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십년 전 애들이 아직 어릴 무렵 하계 휴가 때 청량산 입구 다리 밑에서 캠핑을 한 적이 있다.
친구 가족과 더불어 항상 같은 시기에 휴가를 얻어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당시 명호천의 물이 무척 맑고 다리 밑의 모래사장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 된다. 강에서는 은어가 많아 은어 낚시꾼들도 꽤 눈에 띄기도 했었다.
우리도 피리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청량산에 다녀온 지도 어느 덧 10년이 지난 것 같다.
청량산만 달랑 오른다는 것이 거리도 짧거니와 시간도 크게 소요하지 않는 터라 발걸음이 쉬이 내키지 않은 탓도 있었으리라.
해서, 이번에는 맞은 편 축융봉도 함께 오르기로 했다.
다리를 건너오면 도로를 가로질러 청량지문이 세워져 있다.
지나자 마자 왼 쪽으로 등로가 있는데(도로를 따라 한참 올라가면 입석 들머리도 있다), 예전 찾았을 때는 이곳으로 내려왔었다. 당시 정상 쪽에서 내려오는 길이 워낙 경사가 급하고 험했는데 아무런 안전 시설이 없어서 내려오는데 제법 애를 먹은 기억이 나는데 그때도 이곳을 이용하는 산객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오늘은 이곳으로 올라가서 입석으로 내려와 다시 축융봉을 오른 뒤 앞에 보이는 청량지문 좌측 계곡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초반부터 급한 경사가 시작되며 침목계단과 너덜길이 번갈아 이어지는데...
그렇게 급하게 올라가던 등로는 산허리를 돌아가며 잠시 숨죽이는 듯 하다가,
거의 수직으로 솟아 있는 계단이 나타난다.
이 계단을 필두로 오늘 종일 계단과 씨름을 하게 되는 첫 관문을 여는 셈이 된다.
삼부자송.
청량산 장인봉 아래에 있는 금강암에 어떤 부부가 세상의 풍파를 피해 들어와 화전을 일구며 살고 있었다. 부부는 금강암 아래에 있는 엽광동(입너비)의 산비탈을 옥토로 바꾸면서 몇 해 부지런히 농사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혼인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자식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엽광동으로 가는 길목에 세 갈래로 뻗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부부는 밭일을 하러 오가며 자식을 바라는 열망을 이 소나무에게 지극 정성으로 빌면서 몇 해를 보냈다. 그러던 중 그들의 정성이 통했는지 마침내 쌍둥이 아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부는 이 소나무의 이름을 '삼부자송'으로 명명하고 정월 보름과 칠월 백중을 맞아 정성스레 당산제를 올리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엄청난 급경사와 수많은 계단들을 오르며, 예전에는 아무런 시설도 없었던 이곳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오르면서 생각해보니 지금도 아찔하기만 하네!
이곳의 계단들은 가파른데다 높이도 엄청나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듯이 까마득하게 걸려 있는데 도무지 끝날 줄을 모른다.
금강굴.
금강굴은 금강대 뒤편 장인봉 서쪽 낙동강 위에 있다.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고 비바람을 면할 수 있다. 그윽하고 고요하여 독서하며 수양할 수 있는 장소로 적격이다. 퇴계의 급문제자였던 성재 금난수가 1566년 한 달간 이 굴에서 공부한 바 있으며, 정안이라는 승려가 수도하며 머물렀다. 금강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도 구들장과 기와 조각이 남아 있다. 1579년 청량산을 유람했던 갈봉 김득연의 기록에서 당시 금강굴과 금강암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험로를 거듭 지나 마침내 금강굴에 도착하니, 굴에 조그만 암자가 있고 암자 밑은 절벽이었다. 시렁처럼 얹힌 바위가 곧 기와지붕을 대신하였고 층계 구름이 고요히 일었다. 여기는 바로 정안이라는 승려의 거처였지만 돌아올 시간까지 있을 수 없어 내려왔다. 바위 끝에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먼 곳을 바라보니 벼랑이 갈라진 곳에 한 줄기 물이 철철 흘러 아래로 빙 둘러 내려가서 더욱 이 암자의 빼어난 경관을 도와 주었다."
<김득연 :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
시야가 트이며 건너편의 산 중턱의 과수원과 ,
아래로 흘러가는 명호천 그리고 청량교가 보인다.
예전에 모래와 자갈이 그득했던 청량교 바로 밑은 풀이 그득하여 과거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고, 청량교 옆은 캠핑장을 건설하는 공사로 분주하다.
할배할매송.
옛날 청량산에 약초를 캐며, 비록 자식은 없으나 금슬 좋은 어떤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병들어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약초를 캐러간 할머니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할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한참을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금강대 절벽에 매달려 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할아버지는 힘에 부쳐 막 떨어지려하는 할머니 손을 겨우 잡았으나. 결국 노부부는 함께 절벽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늘도 이를 안타깝게 여겼는지 노부부가 떨어진 자리에는 그들의 모습을 닮은 애틋한 소나무 한쌍이 자라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계단들.
이곳으로 내려오는 산객 일행 몇을 만난 뒤로는 장인봉에 오를 때까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요즈음에는 입석에서 올라 이곳으로 내려오거나, 아니면 입석에서 청량사를 거쳐 장인봉에 올랐다 바로 청량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는 산객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전망대가 있어 올라가니 눈앞에 장인봉이 보이고 우측 맞은 편에는 축융봉도 보인다.
전망대에서 건너다 본 축융봉.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 옆에 자라난 공조팝나무.
다시 계단을 내려서고...
또 올라간다.
우측 멀리 안동의 학가산이 보이고...
장인봉(870m).
청량산(淸凉山)은 경북 봉화군에 있는 산이다. 최고봉은 장인봉이며 1982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청량산은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경상 누층군 청량산층 등의 역암, 사암, 이암층이 융기·풍화·차별침식 등의 작용으로 다양한 지형이 나타나고 있는데, 봉우리들은 모두 역암으로 이루어져 저각도 수평층리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V자곡이 발달된 계곡 주변엔 소규모의 수직·수평 절리에 의한 풍화혈과 타모니 등이 발달하여 특별한 경관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학술적 가치도 뛰어나다. 해발 800m 내외에 12개 암봉(六六峰 :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탁립봉, 금탑봉, 축융봉)과 청량산 12대(독서대, 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청량산 8굴(김생굴,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및 청량산 4우물(총명수, 청량약수, 감로수, 김생폭)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다시 급하게 내려서고...
하늘다리를 건넌다.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에 위치한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길이 90m, 높이 70m, 바닥폭 1.2m로 산 안에 설치된 현수교량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곳에 위치한다고 하네.
하늘다리를 건너면서 바라 본 축융봉.
하늘다리를 지나 잠시 내려서니 뒷실고개이다.
우측으로 청량사로 향하는 등로가 있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청량사에서 이곳으로 올라왔다 이곳으로 내려간다.
뒷실고개에서 자소봉방향으로 설치된 무지하게 가파른 계단.
무영봉.
연적고개를 지난다 우측에 청량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연적봉(846.2m).
이곳에서는 제법 조망이 트인다.
진행방향으로 탁필봉(자소봉 앞인데 자소봉과 겹쳐보여 구분이 힘들다)과 우뚝 솟은 자소봉, 자소봉 바로 좌측 뒤에 나지막하게 탁립봉이 있는데 앞 고사목 우측 나무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소봉 좌측 바로 뒤 멀리 영양의 일월산도 보이고...
탁필봉(855.6m).
봉우리라기보다는 그냥 우뚝 선 바위 같다.
자소봉이 보이지만 뒤로 돌아서 올라가야 한다.
돌아서 계단을 올라 도착한 자소봉(873.7m).
이곳에서 둘러보는 조망도 아주 좋다.
가운데가 일월산.
당겨보았다.
우측 문명산.
이제 경일봉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는 일반 등산객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이후 어풍대에 이르기까지 한 명의 산객들도 볼 수 없었다.
바람도 제법 살랑 살랑 불고 하니 시원하여 더운 줄 모르고 산행을 이어간다.
경일봉(845.7m).
제법 내려선 곳에 있는데 표지석에 기록된 높이가 좀 이상하다.
그냥 평범한 봉우리라 바로 내려간다.
산 전체가 안전시설과 계단덩어리인 것 같다.
금탑봉(647.1m). 층층절벽으로 이루어져 이름지어졌다는데 층층절벽은 볼 수가 없었다.
봉우리에 묘지가 있어 조금 아래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조망도 없고 봉우리라 하기엔 조금 거시기하다.
뒤로 길이 보여 넘어갔는데 어느 덧 등로는 사라지고 다시 옆구리를 치고 돌아오니 처음 오른 금탑봉 바로 아래 삼거리로 돌아온다. 되돌아 내려가야 했는데 헛고생만 사서 하고 말았다.
되돌아온 곳에서 김생굴 방향으로 내려간다.
삼거리에서 김생굴을 들르기 위해 우측으로 진행.
돌덧무덤에서 당겨본 청량사.
돌덧무덤(石槨墓.)
경일봉 자락에 위치한다. 석곽의 장축방향은 동-서이며 벽면은 30*20*20cm 전후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2단으로 쌓았다. 규모는 길이 110cm, 너비 50cm, 깊이 30cm 정도인데 서쪽 벽이 파괴되어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다. 두 장벽에서 오른쪽과 왼쪽으로 70cm 떨어진 곳에 호석(護石)이 있다. 호석은 직선 형태로 장축과 평행하고 규모는 길이 100cm, 높이 15cm이다. 무덤이 조성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 무덤에서 격자 문양의 토기편이 수습되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석곽묘는 대부분 경사가 완만한 야산에 여러 기가 모여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무덤은 그 위치와 분포 밀도면에서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것인지 몰라 둘러보았는데 아마 이곳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앞의 바위는 호석인 듯...
김생폭포.
김생굴 앞에 있으며 장마철에 여러 계곡의 물이 합류하여 폭포를 이루어 오산당에서 바라보면 천길 높은 곳에 흰 물줄기가 쏟아지는 것이 장관이다. 송재 이우가 쓴 시의 한 구절인 '옥홍황음간중천(玉虹橫飮澗中泉)'이라는 표현에서 김생폭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물줄기가 마치 가는 실처럼 흘러내리고 있는데 폭포라고 하기엔 좀 그랬다. ㅎ.ㅎ.
비가 쏟아져야 물줄기가 생기는 폭포인 것 같다.
김생굴.
경일봉 중층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 김생이 글씨를 연마하던 장소인데, 상하가 절벽으로 되어있고 그 중앙으로 수십 명을 수용할 만한 반월형의 자연암굴로 형성되어 있다. 김생은 이 굴 앞에 암자를 짓고 10여년간 글씨 공부를 하여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인 '김생필법'을 확립하였다. 그는 당시 왕희지체, 구양순체가 유행하던 시기에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독특한 서법을 구사함으로써 가장 한국적인 서풍을 이끌어 냈으며, 이로 인해 해동서학의 종조로 여겨져 한국서예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굴 앞으로는 김생암 터가 남아 있으며, 굴 옆으로는 천길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김생폭포가 위치하고 있다.
김생과 청량봉녀 설화.
김생이 경일봉 아래 바위굴에서 글씨공부에 전념한 지 9년만에 명필이 되었다는 자신감을 갖고 하산하려 하였다. 그 때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나 자신의 길쌈 솜씨와 글씨 솜씨를 겨루어보자고 제의하였다. 그 처녀는 바로 청량봉녀였다. 김생은 처녀의 제의를 수락하여 굴속에서 불을 끄고 서로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이윽고 불을 켠 뒤 비교해보니 처녀가 짠 천은 한 올도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 하였는데, 김생의 글씨는 그만큼 고르지 못하였다. 이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김생이 1년을 더 연마하여 10년을 채운 뒤 명필이 되어 세상으로 나갔다고 한다.
한석봉의 이야기와 비슷하네.
김생굴에서 돌아나와 입석 방향으로 간다.
어풍대(御風臺).
대(臺)는 산에서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평탄한 곳을 말한다. 금탑봉 중층에 위치하고 있는 어풍대는 내청량과 외청량을 연결하는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청량지>의 기록에 따르면, 열어구(고대 중국의 인물)가 바람을 타고 보름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하여 어풍대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명칭은 반야대 였으나, 임흘(任屹, 1577~1620)이 어풍대로 고쳤다. 이곳 금탑봉 중층에는 어풍대와 함께 치원대, 풍혈대, 요초대, 경유대 등이 나열되어 있으며 이들 대에서는 기암절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청량산의 연꽃같은 봉우리와 연꽃 꽃술에 자리한 듯한 쳥량사의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어풍대에서 바라본 장인봉과 청량사.
치원암터.
치원암터는 옛날 최치원이 거처했던 암자터이다. 암벽에는 최치원을 기리고자 청량산을 찾았던 옛 선현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청량산기에는 퇴계가 젋었을 때 쓴 글씨가 남아 있었다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총명수.
고운대와 치원암터 바로 옆에 있는 우물을 이른다. 총명수는 최치원이 마시고 더욱 총명해졌다하여 붙여졌다. 천길 절벽이 상하로 우뚝 솟은 곳에서 물이 일정하게 솟아나는데, 가뭄이나 장마에 상관없이 그 물의 양이 일정하다고 한다. 이 물을 마시면 지혜와 총명이 충만하다하여 예로부터 과거 준비를 하던 선비들은 물론, 경향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와 그 효험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물맛이 꽤 좋고 시원하다.
응진전 뒤편에 있는 약수터.
응진전 무위당 뒤로 금탑봉이 우뚝하다.
이곳에서 보니 절벽이 층층이 쌓인 것 같네.
입석에 도착한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축융봉 산성입구까지 올라갔으나, 계곡을 건너는 목교가 생겨 목교를 건너면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개설되어 있다.
목교를 건너,
양탄자가 깔린 길을 좌측으로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입석에 도착.
산성을 따라 올라간다.
축융봉은 대부분 산성을 올라가다가 거의 마지막에 벗어나게 된다.
전면에 보이는 암벽 위에 밀성대가 있는데 좌측 계단을 이용하면 밀성대에 오를 수 있다.
밀성대(密城臺)에 세워진 밀성루.
산성 입구에서 축융봉 가는 등산코스 700m 지점에 있는 밀성대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들어와 산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하며 대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 명령을 듣지 않는 군졸이나 백성들을 밀어서 처형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장소이다. 밀성대 주위에는 공민왕이 쌓았다는 산성의 흔적이 아직도 완연한데, 밀성대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이곳에서의 조망도 멋지다.
장인봉을 위시한 청량산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그야말로 장관이다.
청량산에서 오마도터널을 지나 축융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잠시 토성으로 들어서기도 하고 다시 성벽을 따라 걷기를 반복하면서,
전망대에 올라서니 고도를 높여감에 따라 조금씩 그 모습을 달리하는 청량산의 풍광이 더 멋진 것 같다.
전망대 밑에 청량산성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청량산성.
청량산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새였다. 이곳은 천연 요새로서의 지형적 요건들을 두루 갖추어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 영토를 빼앗기 위한 각축장이 되었고 서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휘감아 돌고 천인절벽의 험준한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지세는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량산의 산성은 산 전체를 감싸고 있는데, 동문지가 있는 밀성대 아래에서 축융봉을 거쳐 구축된 일명 '공민왕산성'과 다시 경일봉에서 선학봉을 지나 청량사가 있는 계곡 옆으로 포곡선을 그리며 형성된 일명 '청량산성'으로 구분되며, 축융봉과 경일봉을 잇는 일명 '오마대로'로 불리는 '오마도산성'이 공민왕산성과 청량산성을 이어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오마도 산성은 산성의 기본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방어기능 외에도 청량산성과 공민왕 산성을 이어주는 도로의 기능을 하고 있어 다른 지역의 산성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산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성이 축조된 시기는 산성유지에서 삼국시대로 보이는 일부 유물이 수습된 바 있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공민왕이 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해 왔을 때 개축되었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보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성의 형태는 험준한 지세를 이용해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포곡식 산성으로 구간별로 비교적 주변에서 구하기 용이한 돌이나 흙으로 성벽을 구축한 석성이나 토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산성은 장군의 지휘소였던 장대와 건물터, 성문터 등의 유구가 남아 있고 동문지에서 밀성대를 거쳐 북치성까지의 구간은 석성으로 북치성에서 자연지형구간을 지나 축융봉까지의 구간은 토성으로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현재 보이는 이곳은 2009년에 복원된 토성구간으로 길이는 약 334m에 이르며 축융봉 밑에 있는 바위 근처에 북문지로 추정되는 터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오마도터널 갈림길을 지나,
단천교갈림길에서 정면에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 우측으로 오른다.
먼저 축융봉 바로 옆에 있는 서봉부터 올라본다.
서봉에 오르니 사방이 확 트이며 멋진 조망이 기다리고...
좌측으로 안동호, 그리고 우측 학가산이 보인다.
청량의 웅장한 위용.
축용봉에 올랐다.
축융봉에서 바라본 청량산.
좌측 장인봉부터 선학봉, 자란봉, 연화봉, 향로봉,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금탑봉, 경일봉, 탁립봉 등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아래로 청량사와 응진전이 조그마하게 보인다.
우측 멀리 일월산도...
축융봉(860.9m).
한동안 조망을 즐기며 노닥거리다가 시간이 꽤 지체되어 하산을 서두른다.
들머리까지 3km.
하산길 역시 계단의 연속.
정자 옆 계곡에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면,
청량지문 우측 건너편에 오전에 지났던 들머리가 보인다.
계곡에서 잠시 몸을 씻고 귀로에 오른다.
도상거리 15km, 7시간 30분 소요.
역시 멋진 산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멋진 산세와 거침없이 펼쳐지는 조망에 피곤한 줄 모르고 보낼 수 있었던 하루였다.
게다가 맑은 날씨에 햇살이 꽤 따가웠지만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에 크게 더운 줄도 몰랐고.
하지만,
오늘은 산행이 아니라 계단행이라 해야 할 정도로 지겹도록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끝난 산행이라고 해야겠다.
요즈음은 전국 어느 산을 가더라도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설치하는 시설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가 계단이요, 다른 하나는 흔들다리(또는 구름다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산행을 즐기는 나의 입장에서는 가급적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그 돈이 있으면 차라리 조손가정 등 불우이웃이나 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