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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크랩 김연아, 은퇴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건담(지구사수) 추천 0 조회 1 14.02.21 17: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연아 선수가 소치 올림픽 출전 여부와 은퇴 여부에 대해 확답을 하지 않고 

이번 시즌 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안 좋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생긴듯합니다. 


대한민국에 피겨판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자리 잡기 전에 연아 선수가 엄청난 스타가 되는 바람에 

연아 선수가 보인 피겨 선수로서 지극히 평범한 몇몇 행보들이 일반인들에게 오해를 사곤 했는데 

아직도 피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지금까지도 모든 것이 되풀이되네요.



1.은퇴하지 않는 김연아, 은퇴가 아닌데 대회는 안 나온다고?

사실 연아 선수의 나이가 많은 나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피겨 선수로 따지면 적은 나이도 아니죠. 피겨는 수명이 짧은 스포츠니다.
연아 선수 나이, 소치 올림픽 즈음엔 중견 선수가 되고 평창 올림픽 즈음엔 노장이 될 나이입니다.
(그러므로 평창 올림픽 출전은 의지가 있다 해도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보는 게 맞죠.)

연아 선수가 쉬고 싶다고 느낀 건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 직후부터였을 겁니다.
그러나 바로 한 달 뒤 2010 토리노 세계선수권이 예정되어 있었죠.

늘 밴쿠버 동계 올림픽을 자신의 현역 마지막 경기라 생각해 왔던 연아 선수는 
토리노 세계선수권 출전을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토론토의 훈련지까지 방문해 연아 선수의 세계선수권 출전을 설득한
대한 빙상연맹 관계자분들 덕에 출전을 강행, 은메달을 획득하며 다음년도 출전권 2장을 얻었습니다.

연맹이 김연아 선수의 출전을 원한 이유는 2011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출전권 때문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피겨 선수 중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따올 레벨의 선수는 김연아 하나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김연아 선수의 안무가인 데비이드 윌슨의 인터뷰와
D모 일간지 기자의 기사(출전 압박 이유)를 통해 올 초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She didn’t want to compete at last year’s world championships in Turin, 

totally spent after winning at the Olympics under intense pressure. 

But a visit from a Korean figure skating official to her then training base in 

Toronto convinced her to change her mind. She had a disastrous."

 

"그녀는 극심한 압박감 속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후 완전히 고갈되어, 

작년 토리노 월드에 참가하기를 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한국 빙상관료들의 토론토 연습캠프 방문이 그녀의 마음을 바꿔놓았다."


사실 이 대목부터 안 좋게 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축구나 야구 같은 피겨보다 수명이 길고, 돌아가는 사정이 다른 스포츠와 피겨를 비교하면서 
김연아 선수가 대회에 나가고 싶어하지 않은 것 자체를 비난하시죠.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앞선 올림픽 여자 싱글 챔피언들의 행보를 보면
오히려 올림픽 이후 연속해 두 번이나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김연아 선수가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

 1988년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 카타리나 비트  88년 컴피 떠남, 93년 다시 컴백! 한 시즌 뒤 다시 떠남.
 1992년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 크리스티 야마구치   92년 올림픽 시즌 세계 선수권 출전 후 컴피 떠남.
 1994년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 옥사나 바이울  94년 올림픽 시즌 세계 선수권 스킵 후 컴피 떠남. 
 1998년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 타라 리핀스키  98년 올림픽 시즌 세계 선수권 스킵 후 컴피 떠남. (당시 16세) 
 2002년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 사라 휴즈  02년 올림픽 시즌 세계 선수권 스킵 후 컴피 떠남.
 03년 다시 컴백, 자국에서 열린 두개 대회 출전 후 떠남.
 2006년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 아라카와 시즈카  06년 올림픽 시즌 세계 선수권 스킵 후  컴피 떠남.
 2010년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 김연아 10년 올림픽 시즌 세계 선수권 출전
 11년 세계선수권 출전 (그랑프리, 사대륙 스킵.)
 12년 시즌 올 스킵


김연아 선수를 타 종목 선수와 비교할 게 아니라 같은 종목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야만 했고
비교한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행보임에도 쉬고 싶다는 발언이 비난받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며칠 전 C모 일간지 기사를 통해 김연아 선수가 
2011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에 출전해야 했던 이유도 밝혀졌습니다.

Q. "모스크바 월드에 나간것이 힘든 결정이었다고 들었다. 설득 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주변에서) 대회에 나가지 않으면 언론이나 팬, 국민이 (나를) 외면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시합에 출전하고 현역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는 정부와 대한체육회 등의 요청이 있었다고 합니다.
(선수 본인이 얘기한 게 아니라 기자의 취재 결과 알려진 부분입니다.)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올림픽 직후) 휴식을 취할 수 없었던 연아 선수는 
계속해 휴식을 간절히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타의에 의해 시즌을 이어가야만 했죠.
대회 출전을 포기하면 외면받을 것이라는 어찌 보면 너무도 잔인한 말과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함이라는 카드를 들이민 사람들 때문에요.
(김연아 선수는 동계 종목 인프라 확충을 위해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간절히 바래 왔습니다.

타의에 의해 출전을 강행한 2011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 선수는 은메달을 획득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또다시 세계선수권 출전권 2장을 획득하게 됐습니다.
연아 선수가 이번 시즌 세계선수권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후배 스케이터 2명에게 좋은 기회가 생기게 됐네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렇게 강요받아 나갔다는 뉘앙스의 글이 올라오면
연습 부족 때문에 졌다, 기량 저하다 이런 얘기 하시는 분들 있는데 아닙니다.
2011 세계선수권에서는 점프뿐 아니라 스핀의 스트레치, 속도 면에서도 발전해왔기 때문이죠.

쨌든 김연아 선수는 이러 저러한 이유 때문에 은퇴를 쉽게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설사 특별한 이유가 없다 해도 은퇴에 대한 확답을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김연아 선수가 개인 종목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쉬운 이해를 위해 몇 가지 예를 들도록 하겠습니다.

은퇴를 선언하고 경기에 나오지 않는 선수들도 물론 있습니다.
한국 피겨팬들도 잘 알고 있는 스위스의 스테판 랑비엘 선수가 그런 케이스입니다.

랑비엘 선수는 2008년 은퇴를 선언한 후 2010 올림픽 때 다시 컴백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 이후 시즌을 소화하지 않고 있고 소치 올림픽에 출전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2006년 동계 올림픽에서 은메달,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딴 후 은퇴했던
미국의 사샤 코헨도 이러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코헨은 더는 대회에 나가 겨룰 동기를 찾지 못하겠다면서 은퇴했고 아이스쇼를 하며 지냈습니다.
코헨은 올림픽 이후 스케이트 부츠를 쳐다보기도 싫다고 얘기했었죠.

그런 코헨이 2009년의 어느 날, 2010 동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한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곧 올림픽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 두 개 대회 TEB와 SA를 배정받았었죠.
하지만 두 대회 모두 기권했고 미국 내셔널에 참가했으나 4위를 기록하며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습니다.
후로 앞으로의 시즌에 대한 어떠한 얘기도 없지만 누구도 코헨에게 미래를 캐묻지는 않고 있습니다.

반대로 은퇴를 공식 선언하지 않고도 경기에 나오지 않는 선수들도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김연아의 우상으로 알려진 미셸 콴 선수입니다.
콴은 2005년 3월에 있었던 세계선수권을 끝으로 경기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은퇴한 적이 없는 현역 선수입니다.

근래 들어서는 연아 선수와 함께 출전한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캐나다의 조애니 로셰트 선수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 선수는 올림픽 시즌을 끝으로 경기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벌써 두 시즌째 스킵중인데 공식적으로 은퇴한 상태가 아니며
소치 올림픽 출전 여부에 대한 언급도 없는 상태입니다.

아마 미래에 대한 확답을 내놓으라고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것은 
전 세계 현역 스케이터 중 김연아 선수만이 겪고 있는 일일 겁니다.


2.대회가 싫은 김연아! 너 피겨를 사랑하긴 하는 거니?

저는 피겨를 사랑하는 것과 경기를 사랑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피겨=경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다시 하나의 예를 들려 합니다.

일리아 쿨릭이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1977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스케이터로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입니다.
시니어 레벨에서 4시즌 간 선수 생활을 하고 
아마추어 신분으로 출전한 마지막 대회인 나가노 동계 올림픽을 끝으로 컴피를 떠났습니다.

그가 20살에 은퇴한 이유는 경쟁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연아 선수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쿨릭 또한 너무 일찍 컴피를 떠났기에
피겨를 사랑하지 않는 선수가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쿨릭은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빙판 위에 있습니다.
컴피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아이스쇼를 통해 팬들과 교감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다시 김연아 선수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김연아 선수는 지난 시즌 세계선수권에만 출전했고 올 시즌은 모든 대회를 스킵했습니다.
그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김연아 선수가 가진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애정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이후 컴피와 다소 멀어져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가 피겨와 멀어져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피겨와 가까이 있었습니다.

크게 몇 가지 활동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키스 앤 크라이


아시아 최초 빙상 버라이어티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SBS에서 방영되었던 피겨 예능입니다.
예능 프로라는 이유로 출연 자체에 반감을 보인 분들도 많이 계셨었죠.

김연아 선수도 처음에는 출연을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운동이나 하지"라는 반응이 나올 거란 예측 때문이었다네요.)
그런데 주변에서 피겨의 대중화를 위해 출연해 달라고 설득해 출연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프로를 통해 피겨 스케이팅, 그중에서도 아이스 댄싱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예능 프로라는 이유만으로 연아 선수의 키앤크 출연 자체가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시즌 중에 진행된 촬영도 아니고 비시즌, 스케이터들이 본인들을 위한 휴식을 취할 때
평창 유치 활동과 훈련을 병행하며 함께 진행된 일인데도 비난받아야 했습니다.

@댄싱 위드 더 스타


김연아 선수와 함께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땄던 남자 싱글의 에반 라이사첵 입니다. (왼쪽)

올림픽 이후 시즌을 올 스킵 하며 이런저런 셀럽 활동을 하며 지냈는데

이 프로그램 출연도 그러한 활동 중에 하나였죠. 

댄싱 위드 더 스타는 키앤크와 성격이 비슷한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고

에반은 도전자 중 한 명으로 출연했습니다. 비난 여론은 물론 없었구요.


@배틀 오브 블레이드 (캐나다)


@댄싱 온 아이스 (영국)


@러시아 피겨 서바이벌 프로그램


▲ 현재 캐나다, 영국, 러시아에서 방영되고 있는 

키앤크와 같은 성격의 프로그램입니다.

피겨 스케이터들이 MC, 심사위원, 도전자로 참여하고 있지요. 

예능 프로 이전에 피겨 프로그램으로 인식되는 것들입니다. 

출연하는 스케이터들에 대한 비난은 당연히 없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활동


김연아 선수의 이 활동이 피겨와 무관하다고 보시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동계 올림픽 유치가 확정 되면 국내 피겨 인프라가 확충 됩니다.
(김연아 선수는 늘 후배 선수들을 위한 연습 전용 빙상장이 생기기를 원해왔습니다.)


@동계 유스 올림픽. 스페셜 올림픽 홍보 대사 활동


동계 유스 올림픽은 말 그대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동계 올림픽입니다.
김연아 선수는 내년 1월 개최되는 제1회 동계 유스 올림픽 홍보 활동에 주력하고 있죠.

이 밖에도 김연아 선수는 다양한 공익 활동을 하면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페셜 올림픽(지적 장애인 올림픽)홍보 활동, 유니세프 국제 친선대사 활동 등이 이에 속하지요.


또한 학업과 훈련도 병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말이 훈련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겨 스케이팅은 단 며칠만 쉬어도 감을 잊기 때문에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연아 선수가 모든 목표를 이룬 후에도 훈련은 계속해야 해서 힘들어하는 것이구요.)


피겨 스케이팅과 관련된 일은 비단 경기 출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스쇼도 피겨입니다.
피겨와 관련된 일을 홍보하는 것도 피겨입니다.
코치, 해설자, 안무가 등등도 모두 피겨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국내, 국외 가리지 않고 피겨 스케이팅과 관련한 활동, 자선 활동을 하는 김연아 선수에게
일본의 한 언론은 자신의 가치가 가장 빛나는 순간을 남을 위해 쓴다며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경기에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겨 스케이팅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3.피로는 간 때문, 김연아는 돈 때문?

돈 얘기가 빠질 수가 없죠. 
돈, 광고 이는 김연아 선수가 어떠한 일을 해도 따라붙는 이야기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은퇴 여부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는 것이 광고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듯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정말 김연아 선수가 현역 타이틀 유지로 본인의 몸값을 올려볼 요량이었다면
차라리 소치 올림픽에 출전 할 수도 있으나 그전까지는 쉬겠다. 라고 말하는 게 현명한 방법입니다.
실제로 소치 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하면서 지금은 대회에 나오지 않는 선수들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김연아 선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죠, 말이 행동을 앞서는 선수가 아니니까요.

2010년 초까지 김연아 선수는 에이전트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였습니다.
올림픽 시즌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었죠.
올림픽 특수와 소속사 계약 막바지라는 상황이 맞물려 엄청난 광고에 노출이 되었었구요.
그 때문에 뒤따르는 비난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계약이 만료되고 김연아 선수는 소속사에서 나와 독자적인 회사를 세웠습니다.
중도 계약 파기가 아니라 계약 만료였는데 재계약을 하지 않았단 이유만으로 비난받았습니다.
회사를 세운 이유가 돈 때문이라며 가족까지 비난하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연아 선수가 독자회사를 설립한 후에 행보를 살펴보면
흔히들 연아 선수를 돈연아라 말하며 비난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죠.

우선 회사 설립 후 가장 먼저 한것이 곽민정, 김해진이라는 두 명의 피겨 스케이터 영입, 지원이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역시 비인기 종목인 여축의 지소연 클라이밍의 김자인을 영입해 지원하고 있구요.

사실 위에 언급된 선수들은 스포테이너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수들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돈벌이에 급급했다면 굳이 영입할 이유가 없는 선수들이죠.

피겨는 개인 종목입니다.
김연아 선수는 국내 훈련 환경이 열악해 17살 정도부터 해외에 체류하며 훈련해 왔습니다.
체류비 훈련비 코칭비 안무비 의상비 모두 선수 본인이 자비로 부담해 왔습니다.

그 때문에 광고 촬영을 시작했고 돈 걱정 없이 훈련하게 된 것은 2008년 말 정도부터였습니다.
(피겨를 시작한 때는 1997년입니다.) 
첫 광고를 촬영한 직후에는 후배들 전지훈련비를 지원했고 (본인도 넉넉지 않던 때)
그 후로도 계속해 후배 스케이터들과 사회에 기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은퇴한 스케이터들은 물론이고 현역 스케이터 중에서도 자국 선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선수 없습니다.)

김연아 선수 세계 여성 스포츠인 수입 순위 7위입니다. 많이들 아시죠?
그런데 혹시 이것도 아시나요? 연아 선수가 세계 여성 스포츠인 자선 활동 순위 5위라는 사실을요.

연아 선수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어째서 돈과 관련해 그녀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은 아직도 달라지질 않고 
아직도 모든 것을 돈과 연결해서 보는 사람들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긴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한 줄로 요약이 됩니다.
"경기를 사랑할 수 없다고 피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항상 1등을 해야 하는 연아 선수
항상 행복해야 하는 연아 선수
항상 즐거워야 하는 연아 선수
항상 괜찮아야 하는 연아 선수
행복하지 않아도 즐겁지 않아도 괜찮지 않아도 그런 척 해야 하는 연아 선수

가끔 사람들은 김연아 선수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거 같습니다. 


16살,작은 연아입니다. 스케이트 부츠가 자꾸만 무너지는데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선수 부츠를 빌려 신고 경기에 나가려 합니다.

연아의 발에 맞지 않는 부츠입니다. 그래서 테이프를 동여맵니다. 


17살, 아직도 연아와 어머니는 부츠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계속해 부츠를 가지고 씨름했지만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연아와 어머니는 은퇴를 고민하게 됩니다.


자꾸만 무너지는 부츠 때문에 발이 아픕니다. 점프가 잘되지 않습니다. 

자신감이 사라집니다. 무너지는 부츠와 함께 연아도 자꾸만 무너집니다. 

연습할 공간도 없습니다. 국대 전용 링크는 보수 공사에 들어갔고 연아는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연아는 이곳에서 구경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발도 허리도 너무 아프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테이핑을 하고 대회에 나갔습니다.

다행히 끝까지 경기해냈습니다. 그리고 파이널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습니다. 

대회에 다녀와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습니다. 연아의 나이는 고작 17살입니다.


18살, 17살에 처음 출전했던 월드 데뷔에서 쇼트 세계신기록을 세우고도 

부상 여파로 프리에서 실수를 하며 동메달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올 시즌 연아는 훨훨 날았습니다. 미스 사이공으로 프리 세계신기록도 세웠고 파이널도 2연패 했습니다.

그런데 연아는 다시 아픕니다. 캐나다에서 귀국했습니다. 고관절 부상이라고 합니다. 사대륙을 스킵합니다.

쉬어야 하지만 쉴 수 없어 빙판에 섭니다. 연아에게 주어진 연습 장소는 롯데월드 아이스 링크입니다.

사람들은 연아가 지나갈 때마다 함성을 지르고 점프를 해보라며 소리칩니다. 동물원의 원숭이 취급입니다.


진통제를 맞고 퉁퉁 부은 얼굴로 대회에 나갔습니다. 다행히 프리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연아 뒷 선수인 안도 미키 선수가 빙판 위에서 울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근육 파열이라고 합니다. 결국 기권을 합니다. 사실 연아도 근육 파열이 있었습니다.

점수가 나왔습니다. 점수가 이상합니다. 결국 연아는 2점 때문에 다시 또 월드 챔피언의 꿈을 접습니다. 

외신에서도 판정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연아 편이 거의 없습니다.

주니어 월드에서 이겨도 파이널에서 2연패를 해도 연아는 아직 마오에게 안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18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아픈 상처입니다.

엄마는 연아에게 말합니다, 든든한 빽을 하나 갖자고. 그래서 연아는 세례를 받고 천주교인이 되었습니다.


19살, 아프지 않은 연아가 되었습니다.

아파도 안 아픈 연아입니다. 연아는 이제 더는 부상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으려 합니다.

혹시나 이런 사진이 찍혀도 모른 척 해주세요. 연아는 아프지 않습니다.


성호를 그으며 하늘에 전합니다. 오늘도 무사히 빙판 위에 서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1살, 연아의 첫 해외 아이스쇼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오서가 일방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연아의 엄마에 의해 일방 해고를 당했다고 주장 했습니다. 

그러나 오서와 연아는 계약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해고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연아의 헤드 코치였습니다. 연아에게는 그를 제외한 다른 기술 코치들도 있었습니다. 

연아는 그에게 주 5회 하루 한 시간 지도를 받았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피겨 맘에 대한 인식은 좋지 못합니다.

오서의 일방 언플로 인해 사람들은 연아를 마마걸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녀의 엄마는 짓밟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아는 그에게 거짓을 멈추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이 아닌 이유로 엄마가 비난받는 걸 참을 수 없어 한 말인데 화살은 연아에게로 향했습니다. 

그가 연아의 훈련장에 일본 주니어들을 데려와 가르치고

새 시즌 프로그램인 아리랑을 스포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요?

연아가 그를 떠나고 그의 또 다른 제자인 아담 리폰이 그를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예정된 순서였다고 말했습니다. 아담이 경기를 망칠 때마다 오서가 부적절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죠.

아담은 오서와 계약 관계였고 중간에 계약 파기를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연아의 기술 코치였고 오서의 보조 코치인 지슬란을 헤드 코치로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 그(아담)는 사토 유카와 제이슨 던전에게로 떠났습니다.

연아를 비난하던 한국의 언론은 예상대로 조용했습니다.

연아와 어머니를 물어뜯던 외신 기자들은 침묵했고

연아와 어머니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했던 해외 포럼에서는 아담의 선택이 잘 된 선택이라며 칭찬했습니다.


22살, 연아는 다시 빙판 위에 섰습니다.

타의에 의해 출전을 결정해야 했고 그 때문에 자기 자신과 무던히도 싸웠습니다. 

하기 싫다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나 연아는 해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마주 투 코리아를 연기했고 은메달을 땄습니다.

시상대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워 연아는 울었습니다. 

연아는 언제나 모든 것을 해낸 후에야 주저앉습니다, 그리고 웁니다.


'경기가 시작되는 빙판 위에서, 나는 혼자다.

그 순간에는 모든 것들이 어둠 속으로 밀려가 버리고

덩그러니 나만 남는다.'

 -김연아 자서전 중에서


이러한 과정이 즐겁지 않았다고, 그래서 당장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고 해서

어떻게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일이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제발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연아 선수의 애정을 의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밴쿠버 동계 올림픽 남자 싱글 챔피언 에반 라이사첵은 

지난 시즌을 올 스킵 했고 올 시즌 복귀를 선언했었습니다.

(연맹과의 마찰로 복귀는 무산됐지만요.)

에반 라이사첵 선수 올림픽 끝나고 정말 많은 행사장에 얼굴을 보였고

경기 외적인 삶을 즐기며 사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런 에반이 컴피가 그립다고 말하며 다시 복귀를 선언 했을 때

경기를 그리워할 수 있는 그가 부러웠습니다.

연아 선수는 컴피와 떨어져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움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은퇴도 현역 지속도 아직은 어떤 것도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소치까지 갈 것이라는 예측만큼이나 사실상 은퇴라는 추측을 섣불리 하는 것도

연아 선수에겐 부담이 될 겁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저런 근거 없는 추측과 예상들로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고 얼른 결정을 내리라 선수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너그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닐까요?


국가대표라고 해서 그녀의 인생까지도 국가나 국민의 것이 될 수는 없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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