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 고려 무신 정권 때 만든 특수 군대로서 1219년 최충헌의 정권을 이어받은 최우가 도둑을 방지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야별초 에서 비롯된 군대,별초란 용사들로 조직된 선발군이란 뜻이다,그 후 인원이 늘어나자 좌별초,우별초로 나누고 몽고군의 싸움에서 포로가 됐다가 탈출한 병사들로 신의군을 조직하여 이를 좌,우별초와 함께 삼별초의 조직을 만들었다,무신 정권의 앞잡이로서 개인 군대 같은 요소도 있었으나 몽고와 싸울 때 선두에서 유격전술로 그들을 괴롭혔고 무신 정권이 무너 지고 몽고와 강화가 이뤄지자 반란을 일으켰다,삼별초의 난은 이렇게 해서 일어난것이다, ----------------------------------------- 배중손과 삼별초의 난 그리고 항몽정신
배중손은 1270년(원종 11) 강화에서 개경으로 도읍이 옮겨진 후 조정에서 몽고에 반대 하는 세력을 없애려고 병적을 압수하자 삼별초의 지휘관으로서 몽고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 고려 중기의 무장이다,
개경 환도는 곧 몽고에 대한 굴복이므로 원종과 문신들 에게 강력히 항의했다,그는 비록 무신 임연을 따르긴 했지만 여느 무신과는 달리 개인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지 않고 몽고에 대항하는 항몽 정신을 지닌 무신 이었다,그 동안 집권했던 무신들이 워낙 심한 횡포를 부려 다른 무신들 까지 함께 비난을 받았지만 무조건 외세에 굽신거리기만 하려던 문신들과는 달리 그는 진정한 자주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강화를 떠나 진도에 들어가 그 곳을 항몽의 근거지로 하여 남해 일대의 바다를 장악하여 한때 거제도,제주도 등의 30여 섬을 지배하며 하나의 바다위 왕국을 이루기도 하였다,그러나 그 것도 한때,여몽 연합군의 대병력과 대포를 비롯한 갖가지 신무기 앞에 힘이 부친 나머지 평정 되고 말았다,배중손이 걱정하던 대로 삼별초가 팽망하자 고려 조정은 완전히 몽고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었다, ----------------------------------- 고려 시대의 금속 활자
금속 활자는 놋쇠,납, 무쇠 등을 녹여 부어 만든 활자로써 주자라고도 한다, 1234년(고종 21) 고려의 최우가 세계에서 제일 먼저 만들었다는 금속 활자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 활자 보다, 216년이나 앞섰다고한다,
고려의 금속활자가 세계최초의 것으로 인정 될 수 있었던 것은 파리의 국립 도서관에 소장 돼 있는 고려 말에 절에서 찍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377년(우왕 3년) 충청도 청주 밖의 흥덕사에서 만든 금속 활자로 찍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 당시 고려에서는 서적점이라는 중앙 관서가 있어 주자(활자) 인서(책) 등을 관장하였는데 중앙 관서가 아닌 한 지방의 사찰에서 이런 금속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었다는 것은 당시 금속 활자에 의한 인쇄술이 굉장히 발달했음을 짐작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