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초순, 국보문학회 SNS 게시판에 문학기행 공지가 떴다.
6월 28일(화), 29일(수), 30일(목)까지 관광버스 한 대로 부산, 경주, 대구를 돌아보는 일정인데 모집인원은 입금자 선착순 40명이다.
인공고관절 수술 이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던 문학기행이었으나 제법 걷기가 가능해져서 꼭 참여하고 싶었다.
걱정은 딱 한 가지, 선착순 40명 안에 들지 못할까봐 조바심이 났다.
얼른 신청을 하고보니 6등, 아직 살아있는 순발력에 감사하며 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새벽산책을 부지런히 했다.
막상 신청을 하고 났더니 수도권외곽에 살고 있어서 관광차가 출발하는 지점까지 어떤 방법으로 가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몇 가지 대안을 짰다.
첫째, 과천 아들집에 미리 가서 잔 후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둘째, 차를 새벽에 가지고 가서 잠실한강공원 주차장에 2박3일 세워둔다.
셋째, 남편이 출근 전에 일찍 데려다 주면 출발 할 때까지 기다린다.
넷째, 전날 밤에 남편이 잠실에 데려다 주면 근처 숙박시설에서 자고 떠난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어느날부터 오른쪽 다리가 아프면서 발끝이 끌렸다. 무릎 수술한 의사가 처방해준 주사맞고 진통제를 먹었더니 속만 미식거릴 뿐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고관절수술을 한 대학병원에 가는건 왠지 내키지 않았다.
절대 안정하라느니, 입원해서 정밀검사 라도 해보자고 하면 큰 일 아니겠는가.
가긴 가야겠는데 다리 아픈 문제보다 혹시 문학기행중에 일행들에게 짐이 될까봐 불안했다.
그럼에도 날짜가 다가오니까 수학여행 떠나는 학생처럼 설레었다.
당일날 장마비가 많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보더니 남편은 이른새벽 직접 데려다 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새벽 1시 30분부터 샤워를 하고 빠진 물건이 없는지 가방을 여러번 점검을 했다.
"그 다리로 여행을 가겠다고 하니 참 딱하다." 남편이 심란한 모양이다.
"누가 알았어요? 난 최선을 다했다고요." 온갖 경우의 수를 감안하여 오전 6시50분까지 오라는 출발지점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새벽 5시6분이다.
처음 와 보는 잠실종합운동장 2번 출구엔 이런저런 곳으로 떠나는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서 있었다.
지각만 아니면 기다리는 시간은 얼마든지 상관없다는 느긋함과 조바심을 냈던 선착순 문학기행인원이 정원미달이라니 자꾸만 웃음이 났다.
서울에서 떠나는 일행은 20명, 많은 비를 예고하더니 먹구름만 드리운 하늘 도 고맙고 두텁떡을 준비하시느라 애쓰신 분의 수고와 김밥과 인쇄물, 생수까지 준비하는 등 수고해 주시는 운영진 덕분에 제 시간에 출발하게 되었다.
조미경 사무총장님의 사회로 여행일정과 탑승자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더니 마음 속 감정은 어느새 반세기가 훌쩍 넘긴 학창시절에 머물러 웃음과 설렘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대전에서 세 사람이 차에 타서 자기소개를 했다.
두 분은 문학회 일원이고 한 분은 광*제약 직원, 이름하여 약장사였다.
초반부터 수완이 보통은 넘었다.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자주 애용하는 쌍화탕이며 잇몸질환에 탁월하다는 신제품 치약 등을 자기한테 전화하면 파격적인 반값에 준다는 말이 솔깃하게 들렸다.
마음을 읽었는지 쌍화탕, 치약, 명함을 나눠줬다.
옆자리 앉으신 70대후반 시인이자 수필가분이 피식 웃으시면서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패키지 여행 갈 때마다 약장사한테 홀려서 다양하게 샀던 얘기, 결국엔 못 먹고 버린 얘기를 하시면서 한참 지난 지금도 집안 구석구석에서 약이 나온다면서 마땅찮아 하셨다.
우리주변에 이런 경험 없는 분이 어디 있으랴.
평생 교편생활하시다가 퇴직하시고 시집을 세 권째 내셨으며 몸은 불편하셔도 깔끔한 차림새와 화사하게 네일아트를 하실만큼 멋쟁이라 여러면에서 귀감이 되는 분이었다.
비싸다는 치약 몇 개와 쌍화탕, 비타민C를 유머 섞인 퀴즈 비슷하게 내면서 마구 뿌리더니 후원금도 30만원 냈으니까 여행 다니면서 맛있는거 사 드시라고 사근사근 썰을 풀었다.
신문사 기자하다가 건강악화로 제약회사에 근무하게 되면서 돈태반제품을 먹고 건강해진 산 증인이 여기 있으니 무조건 믿으라고 한다.
경계심이 충분히 풀렸다 싶으니까 종이랑 볼펜을 나눠줬다. 믿을만한 만병통치약을 파격적인 할인가로 파는 이 기회 꽉 잡으라고 하면서 묘한 심리전을 펼쳤다. 머잖아 실적에 따라 회사임원을 뽑는데 만약 자신이 임원으로 뽑힌다면 그 은혜 결코 잊지않겠으니 잘 부탁한다고 했다.
자식같은 중년이 간곡히 얘기하니까 왠지 꼭 들어줘야 할 것만 같아서 평소 애용하는 쌍화탕이라도 몇 박스 주문할 참이었다.
주문서엔 서두에 얘기한 쌍화탕, 치약은 없고 몇 십만원짜리 돈태반세트만 적혀 있었다.
순식간에 일행들이 주문서를 작성해서 냈다. 괜히 염치가 없게 느껴졌다.
옆자리 선생님도 80대 바깥어르신 드린다고 돈태반세트를 적어내셨다.
약장사가 내린 후 내가 애교있게 옆구리 찌르면서 농담을 건넸다.
"또 낚이신거에요?"
"혹시나 해서 사게 되네." ㅎㅎ
주문서를 작성하신 분들 대다수가 질병으로 고생하는 가족들이 혹시나 효과를 보게 되지 않을까 싶은 심정으로 주문서를 작성했으리라.
넣을 가방이 없으시길래 여분으로 넣어왔던 가벼운 새 배낭가방을 꺼내드렸더니 횡재했다며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가방은 가방대로 돌려주시고 집에 가서 시집을 두권이나 보내주셨다.
"집에 가면 영감님한테 혼날텐데 어쩌나." 말씀과는 달리 밝은 표정이셨다.
우린 그냥 웃었다.
'모두가 사랑이더라' 한성희 시낭송가의 싯귀가 맴도는 시간이었다.
종합운동장역 2번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