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蒙古)는 일명 달단(韃靼)으로 사막에 있는데, 천하의 막강한 나라이다. 48부(部)의 왕이 해마다 들어와 조공(朝貢)한다. 나라 풍속이 귀천이 없이 다 누런 옷을 입는데 황제의 의복 빛깔과 같다. 건륭(乾隆)이 황화요(黃花謠)를 듣고부터는 더욱 견제하고 있다 한다.
회자(回子)는 회회국(回回國)이라고도 하며, 바다 가운데에 있어 다섯 달이 걸려야 비로소 중국에 이른다. 강희(康煕) 때에 명령을 거역하였으므로 드디어 군사를 풀어 토벌하여 그 왕을 사로잡아 서울로 데려오자 그 딸을 후궁으로 바치었다. 그곳 사람들은 검은 얼굴에 눈이 깊고 구레나룻이 더부룩하다. 옷과 모자는 청인과 같고, 여자는 알롱달롱한 옷을 입으며 머리는 땋아서 늘어뜨린다. 도광(道光) 때에 또 반역하였으므로 양우춘(楊遇春)을 보내어 토벌, 평정하였다.
악라사(鄂羅斯)는 대비달자국(大鼻橽子國)이라고도 하며 흑룡강(黑龍江)의 북쪽에 있으니, 중국에서 2만여 리나 떨어져 있다. 10년에 한 번 와서 관에 머무르며 교역(交易)을 할 뿐, 조공은 하지 않는다. 그 나라 사람은 검은 얼굴과 우뚝한 코에 성질이 사납다.
섬라(暹羅 태국)는
적미유종국(赤眉遺種國)이라고도 하며, 점성(占城 참파 Champa, 2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인도차이나 남동 기슭에 있던 참(Cham)족의 나라)의 극남(極南) 쪽에 있다. 8000리를 항해하여 광동(廣東)에 이르러 육지에 내려, 거기서 다시 7000리를 가 연경에 이른다. 5년에 한 번 조공을 한다. 그 나라 사람은 모두 박박 깍은 머리에 몸은 작고 얼굴은 못생겼다. 강남이라 춥지가 않아서 겨울에도 홑옷을 입는다. 공물은 용연향(龍涎香 향의 이름), 침향(沈香), 백단향(白檀香), 강진향(降眞香), 금강찬(金剛鑽),
빙편(氷片), 장뇌(獐腦),
대풍자(大楓子), 두관(豆蒄 약용 식물),
필발(蓽撥), 계피(桂皮), 취조가죽[翠鳥皮], 공작 꽁지, 상아(象牙), 무소뿔[犀角], 서양담요[西洋毯], 홍포(紅布),
오목(烏木), 소목(蘇木) 등등이다.
《일통지(一統志)》에 이르기를,
“섬라는 풍속이 침략을 숭상하고, 부녀자는 생각과 도량이 남자보다도 뛰어나서 나라 안의 형법(刑法)의 경중과 전곡(錢穀)의 출입을 다 참여하여 결의(決議)한다.”
하였다.
안남(安南)은 옛 남교(南交)의 땅이다. 진(秦)이 상군(象郡)을 두었고, 한(漢)이 교지(交趾)를 두었으며, 연경에서 1만 1100여 리 떨어져 있다. 역대로 임금의 자리를 빼앗는 일이 계속되면서 서로 이어왔다. 건륭(乾隆) 때에 광남(廣南) 사람 완혜(阮惠)가 스스로 즉위하여 왕이 되었는데, 드디어 안남왕에 봉하였다.
진랍(眞臘 캄보디아 지방)은 땅이 사방 7000여 리인데, 점성(占城) 남쪽에 있다. 국왕이 사흘에 한 번 조회를 보는데 그때에는 오향칠보상(五香七寶床) 위에 앉고 보장(寶帳)을 치며, 조하길패(朝霞吉貝)를 입는데 허리와 배를 감아 배 아래로 늘어뜨려 정강이에 이르게 한다. 머리에 금보화관(金寶花冠)을 쓰고 몸에는 진주 영락을 걸치며, 발에는 가죽신을 신고 귀에는 금귀고리를 하고 있다. 그 신하가 왕에게 조회드릴 때에는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 다섯 번 부르며, 계단에 오르면 꿇어앉아 두 손으로 어깨를 끌어안고 왕을 에워싸고 둘러앉아 정사를 의논한다.
국성(國城)은 70리, 전우(殿宇)는 30여 곳인데 자못 장엄 화려하다. 풍속이 화려하고 사치함을 숭상하며, 농산물이 풍요하다. 남녀가 다 머리를 깎고, 여자가 10살이 되면 곧 시집을 간다. 중국 사람들은 ‘부귀진랍국(富貴眞臘國)’이라 일컫는다.
농내국(農耐國)은 안남의 부속국이다. 그 군장(君長) 완복영(阮福映)이 안남을 쳐서 멸망시키고 표를 올려서 새로 봉하여 주기를 청하되, 남월(南越)이라는 이름으로 해 주기를 원하였다. 부신(部臣)들이 논박한 끝에 월(越) 자를 위에다 놓아서 월남국왕(越南國王)으로 하여 봉하였다.
유구국(琉球國)은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어 우리나라의 탐라(耽羅 제주도)와 가장 가까우며, 나라 안에 보물이 많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유구의 태자가 탐라에 표착(漂著)하였는데, 탐라 사람이 그 보화를 탐내어 물에 빠뜨려 죽였다 한다. 그래서 탐라 사람이 만약에 유구에 표착하면 반드시 죽였으므로 탐라의 표류인은 반드시 다른 고을 사람으로 일컬어 죽음을 면하기를 꾀하였다.
흑진국(黑眞國)은
영고탑(寧古塔) 동쪽 수천 리 얼음바다 밖에 있다. 바닷물이 5년에 한번 어는데 서로 건너다니지 못한다. 그 나라 사람은 온몸에 짐승의 가죽을 두르고 다만 머리와 얼굴만 내놓는데, 고수머리가 양과 같으며 물고기나 짐승 고기를 날로 먹는다. 건륭(乾隆) 때에 흑진인이 홀연히 바다를 건너 육지로 나왔으므로 건륭 임금이 불러왔으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물건을 그 앞에 벌여 놓고 그것들 중 가지고 싶은 것을 살펴 보았으나 끝내 원하는 것이 없었지만 한 여자를 보더니 기뻐하며 다가가서 끌어안았다. 그리하여 총명한 여자를 골라 짝지어 주고 또 영리한 사람 5명으로 하여금 그를 호위하게 하여서 그들을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오곡(五穀)의 씨앗과 농구를 주어 농사를 가르쳐 주었더니, 5년 후에 그 여자와 함께 다시 얼음바다를 건너서 왔는데, 사은의 표시로 주먹만한 큰 구슬과 길이가 1장(丈)이 넘는 몇 장의 표범 가죽을 가지고 와서 바치었다.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큰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군장(君長)이 없다. 사람들은 키가 3장이며, 더러 1장 남짓한 작은 사람도 있다. 오직 새가 짐승의 사냥을 일삼고 생선과 자라를 날로 먹으며, 구슬과 조개가 바다에 넘치는 그 광채의 기괴한 것을 헤아릴 수가 없다.”
부제국(浮提國)은 바다 밖에 있는데 그곳 사람은 모두 날아다니는 신선으로 천하에 노닐기를 좋아한다. 그 어느 곳에든 이르면 능히 그 지방 말을 알며 본국으로 되돌아가고 싶으면 단숨에 갈 수 있다. 만력(萬曆) 말엽 어사(御史) 섭영성(葉永盛)이 강우(江右 강서성 지방)를 안찰할 때, 한 무리의 광객(狂客)이 있어 능히
황백사(黃白事)를 말하며 술을 몹시 마시고 즐겨 놀며, 저자에서 사는 물건들이 매우 사치하여 구슬과 아름다운 비단을 많이 취하는데 값보다도 많은 돈을 치른다.
날이 저물면 보이지 않다가 이른 아침에 다시 온다. 사람들이 대수색(大搜索)을 청하였으나 섭 어사는 허락하지 않고 다만 부르기만 하였더니, 어사 앞에 이르러서는 능히 강우(江右)의 토어(土語)를 말할 줄 알며 스스로 부제 사람이라고 칭하였다. 손에 7자쯤 되는 수정 비슷한 돌 하나를 가지고 와서 책상의 상하에 놓았는데 전후의 물건들이 그 속에 비친다. 또, 금을 박은 작은 함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그 속에는 경권(經卷)이 있어 검은 종이에
녹자(綠字)로 쓴 것이
반야어(般若語) 같으며, 다 보고 나면 글자가 날아간다. 이 두 가지 물건을 바치기를 청하였으나, 섭 어사는 말하기를,
“너희들은 필시 이인(異人)이다. 바치는 것을 나는 받지 않을 것이니, 빨리 국경을 나가 우리 백성을 현혹하지 말라.”
하니,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사라졌다.
건륭 말년에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는 300명이, 모두 붉은 머리에 눈빛은 불같이 이글이글하고 의복이 이상하며 걸음걸이가 매우 재빠른데 남방으로부터 왔다고 하나, 군현이 다 그 정체를 알지 못하였다. 그들이 연경에 와서 예부에 이르러 천자에게 보기를 청하였는데, 그때 시위(侍衛)가 삼엄하였다. 그중의 13살 난 아이가 가장 총명하였는데, 먼저 화신(和珅)에게 절을 하므로 대신 아숙(阿肅)이 꾸짖었더니 대답하기를,
“이제부터 폐하를 뵈는 예를 물으려 하는 것이오.”
하였다. 탐탁하지 아니하여 문밖으로 내쫓았더니 곧 간 곳을 모르는데, 그것이 혹시 부제 사람이 아닌가 의심된다.
무릇 여러 나라의 풍요(風謠), 지계(地界)에 대하여 들은 바에 따라 약간 초록하였으나 모조리 다 기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지금의 중국 땅이 서북쪽은 감숙(甘肅)에 이르고 서남쪽은 면전(緬甸 미얀마)에 이르며, 남쪽 끝에 운남(雲南), 귀주(貴州)가 있고 동쪽에는 오랄(瓦喇 랴오닝 성[遼寧省] 부근), 선창이 있다. 이른바 서역, 토번(吐蕃), 돌궐(突厥)의 땅이 모두 다 판도에 들어 있다. 신강(新彊)을 개척한 뒤부터는 폭원(幅圓)의 큼이 고금에 없었다. 조공하는 나라도 전대의 갑절로서, 점성(占城),
우전(于闐), 조와(爪哇 인도네시아의 자바), 유구(琉球), 안남(安南), 섬라(暹羅), 진랍(眞臘), 발니(渤泥 타이 남부의 바타니), 소록(蘇祿 군도의 이름), 타회(打回), 안정(安定), 합밀(哈密 신강성 합밀현) 등의 나라가 그 가장 두드러진 것이다. 조공은 한 해에 한 번 오는 것과 해를 걸러 한 번 오는 것, 3년, 5년, 10년에 한 번 오는 것이 있고, 또한 1세(世)에 한 번 오는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