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투자은행들 내년 경제 전망
올해 세계 경제는 5% 가까이 성장했다. 2009년 1%가량 후퇴했던 경제가 1년 만에 되살아난 것이다. 지금부터 1년 전, 5% 성장을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더블딥(키워드)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걱정했고,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유럽을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했다. 중국 부동산 거품이 경제를 경착륙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계속됐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비관론 가운데 아직 본격적으로 현실화된 것은 없다.이런 추세가 2011년에도 계속될까? 많은 사람은 그러길 바라고 있다. 올여름 이후 전 세계 주식시장은 상승세이고, 일본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소비자·기업가 경기전망지수도 오르고 있다. 지난주에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내년 세계 경제성장 전망치를 4.1%에서 4.6%로 상향조정했다. 보고서 제목은 'Room to Grow'. 세계 경제가 성장을 이어갈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년에 위기 3년차를 맞는 세계 경제는 갈수록 좁아지는 외나무다리에 들어서는 형국이다.
선진국은 줄어든 투자와 소비를 되살리기 위해 지난 2년간 금리를 낮추고, 정부가 채권을 찍어서 생긴 돈을 시장에 풀었다. 이미 빚더미에 올라앉은 미국과 일본은 투자와 소비를 늘리기 위해 세금을 낮췄거나 낮출 예정이다.
하지만 만약 또다시 사람들이 지갑을 닫게 된다면? 이번엔 정부가 쓸 패가 마땅치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피에르 카를로 파도안은 "경기 하방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제 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이나 중국 같은 신흥국의 경우 여기저기서 풀린 돈이 물가를 올리고, 자산으로 흘러가 거품을 낳을 수 있다.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내년 세계 경제. Weekly BIZ가 주요 투자은행들의 내년 경제전망을 살펴봤다.
■미국
"민간 다시 돈쓰기 시작… 경기회복 계속될 것"
지난해나 올해와 비교했을 때 투자은행의 전망에서 가장 달라진 부분은 미국 경제가 다시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은 미국의 내년 경제성장 전망치를 당초 2% 내외에서 3% 가까이 올려잡고 있다. V자 모양의 반등까진 아니지만, 올 3·4분기 시작된 경기 회복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이런 낙관론의 선두주자다. 골드만삭스는 "빚을 갚느라 소비를 줄였던 민간 부문이 빚 갚는 속도를 점차 늦추고 다시 돈을 쓰기 시작했다"며 "민간 수요가 점차 늘어나 경제성장률이 2012년에는 4%까지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경제가 돈을 풀어도 돌지 않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키워드)에 빠져 있다는 일부 시각과 달리 정부가 푼 돈이 경제에 돌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주택·실업률·정부부채라는 미국 경제 3대 위협 요소는 내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주택 침체 등 당초 위기의 원인이 됐던 분야가 여전히 더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낙관론을 펼친 골드만삭스조차 집값이 예상수준(2011년 5% 하락)보다 훨씬 더 떨어질 경우 소비가 또다시 움츠러드는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봤다.
9.6%에 달하는 실업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부담이다. 미 연준(FRB)은 내년 미국 실업률을 약 9%, 2012년에는 8% 정도로 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90%를 돌파한 정부 부채 문제 역시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OECD는 이 3가지 이유를 들어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2.2%로 올해(2.7%)보다 오히려 낮게 보고 있다. ▶내년 미국 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손성원 교수 칼럼 참고
■중국
"인플레 우려 크지만 9~10% 건실한 성장"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금리 인상 조치를 취하면서 상반기 경제가 역풍(逆風)을 맞을 수 있겠지만, 결국 연 9~10%의 건실한 성장을 이룰 것이다."
주요 투자은행들이 내년 중국 경제에 대해 내놓은 예상이다.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은행들의 최대 관심 포인트는 물가이다.
크레디트스위스는 당초 5%로 예상했던 내년도 중국의 물가상승률을 최근 5.3%로 상향조정했다. 선진국 시장에서 풀린 돈이 신흥국으로 몰리면서 자산 거품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JP모건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브루스 카즈먼은 "중국을 포함한 신흥시장이 초기 과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투자은행들은 이에 따라 중국 정부가 "향후 수개월 안에 3차례 이상의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유동성 축소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모간스탠리는 이런 금리 인상으로 인해 중국 경제의 내년 성장세가 올해보다는 소폭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모간스탠리는 "올해 중국은 선진국 경제의 반등으로 골디락스(키워드) 시나리오라는 호재를 경험했지만, 치솟는 물가로 볼 때 골디락스 시나리오는 이제 끝나가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산층이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해온 중국 정부로서는 최근 1~2년간 진행해 온 사회기반시설 공사를 멈출 수 없다. BNP파리바는 중국 지방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건설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려면 내년에도 4조위안 이상의 추가 대출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국 정부가 물가 상승 우려에도 불구하고 돈줄을 크게 죄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재정위기 여전히 잠복… 유로존 성장률 하락"
"(유럽의) 국가 부채 위기는 여전히 우리 레이더 스크린의 최상단에 떠 있다."(모간스탠리)
투자은행들은 내년 세계 경제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로 유럽 국가들의 국가부채 문제를 꼽았다. 유럽연합(EU)이 그리스·아일랜드를 지원하고, 이들 나라가 재정 긴축 정책을 펴고 있지만 "최소 10년이 걸리는 작업"(JP모건)이라는 이유에서다. 골드만삭스도 "(세계 경제가 직면한) 가장 명백한 위험"이라고 평가했다.
투자은행들은 올해 1.7%의 성장을 기록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이 내년에는 그보다 약간 낮은 1.5% 내외로 성장하리라 예측했다.
올해 유럽 경제는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와 은행 부실이라는 악재(惡材)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 동안 부족했던 물량을 채우기 위한 전 세계 기업들의 이른바 '재고 수요'로 재미를 봤다. 하지만 내년에는 부족했던 재고가 상당 부분 채워지면서 독일을 비롯한 수출국들의 성장세가 다소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올해 3.6% 성장했던 독일 경제가 내년엔 2% 성장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美 회복되면 수혜… 3.5~4.5% 성장 예상"
주요 투자은행은 내년에 한국이 3.5~4.5%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전망치 4.5%와 같거나 다소 낮다. 올해(IMF는 6.1%로 예상)보다 상당히 둔화되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수출 경쟁력이 있는 한국이 수혜를 볼 것"이라고 전망한 반면, 모간스탠리는 "한국의 수출 경쟁력은 여전하겠지만, 아시아 지역의 물가 상승 위험으로 성장에 구름이 끼었다"고 경고했다. 올해 주춤했던 국제 석유 가격이 내년에는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한국이 원자재를 수입하고 있는 중국에서 물가가 오르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은은 내년 물가가 3.5%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의 중기적 물가 안정 목표 3%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한국은행이 현재 2.5%인 기준금리를 내년 말까지 3.5%로 1%포인트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 더블딥(double dip): 경제가 회복했다가 다시 하강하는 현상
유동성 함정: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금리를 낮추거나 돈을 아무리 풀어도 투자나 소비 등 실물 경제가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 상태
골디락스(Goldilocks): 영국의 전래 동화에 등장하는 소녀의 이름에서 유래한 용어로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으면서 경제가 호황인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