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조음 / 김월미
바다는 용이 되어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왕의 무덤을 품고 넘실거린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바다 위의 나라 사랑을 누가 이토록 아름답게 할까.
오늘날 후손에게 평화와 자유의 역사를 만들어주는 왕의 혼은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서사가 되어있다. 지금 나는 바다에 떠 있는 능을 바라보며 그 서사를 읽는다.
왜구의 침략으로 조용한 날이 없어 피비린내가 멈추지 않았던 우리의 땅에서 나라를 지키려 시름이 짙어진 문무왕이 가졌던 호국의 아픈 마음은 얼마나 깊었을까. 당시 신라는 왜구의 침략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나 심해서 살육의 땅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문무왕은 왜구를 진압하기 위하여 바다 가운데 능을 만들도록 유언하였으며, 신문왕 때는 감은사 절을 지어 아버지 문무왕의 넋을 기리기도 했다.
왕의 사후에는 전설의 피리 소리가 나라를 지키며 백성들의 근심과 병고를 없애주었다. 전장에서 죽어간 사람의 넋을 달래주기도 한 호국의 피리는 <만파식적>이라 칭하였으며, 문무왕과 김유신의 혼이라고 한다. 전쟁이 잦은 신라 땅을 지키려고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만파식적을 만들어 그 피리 소리로 하여 온 나라의 평안을 바라던 신화 같은 이야기가 지금까지 남아서 전설이 되었다.
왕릉을 품고 넘실거리는 감포 바다는 긴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은근한 빛의 물결이, 해조음과 더불어 바닷길로 이어져 참으로 곱다.
해가 빛나면 달이 지고, 달뜨면 해가 숨던 천년의 시간이 살아서 움직이는 바다의 소리. 그 소리가 아주 작은 울림일지라도 우리는 그 작은 울림에 귀를 열고 듣게 된다. 그것은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만파식적의 울림이며 백성을 걱정하여 바다의 거친 파도를 잠재워 평화를 안겨주는 소리이기에.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침략자가 있고 그래서 원하지 않는 전쟁이 일어나 살육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참상이 남의 나랏일처럼 여겨지지 않음은 왜일까.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던 선조들의 삶을 알기에 외면할 수가 없다. 나는 전쟁이 멈추어지기를 기다리며 오래전 우리 민족이 들었던 기이한 만파식적의 소리가 그곳까지 들려서 하루빨리 그곳에도 평화가 왔으면 하고 빌어본다.
명분 없이 처절한 싸움을 일으킨 침략자도 언젠가는 죽게 되는, 죽음을 앞에 둔 나약하고 가련한 인간일 뿐이다. 어쩌면 그는 부서지고 허물어져 살육으로 이어지는 삶의 모습에 회한을 느끼며 지나가 버린 평화롭던 시절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침략자는 자국을 빛나게 하던 예술가의 유적이나 예술혼이 망가지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러시아의 예술가들을 경외하며 좋아하는 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러시아에서 연주하던 ‘차이콮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종종 듣는다. 얼마 전에는 온 세계의 연주가와 음악 애호가들에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작곡한 ‘차이코프스키’의 유적지가 부서졌다는 뉴스에 마음이 몹시 아팠다. 내 나라가 아닌데도 왜 그렇게 아깝고 안타까운지.
해송을 따라 걸으며 바라보는 감포의 바다는 선조들이 살았던 역사의 숨결이 파도 소리에 떠다닌다. 선조들은 천년을 훌쩍 넘기고도 후손을 지키려고 거센 파도를 견디고 있건만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전쟁에 휩쓸려 버린 우크라이나를 보며 사람의 삶이, 순간에 죽음을 맞게 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잔인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그곳에 후손을 생각하는 선조들의 마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깊이 생각해 본다.
살아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떠나가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유대민족을 말살시킨 ‘히틀러’를 이야기하고 또 하나의 위정자를 말하며 침을 뱉으리라.
반면교사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어버린 오늘의 러시아를 보며 망가진 사람의 인성을 어떻게 해야 하나. 역사를 가르치어 반면교사의 교훈을 일러주어야 할 교육자의 참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파심이 이어져 내게 한숨을 부른다. 다 놓아버리고 일순간 사념에 젖어 본다.
나는 내 아버지가 어디로 가버렸는지를 모른다. 내가 죽어보지 않았으며, 떠나버린 아버지 사후에 한 번도 그를 만나지를 않았으니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죽음이란 이런 것인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깜깜한 마음이다.
지나간 날에 아버지가 그립고 그리워 뇌리를 흠뻑 적시던 마음이 장자의 꿈처럼 나비가 되어서라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하였다. 간절한 마음이 닿았는지 꿈속에서 아버지와 만남이 이루어지고, 너무나 생생하여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한참을 헤매다 깨어보니 아버지가 살아있었다. 내 마음속 깊숙이 담겨서 방황하던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나는 고마웠던 아버지가 그리워지면 해조음이 아름다운 바다를 본다. 그곳에는 문무왕의 서사가 있고 그 서사를 읽어가다 보면 세상의 아버지들 얘기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