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줄 아는 눈이 가장 값지다. 고미술품 예술품 수집:도대체 무엇이 가장 값어치가 있습니까?
소스:EK 이페어케이 플러스
휴일에 골동품 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골동품 전문가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가끔 자신이 좋아하는 보물을 만나게 된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골동품을 파는 노점상과 몇몇 골동품 수집가를 알게 되면, 당신은 골동품을 파는 사람이 골동품을 사는 것보다 더 전문가이며, 골동품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골동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될 것이다.
한번은 내가 골동품을 사는 사람과 노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동불을 보았는데, 갑자기 엄숙하게 내게 "진짜로 말하자면, 우리의 눈이 가장 값어치가 있다!"고 말했다.
눈만이 진실과 거짓을 가리고, 연대를 가리고, 미추를 가리기 때문에 골동품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눈을 먼저 단련하고, 좋은 눈을 가지면 속지 않는다. "
수집은 끊임없이 증거를 찾고, 안목을 단련하는 과정이다
골동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는 문박계에서 일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민간 문물이 드물고 모조품·위작이 많다'고 우기는 한편, 수많은 민간 수집 애호가들을 위해 골동품 조작 현상을 인정하면서도 최근 몇 년간 세상에 나온 골동품 예술품이 연해(海海)처럼 길거리에 나앉아 해외로 유출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먼저 수집해야 한다는 두 가지 뚜렷한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
정보 교환의 다양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소위 '집'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지 않게 되었고 일부 '감정 권위'의 잘못된 감정 관점에 직면하여 침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항저우와 베이징의 법원에서 접수된 권리 보호 소송은 양측 간의 첨예한 모순을 반영합니다.
수년간 소수의 문화재 종사자와 사회 산병유용들은 문화재 감정 '전문가'로 포장되어 남북을 누비며 언론을 통해 사회에 '중국은 현재 수집계의 수집품은 가짜가 많고 정말 적다' '첨단기술 조작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홍보하여 '진품 수집 전문가'가 대다수 중국인은 문화재를 보고 '진짜'와 '얼마나 값어치'를 물으며 문화재 자체의 문화적 함의를 인위적으로 왜곡 해석하거나 무의식적으로 무시한다는 것을 암시하였다.
서민들은 정부 언론에 대한 믿음으로 이른바 '전문가'를 맹목적으로 믿고 골동품 값어치를 '돈'으로 믿고 한 점만 소장하면 부자가 된다. 그러자 민간 수집 마니아들의 눈덩이가 커져 수집 대군이 억 명에 이른다는 허풍이 일었다. 결국 골동품 수집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꿈은 하나씩 깨지기 마련이다. 보통 사람들은 골동품이 그 역사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고 골동품을 수집하는 것은 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집으로 인한 가족 갈등, 사회적 갈등이 많습니다.
저명한 경제학자 장오상 선생은 "이론은 영원히 사실로 입증되지 않고 인정될 뿐이다. "수많은 소장 과정을 말해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예를 들어, 수집가는 수집품을 얻었고 소위 '전문가'를 감정하는 개별 관점에 따르면 이러한 수집품은 모두 '틀렸다'고 하지만 수집가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지 않고 연구, 조사, 방문, 교류에 몰두하여 '전문가'가 말하는 수집품이 '틀렸다'는 증거를 찾는다. 결국 거듭된 실천은 수집품이 가짜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민간 소장품들이 진품이고, 또 정교하고 아름다운 고대 예술품들이 적지 않다는 증거다.
4
과거 문화재 종사자들의 골동품 학술연구 이론은 틀리지 않았지만 개별 이론을 보편적 의미의 이론으로 삼아 수집을 지도하는 것은 논리학의 원리에 어긋난다. 소장 유물을 '기준'으로 삼아 비슷한 소장품 하나라도 따진다면 잘못된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골동품은 대부분 선조들이 남긴 수작업으로 만든 예술품이어서 똑같거나 차이가 없는 도자기 2점, 서화 2점, 옥기 2점이 없기 때문이다.
골동품 예술품에 대한 이해와 견해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이해의 깊이는 자신의 학식과 미적 수준, 능력과 관련이 있으며, 견해는 골동품 자체의 진짜 위작을 증명하는 증거도 아니다. 어떤 골동품 예술품이 '가짜'라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다면, 사실 그것은 진짜라는 것이 무수한 사실로 증명된 과학적 원리이다.
중화민족의 전통 미덕은 넓고 심오한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하며, 우수한 역사문화의 매개체는 바로 선조들이 남긴 복제 불가능한 골동품 예술품이다. 수집을 좋아하는 친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역사에 대해 쉽게 그의 말을 믿고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수집은 끊임없이 증거를 찾는 과정이자 자신의 민족 문화를 끊임없이 인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존중할 가치가 있습니다.
수집가라면 누구나 존경할 만하다
수집은 개인이 취미를 위해 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왜 수집가가 가장 존경받는 이유는 그들이 문명 및 문화를 보호하고 계승하는 역사에서 독특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수전자경 《유춘도》.
장백구가 정원을 팔아서 보물을 보호하다.
1948년 대수집가 장백구 선생은 국보 유춘도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랑하는 저택의 정원인 우원(园園)을 팔아 황금 220냥을 비싸게 사들여 신중국 건국 직후 국가에 헌납했다. 당시 문화부 차관 정진탁이 약간의 보수를 주려 하자 장백구는 "물건은 내 손, 즉 국가의 손 안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국가와 너와 나를 나눌 수 있겠느냐"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장백구 선생은 문물을 보호하고, 진귀한 문물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일생의 심혈을 기울여, 많은 진귀한 서화들이 다행히 재난을 면하게 하였다.
진륙기 《평복첩》.
장백구 선생이 소장하고 있던 진귀한 서화는 결국 모두 국가에 귀속되었다. 1956년 소장 국보급 서화 8점을 문화부에 기증했다. 진육기 '평복첩', 당두목 '장호시', 송범중엄 '도복찬', 송채양 '자서시책', 송황정견 '제상좌첩', 송오옥 '잡서시첩', 원조맹현 '장초천자문', 원유화 해서첩, 장백구 선생은 곧 송양제여 '백화도', 송조백소 '선교백운도', 원조맹현 '전서천자문', 당나라 사경 '대반야바라밀다경' 등을 길림박물관에 기증했다. 장백구 부부가 국가에 헌납한 서화는 모두 27종에 이르는 희대의 보물이다.
서희 《설죽도》
중장가가 나라를 위해 기부하다.
또 다른 대 수집가인 첸징탕(镜塘先生) 선생은 신중국 건국 이후 30여 년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3900여 점의 소장품을 국가에 기증했다. 서희, 동원, 범관, 당인, 심석전, 왕석곡, 조지겸, 김성탄, 임백년, 허곡, 오창석…. 중국 서화사상 많은 명가의 명품이 여기에 있다. 이미 상하이 박물관, 저장성 박물관에 소장된 5대 서희의 《설죽도》, 5대 동원의 《산수도》, 송나라 범관의 《만경도》, 청나라 왕석곡의 《진원룡죽서낚시도》 등은 모두 희대의 보물로 세상을 뒤흔든 작품이다.
동원 《소상도》.
애장품을 국가에 헌납한 수집가는 주문균 씨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유명한 수집가이기도 하다. 1953년 주문균(朱文溍) 부부는 아들 주가연(朱家,)에게 평생 심혈을 기울여 온 706종의 비탁 전액을 국가에 헌납할 것을 당부했다. 이들 비탁은 동주의 석고문 이하에서 후대의 법첩을 비롯하여 송, 원, 명, 청의 탁본이 많으며 필적이 뚜렷하여 모두 비탁 중의 상등품이다. 이후 선본 도서 2만여 권을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 서화 전량을 저장성 박물관에, 명청 가구 전량을 청더피서산장박물관에 기증했다.
범관 《만경도》.
화교 수집가 저우루이(周在)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체류 60주년을 맞아 그가 소장하고 있는 고자기 10점을 상하이박물관에 기증했다. 자사호를 제작·수집한 것으로 유명한 허사해는 소장품 중 청나라 제호의 명인 소대형의 걸작 '대형호'가 있다. 한 외국인이 7만 달러를 주고 사려고 한다. 허사해는 "중국인의 보배다. 나는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100만 달러를 내도 100만 달러를 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
아마도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이 수집가들은 재무를 모르는 바보들일 것입니다, 가치 있는 보물을 손에 쥐고, 값을 기다리지 않고 팔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지만, 공짜로 기부하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수집가와 대부분의 일반 수집가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줍니다: 전자는 '장물'이고 후자는 '장전'입니다. 위의 수집가들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고 개인의 이익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집품에 어떻게 유리하고 어떻게 하면 그 귀중한 문화 유산을 빛나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장백구가 일찍이 《총벽서화록서》에서 쓴 바와 같이:
"여생에 난리가 났으니, 책을 적게 읽는 것이 한스럽다. 서른이 지나면 서화를 좋아하여 성벽이 되어 명성과 업적을 쌓게 되고, 비록 빚을 내서 쓰지만 여전히 많은 일을 거두게 된다. 사람이 트집 잡으면 후회하지 않는다. "연운(眼雲)이 지나가고 얻은 것이 많다. 그러므로 주어진 것은 끝까지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내 위에 길이 남아 세상에 두서가 있게 하는 것은 소망을 주는 것이다." 이 짧은 수어 속에서 장백구 선생은 서화를 소장하는 목적은 이러한 진품을 영원히 국내에 보관하고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며 대대로 전해 내려와 후대에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 개인에 관해서는, 그저 눈앞이 캄캄할 뿐이다.
이 기사는중국 텐센트 뉴스 클라이언트 크리에이터이며 텐센트 뉴스의 견해와 입장을 나타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