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1894)/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
동학농민전쟁
1. 배경
동학 농민전쟁은 고종 31년 1894년 1월 10일 탐관오리로 온갖 폭정을 자행한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항거 빈농층, 농촌노동자, 영세수공업자 등을 주축으로 농민들이 보국안민(輔國安民, 나라를 돕고 백성을 구제한다), 제폭구민(除暴救民, 폭정을 제거하고 백성을 구한다), 광제창생(廣濟蒼生, 널리 백성을 구제한다) 기치 아래 봉기한 민란으로, 주요 배경은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으로 탐학(貪虐, 탐욕이 많고 포학)으로, "진황지(陳荒地, 황무지)를 개간하면 면세 해 주겠다 약속하고 추수기에 강제 징수", "만석보라는 저수지를 쌓게 하고서 물세 700석 징수", 부민(富民, 살림이 넉넉한 백성)에게 "불효(不孝), 불목(不穆, 친족간 화목하지 않음), 음행(淫行,음란하고 난잡한 행실), 잡기(雜技, 노름,계집질)등 명목 세금 2만냥 강제징수 ", " 조병갑의 부친(조규순 군수) 공적비 건립비를 백성에게 1천냥 부과" , 대동미 상납시 초기 징수 쌀과 상납 쌀의 등급 교체로 차액을 착복 등(全琫準 供草錄, 1895, 2.9, 初抄問目)이다.
전봉준 공초록 초초문목(供草, 조선의 죄인 신문조서 초록문서, 1895년 2월 9일)
2. 전개
반봉건(反封建), 반침략(反侵略), 척양척왜(斥洋斥倭, 서양과 일본 퇴치) 투쟁 동학 농민전쟁은 1월 10일 고부농민민란, 백산 1차 봉기, 집강소(執綱所) 통치기, 9월 12일 삼례봉기 등으로 대분류 할 수 있다.
3. 고부민란
전봉준, 김도삼, 정익서 등이 민란을 일으킨 이유로 ”중민(衆民, 많은 백성)이 억울 해 하고 한탄하는 고로 백성(창생)을 위하여 해를 제거코자 한 것이다(전봉준 공초록 중에서)“라고 진술에서 알 수 있듯, 고부 빈농 등을 중심으로 갑오년 1월 10일 봉기하여 탐관오리로 온갖 폭정을 행한고부 군수 조병갑을 몰아내고 진황지에서 징수한 세금을 되돌려 주고 쌓은 만석보를 부숴버린 민란이다.
고부민란: 1894년 1월 10일 고부군부 조병갑의 탐학에 항거
무창(고창,음 3월 20일)
고부 백산 1차봉기(부안) : 3월 25일, 동학접주 손화중 “보국안민(輔國安民), 민씨정권 타도
* 4월 7일 황토현전투, 장성전투, 4월 27일 전주성 입성
* 민씨정권 청에 파병 요구 – 5월 5일 청군 아산만 도착 5월 6일 일본군 인천상륙
5월 7일 전주화약(전봉준 전주성에서 나와 해산)
농민군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 설치(5월 10) – 농민군의 임시행정기관, 농민혁명정권 수립/정부 교정청 설치(6월 11일)
일본 민씨정권 붕괴 시키고 친일 개화파 정권 수립( 김홍집내각 6월 21일/음 6월 21일 경복궁 강제 점령)
청일전쟁 시작(음 7월 23일), 군국기무처 설치(7월 23일)
10월 농민군 2차 봉기(음 9월 18일 삼례봉기) : 반일(反日)기치, 반침략(척양척왜)투쟁
20일간 공주 우금치 전투 대패(음11월 8일) : 농민군 2만은 일본군, 관군에 패배
논산, 금구 전투에서 최후항전
전봉준 전북 순창(淳昌)에서 체포(1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