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음악)와 나. (下)
1993년 여름.
일터인 도초도라는 섬으로 들어가려고 첫 고속버스를 타고 와 목포에 내렸다. 여객선 터미널에 가보니 서울에선 멀쩡했던 날씨가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어 여객선의 출항이 금지되었단다.
다시 서울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마땅히 아는 사람도 없어 혼자 다방을 전전하다가 시간을 보내려 영화관에 들어갔다.
극장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상영되고 있었다. 영화사상 최초로 100만 명 이상의 흥행기록을 세우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은 유명한 영화였는데 이 영화로 우리 소리에 대한 재평가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는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농사일밖에 모르셨던 조부님이 젊으셨던 시절에 동네 농악대에서 상쇠 (꽹과리 연주자) 노릇을 하였었다는 말을 듣고 대학 시절 집안 어른들을 모시고 몇 차례 <전주대사습놀이>를 구경하였던 생각이 소환되었다.
판소리는 어릴 적부터 어른들의 흥얼거림으로 또 전축 레코드판과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수시로 들으며 살았다. 하지만 그때는 청바지와 장발과 생맥주와 통기타 음악에 묻혀 소리를 멀리하던 시절이었다.
서구의 빠른 리듬에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쉽고 3분을 넘지 않는 시간의 음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이 판소리는 길고 지루하고 고루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투성이로 가사 전달도 잘 안되고 호남지방의 방언이 많아 외면받던 시기에 <서편제> 가 뜬 것이다.
판소리는 영조 때 유진한 (1711~1791)이 쓴 만화집에 춘향가의 사설이 최초로 문헌에 등장함을 볼 때 숙종 무렵인 18세기에 전라도 지방에서 형성되어 19세기와 일제 강점기 때 양반을 대상으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해방이 되고 난 후 쇠약해졌다. 그러다가 2013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판소리는 소리꾼이 노래하는 ’소리‘, 말로 해설하는 ’아니리’, 몸짖을 하는 ’발림‘, 북을 치는 고수와 구경꾼의 ’추임새’가 어우러져 이뤄지는 공연으로 문학성과 음악성 그리고 연극성 등 예술성을 두루 갖춘 우리 전통음악의 한 갈래이다.
여기엔 솔베이그의 기다림에 못지않은 지고지순하고도 애절한 춘향이의 사랑이 있고 파바로티도 넘볼 수 없는 고음이 있으며 잦은모리로 휘몰아치는 어사출두 장면의 소리는 현대 젊은이들의 랩보다도 빠르다.
판소리는 원래 12마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5마당만 전해지고 있는데 소재는 인류의 보편가치와 유교에서 도덕의 기본이 되는 5륜(五倫)에서 빌렸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을 사랑으로표현한<춘향가>, 부자유친(父子有親)을 효로 강조한 <심청가>, 군신유의(君臣有義)를 코믹하게 다룬 <수궁가>, 장유유서(長幼有序)를 형제애로 엮은 <흥보가>,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삼국지에서 끌어와 적벽대전을 노래한 <적벽가> 등이 그것이다.
서양의 종합예술인 오페라는 많은 가수와 배우들이 출연해 자기 분량의 역할만 기껏 두세 시간 노래하면 끝이 나나 우리 판소리는 소리꾼 하나가 고수 한 사람과 더불어 짧게는 3시간(수궁가, 적벽가) 길게는 8시간(춘향가) 이상을 관중과 같이 노는데 소리도 힘들고 듣기도 힘들어 갈라쇼 형식으로 유명 대목만 부르고 듣는 경우가 많다.
또 오페라는 정해진 무대에서 관객들은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고 끝나면 박수나 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에 반해 판소리는 부자 집안에서 환갑 등 큰 잔치나 마을의 큰 굿, 관아에서 주최하는 축제 등에서 마당에 멍석을 깔거나 대청에서 돗자리를 깔고 지체높은 VIP를 상객으로 모시고 구경꾼들의 박수와 호응을 유도하며 같이 잡담도 하고 욕도 하고 호흡하며 혼연일체의 잔치판을 이룬다.
산을 오를 때 고도가 낮은 산이라도 처음에는 힘이 부치고 땀이 나고 호흡이 가파르지만 30분쯤 지나면 몸이 풀린다. 판소리도 이와 같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온다.
처음 소리꾼이 무대에 나타나 관객들과 눈 마중한 뒤 길고도 까다로운 본격적인 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고 쉬운 노래가 단가(短歌)다. 오페라의 서곡이라고나 할까?
“함평(咸平)천지 늙은 몸이 광주(光州) 고향 보랴하고 제주(濟州)어선 빌려 타고 해남(海南)으로 건너갈 때~~~
(중략)
삼천리 좋은 경(景)은 호남이 으뜸이라 거어드렁 거리고 살아보세”
로 시작되고 끝나는 <호남가>는 전라도 지방 54곳의 지명을 넣어 문장식으로 엮은 단가이다. 신재효(1812~1844)가 지은 <판소리 사설집>에 그 가사가 전하는데 호남지방에서만 불려지던 노래가 1867년 경복궁 낙성식 때 전라도 대표로 나가 장원하여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외에 <사창화류> <만고강산> <백발가> <진국명산> <백구가> 등 수없이 많은 노래가 전해지고 창작되기도 하는데 오늘 내가 산에서 들은 소리가 단가 중 <이산저산가>라고도 하는 <사철가> 였던 것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심 봉사가 눈을 뜬 듯, 조조가 백만대군을 잃고 넋이 빠진 듯, 이 도령이 귀신 형용의 쑥대머리를 보고 놀라 자빠진 듯, 놀부가 흥보의 화초장을 보고 기가 막힌 듯한데 내 숨죽이고 있던 영혼이 일시에 들쑤시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던 것이다.
산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사를 공부하려고 교보문고에 “판소리다섯 마당 사설집”을 주문했더니 신품은 재고가 없어 중고품으로 샀다.
소(韶) 음악을 듣고 공자는 고기 맛을 잊었다는데 나는 <사철가> 소리를 듣고 술맛이 살아났다.
오늘 밤부터 빠른 장단에 웅장하고 씩씩하고 남성적인 소리인 <적벽가>를 시작으로 다섯 마당과 단가를 권주가로 들으며 거어드렁 거리고 신선놀음이나 하며 가을밤을 즐겨야겠다.
‘우리 꺼슨 아름답고 소중헌 것잉께!’. <끝>
2022년 8월 26일 최 희 민 씀.
첫댓글 소리코너 잘 읽었습니다.나름 공부도 되고요 다음편을 기대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