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_인도품 33장
<법문말씀>
대종사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그대들에게 마음 지키고 몸 두호하는 데에 가장 필요한 방법을 말하여 주리니 잘 들어서 모든 경계에 항상 공부하는 표어를 삼을지어다. 표어란 곧 경외심을 놓지 말라 함이니, 어느 때 어디서 어떠한 사람을 대하거나 어떠한 물건을 대하거나 오직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라 함이니라. 사람이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놓고 보면 아무리 친절하고 사이 없는 부자·형제·부부 사이에도 반드시 불평과 원망이 생기는 것이며, 대수롭지 않은 경계와 하찮은 물건에도 흔히 구속과 피해를 당하나니, 그것은 처지가 무간하고 경계가 가볍다 하여 마음 가운데 공경과 두려움을 놓아 버리고 함부로 행하는 연고라, 가령 어떤 사람이 어느 가게에서 성냥 한 갑을 훔치다가 주인에게 발각되었다면 그 주인이 하찮은 성냥 한 갑이라 하여 그 사람을 그저 돌려보내겠는가. 극히 후한 사람이라야 꾸짖음에 그칠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모욕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니, 이것은 곧 그 성냥 한 갑이 들어서 그 사람을 꾸짖고 모욕한 것이며, 다시 생각하면 성냥을 취하려는 욕심이 들어서 제가 저를 무시하고 욕보인 것이요, 그 욕심은 성냥 한 갑에 대한 경외심을 놓은 데서 난 것이니, 사람이 만일 경외심을 놓고 보면 그 감각 없고 하찮은 성냥 한 갑도 그만한 권위를 나타내거든, 하물며 그 이상의 물질이며 더구나 만능의 힘을 가진 사람이리요.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공경하고 두려워하자 함이니, 우리가 무엇이나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의義로써 살아간다면 위로 창창한 하늘을 우러러보나, 아래로 광막한 대지를 굽어보나, 온 우주에 건설되어 있는 모든 물건은 다 나의 이용물이요, 이 세상에 시행되는 모든 법은 다 나의 보호 기관이지마는, 만일 공경과 두려움을 놓아 버리고 함부로 동한다면 우주 안의 모든 물건은 도리어 나를 상해하려는 도구요, 이 세상 모든 법은 도리어 나를 구속하려는 포승이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리요. 그러므로, 그대들에게 이르노니, 물결 거센 이 세간에 나타난 그대들로서 마음을 잘 지키고 몸을 잘 두호하려거든 마땅히 이 표어를 마음에 깊이 새겨 두고 매사를 그대로 진행하라.」
<이해하기>
대종사님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1. 마음 지키고 몸 두호하는데 가장 필요한 방법
= 모든 경계에 항상 공부하는 표어
= 경외심을 놓지 말라
= 어느 때, 어디서 어떤 사람이나 물건 대할 때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2. 경외심이 없으면
= 친절한 부부 부자 사이라도 불평과 원망 생김
= 대수롭지 않고 하찮은 경계에 구속과 해를 당함
3. (예시) 성냥 한 갑 훔치다 발각되어 꾸짖음과 모욕당한 경우는 왜?
1) 저가 저를 무시하고 욕보인 것 (성냥 취하려는 욕심)
2) 경외심 놓은 결과 : 하찮은 성냥도 그런 권위, 하물며 만능의 힘 가진 사람은
4. 경외심 가지고 의로써 살아가면
--> 모든 물건은 나의 이용물, 법은 보호기관 경외심 놓아버리면
--> 물건은 나를 상해하는 도구, 법은 구속하는 포승
5. 물결 거센 이 세간이 나타난 그대들로서..
-> 경외심 가지라
<길잡이>
오늘 법문은 내용이 어려웠습니다.
일단 "경외심을 놓지 말라"는 법문은 대종사님께서 처음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유교에서도 성과 경을 강조했고, 유교를 창조적으로 계승한 동학의 창시자 수운은 동학의 기본교리를 성경신(정성, 공경,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수운은 인내천이라고 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공경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도 하였습니다. 증산도 사람 뿐 아니라 미물과 물건까지도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대종사님은 경외심을 특히 "물결 거센 이 세간"에서 마음을 지키고 몸을 두호하는 방법으로서 강조를 하십니다.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신 경외심의 정의는 "어느 때, 어디서 어떤 사람이나 물건 대할 때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즉 사람 뿐 아니라 물건도 경외심의 대상으로 봅니다.
그러면서 예시로 성냥 한 갑을 들으시는데, 대종사님 말씀의 취지를 잘 헤아려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성냥 한 갑 훔치다 모욕당한 까닭은, 첫째는 욕심 때문이요(저가 저를 무시하고 욕보인 것), 둘째는 경외심을 놓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이 결과를 "감각 없고 하찮은 성냥도 그런 권위를 나타내거든" 하물며 만능의 사람이리요. 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신 "성냥의 권위"란 맥락상으로는 "제 자리(상점)에 있어야 하며, 그것을 취할 때는 반드시 정당한 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만약 정당하지 않게 취할 경우에는 상대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모욕을 줄 수 있는) 권위"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잘 살펴보면 어떤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의 본질이나 특색에 따라 마땅히 따라야 할 떳떳한 길(도)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경외심이라 함은, 사물이나 사람의 길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말씀으로 생각이 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성가 중 "모두다 부처님"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꽃들이 피어있네 부처님 웃으시네 소들이 누워있네 부처님 주무시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부처님으로 모시고 두 손을 모으고 경외심을 갖자는 성가입니다.
어릴 때 그 성가를 듣고 저는 "아, 생명이 있는 것은 다 부처님이구나. 그런데 생명이 없는 것은 부처님일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원불교도들은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는 말처럼, 사물들도 부처님이고 부처님이기 때문에 소중히 모셔야 한다 생각을 은연중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린이법회 때 교무님께서 의인법으로 부처님에 대해 설명하시기를 "공책을 아껴 써야지 낙서하고 찢으면 공책 부처님이 아야, 아야 합니다."라고 설명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저는, 오늘 법문에서 대종사님이 "성냥 한 갑이 부처이므로, 경외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라는 추상적인 논리를 펴지는 않으신 점에 주목이 됩니다. 대종사님의 논리는 다만 "성냥 한 갑을 훔치면 주인에게 모욕을 당하는 데 그것은 하찮은 물건이라 하여 경외심을 놓지 않은 결과"라고 아주 사실적으로 설명하여 주실 뿐입니다.
사물 또는 인간이 가진 권능에 대해 기본적으로 사실적인 설명을 하시는 것은.. 아마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고 합리적이기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개개의 사물 또는 인간이 "죄주고 복주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씀, 그리고 그 사물이나 사람에게 경외심을 가지고 대하면 "나에게 복주는 권능을 행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해를 주는 권능을 행사할 것이다."라는 이런 사실적인 설명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설명방식을 쓰셨을까? 궁금합니다.
<묵상하기>
1.대종사님께서 경외심을 마음 지키고 몸 두호하는데 가장 필요한 방법이라고 하신 말씀에 동의합니까? 왜 그런 것 같습니까?
2. 경외심을 가지는 것은 어느 때, 어디서 어떤 사람이나 물건 대할 때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가족들, 직장동료들)을 생각해보고,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핸드폰, 노트북, 펜, 프라이팬, 청소기 등)을 생각해 봅시다. 나는 이런 것들을 대할 때 얼마나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3. 경외심이 없으면 친절한 부부 부자 사이라도 불평과 원망이 생기며, 대수롭지 않고 하찮은 경계에 구속과 해를 당한다고 합니다. 가깝다고 경외심을 놓아서, 이렇게 불평과 원망, 구속과 해를 당한 적이 있습니까?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4. 대종사님은 세상 살아가는 것에 대해 "물결 거센 이 세간이 나타난 그대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처럼 물결거세고 조심스러운지, 내가 혹시 물결에 휩쓸려나갈 일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적용하기>
1. 가까운 사람이나 물건에게 어떻게 경외심을 가지고 실천할지 생각해보고 결단하여 봅시다.
<행복한 제자의 묵상나눔>
남편이 나에게 어떤 물건이든 내 손에만 들어가면 망가진다고 하는데.. 별로 동의하고 싶진 않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 같습니다.
차도 잘 닦고 조심조심 다니고, 엔진오일도 자주 갈아주고, 운전도 조심히 하면 더 오래 깨끗하게 쓸 터인데, 내가 그걸 잘 못하니 금방 더 더러워지고 녹이 슬고 못쓰게 됩니다.
그러나 매사에 경외심을 갖는 것은 "차 수리비가 아까워서 미리 차를 잘 관리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매사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대하면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
회사 경력이 14년차가 되었으니 이제는 좀 회사의 여러 일이나 후배들에게 말할 때는 편하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동료와 사내 메신저로 대화를 하는데 어떤 글씨를 막 보내려다가 "아차" 하고 지웠습니다. 혹시 나는 편하게 대하는 것이, 오해를 사거나 상대가 기분 나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미투 운동도 기본적으로는 경외심을 놓아서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상사이고 교수이니, 설마 저 상대방이 나에게 해를 끼칠까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대한 것입니다. 정말로 대종사님 말씀하신 "물결 거센 이 세상"이 맞으며, 이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매사에 경외심 놓지 말아야 겠다 결심합니다.
남편, 태웅이, 시댁과 친정 식구들, 회사 동료들, 친구들, 그리고 내가 수용하는 모든 물품들, 눈에 뵈는 모든 것에 그래야겠습니다.
_행복한제자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