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8개월 전 동유럽 여행을 하려고 관광회사를 통해서 안식구와 같이 두 사람의 여행비까지 결제를 하고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2월 어느 날, 갑작스런 코로나19가 대유행을 하여 온 세계를 덮치면서 혹시나 하고 기다리던 중에 관광회사로부터 여행이 취소되었다는 연락과 함께 이미 지불했던 여행비를 고스란히 되돌려 주는 바람에 들떠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허탈하기 까지 하였다.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나고 코로나도 서서히 잦아들면서 마스크를 벗고 여행의 규제가 풀리면서 긴 세월 기다렸던 마음이 풀어지고 때맞춰 여행 계획을 잡은 것이 괌이었다.
아들 가족이 호주로 이주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우선 며느리와 손주가 지난 3월에 호주로 떠난 후 약 7개월 만에 며느리가 휴가를 내고 손주는 방학을 이용하여 잠시 귀국하게 되어 아들 가족과 우리 내외 모두 5식구가 괌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무덥던 여름도 가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은 제각기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하는 듯한 10월 2일 4시50경에 곤히 자는 손주를 깨워 서둘러 준비를 하고 5시40분경에 집을 나서서 인천공항으로 가니 6시40분경이다. 먼저 짐을 부치고 공항 내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면세점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안내 방송에 따라 비행기에 탑승을 하고 조금 기다려 9시10분에 이륙을 하여 4시간30분의 그렇게 길지 않은 비행을 하고 현지 시간 2시40분경에 괌 공항에 도착하니 공항은 작고 소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국 수속을 밟고 밖으로 나오니 한창 여름 날씨에 온 몸에 후끈하는 열기를 느끼며 공항 근처 렌터카 회사로 가서 승용차를 빌려서 타고 예약해 놓은 호텔에 도착하니 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멋진 전경의 괌에서도 제법 유명한 DUSIT 비치 리조트로 우리 내외는 11층에, 아들 가족은 12층에 방을 배정 받아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손주가 좋아하는 물놀이 장으로 내려가니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갖가지 놀이 시설을 갖춘 풀장이 여러 군데 있어서 아이들은 신이 나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미끄럼틀도 타며 물놀이를 즐기고 손주와 아들 내외도 아이와 같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 우리 내외는 구경을 하다가 바닷가 백사장을 거닐며 옛 추억을 되뇌어 보는 여유를 즐기다가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지는 시간에 방으로 돌아와서 보니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은 후에 샤워를 하고 LONGHORN이라는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새우튀김으로 아침 점심을 부실하게 먹어서 출출하던 배를 넉넉히 채우며 먹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게 넓은 K마트에서 몇 가지 필요한 물건을 사서 숙소로 돌아오니 약간 피곤함이 느껴졌다.
객실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정경이 일품이고 멀리 바닷가에 서있는 호텔과 그 뒤로 보이는 절벽이 멋지게 태평양 바다와 조화를 이루고 호텔 주변에는 온통 조명으로 화려하게 어둠을 밝혀 주는 것이 관광지라는 느낌을 갖게 하였다. 한낮의 더위는 어디로 가고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를 거니는 것도 낯선 이국땡에서 맛보는 여행의 재미인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드는데 더블 침대가 두 개라 안식구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맘껏 딩굴며 지내려고 했더니 손주 녀석이 할아버지와 자겠다고 하여 같이 자면서 몸부림을 치며 다리를 내 몸에 척 걸치는데 어릴 때는 전혀 부담이 없더니 이제는 몸집도 커지고 무게가 제법 나가니까 무거워서 그냥 버티기가 힘들 정도라 몇 번을 잠이 깨어 다리를 내리고 이불을 덮어주며 오랜만에 사랑하는 손주와 즐거운 마음으로 단잠을 자고 다음 날을 맞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저 멀리 하늘에 검은 구름이 끼어 있더니 금방 바로 앞 바다에서 시작된 선명한 무지개가 둥그렇게 하늘을 두르고 있는 것을 보고 비가 오겠구나 했는데 예상대로 금방 비가 쏟아지며 하루의 관광을 걱정하고 있는데 금방 비가 그치고 찬란한 해가 나는 것이 태평양 바다 가운데 떠있는 섬의 일기를 짐작할 것 같았다.
호텔 내 식당에서 뷔페로 아침을 먹고 근처 명소로 알려진 사랑의 절벽으로 가는 길에 한가로운 숲길에 주변은 나무들이 푸르고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고 내 마음도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먕대로 가는 길에 일본어와 영어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주석으로 된 현판을 보니 한 때는 일본인들이 괌을 거의 차지하던 시절, 경치가 좋고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결혼식을 한 사람들의 명단이었다. 지금은 일본의 경기가 좋지 않은 바람에 거의 떠나고 그 자리를 한국인들이 메우고 있는 것 같았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서 전당대로 올라가니 바로 아래는 끝없이 펼쳐진 태평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몇 백 미터는 될 것 같은 아찔한 절벽이요 그 위에 솟아 있는 전망대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웨딩홀과 야외 연회장인 듯한 건물이 아찔하기도 하지만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정말 잘 어울린다는 각이 들었다. 잠시 머물다가 나와서 촬영 포인트에서 사진을 한 장 찍으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머리를 움키며 차로 뛰어 가서 비를 피하는 번거로움을 경험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스페인 광장에 들렸더니 옛 성당이 오랜 역사를 간직한 듯 멋진 모습과 시간을 알려주는 성당의 종소리가 어린 시절 멀리 교회당에서 새벽을 깨우며 들리던 그 소리에 까마득한 추억이 되 살아나는 듯하였다. 오래된 나무와 넓은 광장과 낡은 대포가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300년간이나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K마트는 작은 섬에 이렇게 큰 마트가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엄청 넓고 크며 수많은 물건이 전시된 모습을 보니 미국령이라는 그런가? 아니면 관광객이 많다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고 아울렛도 많은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세련되거나 마음에 쏙 드는 것을 발견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태국식당에서 먹는 태국 고유의 음식도 국제화 되어서 그런지 전혀 거부감이 없고 향도 별로 세지를 않으며 입에 착착 맞는 것이 포식을 하며 여유롭게 저녁을 만끽하였다.
셋째 날 아침에도 호텔 앞바다에는 전날처럼 무지개가 솟았고 조금 후에는 여지없이 비가 내리는 것이 해양성 기후의 특성을 그대로 보고 느끼게 하였다. 셔틀버스를 타고 괌 항구 근처의 바다에서 아들 가족은 페러셀링을 하고 우리 노인들은 배만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태평양의 푸른 바다와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을 감상하는데 배에 긴 줄을 매달고 높이 하늘로 치솟는 대형 풍선에 매달려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아찔하기도 하고 시원하고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였지만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손주의 즐기는 모습에 박수를 치며 즐기다가 다시 카약과 스노쿨링을 하는 것을 그늘에 앉아서 구경만 하며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와서는 다시 풀장에서 저녁이 될 때까지 물놀이를 한 후에 택시를 타고 한국 식당으로 가서 소고기 양념갈비와 제육볶음에 된장찌개와 순두부를 시켰는데 고향이 안동이라는 주인아주머니의 친절과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이라며 풋고추를 주면서 달고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권하는 인심이 옛 이웃 간의 정을 느끼게 하였고 더 드시라며 권하는 노부인의 인정도 타향에서 느끼는 따뜻한 정으로 동족이라는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반찬은 김치를 비롯하여 나물무침 등 몇 가지가 나왔는데 한국에서 먹는 맛보다 더 한국적이고 입에 착 감기는 그런 맛이었지만 배가 불러서 더 먹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서태평양의 외로운 섬 괌, 원주민은 차모르인으로 약400년 전에 정착하였으며 수도는 하갓냐, 면적은 제주도 삼분의 일 정도로 인구는 약16만 명이라고 하는 작은 섬, 하지만 많은 전란을 겪으며 역사적 유적지가 많고 일찍이 약300년 간 스페인이 지배를 하다가 2차 대전 후 상권을 비롯하여 생활 터전을 거의 일본인들이 장악하였으나 2차 대전 패배로 다시 미국령이 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때는 일본인 세상이었다가 경제가 침체되면서 일본인들이 거의 다 떠나고 지금은 한국인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호텔은 말할 것도 없고 위터파크나 바닷가를 가도, 아니 식당에를 가도 온통 한국인이 다 차지를 하고 아울렛이나 K마트에도 마찬가지였다. 바라기는 한국인들이 없는 곳에서 조용하고 한가롭게 쉼을 기대했는데 한국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마치 제주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외국인이라고는 열에 한 두 명은 일본 사람이고, 두 명 정도는 중국 사람에 다른 외국인들도 한 두 명 보일까 말까하는 정도요, 외국인이라면 원주민들로 엉덩이가 잘 발달된 직원들이 거의 전부였다.
마지막 날은 구내 워터파크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12시에 체크아웃하고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각자 취향대로 주문하여 점심을 먹고 4시10분에 이륙하여 저녁 8시40분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집에 오니 11시경이다.
모처럼 손주를 비롯한 아들 가족들과 함께 건강하게 여행을 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어 감사하며 다음은 또 언제일까? 새로운 기대로 이 가을을 살찌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