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추억하며
전선자(아이리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설날은 잠으로 춥고도 추웠었다.
여느 설날처럼 할머님과 부모님께 새배 드리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흩어졌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오붓하게, 전날 밤부터 떠들석하게 보냈다.
형제, 자매가 일곱이나 되다 보니 거기에 할머님과 아버지, 어머니까지 합하면 식구는 딱 열이었다. 거기에 내 친구 선숙이까지 더하니 그해 설날은 열한 명의 식구가 되었다.
설날 아침, 언니와 나는 어머니를 도와 상차림 하기에 바빴다. 그 많은 식구들 평소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에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어리다 보니 어머니의 그런 정성과 희생을 알 길 없었다.
할머니, 아버지는 언제나 처럼 겸상으로 드시고, 나머지 우리는 둥근 밥상 두 개를 차려 모두가 앉아 모처럼 즐거운 아침 식사 시간을 가졌다.
유독 그날, 설날의 풍경이 지금도 선하게 떠오른 이유는 내 친구 선숙이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선숙이 어머님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예수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자궁근종으로 인해 출혈이 너무 심하셔서 급하게 수술을 받고 병원에 계셨었다. 아버지는 서학동 허름한 집에 여동생과 사셨다. 나와 친한 선숙이를 우리 집에 데려고 와야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처음에는 짜증을 내시었다. 우리 식구만 해도 복잡한데 어떻게 그렇게 해야 되겠느냐고. 그런데 선숙이의 딱한 사정을 들으시더니 며칠 간이나마 같이 지내게 허락해 주셨다. 부모님이 무척 고마웠다. 선숙이 네는 정말 너무 어렵게 살아 끼니 갈 날이 없었을 지경이었다. 선숙이 어머님께서 퇴원하시고 선숙이는 집으로 돌아가며 무척 고마워했고 날 많이 부러워했다. 그 때가 아마 1962년쯤의 일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밥 얻어먹기도 힘들 때였다.
우리 식구의 보통 날이라면 맏이부터 둥근 밥상 하나에 바쁜 대로, 학교가 멀고 빨리 시작하는 대로 앉아 먹고 나가면 또 빈 자리에 앉아 차례를 기다릴 것도 없이 자기 밥만 찾아 먹고 학교 가면 그만이었다. 밥이 부족한 날이 허다했다,
어머니의 밥솥 글캥이 밥도 이놈이 퍼가고 저놈이 한 숟가락씩 퍼가면 어머니는 영락없이 굶어야 했었다는 소리를 우리가 다 큰 뒤에야 말씀하셔서 알게 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배 고픈 설음이 제일 컸었다'는 어머니의 눈물어린 말씀에 가슴이 미어졌었다.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는 별 탈도 없이 잘들 커서 언니가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이리중앙초등학교에 교편을 잡으면서 따로 나가게 되었고, 몇 년 후 오빠가 대학을 졸업하고 ROTC 군관 소위로 입대하니 또 한 식구가 줄어들게 되었다. 나도 간호학교 졸업 후 취업이 바로 되어 서울로 올라가고 이렇게 저렇게 하여 식구가 줄고 나중에는 동생 셋과 어머니, 아버지만 남으시니 식구가 반으로 줄게 된 것이다. 설날의 식구도 줄어들었다. 딸 둘은 25세 전에 모두 시집 갔고 어느 순간 뿔뿔이 흩어져 자기 살림하기 바빴고 그래도 아들이 다섯이나 되는 우리 친정의 설날은 여전히 벅적벅적 손주들로 집안이 가득하여 좋다.
첫댓글 설날을 추억하는 글 절 읽었습니다
적지 않은 식구에 친구까지 있었으니 기억나는 설날이었겠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 겸상하고 형제들이 둥근 밥상에 앉은 모습이 정겨운 날입니다 보이는 그림같이
지난 날을 잘 그리셨습니다
지난 설날을 추억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설날을 쓰고 읽다보니 모두 비슷합니다
그래도 가장 즐거웠던 설은 부모님 슬하에 안주했던 때였습니다
세벳돈을 모르고 설빔만으로 행복해하던 무공해
시절이 그립네요
요즘 아이들 설날은 세벳돈이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머지않은 설에도 나이 한살 정중히 받아드립시다
설날에 형편이 어려운 친구를 챙기신 마음 너무나 소중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고 싶으셨어도 부모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어려울 일입니다.
선생님을 비롯해서 가족분들의 선한 설날의 풍경이 그려집니다.
가족들이 세 개의 밥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풍경은 점점 더 보기 어려워질 상황이라
인구절벽의 한국 상황에서는 역사책에서나 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행복한 설날 모습, 잘 감상했습니다.
글이 세련되지 못한데 답글을 잘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젊은 날은 아픈 기억들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때가 행복하지 않았나 생각되어 집니다.
지지고 볶으며 양말도 먼저 신고 가는 사람이 임자였고요.ㅎㅎ
고맙습니다. 그 선숙이라는 친구는 요즘 여자동창회에서 가끔 만나고요. 잘 지내고 있어요.
선한 눈빛을 가진 선숙이가 지금도 좋아요~ 감사합니다.
설날은 모두가 추억이 참 많습니다. 우리 집도 사각 반듯한 상 앞에는 늘 할아버지, 아버지, 장손 오빠가 앉았고,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동그란 상앞에 있었습니다. 60년대는 배고픈 집들이 많았습니다. 친구분은 사는내내 아이리스님을 많이 고마워할 것 같습니다. 갑진년 설날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어린 시절 설날을 추억하며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