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의 시대/정동윤
한 시인이
온 정성으로 가슴 앓이 하며
어렵게 키운 시를 모아
비싼 혼수비용 장만하여
예쁘게 신부 화장해서
시집 만들어 시집보내려는데
서점조차 푸대접하니
시집보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으나
생명력은 왕성한 시집이진라
아는 사람 앞으로
인편이나 우편, 택배로
시집 보내게 되었는데
행여 운이 좋아
시집간 곳에서 좋은 사람 만나
합방이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윤동주가 백석을 그리워하며
도서관에서 시집을 빌려 필사하듯
신경림이 백석 시집을 구해
몇 날 며칠 잠 못 이루며
배게 머리를 눈물로 적시듯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좋은 시절도 있었건만
이제는 시집을 가도
아기는 낳지 않으려는 세태처럼
집집마다 시집이 있어도
단 한 번의 합방도 이루지 못한 채
처녀로 하얀 먼지 쓰고 기다리다
사지 멀쩡한 채 무더기로 묶여
고물상에 팔려가거나
쓰레기장으로 직행하니
두루마리 화장지보다 쓸모없는
눈물겨운 불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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