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리하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이다.>
▥ 야고보서의 시작입니다.1,1-11
1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합니다.
2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3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4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5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6 그러나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7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8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어떠한 길을 걷든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9 비천한 형제는 자기가 고귀해졌음을 자랑하고,
10 부자는 자기가 비천해졌음을 자랑하십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인사를 드립니다'의 직역은 "기뻐하십시오." 이것은 그리스인들의 인사말이다. 여기에만 이런 인사말이 나오고 신약의 다른 서간들에서는 평화와 은총을 비는 인사말을 한다. 원문 1절의 "기뻐하십시오'는 2절의 "큰 기쁨과 관된다. 따라서 이 인사말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특유의 기쁨 속에서 살라는 말이다.
"시련'은 이 서간의 한 주제다. 2-4절의 흐름을 보면 시련은 하느님이 신자를 교육하시는 수단이다(로마 5.34 참조).
"신앙의 시험"은 곧 "시련" 이다. 시련으로 참된 신앙과 거짓 신앙이 가려진다. 시련을 수동적으로 참는데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희망을 가지고 꿋꿋이 견디는 영웅적 자세가 "인내"다. "완전하다" 란 일정한 목표, 즉 그리스도인이 기대하는 세말의 완성을 전제한다.
4절과 5절은 내용상 관련이 없지만 "부족하다" 라는 공통된 낱말로 말미암아 연결된다. 이런 연쇄어 구문이 이서간에 자주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1고린 2.6 참조) 하느님에 관한 일을 판단할 줄 아는 지혜다(3.13-17 참조).
"기꺼이"의 직역은 "단순하게". 하느님은 무엇을 베푸실 때 아무런 조건없이 베푸신다는 뜻이다(2고린 11.3: 로마
12.8: 골로 3.22 참조). "나무라시지 않는다"는 말도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잔소리하며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서슴없이 선선히 주신다는 뜻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동일하다.(마태 7.74 : 마테 18.19: 21. 22: 요한14.13:15.7: 16.23)
"마음이 헷갈린" 사람이란(4,8에도 같은 표현이 나온다) 원문의 "두 마음" 혹은 "이중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역한 것이 다. “두 마음'이란 한편으로 하느님을 섬기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세속에 집착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