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한줄명상]성탄의 두 키워드 “사랑으로 빛을 비추라” 중앙일보 입력 2021.12.01 05:00 백성호 기자 백성호의 현문우답구독 "사랑으로 빛을 비추라" #풍경1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큰 절기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성탄절이고, 또 하나는 부활절입니다. 하늘의 메시지를 품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난 일과 십자가에서 목숨을 잃은 후에도 다시 살아난 일을 기리는 날입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예수의 초상화. 렘브람트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유대인 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유대인 특유의 생김새를 면밀히 관찰했다고 한다.
성탄절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굳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우리는 성탄절에 꽤 익숙해져 있습니다. ADVERTIS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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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아이들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면서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또 ‘성탄절=연말연시’라는 등식과 함께 우리를 다소 들뜨게 하기도 합니다. 매년 돌아오는 성탄절이지만, 매년 아쉽게 흘러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뭐랄까, 우리는 그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날을 보내기만 한다는 느낌입니다. 다시 말해 아기 예수의 생일파티만 하고 있진 않나, 그런 아쉬움이 들 때도 종종 있습니다.
#풍경2 성탄 즈음에 서울 명동성당 뜰에는 아기 예수 탄생의 구유가 설치됩니다. 서울 명동대성당 뜰에는 성탄 구유가 매년 설치된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며 기도를 한다. [사진 천주교 서울대교구]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어머니 마리아와 요셉이 따뜻하게 바라보는 설치물입니다. 이걸 영어로 ‘Nativity(네이티비티)’라고 부릅니다. ‘nativity’하면 누군가의 탄생을 뜻하지만, 머리글자를 대문자(N)로 쓰면 의미가 각별해집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뜻하게 되니까요. 최근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서울 서교구의 집회소 네 곳에도 대형 ‘Nativity’가 설치됐습니다. 알록달록한 조명과 여러 동물의 단정한 조형물, 아기 예수를 안은 어머니 마리아.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서울 서교구 집회소에 마련된 네이티비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사진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는 포토존으로 인기가 꽤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성탄절 조형물이 아니더군요. 교회에서 내건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주제는 다름 아닌 ‘사랑으로 빛을 비추라(Light the World with Love)’입니다. 제 눈에 들어온 건 두 개의 단어였습니다. 하나는 ‘Light(빛)’이고, 또 하나는 ‘Love(사랑)’입니다. 제게는 ‘빛과 사랑’이 그리스도교를 떠받치는 두 기둥으로 보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서울 서교구 집회소에 마련된 성탄 구유인 네이티비티. [사진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풍경3 구약의 창세기에는 하느님(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신의 형상을 본 따 사람을 지었다’라고 돼 있습니다. 여기서 ‘형상’은 히브리어로 겉모습이 아닌 속모습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의 속모습을 본 따 사람을 지었다'가 됩니다. 그렇다면 신의 속모습이 뭘까요? 다름 아닌 신의 속성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신의 속성을 불어넣었습니다. 그게 바로 ‘빛’입니다. 나무로 치면 이 빛은 뿌리에 해당합니다. 뿌리가 있기에 나무가 자라고, 가지도 뻗어가고, 잎들도 무성해집니다. 뿌리가 없다면 이 모두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말구유가 있던 자리는 그리스도교의 성지가 돼 있다. 많은 순례객이 이곳을 찾아 예수 탄생의 의미를 짚는다. 이곳은 말구유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그리스도교의 빛과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내 안에 있는 신의 속성, 그 빛이 나무로 치면 뿌리에 해당합니다. 그럼 그 빛을 세상에 드러내는 건 뭐라고 부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안에 깃든 신의 속성을 가족을 향해, 이웃을 향해, 세상을 향해 드러내는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풍경4 어느 목사님과의 저녁 자리였습니다. 그분은 수십 년째 자신의 일생을 바쳐서 사회 운동에 매진한 분이었습니다. 이른바 사회적 정의의 실천이 가장 큰 사랑이라고 믿는 분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에 들어가 있는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2000년 전 아기 예수가 탄생했다.
제가 그분에게 살짝 물었습니다. “목사님, 힘드시지 않으세요?” 목사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습니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너무 힘들어. 계속 배터리가 방전되는 기분이야.” 목사님의 대답을 들으며 저는 빛과 사랑의 방정식을 떠올렸습니다. 뿌리 없는 나무는 곧 시들고 맙니다. 제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서 뛰어다녀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허함을 채우진 못합니다. 예수는 왜 이땅에 왔을까. 아기 예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은 우리에게 그 물음을 던진다. 백성호의 현문우답 다른 기사 사람의 내면에는 우물이 하나씩 있습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수도(修道)는 그 우물에서 빛을 길어 올리는 일입니다. 길어 올린 그 빛에 자신을 적시는 사람을 우리는 “영성적”이라고 부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에도, 태풍에도 꺾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사랑을 실천해도 쉽사리 지치지 않습니다. 배터리가 방전되는 느낌이 좀체 오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내 안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빛, 그 신의 속성에 쉬지 않고 내가 충전되기 때문입니다. 빛과 사랑은 그리스도교의 영성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사진은 갈릴리 호수에 노을이 지는 광경.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올해 성탄절은 다소 위축될 듯 합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약속을 잡는 일도 서로 조심스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내 안의 우물, 내 안의 빛에 더 집중하면 어떨까요.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생일잔치보다 이 땅에 예수가 온 본질적 이유를 묵상해보면 어떨까요. 그게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예수 탄생이 내게 왜 의미가 있는지, 그걸 깊이 물으면서 내 안의 우물에 두레박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빛을 길어 올려보면 어떨까요. 명동성당 뜰에 마련됐던 성탄 구유. 마리아와 천사,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 탄생을 축복하고 있다. [사진 천주교 서울대교구]
그럼 더 각별해지지 않을까요. 코로나 사태 속에 맞는 올해의 성탄절이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