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부산(Air Busan, 이하 AB)에서 조종사로 근무하는 次男이 말하기를 “10/20일-10/26일 6박7일로 몽골에 여행 다녀 오십시오. 경비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이전에도 AB에서 처녀취항하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등등 여러 번의 제의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사했는데, 칭기스칸(Chinggis Khaan;천년에 1번 나오는 인물-워싱턴 포스트)의 고향을 방문하는 것은 구미가 당기네... 중국 역사에서 한 時도 지도자들의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번민하게 만들었고, BC221년의 진시황 이 후 만리장성을 쌓게 만든 北狄의 고향이 아닌가??? 며칠을 사색한 끝에 다녀오마고 승낙을 했다.(아들아 고맙다...) Lonely Planet에서 출판한 <몽골> 책을 거의 외우고는, 책을 지닌 채 출발했다.
10/20(월) 어제 구덕산우회의 월례산행인 천성산 7시간의 걷기와 저녁의 과음으로 인한 찌부듯함을 떨치고 4시에 기상해서는 후다닥 짐을 꾸린다. 억수로 내리는 비 때문에 택시를 타고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6시로 깜깜하다. 오늘 AB에서 임시노선으로 처녀비행하는 Busan-UB(Ulaanbaatar=red hero;Mongol의 수도)은 4;15분여의 거리로, 첫 취항이라서 승객도 많지 않으니, AB의 직원 복지 차원으로, 일반승객보다 싸게 직원가족에게 혜택을 베풀어 준다. 체질에 안 맞는 단체여행이지만, 처음 가 보는 곳이라 불편을 감수하고, 7;30분에 모이니 30여명의 10대-70대 남녀노소가 부부, 가족 혹은 친구끼리 혹은 혼자 참여한다. 주관여행사인 AB tour(ABT)의 젊은 인솔자도 ‘처음이라 돈 내고 여행간다’고 하네... 어색하게 ABT손님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9;30분에 출항하니, 180명 정원의 Airbus 비행기에 우리 ABT 30여명 포함한, 40여명의 적은 숫자의 승객으로 널찍한 기내가 쾌적하다.
후미의 3인석을 독차지하니 흐뭇하다. 2001/3월의 네팔 아일랜드 봉(6192M) 21박22일 등반 때에도 <KAL의 인천공항-카트만두>가 처녀비행으로 가수 진미령등 유명 연예인이 여러 명 동승 했었는데, 이 번에도 전직 가수 겸 탈렌트인 구본승이 7일간 동행 했었다.
한국보다 시차가 한 시간 늦어 약 4;15분 소요된 현지 시각 12;45분에 UB의 칭기즈칸 공항에 사뿐히 도착하니, “우와! 광활하다.” 요즘 문제가 되는 <에볼라> 때문에 입국 수속이 1시간이나 지체되어 밖으로 나와보니, 별명이 <로키>인 현지인 가이드가 마중 나와 있다. 7일간 동생 대하듯이 잘 지냈다. 한국에서 2년간 이삿짐 센타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서툰 우리말에 친근감이 가는 40대의 이 친구는 외모가 한국인과 구별이 전혀 안 되고, 10여년의 가이드 생활로, 한국통이네...
7일간 함께 한 관광버스에 타니, 우리 대우 버스로 실내 커튼등 통째로 한국산을 그대로 쓰고, 거리의 몽골산 전기차를 제외한 버스는, 현대 아니면 대우가 대부분이다. 몽골은 GNP 3000$로 빈부차이가 크다고 한다.(국민성; 자존심이 대단하다고 하니, 우리와 생김새 도 같고 성격도 통한다? 중국에게 내몽고와 500만의 인구를 뺏기고, 러시아에게는 바이칼호를 포함한 커다란 땅덩어리와 인구 700만을 빼앗겨, 현 국토에서 인구 70만으로 시작했다고 하니 이런 역사와 관련해, 피해의식도 있고, 역사도 닮은 점이 있어, 국민성이 우리와 통하지 않겠는가???) 한국에 대해서는, 몽골의 고려침범으로 우리가 속국이 되었고, 공민왕의 노국공주와도 인연이 있고 해서, <솔롱고스(무지개의 나라;원나라 때,끌려온 고려인의 색동옷을 입은 모양이 무지개와 비슷해서 붙인 이름)>라 부르고, 한류로 인해 우호적이라고 함, 중국, 러시아에 대해서는 그리 좋은 감정이 아니니, 중국어로 말하면 손해본다고 함. 책에는 국토가 150만 여 제곱 KM(가로 2400 여km X 세로1200 여km, 최고봉 Huiten Peak 4374m;西쪽 끝에 있는 Bayan-Ulgi province에 위치함)로 세계17위이고, 인구 300만으로 UB;시골=180만;120만 이란다. 시골은, 이 넓은 땅에 120만이 흩어져 사는 데다가 고비(Gobi)사막은 더군다나 더욱 희소해서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적어, 이웃 집이 50-300Km 떨어져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작은차는 일제가 50%(도요다가 주종), 한국산이 30%(대부분이 현대)란다. 시내로 30분 정도 달리면서 보는 차창 밖은 네팔의 카트만두를 확대 한 느낌으로, 건조한 기후에 아파트 개발 붐으로 온 도시가 건설 현장이 되어 뿌연 흙먼지를 뒤집어 쓴 듯 하다. 1991년에 공산주의 러시아에서 해방된 민주주의 신생국답게,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서툰 느낌이다.
처음 찾은 곳이 UB의 최고 중심부에 있는 대형식당으로,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그런대로 괜찮았다. 食 후에는 우리의 서울시청 광장에 해당되는 수흐바타르광장에 가서 TV에 자주나오는 칭키스칸(1162-1227) 좌상과 좌우의 2 황제 우구테이칸(1187-1241), 쿠빌라이칸(1215-1294)을 알현했다. 광장 남쪽에는 몽골을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킨 영웅 수흐바타르의 기마상이 있다. 주마간산격으로 구경을 하고는 버스를 타고 남쪽의 자이상 기념탑(Zaisan Memorial)으로 갔다. 1971년에 러시아인들이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군과 싸운 “무명용사와 영웅”들을 추모키 위해 건설했는데 UB와 주변 구릉지가 제일 잘 보이는 곳이다. 언덕 밑의 큰 탱크(몽골군의 것)는 2차대전 당시 나치군(?)과의 전투에서 사용된 것이라고 한다. 기념탑 서쪽에는 16M 높이의 석가모니 입상이 있다.
기념탑 관광을 마치고는, 자이상 기념탑 근처에 있는 선배의사의 흔적을 찾았다. 경남 함안 출신의 항일 애국지사로 세브란스의전 2회인 이태준 선생(1883-1921)께서 UB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단다. 국내에서 의사생활을 하시다가 중국 남경을 거쳐 UB에서 개업 중 몽골 마지막 왕인 보그드칸의 어의로 훈장까지 받았으나 1921년 38세의 아까운 나이에 사망하셨다. 숙연한 마음으로 참배를 하였다.
몽골식으로 석식을 하고는 시내의 4성급인 Bayangol(rich river) Hotel에 투숙했다. 독방을 쓰니 편하지만 , 추가부담 경비를 지불한 아들이 더욱 고맙다. 야간에는 시간이 많았으나 가이드가, 소매치기, 강도(?)가 많다고 겁을 많이 주고(?), 아직 낯이 설어 바깥 출입을 자제하고 책을 읽어, UB 시내를 재확인 해 두었다.
10/21(화) 이른 호텔조식 후에 시내에 나가 보니 거리가 영 어수선하다. 배낭을 새로 꾸린 후 9시에 버스를 타고는 몽골국립박물관으로 갔다. 약 1시간여, 선사시대부터 현대 까지의 10개 방을 거치니 몽골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진다.
오늘의 목표는 UB에서 북동쪽으로 55Km 떨어진 테렐지(Terelj)국립공원이다. 오는 도중에 소수민족인 카자흐(=코사크;카즈흐스탄=카자흐족이 사는 이슬람국)족이 사는 마을에 들러 카자흐인의 음식, 의복, 민속악기를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어찌나 친절하게 접대하는지, 할머니가 직접 만들었다는 카자흐식의 자수를 놓은 조그만 지갑을 3딸라(USD) 주고 샀다. 초등학교 다닐 때 본 감동 받은 영화로, 코사크족의 이야기인 <대장 부리바>의 父子間인 율 부린너, 토니 커티스의 줄거리를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족장인 아비가 아들을 서울인 모스크바에 유학을 보냈더니, 적국의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부족을 배신 해, 아비가 이 장남을 죽인다> 혹시 그 영화의 배경이 이 동네인가???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약 1시간을 달리니 우리의 목적지인 테렐지 국립공원내의 Guru Camp(GC)에 도착했다.
주위는, UB시와 달리 둘레가 수백만 , 수천만 평이나 되게 눈이 시원한 산과 벌판이 펼쳐 져 있다. 네팔이 장년기 지형이고, 몽골은 네팔보다 확대된 노년기 지형이라면 이해가 쉽겠다. 민속의상으로 곱게 단장한 아가씨들이 성대한 환영식을 해 주는데 이 사람들이 우리 30여명의 식사와 밤에는 Ger의 난방 火木을 책임 진 GC 직원들이다. GC에서 푸짐한 중식을 한 후에는 Ger의 배정을 받았는데 나의 Ger mate는 13세 위인 이오용 어르신과 12세 위인 이용길 어르신 인데 오늘, 내일, 글피 총 3일을 같은 방에 잔, 대단한 인연과 인품을 가지신 분들이다. 단체 행동이라 시간 여유가 많아 3총사가 함께 뒷산에 올라가 보니, 산너머의 또 다른 경치가 우리를 즐겁게 한다. 무지개를 쫒는 아이들 마냥 즐겁게 놀았다. 나의 개똥철학은 ‘처음 만나도 평생 친구가 될 수 있고, 평생을 봐도 친한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두 어르신은 前者이다.
Ger에 짐을 챙겨 놓은 후에는 버스를 10여분 달리니 커다란 거북바위가 나타난다. 높이 30m정도로 정말 거북같다. 관광지라 그런지 쇠붙이로 만든 말인형, 유화로 그런 산수화등을 파는 행상도 있다. GC로 돌아오는 길에는 풀밭에서 30여명의 일행이 어우러져, 노소 대항 축구시합도 했다. 근처에는 칭기스칸 CC라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골프장도 있다. 캠프食으로 푸짐한 석식을 하고 우리Ger로 돌아오니, 2 어르신이 몽골산 보드카와 한국산 소주와 멸치, 고추장을 내어 놓았다. 내가 준비한 몽골산 캔맥주와 함께 푸짐한 주안상이 차려졌다.
2 어르신은 화명초등교의 동기로, 나름대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왔기에 노후를 풍족하게 즐기시는 분들이고, 자기 분야에 일가견이 있기에 참으로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연세가 드시니, 식사량도 줄지요?” “낡은 푸대에 곡식이 더 많이 들어 간답니다.” 술이 취한 채 밖으로 소변보러 나오니 하늘에는 별이 쏟아진다. 용케 북두칠성과 북극성은 찾아지네.... 겔의 밤은 깊어만 가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10/22(수) 간밤에 많이 취했건만 6시에 깨어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이오용 어르신과 둘이서 조식전의 1시간 산보로 동쪽의 벌판으로 갔다.밟는 땅이 길이 되는, 이 무지막지한 벌판을 보고 어르신은 무척이나 부러워 하셨다. 금곡동에서 평생 농사와 나무 가꾸기를 하셨다는데, 나이가 들어도 땅에 대한 애착은 식지를 않는다고 하신다.고향인 금곡동에서 농사를 지으시면서 다랭이논에 질렸기에 중국, 필리핀에 가더라도 다랭이논 근처는 사절이시란다...
1시간의 산보 후에는 조식을 하고, 버스를 타고 칭기스칸 기념동상으로 갔다. 어마무시하게 큰 은색의 칭기스칸 像과 세계 최대일 것 같은 신발과 칼을 구경했다. 기념품점에서 사진첩 <Mongolia; land of blue sky>를 구입했다. 우리 버스 옆으로 오니, 길들여진 독수리 4마리를 소유한 총각을 보았다. 관광객에게 3-5USD를 받고는,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 찍을 때는, 팔 위에서 날개를 펼치는 탈렌트 독수리이다. 동물학대가 아닐까???
Guru Camp로 돌아오는 길에는, 비포장 도로를 한참 달려, 언덕 위에 있는 우리의 성황당 비슷한 돌무덤을 찾았다. 사람 귀한 이 시골에서,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지 순하디순한 , 커다란 개들이 우리 주위를 맴돈다. <로키>가 시키는 대로 시계방향으로 1바퀴 돌 때 마다 돌 1개를 케른(돌탑?)의 꼭대기로 던지면서 3바퀴를 돌았다. 캠프로 돌아와서는 푸짐한 중식 후에 2시간의 승마를 했다.
2006년 네팔의 안나푸르나 라운딩때 조랑말을 1시간(USD 5+tip 1), 5시간(USD 25+tip) 타고는 흐뭇했는데, 오늘은 1-2시간 밖에 시간이 없단다. 30여명 중, 안 타는 그룹, 골프조, 1시간 조, 2시간 조 였는데 나는 2시간을 탔는 데 무척 즐거웠다. 늦가을이라 14일 전에 첫 눈이 올 정도로 쌀쌀한 게 흠 이었지만 6-8월의 푸른 초원을 전속력으로 달린다고 상상하며, 즐거운 2시간을 보냈다. 시간 당 10불이고, 팁은 공시가격이 1불인데, 마부 중 1명은 비수기인 11-3월에는 제주도로 와서 묘기를 보이는 프로 카우보이 이기 때문에 한국어가 능통하다. 저녁은 Mongolian BBQ인 “허르헉”(khorkhog)등 푸짐한 만찬을 즐겼다.
우리의 겔로 돌아 와서는 술과 얘기로 따뜻한 밤을 보내었다.
10/23(목) 일찍 기상했기에 조식전에 이오용 어르신과 함께 1시간의 산보를 즐겼다.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조금 우거진 이 뒷산을 다시 올 기회가 있을라나??? 책에 씌어있는 마못쥐(?), 캠프에서 설취한 바위 위의 원두막(?) 등을 구경하고는 빵, 소시지, 차 등으로 구성된 마지막 조식을 하고 버스로 UB로 귀경했다. 몽골국립대 옆의 근사한 한식집인데 깔끔한 중식을 했다. 이제 주차간산으로 나마 시내를 여러 번 다녀, 시내가 대충 머릿속에 그려진다. 식사 후에는 Bogd Khaan Palace로 관광을 갔다. 선진국의 깔끔하고, 삼빡하고, 화사한 display의 박물관 대신, 골동품점에 들른 듯한 어두컴컴한, 퀴퀴한 우리의 어린 시절 느낌(?) 비슷한, 비운의 몽골 역사를 느꼈다. 기념품점에 들러, 몽골어, 영어, 러시아어 3개국어로 된 <The guide book of BOGD KHAAN PALACE MUSEUM>책을 구입했다.
이후 UB의 남서쪽에 위치한 <Gobi Cashmere>공장의 아울렛 매장으로 우리를 데려가네... 2001/4월에 처음 네팔에 갔을 때 카트만두 시내에서, 구덕산우회의 형님들 따라서 멋도 모르고 구입한, 캐시미어 마후라를 아내에게 사다 주고는, 나의 단독 쇼핑 후로는 난생 처음, 과분한 칭찬을 아내에게 들은 기분 좋은 추억이 생각나서, 혼자 놀러와서 미안한 마음을 상쇄하는 기분에, 1개 구입했다. 일행들은 주로, 노소를 가리지 않고 여자들이 혹하는 것 같다. 지루한 쇼핑 시간이 끝나니, 아직 석식시간이 되질 않아 UB에서 소문 난 <State Department Store>로 데려간다. 내 생각에는 최고의 현역 장인들이 만든 듯한 민속공예품, 미술품, 대형 서점, 지도, 식당등이 5층에 있고, 1-4층은 롯데, 현대, 신세계 백화점과 비슷한, 내가 싫어하는 쇼핑점들이 줄지어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5층에서만 머물렀는데, 훌륭한 민예품, 그림, 책들을 구경하던 중 <칭기스칸의 몽골> 이란 제목의 한국어, 몽골어로 된 멋진 제목의 책을 흐뭇한 마음으로 구입했다. 28490 Tugrik(약 20달라)를 USD (혹은 카드?)로 구입 한 것 같은데, 멋진 저녁을 먹으면서도, 빨리 읽어 봤으면 하는 궁금증이 날 정도로 기대를 했다. 우리 삼총사가 같이 모여 흐뭇하고, 즐거운 식사 후에는 첫날 묵은 그 호텔의 311호 그 독방으로 갔다.
TV의 60개쯤 되는 채널 중에는 몽골어 외에 CNN, 중국어, 일어, 한국어등 다양한 방송이 있었으나, 몽골에 대한 호기심으로 <칭기스칸의 몽골>책을 펼쳤다. 몇 장을 읽어보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몽골에서 가장 좋은 책방(?)에서 구입했고, 제목도 멋진 한글-몽골어로 구성 된 번역본 책을 이 따위로 번역하다니... 100:1의 경쟁을 뚫고 들어간다는 몽골국립대학교에는 한국어과도 있다고 하는데... 도저히 집중해서 읽을 기분이 나질 않아 , 덮어버리고 일찍 자버렸다.
10/24(금) 새벽 5시에 기상해서는 날 밝기만 기다렸다. 6;30분 지나니, 길이 보여 산책을 나갈 만 하다. 하도 가이드 <로키>가 겁(?)을 주어 약간 망설여지지만 혼자서 1시간여를 돌아다니니 No problem... 7시 조금 지나니, 창원에 사는 외사촌 동생으로부터 국제 전화가 왔다. 외숙모님이 아미동 부산대학병원에 입원하셨단다. 귀국 즉시 병문안을 가야겠다. 부모님 세대 중 유일한 생존자인데...걸어서 곳곳을 돌아다닌 후에 호텔 조식시간에 맞춰 돌아오니 UB 시민이 된 느낌이다... 오늘은 호스타이 국립공원(KNP;Khustai National Park;Khustain Nuruu;자작나무 산맥이란 의미임)을 관광하는 날이다.
KNP는 UB에서 남서쪽으로 100Km 떨어져있고, 면적이 50,620헥타르이며, 몽골야생마인 타히(Takhi, Tahi), maral(아시아산 붉은 사슴), 가젤, 사슴, 멧돼지, 마눌들고양이, 늑대, 시라소니등이 서식한다고 책에 씌어 있다. 눈이 시원한, 끝없이 펼쳐진 광야를 끝없이 달리니, 드디어 비포장 도로가 나오고, 말떼, 소떼, 양떼, 야크떼 등 수많은 가축을 지나니, 우리가 하루 묵을 Khustai Resort가 나타난다. 중식을 하러 식당을 갔더니, 우리 30여명 외에 여러 팀의 각국 대표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중식 후에는 30여명을 6팀으로 나누어서는 Toyota Land Cruiser 혹은 러시아제 소형차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 Research Center로 갔다. 가는 도중에 10여 마리의 야생 사슴이, 저 멀리 산의 8부 능선에서 풀 먹는 것이 관찰 되었는데, 망원경으로 보니 녹각이 확인되어 암수 구별도 된다. 총기가 초롱초롱한 이용길 어르신이, 짐승에 관한 음담패설로 일행 6명의 박장대소를 자아내게 한다.
과연 엉성한 Research Center 건물을 지나 조금 더 달리니 ,야생마 Takhi 수십마리가 여러 그룹으로 한가히 노닐고 있다. 300m 안으로는 근접을 못하게 해서 자세히는 볼 수 없었으나, 죄 많은 인간들이 멸종시킨 전세계에 단 하나 남은 야생마종을, 타국의 동물원에서 재반입해서 번식 시켰다니... 여기에는 250두가 있고 매년 5마리의 새끼가 늑대에게 먹힌다고 한다. 미국의 Yellowstone 국립공원을 연상케 한다.
캠프로 돌아오니 석식때 까지 할 일이 없네... 승마를 즐기려고 하니 경쟁이 치열해서, 젊은이들에게 양보를 하고, 이오용 어르신을 모시고 뒷산을 올랐다. 40분간 등산을 하니, 돌탑을 쌓아 정상 표시를 해 놓았고, 이 후 산 혹은 언덕 꼭대기를 유심히 보니 약속이나 한 듯이 꼭꼭 표시를 해 놓았네... 너른 광야에 드문드문 희소하게 펼쳐진 밀밭, 유채밭을 보신 어르신은 연신 부러워하신다. 평생 너른 토지에 대한 집착을 품고 사셨다고 하시니... “촌부자는 일부자”라고 얘기한 간호사(본인이 여고생때 까지, 칠갑산 아낙네처럼 콩 밭을 맸기에, 착한 심성에 얼마나 일에 데었는지 ‘나는 절대 농부에게 시집가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사춘기를 보냈다.) 가 생각난다. 같은 토지를 다르게 보는 것을 보니, 나처럼 어렸을 때 여러 번 개에게 물려 본 사람은, 평생 개만 보면 긴장 하는 것처럼, 성장과정에서 구김살 없이 크는 게 개인의 행복에 가장 도움이 되지 않겠나... 잠시 정신과의사가 되어본다...느린걸음으로 하산하니, 석식 시간이다.
오늘 아침 버스타고 여기로 오는 도중에, 마트에 들러 사온 최고급의 보드카가 1리터라, 3총사가 오늘밤에 비우기에는 양이 많다며, 술을 식당에 들고 가서는, 이제 눈에 익은 일행 중에 희망자에 한 해 1잔씩 돌렸다. 덕분에 이 후로는 눈길이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람이 많아졌네... 겔에 돌아 와서는 남은 보드카, 어르신들이 가져오신 국산 소주, 고추장, 멸치를 앞에 두고 삼총사의 얘기는 끝이 없다. 오줌 누러 나와서 보는 별들이 오늘은 유난히 많고 밝네..
10/25(토) 6시에 기상하니 할 일이 없다. 두 분 어르신은 술이 과했는지 곤히 주무신다. 30분 쯤 지나니 Head lantern이 없어도 걸을 수 있을 정도다. 오늘은 앞산 산보를 해야겠다. 어렸을 때 산위의 저 무지개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늘 궁금했었는데 환갑이 다 되어도 이놈의 호기심은 멈출 줄을 모른다... 속보로 앞산을 오르는데 보기보다 훨씬 멀다. 언젠가 미국 요세미테에서 본 여러 폭포가, 내 눈으로 본 추측 높이와 실제 높이가 2-3배 차이가 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 ‘환경이 바뀌면 실제로 보고도, 나 자신을 못 믿겠네...’
몇 개의 언덕을 넘으니, 어제 야생마를 보러간 동쪽에서 찬란한 해가 떠 오른다. 내가 원시인이라면 저 따뜻한 태양에 대한 외경심이 어찌 솟아 오르지 않겠는가??? 옷을 여러 겹 입었지만 지금까지는 떨었는데 , 일출 후에는 순식간에 훨씬 따뜻해 졌다.
가볍게 능선길을 오르니 저 멀리 蛇行川주위로 수백마리의 소들이 모여들고 있다. 어느 영화에서 본 미국 몬테나주의 모습이 연상된다. 끝없이 펼쳐진 산 주위를 둘러보니, 東西는 끝을 모르게 가물거리면서 산들이 희미하고, 고비사막이 있는 南쪽은 어제 본 야생마의 언덕들이 커텐을 쳐 버렸다. 가 보고 싶은 흡스글 호수가 있는 北쪽은 만년설이 뒤덮인 거대한 연봉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너무 많네... 칭기스칸의 10만 기마대군이 천지를 진동시키며 달리는 말굽소리와 먼지가 솟아 오르는 환청, 환시를 느낀다. 고도계를 보니, 어제 저녁에 오른 북산, 오늘의 이 동남산은 해발 1600-1700m의 언덕(?)이다.흐뭇한 기분으로 2시간여의 산보를 마치고, 조식시간에 맞춰 숙소로 발길을 돌리는데, 드문드문 소, 말, 야크인지 모르는 짐승의 해골이 널부러져 있고, 마못쥐인가 모를 짐승의 굴(직경 20cm)이 보인다.
겔에 들르니 두 어르신은 조식을 마쳤기에, 혼자 식당 지하의 화장실을 들르니 코카시안이 웃통을 벗고 씻고 있다.22일 칭기스칸 기념동상에서 얘기 나눈 러시안 모녀가 생각나서, 러시안인가 추측하고 “니 어데서 왔노?”하니 이태리 피렌체에서 온 포도주 상인이란다...
대충 씻고 조식을 하며, 얘기를 나눠보니 이름이 Jacopo Pandolfini인데 나의 두 아들과 비슷한 83년생으로, 싱가포르에 출장 갔다가 여기에 놀러 와서는, 좀 있다가 부산으로 포도주 팔러 온다네.. “부산 오면 내가 부산 관광 시켜주고, 이태리 가면 내가 작년에 피렌체의 최고 번화가에서 7일을 보냈기에 피렌체 시내도 안내해 줄 수 있다”니 ,이 미남이 파안대소 한다. 같이 자기 겔 앞에서 기념사진을 1장 찍고는, 나의 겔로 돌아 와서는 배낭을 싸고 시간에 맞춰 우리 버스로 갔다. 어! 저 앞에 코카시안 남녀가 있는데 아는 얼굴이다. “야고보야! 니 색시가? 아이요. 옆에 서 있는 저 아이씨 부인인데요!!! 나는 총각이요!!!” 알고 보니 호주 멜번에서 온 늙은 부부인데 내 눈으로는 서양인은 늙은지, 젊은지 구분 불능이다. 내 아들이 멜번의 모나시대학 출신 이라니, 이 할매(?)가 자기 후배라며 자지러진다!!! 갑자기 야고보가 백포도주를 1병 갖다 준다 . 금곡의 두 할배가 억수로 좋아한다.
코카시안들이 탄 집차가 먼저 출발하고, 우리의 버스가 뒤 따라서 UB로 향했다. 30분 정도 달린 도중에, 원주민촌에 가서 야크, 말이 있는, 몽골인들이 사는 진짜 겔로 들어가 보았다. 오늘 따라 체감 온도가 -10도C 이하로 강풍이 불고, 매우 춥다. 14일 전에 첫 눈이 내렸다는데 , 매우 추워 원주민이 내어 주는 소주 비슷한 술을 5잔 마셨더니, 속이 좀 훈훈해 졌다. 두 어르신은 각각 2잔 씩, 合이 9잔이고, 몽골의 예절이 3잔이라 우리는 정량을 마셨다고, 총기있는 이용길 어르신이 재미있게 얘길하신다. 장시간 떨면서 Nomadic life를 배웠는데, 네팔 원산인 Yak가 왜 덩치가 커졌는지 궁금했는데 이놈들이 거의 교잡종이란다. 아하!!!
원주민촌을 빠져나와 한 참을 달리니, 드디어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오늘이 주말이라 교통체증이 심해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UB시내의 <The Bull>이란 유명한 식당에서 석식을 하는데 ,먼저 Nomadic Show라고 식당 한 켠에서 전통복장을 한 청춘남녀들이 나와 마두금으로 독주, 4중주, 독창, 아크로바틱등을 보여 주었다.
드디어 식사를 하는데 소, 말, 양, 닭등 엄청난 양의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두 어르신 몫 까지 거들다 보니, 국수, 뽂음밥은 도저히 깨끗이 비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오늘이 마지막 몽골의 밤인데 호텔의 311호 독방에 내짐을 남겨 두고는, 7층의 어르신들 방에 가서 야고보가 준 백포도주, 우리 소주, 멸치로 마지막 밤을 멋지게 보냈다.
10/26(일) 5시에 일어나 귀국 하려고 짐을 꾸리는데 <징기스칸의 몽골>이 보인다. 한국대사님에게 편지를 올렸다.“ 제발 이 책을 몽땅 회수해서 없애고, 다시 옳게 번역해서 시장에 내어 놓았으면, 앞으로 몽골 관광오시는 한국인들에게 도움이 되겠습니다...”하고. 짐 꾸려놓고 나니 날이 밝아서, 마지막으로 혼자하는 <도보 City Tour>를 했다. 꼭 보고 싶었던 진짜 공룡대가리는 <자연사박물관>이 문을 닫았기에 볼 수 없어 아쉬웠고, <몽골국립 현대미술관>은 책에 9시 개관이라고 씌어 있는데, 방문 해 보니, 직원이 10시라 해서 시간이 없으므로 3만원 짜리 도감 구입으로 대신했다. 호텔로 돌아와 조식을 하고는, 약속 된 9;30분에 로비로 내려가니, 마침 부산일보 기자 양반이 있다. “이 편지, 한 번 읽어 보소. 대사님께 보내도 되겠소?” 옆에 계신 분이 일침을 놓는다. 시키시는 대로 “추신 ;꼭 결과를 국제전화나, 부산의 저의 집으로 편지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대사관에서는 할 일이 없는, 매우 한가한 놈이라고 생각하겠네... 로키에게 “꼭 좀, 한국대사관에 보내라.”고 부탁을 했다. 징기스칸 공항안에 들어오니 45불 짜리 영문판 <HISTORY OF MONGOLIA; 1999년 영국 캠브리지 대학 출판>이 눈에 띤다. 이 책을 읽어 보아야지...
18;05 김해공항에 定時도착 해서는, “11월 중에 제가 금곡동으로 꼭 찾아뵙겠다.”고 약속하고, 우리 3총사는 굳은 악수를 나눈 채 아쉬운 이별을 했다. <끝 > 2014/10/30일 김준연 씀.
첫댓글 나날이 밖으로 뻗어가는 mdtr행요, 축하합니다.
아들들 장가가기 전에 효도 많이 받아 두이소.
아들이 직장 근무 중에는 유효한 마패이고, 예의지국이라 장가가도 부모는 마패를 뺐지 않는다고 하네.... 몽골선배 철용아! 니하고 비교 해볼래??? 우째 다르노???
BC 221년의 진시황이, 이전에 있던 수많은 장성을 단일화 해서 완성했음.
근데 해임요 눈이 즐거운 장면은 좀 찍어 온거 없습니까?
그라고 책내용이 어느 정도로 엉망인지 알려주면 안됩니까?
막총아. 사진은 셔블회장님이 올리신 리플로 대신하고 거기에 , 나의 변명을 늘어 놓았다. 고약한 책은 가지고 있으니 관심있으면 합동산행때 가져갈 수도 있으나, 거의 유치원 얼라가 번역한 정도이다...
역시 대단한 라디오가 틀림없다. KBS classic-FM "라디오"에서 밤 10시부터(이 불쌍한 부동산업자, 그 시간이 퇴근시간이라 퇴근시 차안에서 주로 많이 듣는 프로그램이다)하는 "당신의 밤과 음악"프로그램중에 '예술가의 여행법'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그곳에는 과거 유명한 예술가들의 여행기(얼마전까지 안데르센편을 하다가 요즈음은 안톤체홉이네)를 음악과 함께 소개를 하는데 그 정제된 표현들보다 너 고장난 라죠 이야기가 더 입에 달라 붙는다. 싸이트를 계속 풍성하게 달구어다오. 너거 gapore출신 아들집은 내 좋은데를 찾아보께. ^^*
그리고 하나 더, 국민학교 때 본 그 골초 율부리너의 "대장 부리바" 의 내용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카이 정말 너는 대다나다. 거의 빌클린튼 수준 이상이다. 나는 어제 본 영화 줄거리도 기억이 잘 안나는데......
글 재미있네요! 진짜 가봐야 될곳 많네!
멋찐 효도관광이었네요..다음에 AB 타고 몽골 함 가고싶네요..ㅎㅎ
뒤 늦게야 맛진 여행기 발견!!!
잠 못 이루는 밤에 덕분에 몽골 간접 여행 잘 했네. 슬관절 완쾌되거든 속편 여행기를 올릴 계획을 무릎 수리 중에 잘 기획해 놓길 바라오.
나지오여행기 애독자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