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 한 사람이 없는 시대 예례미야 5:1
연초에 각종 신년감사예배가 있었습니다. 그중 광화문에 있는 모 교회에서 청와대와 정부청사에 있는 중앙부처 공무원 상당수가 모여서 신년감사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기도순서를 맡은 현직 법무부 차관되시는 모 장로님이 아주 비장한 발언을 해서 자리가 숙연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모 교회 장로님으로 현직 법무부 차관입니다. 이 분이 기도순서를 맡았는데 나와서 양해를 구합니다. "예배관례에 어긋나는지 몰라도 내가 이 말씀을 안 드릴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시고 회개기도를 하자는 뜻으로 발언을 했습니다. "이름도 다 외지 못할 정도로 각종 게이트가 난무하고 있는데 이 비리 사건들이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사회를 어지럽힌 사건이다" 이런 설명을 하면서 자신이 검사출신의 법무부 차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말씀드린다는 전제를 하고 이런 통계를 제시했습니다. "무고죄 사범이 지난 한해동안 천오백명이 넘었는데 일본은 한 명밖에 없었다. 위증죄로 법정에서 기소된 사람들이 천오백명이 넘었는데 일본에서는 네 명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지금 거짓말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다. 신뢰는 노동력과 자본과 맞먹는 사회적 자본인데 이처럼 거짓말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는 절대 이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크리스찬 장로된 차관으로서 고위 공직자들과 중앙부처 직원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자는 심정으로 발언을 했습니다.
손흥민이 세계적인 선수가됨중 독서를 통해 인성이 되기 때문이라 합니다
최근 총회는 선관위 총회임원들의 금전 문제 답이 없을정도입니다.
우리는 깨끗한가?
나는 깨긋한가? 50보 100 차이고 정죄할만한 의로움이 없습니다.
그런대 대부분 내로 남불이 현상-내가지은 죄가 안보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을보든 교회를 보든 내교회를 보든 회개가 없는 시대입니다.
그래도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유다의 심판이 불가피합니다. 완전히 타락하였기에 여호와의 심판이 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죄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재앙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그의 고향 아나돗에서 예루살렘에 와서 예언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주권과 그의 언약을 거부한 결과 심판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재앙과 심판을 면하고 용서 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해야 합니다
한사람을 작게 여기는데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의인을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심판을 면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 조건이었던 의인 열 사람보다 훨씬 더 쉬운 것이었습니다(창18:22-32).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는 것은 어떤 약속이나 의무에 대해 여호와를 언약의 증인이나 보증인으로 불러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그만 야만인들에게 붙잡혀 곤장 100대씩을 맞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야만인 추장은 이들에게 매를 맞을 때에 한 가지씩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사람이 “제 등 뒤에 저기 있는 방석 6장을 올려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추장은 소원을 들어 주었고 곤장 100대를 때렸습니다. 하지만 방석이 너무 얇아 70대째에 다 찢어져 나머지 30대를 맞곤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두 번째 사람은 “제 등 위에 저기 있는 침대 매트리스 6개를 올려 주십시오.” 추장은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 주고 곤장으로 때렸습니다. 100대를 맞는 동안 줄곧 웃기만 하다 일어났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일어나면서 세 번째 사람을 보면서 말하기를 "이제 방석도 없고 매트리스도 없는데 어떡하나......ㅋㅋ" 드디어 야만인 추장은 세 번째 사람을 향해 말했습니다. “자, 네 소원은 무엇이냐?” 그때에 세 번째 사람은 자신을 향해 빈정거리며 키득 키득 웃고 있는 두 번째 사람을 가르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있는 저 사람을 제 등 뒤에 올려 주십시오.” 남이야 어떻게 되는 말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서로 다같이 상생하는 우리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에펠탑이 건립(1889) 될 당시 시민과 예술가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파리의 고풍스러운 거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300m짜리 흉물스러운 고철덩어리라며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20년 후엔 철거하겠다는 조건으로 건립했습니다. 20년 후 약속대로 에펠탑을 철거하려 하자 여론은 오히려 그대로 두자는 것으로 돌아섰습니다. 시민들이 매일 에펠탑을 보다 보니 정이 들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흉물스럽게 여겨졌던 그 철제 구조물은 이제 프랑스의 랜드마크가 됐고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건축물이 됐습니다. 그래서 자주 보는 것만으로 호감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에펠탑 효과’라고 부릅니다. 신앙에도 ‘에펠탑 효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그 당시에 가장 흉물스러웠던 십자가를 은혜의 에펠탑으로 바꿔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십자가를 바라보면 볼수록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가까워집니다. 십자가에 대한 노출 횟수는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인지도를 높여주고 사랑의 호감도를 올려줄 것입니다.
우리 나라를 보고 교단을 볼때 불안 불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멸망과 저주가 아니라 희망입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일지라도 정의와 진리를 구하고 회개하고 여호와의 길과 법을 알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는 종들이 되기 바랍니다.
어떤 선교단체는 동일시회개라는 것을 하고있습니다. 그 죄인들이 죽어 없고 알지 못할 때 동일시 회개한다 합니다.
한사람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의인 한사람만 찿아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말씀기억합시다. 이본문 설교를 위해 자료 찿다 보니 본문가지고 설교한 사람이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재판국서기 하다가 교단탈퇴 한사람 인 것을 알았습니다. 설교는 잘했는데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자로 살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설교도 하고 행동하는 믿음의 이사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