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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ine there's no heaven
- it's easy if you try
- No hell below us
- above us
- only sky
- Imagine all the people
- living for today
- Aha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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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ine there's no countries
- it isn't hard to do
- Nothing to kill or die for
- and no religion too
- Imagine all the people
- living life in peace --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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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 may say I'm a dreamer
- but I'm not the only one
- I hope someday
- you'll join us
-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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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ine no possessions
- I wonder if you can
- No need for greed
- nor hunger
- a brotherhood of man
- Imagine all the people
- sharing all the world
- --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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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 may say I'm a dreamer
- but I'm not the only one
- I hope someday
- you'll join us
-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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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은 없다라고 한번 상상해 보세요
- 당신이 그럴려고만 하면 어렵지 않답니다
- 우리의 발 밑에는 지옥이라는 것은 없고
- 우리의 머리 위에는
- 오직 확트인 하늘만 있다라고 상상해 봐요
- 모든 사람들이 오늘만을 위해 살아간다고
- 상상해 보세요
- 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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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엔 국가가 없다라고 생각해 보세요
- 그렇게 생각하는게 어렵진 않답니다
- 이념 때문에 죽이고 죽는 일도 없겠지요
- 그리고 종교도 역시 없다라고 상상해 보세요
- 모든 인간들이 평화롭게 살아간다라고
- 상상해 보세요. --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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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은 날 몽상가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 그러나 난 그런 몽상가는 아니랍니다
- 난 언젠가는 그 날이 오길 꿈꿔봅니다
- 당신들도 언젠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고
- 그러면 이 세상이 하나가 되어 지낼 날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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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 가진 것이 없다라고 생각해 보세요
- 그러면 욕심낼 필요도 없고
- 배고파 굶주릴 필요도 없겠지요
- 오직 서로에 대한 형제애만 있다고 상상해봐요
-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을 서로 공유하며
- 사이좋게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봐요.
- --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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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은 날 몽상가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 그러나 난 그런 몽상가는 아니랍니다
- 난 언젠가는 그 날이 오길 꿈꿔봅니다
- 당신들도 언젠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고
- 그러면 이 세상이 하나가 되어 살아갈 날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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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INE ::::
[시], [곡] 죤 레넌 (John Lennon) / 1971 [오리지널 히트] 1971 죤 레넌 / Pop # 3, UK 1975 # 5 [리바이벌 싱글] 트레이시 스펜서(Tracie Spencer) / 89년 Pop # 85 [커버 버젼] 조운 바이에스, 다이애너 로스, 잭 존스, 롸저 휘터커, 쳇 앳킨스, 액커 빌크, 리쳐드 엘리엇, 조프 러브, 태니어 마리어, 아민 일렉트릭 스트링스
죤 레넌 은 1980년 12월 8일 저녁 10시 50분, 레코드 재킷 사진스튜디오에서 그의 맨해튼 고급아파트 대코터에 다다랐을 때, 마크 채프맨에게 피살되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40을 갓 넘겼다. 1980년 12월 10일 오후 2시에 레넌이 화장될 때 이를 비밀리에 촬영한 한 파파라초의 사진이 보도기관에 10만 달러에 팔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80년 12월 14일, 뉴욕의 센트럴 파크(오후 2시)와 영국의 리버풀(오후 7시)에서 동시에 레넌 추모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그의 작품 ‘Imagine’ 이 흘러 나왔을 때, 그를 아끼던 팬들은 조용히 흐느꼈다.
1971년 10월 9일은 잔 레넌 의 31회 생일이었다. 이틀후인 10월 11일에 레넌은 자작인 새노래 ‘Imagine’ / ‘It’s So Hard’를 싱글로 릴리즈 했다. 14일에는 뉴욕의 공영방송 WNET-TV의 쑈 ‘Free Time’에 출연하고 중순에는 전쟁이 끝났다는 메시지를 담은 ‘Happy Xmas’의 데모판을 냈다. 이 세가지의 이벤트는 모두 죤 레넌이 추구하는 가장 강한 평화의 메시지들을 담고 있었다. 죤 레넌은 1971년 여름에 영국 남부 버크셔 주의 티텐허스트 파크에 있는 자택에 요코 오노와 머물러 있었다. 그는 6월말부터 7월초에 걸친 9일 동안 피아노로 ‘Imagine’을 작곡했고 홈 스튜디오에서 리코딩했다.
그는 1970년말 1000파운드에 구입한 스타인웨이 독일공장에서 생산한 업라이트 피아노로 작곡했다. 이 피아노는 1992년, 한 수집가의 소유가 된 뒤, 2000년 2월부터 리버플에 있는 비틀즈박물관에 대여해 주고 레넌의 생일에 해당하는 10월 7일까지 일반 공개되었다. 그리고 2000년 10월 하순 런던의 하드 락 카페에서 인터넷 경매를 통해 185만 파운드에 팔리기도 했다. 싱글 ‘Imagine’은 71년 10월 23일에 팝차트에서 20위로 데뷰 하고 11월 13일에 3위로 피크를 이루어 2주동안 랭크 되었만 1위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때 쉐어의 ‘Gypsies, Tramps & Thieves’와 아이잭 헤이스의 ‘Theme from ‘Shaft’’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71년 9월 9일에는 ‘Imagine’을 타이틀로 한 앨범이 출반 되었고 45주동안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10월 30일에 앨범 차트 1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한편 영국에서는 싱글이 1975년 11월 22일에 5위에 피크 되었고, 앨범은 81년 1월 10일에 1위에 올라 연4주간 탑이었다.‘Imagine’ 는 1989년 봄에 아이오와주 워털루 출신 트레이시 스펜서의 커버가 85위까지 오른 단 한차례의 리바이브 히트가 있었다.
▣. 영원한 우리의 연인 John Lennon
1940년 10월 9일, 리버풀의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난 존 레논(본명 John Winston Lennon)은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자 세 살 무렵부터 숙모의 손에 자라야했다. 이런 불우하고 가난한 환경은 그에게 반항심을 북돋웠고 점점 성장해감에 따라 그는 자신의 불행의 근본원인이 자본주의 사회제도에 있다는 인식을 하게된다. 16세때 쿼리맨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리버풀 예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에 빠져들어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등과 함께 쿼리맨(Quarrymen)이란 로컬밴드를 조직해 활동했다. 몇 년 후에 쿼리맨은 'Beat(박자)'와 'Beetle(딱정벌레)'를 합성한 새로운 밴드명 비틀즈(Beatles)로 거듭나게 된다. 매카트니와 레논은 10년간의 비틀즈 활동 기간 동안 환상의 작곡파트너로 활약했지만 기질이나 음악적 성향은 매우 달랐다. 매카트니가 뛰어난 팝센스로 멜로디 메이커의 재능을 불태운 반면 레논의 관심사는 LSD와 연관된 사이키델릭을 비롯해 인도의 요기(Yogi)로부터 영향받은 명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주제로 향해 있어 비틀즈 멤버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창조적인 역량을 발휘했다. 하지만 두사람의 개성 충돌은 밴드 내부에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했고 점차 심각한 갈등으로 발전해갔다. 비틀즈 해체 이후 갖가지 미디어를 통해 서로 수위높은 독설을 퍼부음으로써 레논과 매카트니의 불화는 대외적으로도 확고해졌다.
동그란 안경테 속에 너무나 평범한 모범생 같은 외모를 가진 존 레논(John Lennon)은 사실 비틀즈(Beatles)의 멤버들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철저하게 음악에 몰두한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정치적인 이념과 사상을 반영하기도 했던 존 레논은 지극히 자기 고백적인 가사에 선율이 아름다운 곡들로 그 작곡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은 로큰롤 음악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실력에 안주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때문에 그는 비틀즈에서의 엄청난 업적에 비해 솔로로서의 활동은 비교적 간과되기도 했다. 비틀즈의 폭발적인 성공으로 이미 상업주의의 최고봉에 올라있었을 당시에도 그의 반전주의적이고 기존 권위에 대한 적개심은 여전했으며, 66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비틀즈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유명하다'라는 발언을 함으로써 한때 기독교도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비틀즈 활동 중에도 솔로로서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존 레논은 68년, 그의 연인이자 전위예술가인오노 요코(Ono Yoco)와 실험적인 사운드로 이루어진 [Unfinished Music, No. 1: Two Virgins]를 발표했다. 두 사람의 누드를 실은 앨범 자켓으로 심각한 물의를 일으킨 이후 그는 요코와 결혼하고 그들의 신혼 여행지인 암스테르담에서 반전시위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에 반전사상을 담은 'Give Peace a Chance'를 포함한 [Unfinished Music, No. 2: Life with the Lions and The Wedding]을 발표한 그는 오노와 기타리스트에릭 클랩톤(Eric Clapton) , 베이시스트 클라우스 부먼(Klaus Voormann), 드러머 알란 화이트(Alan White)와 함께플라스틱 오노 밴드(Plastic Ono Band)를 결성해 'Cold Turkey'를 발표하지만 미국과 영국 어디서도 톱 텐에 오르지 못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받은 MBE 훈장을 반환하고 영국과 미국의 비아프라(Biafra), 베트남 참전에 항거한 존은 요코와 함께 12개 도시를 다니면서 'War Is Over! (If You Want I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평화를 위한 캠페인을 지속한다.
1970년 'Instant Karma'로 UK/US 차트 10위에 오르면서 히트를 하게 된 그는 폴 맥카트니(Paul McCartney)의 비틀즈 해체 발언에 분노해 [John Lennon/Plastic Ono Band]라는 정식 솔로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71년 또 다른 국가 부정적인 사상을 담은 싱글 'Power to the People'을 발표한 그는 그해 가을 [Imagine]을 선보인다. 타이틀곡으로 히트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은 다시 정치적인 활동가로 돌아가 아비 호프만(Abbi Hoffman), 제리 루빈(Jerry Rubin)같은 미국의 급진주의자들을 옹호했고, 72년 뉴욕 히피밴드 엘러펀츠 메모리(Elephant's Memory)와 더블 앨범 [Sometime in New York City]를 발표했다. 그러나 정치사상을 담은 곡들로만 이루어진 이 앨범은 그 단순함으로 혹평을 받았고, 저조한 판매고를 보임은 물론 그의 명성에도 손상을 가했다. 이후 마리화나 소지죄로 미국 영주권이 거부되고 74년 오노와 이혼하게 되면서 LA로 거주지를 옮긴 레논은 소위 'lost weekend'라 불린 1년 반 동안의 방탕한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도 존의 음악 작업은 계속되었고, 74년 'Whatever Gets You Through the Night'라는엘튼 존(Elton John)과 공동 작업한 곡으로 히트를 기록한 [Walls and Bridges]를 발매한 후, 그는 다시 오노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가졌다. 75년 [Rock & Roll] 을 발매하고 76년 영주권 획득 이후 데이빗 보위(David Bowie) 의 앨범에 참여한 존은 이후 음악에 손을 떼고 가사 작업에 매진한다. 80년 오랜 침묵을 깨고 게펜 레코드사(Geffen Records)와 계약을 맺은 그는 [Double Fantasy]를 발매해 호평을 얻고 앨범과 싱글 '(Just Like) Starting Over'를 나란히 차트에 올린다. 그러나 새로운 활동으로 재개한 그의 창창한 앞날은 80년 12월 8일 암살자 마크 데이비드 채프만(Mark David Chapman)의 총격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비록 비틀즈 이후 존 레논의 음악은 상업적 가치와 예술적인 완성도 면에서 그다지 뛰어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록 스타로 자리매김한 70년 초 혁명적인 활동가로 정치시위에서 TV 토크쇼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과 사회사상을 반영함으로써 음악과 삶에 있어 극단을 취했던 그는, 사후 약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로 남아있다. [ From Changg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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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20년 종신형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지난 2008년에 다시 가석방신청했다가 또 기각되었죠...
항간에는 존의 사망에 채프먼은 깃털일뿐 몸통은 따로 있다는 설도 있던데,
FBI 개입설도 글코...
암튼 유명인들의 죽음뒤엔 뭔가 구리구리한 냄새가 남다는...
존이 걍 평범한 뮤지션이 아니었기에 그런 의혹이 증폭되는 듯 하네요...
아.... 킬링 필드.... 중딩 때 학교서 단관했던 영화에요...
스파님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 그리고 이메진.....
엔딩크래딧이 다 끝난 후에도 한동안 노래와 마지막 장면의 여운으로 자리를
뜨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노래는 마음곳곳에 들어가 릴렉스를 시키는 마력이 있는것 같아요...
존레논 곡의 특징인 것 같아요.... 진정효과....^^
LOVE도 그런 곡이죠^^
가장 존레논 다운 곡이 아닌가 합니다.. 명곡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