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의 어느 해, 변시지 선생의 그림을 처음 대했을 때 전해 오던 감흥을 잊을 수 없다. 그의 그림은 다소 원초적이고 설화적이었다. 그것은 존재의 쓸쓸함과 생명력에 대한 깊은 통찰의 결과처럼 보였고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의 저돌성에 그 특징이 있어 보였다. 적어도 그의 그림이 나에게 전해오는 메시지의 강렬함이란 다른 어떤 화가의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어떤 것이었다.
선생의 그림에는 우선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이 평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비애와 고독이 '평화롭게' 어우러져 있다는 표현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화폭에 담긴 절제되고 생략된 구도 --- 한 마리의 바닷새와 동화처럼 비뚜로 선 한 낮의 태양과 낚시 대를 드리우고 서 있는 구부정한 한 사내, 쓰러져 가는 초가와 망연히 바다 쪽을 향하고 있는 등짐 진 아낙네와 돌담의 까마귀와 소나무 한 그루,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것들을 휘몰아치는 바람의 소용돌이 ---- 그의 세계는 하늘과 대지의 뒤섞임 속에서 황토 빛으로 열리며, 이들을 묘사하는 먹선의 어눌함과 역동성이 함께 어우러진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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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1>
이러한 구도들이 연출하는 원초적인 적막감과 비애감은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상황에 닿아 있었다. 우리의 가장 감미로운 노래들이 가장 슬픈 생각을 드러내고 있을 때이듯이, 그리고 가장 위대한 드라마가 비극의 가장 깊숙한 투쟁과 패배를 그리고 있을 때이듯이, 비애와 고독을 드러내는 그의 방식이 주는 미적 쾌감은 적막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우주적 연민, 이 감정들은 아마 우리가 자연에서 품을 수 있는 감정 가운데 최고의 것이며 인생과 예술미의 원형적 형상이기도 할 것이었다.
1987년 어느 가을날 오후, 인사동의 작은 찻집에서 만난 60대의 소년을 잊을 수가 없다. 노 화가는 작은 키에 베레모를 단정히 쓰고 지팡이를 쥐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맑았으며 목소리는 소년처럼 어눌했다. 오랜 일본생활 때문인가 싶었지만 그는 아예 처음부터 세상살이에 대해 그렇게 어눌한 사람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의 걸음걸이가 한쪽으로 기울자 나는 그를 가볍게 부축했는데, 그때 그는 지팡이를 들어 눈앞의 술집을 가리키며 악동처럼 웃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대취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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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한 지역의 바람과 흙은 거기에서 나서 자란 예술가에게 어떤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 스페인 까다로니아 지방의 피가소와 미로, 지중해의 습기와 향일성 식물의 알베르 까뮈, 그리고 제주의 변시지에게 그 흙과 바람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러나 변시지의 그림에 보이는 남국적 풍광의 제주도는 귀향인의 향토애도 자연에 대한 서정주의도 아닌 그 무엇이었다. 제주의 선과 빛과 형태는 그에게 있어 하나의 방법이요 이념으로 승화되었다. 그는 그곳의 선과 색채와 형태에서 그의 삶의 근원적인 고독이나 설화의 줄거리를 찾으려 한 것 같았다. 태양, 바다, 바람, 갈매기, 폭풍, 까마귀, 조랑말은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풍물의 대상으로서보다는 존재의 탐구를 위한 모티프로 차용된 것이었다. 그가 단순한 로컬리즘이나 풍물시의 작가로 불리는 것은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존재의 근원적인 상황을 형상화하는데 그러한 모티프들은 끊임없이 변형되고 삭제되고 추가된 것이다. 제주-오사카-도쿄-서울 -제주로 이어지는 그의 예술의 구도적(求道的) 순례는 마침내 황토 빛으로 승화되었으며 그것은 이제 그의 사상이 되었다.
나는 선생을 여러 번 만났다. 인사동의 찻집에서, 문득 찾아간 그의 서귀포의 작업실에서. 그리하여 이 책을 쓰는 데는 '만용'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나의 무지함이 작용했다. 화가 지망생이었다가 문학 교수로 돌아선 나의 이력서에는 그림에 대한 이러한 원초적인 콤플렉스가 숨어 있다. 생활이 눅눅하고 마음이 맥없이 허전할 때면 문득문득 발길을 돌려 찾아가 배회하곤 했던 인사동 거리, 전시실의 기다란 복도를 돌아 나오면 마침내 허전해져서 문득 판화 한 점을 사들고 황망히 돌아서곤 했던 과천 미술관 ----- 나는 그곳들에 걸려있던 내가 그리다 만 꿈의 원형들을 발견하고 몸서리를 치곤 했다.
<출처 : 한국문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