 삼성 휴대전화를 팔기 위한 합작 프로모션이었다. 삼성은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보다 SM의 이름 있는 가수들이 나서는 것이 상품 판매에 더 유효할 것이라 판단했고, 이 판단은 향후 ‘한류’의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데 기념비적인 영감을 제시했다. 소녀시대에 이르러 연예기획사는 한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제조사를 대리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로 성장했다. ‘사실성보다는 환상성이 강하고 논리성보다는 즉흥성이 강한 것’이 대중문화의 특징이다. 스타는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만들어지는 스타들 가운데서도 아무나 소녀시대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비해 훨씬 예측 가능한 프로모션이 펼쳐진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어떻게 대중의 마음이 포획되는지를 계측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녀시대는 이전에 존재하던 ‘걸’에 대한 환상을 가장 넓고 또 낮게 펼쳤던 끌그물이었다. 그래서 성공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성공한다면 엄청난 일이 될 것이라는 기획사의 전략적 판단이 이뤄낸 승리였다. 9명의 소녀들은 근래 가장 완벽한 환상성의 조합이었고,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후렴구의 즉흥성은 가요의 문법 자체를 압살했다. 다른 진로를 모색했던 소녀시대의 활동이 확실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유닛 활동을 통한 솔로 독립의 가능성도 여전히 불투명한 때 앞으로 소녀시대가 어디로 향할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센터 윤아’라고 불리던 윤아가 연애를 하고, ‘오빠들의 연인’이라고 불리는 수영마저 한 남자의 여자가 된 상황에서 그들을 향한 환상성도 많이 걷히고 있다. 이제 소녀시대는 ‘연애시대’라는 사실적 추궁과 더 이상 소녀가 아닌 ‘숙녀시대’라는 세월의 논리성에 동시에 답해야 하는 위치에 와 있다. 여전히 ‘전용기를 갖고 싶다’는 꿈을 말하고, 그 꿈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듯도 하지만, 소녀시대가 다음 앨범을 지금과 같은 주기와 모습으로 낼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소녀시대와 함께 소녀 시절을 보낸 많은 소녀들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며 소녀시대의 콘서트를 예매하고,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SM의 얄팍한 앨범 나누기 전략에 호응하는 의리를 보이고 있지만 그 마음들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도 두고 봐야 한다. 소녀시대 이후, 다시 소녀시대 같은 그룹을 또 언제 ‘기획’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 기획은, 상품 주기는 끝났음을 인정해야 한다. 소녀시대보다 앞서 소녀였던 성유리는 소녀들을 향한 힐링 멘토로서 “이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빛나던 ‘떼’에서 언젠가 평범한 개인으로 돌아오더라도 부디 그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