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시적인 방황과 ‘무상(無相)의 길’ --이병근 시집 『늙은 여인의 언덕』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햡회 심의위원) 이병근 시인은 시집 『늙은 여인의 언덕』을 통해서 방황하는 자신의 실체에서 이상적인 ‘무상의 길’을 탐색하고 있다. 이는 우리 시인들이 누구나 미지의 원대한 정신적인 세계를 희원(希願)해보기도 하지만, 이처럼 현실적인 시적 방황을 일탈(逸脫)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유(思惟)의 폭을 확대하여 어떤 진실된 욕망을 꿈꾸거나 기원의 의지로 심리적인 안주를 고뇌하고 있는 그의 시법(詩法)을 이해하게 한다. 그는 일찍이 월간 문학지 『문학저널』에 작품 「겨울비」 「첫눈」 「골목」이 신인상 당선으로 우리 시단에 나와서 시집 『사랑아 별이 되어』를 상재하고 활동하면서 많은 동인지에도 참여하여 울산매일신문에 칼럼리스트로 꾸준히 집필하는 활동적인 시인이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얼마나 더 방황해야 이 짓을 멈출 수 있을까 / 그러나 어쩔거나 / 그냥 있으면 정맥 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이 / 아우성치는 것을 / 솔직히 / 나의 방황은 자유롭고 싶은 욕망에서 / 아주 건방지게 시작 되었다 / 그러니까 처음에는 분방하였는데 / 스스로 안주의 울안으로 점점 기어들면서 / 시인의 삶이라고 한다 // 어느덧 유백으로 포장 된 길을 가면서 / 더 비굴하지 않으려 길 위에 흩어져 있는 / 빈약한 에스프리의 조각들을 모았다‘는 겸손한 언어로 이 시집 발간에 대한 간단한 소견을 피력하고 있어서 그가 평소에 일상적인 정서의 중심이 어디로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하늘에 조각달이 사라지고 희박했던 기억도 사라지고 주정에 찌든 잠꼬대는 나의 거처를 떠났으니 소싯적 가슴에 품고 있던 광야는 번번하지 못하고 순수의 바람은 흩어졌노라 쏟아져버린 방황의 핑계 어깨위로 치켜든 팔은 자유와 정의의 술병에 뚝 부러졌노라 젊음, 한 줌 모래이었던 것을 낡아져 가는 청춘은 팽팽히 땡기는 눈알처럼 쓰리고 시린 고통일 뿐 현주玄珠에 숨겨 놓은 위악한 혀뿌리는 잘라지고 불가능이 없던 시인의 에스프리는 우주로 사라졌노라 --「시인의 주정」 전문 그렇다. 이병근 시인은 ‘시인의 주정’을 통해서 자신의 보편적인 시인관(詩人觀)을 피력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직면한 정신적인 황폐화의 진행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방황하게 되는 이유가 적시되어 있다. 그는 ‘희박했던 기억이 사라’져서 ‘소싯적 가슴에 품고 있던 / 광야는 번번하지 못하고 / 순수의 바람은 흩어졌’거나 ‘어깨위로 치켜든 팔은 / 자유와 정의의 술병에 / 뚝 부러졌’다는 ‘방황의 핑계’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정처럼 되뇌이는 그의 심리적인 ‘거처’는 ‘쓰리고 시린 고통일 뿐’이며 제사상에 숨겨놓은 현주(玄酒)와 같이 마음 소에도 없는 위악(僞惡)의 헛소리는 잘라내고 ‘불가능이 없던 시인의 / 에스프리는 우주로 사라졌’다는 시인의 장엄한 기개가 이젠 하나의 주정으로 남았다는 그의 진솔한 심저(心底)를 이해하게 된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말했다. 시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감정을 찾는데 있지 않고 보통 감정을 이용하여 이것을 손질해서 시가 되게 하고 ‘전연 겪지 않은’ 감정인 다양한 느낌을 표현하는데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가 경험한 일이 없는 감정이 그에게 익숙한 감정과 함께 안성맞춤으로 쓸모가 있게 되리라는 명언으로 우리 시인들에게 사유의 일단을 조언해주는 것은 ‘시인의 주정’과 같은 에스프리로 시인의 고뇌를 더욱 깊게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이병근 시인은 ‘각박한 삶 일수록 / 낭만의 가치는 더 중요하지요 // 내가 지금 이 곳에 있는 이유 / 글쎄요..... // 詩의 색채가 있고 / 詩의 노래가 있고 / 봄비가 있는 // 그리고 / 아름다운 사람들로 / 풍요로운 저녁 // 내가 여기 있지 않을 / 이유가 없지요’라고 어느 시낭송회에서 ‘내가 여기 있을 이유’를 들려주고 있다. 이처럼 그는 각박한 삶과 낭만의 가치를 대칭점에서 사유하면서 시의 색채와 시의 노래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풍요로운 저녁이 동행하는 시와 시인의 화해가 그의 방황에 약간의 청량제로써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무상(無相)’이라는 대명제를 설정하고 이러한 심오(深奧)한 현상들을 탐구하고 있다. 다음 작품 「무상無相의 길」 전문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무상’이라는 말은 잘 아는 바와 같이 불교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일체법상의 현상은 고정된 실상이 없다는 것인데 이병근 시인의 심저에는 법정스님이 설하신 무념(無念), 무상(無相), 무주(無住)의 선(禪)의 경지를 대입(代入)하여 그의 진정한 시적인 진질을 토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흐드러진 꽃길을 걷다가도 이렇게 안심해도 되는가 싶어 눈치만 생기더이다 잡풀에 숨어 있는 너덜겅을 헤매다가 이렇게 무모해도 되는가 싶어 되돌아가려고도 했습니다 여기 도입부분에서 살펴보면 지금까지 영위해온 삶의 근간의 형태에서 ‘흐드러진 꽃길을 걷다가도 / 이렇게 안심해도 되는가 싶어 / 눈치만’보다가 문득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심경의 성찰에서 ‘이렇게 무모해도 되는가 싶어 / 되돌아가려고도 했’다는 변화의 생심(生心)이 바로 무상으로 향하는 대오(大悟)의 시법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잡한 인파에 휩쓸려 아무렇게 떠다니다가 끝없는 수령으로 곤두박질 쳐져도 건져 줄 누구 하나 없고요 매일매일 아내가 그리워 술집 바닥에 주저앉아 훌쩍거리다가 덩달아 누어 버린 나잇살은 두서없는 유서만 쓰고 있더이다 그는 다시 방황한다. ‘무잡한 인파에 휩쓸려 / 아무렇게 떠다니다가 / 끝없는 수령으로 곤두박질 쳐져도 / 건져 줄 누구 하나 없’다는 고독한 방황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다른 방향의 고뇌가 시작된다. 그래서 그는 ‘술집 바닥에 주저앉아 / 훌쩍거리다가 / 덩달아 누어 버린 나잇살은 / 두서없는 유서만 쓰’는 일이 반복되는 고행(苦行)의 연속이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체념하는 단정으로 그의 무상은 결론짓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그 곳을 모릅니다 어디인지도 모르지만 진작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병근 시인은 그의 방황을 이와 같이 종결하지만 그는 이를 자각하는 대도(大道)의 무상으로 전환하는 상황을 전개하고 있어서 그의 시혼은 불법에서 말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인간의 지위, 명예 등 탐욕을 버리고 소중한 생명의 방일‘放逸’함이 없이 정진정력하려는 정신적인 결의)이라는 무상관(無常觀)을 실현하려는 심성(心性)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 「천성산 화엄 늪」 중에서도 ‘천명 불승이 몰려와 / 엄동 화엄 늪에 싸여 / 보시普施한 줌씩 쥐고 / 부처 지혜를 얻어 / 십지를 구하리라’는 천성산 화엄벌에서 ‘고단한 염불’을 경청하면서 ‘무상의 길’의 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붉은 태양을 닮아 / 마냥 부풀어 / 덕스럽구나 // 푸짐한 / 너 그 속은 / 애초 / 내가 있을 거처이구나.’라는 작품 「붉은 꽈리」 전문에서 보는 봐와 같이 애초부터 그가 거처하면서 살아갈 심처(深處)엿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리한 그는 다음과 같이 그만의 「염원」을 다시 피력하고 있다. 고달픈 배낭을 뒤져 낡은 경전 꺼내 놓고 숨어있는 소리를 찾아 억지를 부려본들 시린 손가락으로는 첫 장 조차 열 수가 없구나 그는 어쩔 수 없는 속인(俗人)으로서의 일탈을 염원하는 시인의 본령과 시의 위의(威儀)를 위한 집념을 떨치지 못하는 시법이 공감을 유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작품「휴언의 숲에 세월은 돌아오고」 중에서 ‘길게 늘어지는 한 여름 낮잠에 / 하늘을 담는 호수가 있었는데 / 호수 속에 수초는 나의 넋이고 /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너겁들은 / 물 위에 떠 있지만 호수의 모든 것들과 / 언제까지 멈춰 있었네--중략--들국화 진자리에 짙은 무서리 / 하지만 내 심장은 따뜻하게 뛰고 있지 / 잘 익은 가을이 가면 겨울이려니 / 나는 아늑한 산촌에 푹푹 묻혀 / 아주 천천히 봄을 기다려야 한다’는 관망과 성찰이 복합적으로 현현되는 어조로 자신을 다독이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높아서 시원하네요 저녁노을이 참 고우네요 처서를 보내놓은 들판에 바람이 달라졌어요 상큼하게 속삭이던 당신 입김 같아요 잔디 가지런히 덮인 무덤가에 하얀 며느리밥풀 꽃 한 송이가 당신이 넘기던 하얀 쌀밥 한 숟가락 같네요 개울가 달맞이꽃은 밤을 기다리고 있는가 봐요 서러운 허기를 그리움으로 채우던 아린 가슴이 지금은 견딜만 하네요 특별한 처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아주 많이 흘러서 약이 되고 이제는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지요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나라에서는 우리 같은 슬픈 이별은 없겠지요? 다시는 이 언덕에 혼자 남아있기 싫어요 오늘은 참고 참았던 눈물이 나네요 평온한 들판에 노을이 짙어가고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평화로운 저 하늘 끝에 가 닿는 내 두 눈에서 잔잔한 눈물 같은 웃음이 빙긋이 흐르네요 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지네요 이제는 당신을 만나러 가야겠어요 --「늙은 여인의 언덕」 전문 이 작품은 이 시집의 중심 주제가 깔려있는 표제시가 되는 작품이다. 물론 이 시집 전체의 대표시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의미성을 부여하고 표제로 내세운 것 같다. 이병근 시인은 ‘당신’을 화자(話者)의 의인화로 진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적시하고 있는데 이는 그에게 내재된 정서의 재생에서 상당한 요체(要諦)가 형상화하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그는 ‘상큼하게 속삭이던 당신 입김’이나 ‘당신이 넘기던 하얀 쌀밥 한 숟가락’,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평화로운 / 저 하늘 끝’,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나라’ 그리고 ‘이제는 당신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화자 ‘당신’이 이 작품의 모티프(motif)로써 시적인 전개의 주체로 내적(內的-internal)인 정서를 포괄(包括)하는 특성을 읽게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시문장에서도 ‘입김 같아요’, ‘숟가락 같네요’, ‘있는가 봐요’, ‘견딜만 하네요’, ‘이렇게 되엇지요’, ‘남아있기 싫어요’, ‘눈물이 나네요’, 빙긋이 흐르네요‘, ’일어나기 싫어지네요‘ 그리고 ’만나러 가야겠어요‘라는 ’......요‘라는 어휘로 작품을 끝까지 존칭어를 사용함으로써 ’늙은 여인‘에 대한 존의(尊儀)를 표하는 시법도 그에게 내포된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좀더 살펴보면 ‘서러운 허기를 그리움으로 채우던 / 아린 가슴이 지금은 견딜만 하네요 / 특별한 처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 세월이 아주 많이 흘러서 약이 되고 / 이제는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지요’라는 어조로 ‘개울가 달맞이꽃’의 기다림을 ‘세월’과 ‘내 나이’와 비유하는 시법은 아무래도 기다림과 그리움이 동반하는 애절함이 안타깝게 적시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는 다시 이어서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나라에서는 / 우리 같은 슬픈 이별은 없겠지요? / 다시는 이 언덕에 혼자 남아있기 싫어요’라는 정감(情感)에서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평화로운 /저 하늘 끝’으로 ‘이제는 당신을 만나러 가야겠네요’라는 확고한 결론으로 그의 시적인 담론(談論)은 끝나고 있어서 공감의 영역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골짜기 마다 눈이 쌓이고 푹푹 가풀막능선을 숨차게 올라서던 그대가 있었지 봄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그대 눈동자로 잔잔한 호수를 찾아 오늘은 양지에 오롯이 앉아 숨겨두었던 기억을 펼쳐놓고 구월 햇살을 닮은 그대를 그리워한다 --「나에게는 아름답고 은밀한 호수가 있다」 중에서 이병근 시인은 이 작품에서는 백운재로 이어지는 능선을 돌아 그 길머리에 산정호수가 있다. 그는 ‘제 모습 은결에 드리우고 /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푸른 나무들은 가을과 겨울의 계절의 변화가 시작되면 ‘그대’라는 화자가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이 시적인 상황을 ‘아름답고 은밀한 호수가 있다’라고 고백적인 담론을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시적 전개는 ‘그대’라는 2인칭대명사의 상대방 화자이다. 이 화자 ‘그대’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리워’하는 결론은 그가 다수의 작품에서 ‘그대’나 ‘당신’이라고 대칭되는 작중(作中) 인물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그 장소가 ‘아름답고 은밀한 호수’인 산정호수인가는 언젠가도 말한 바 있는 그의 기억에서 지우지 못한 인생행로의 체험에서 유발된 시적 동기가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이렇게 그가 발산하는 ‘그리움’은 작품 「토함산 단풍길 1-가을 숲 터널」 전문에서‘불국사 담장을 끼고 / 토함산 오르는 / 가을 숲 터널은 / 불꽃에 싸여 / 그리움을 풀어낸다’거나 작품 「운문사 단풍」 전문에서도 ‘겨울 색 추운 / 입김으로 잠든 / 그리운 불씨 살려내면 // 불꽃은 아침 / 운문사 쪽으로 / 옮겨 붙는다’는 등의 어조에서 그의 깊은 궁극적 그리움의 관념적 미학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고운때 자질구레 묵향 그르매 오롯한 수묵화 여백으로 저렇게 하얗게 내려앉은 나비여라 꼿꼿이 풀 먹여 삼도三道 목주름 감싸 가슴으로 흘러내린 새물내 맵시, 어찌 저렇게 비어놓은 품이여 오히려 넉넉하여라 거부 할 수 없는 정토淨土 일구어 이랑마다 풋풋한 야채 씨앗 뿌려 놓고 온 얼굴 정다이 빙그레 짓는 사유상思惟像 세상에 이별이 서툴러 그저 수줍은 저 샛눈 속에 별 하나 숨었구나 --「그대의 앞이 아닌 옆에서-자목스님」 전문 이제 이 작품을 끝으로 이병근 시집 『늙은 여인의 언덕』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왜냐하면 그가 탐색하고 구현하고자하는 심안(心眼)의 지표를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지향하는 시적 주제가 명징하게 표출되었기에 그가 추구하려는 의도가 지목스님 옆에서 관망한 그의 지적인 의식이 대체로 함축되어 있음을 느낄 수가 있으리라. 그는 지목스님을 통해서 ‘고운때 자질구레한 묵향’과 ‘오롯한 수묵화 여백’ 그리고 ‘가슴으로 흘러내린 새물내 맵시’ 등에서 그는 ‘온 얼굴 정다이 빙그레 짓는 사유상思惟像’을 발견하고 ‘세상에 이별이 서툴러 그저 수줍은 / 저 샛눈 속에 별 하나’를 발견하는 그의 혜안(慧眼)에 우리들을 더욱 감동하게 된다. 이처럼 그는 ‘무상의 길’에서 이해한 바와 같이 정토의 이랑마다 빙그레 미소짓는 사유상에서 그가 무상의 세계를 갈구(渴求)하는 시정신과 시혼에 감응할 뿐이다. 그는 이 밖에도 ‘내가 그날 밤을 잊을 수 없는 것은 / 침혹의 달맞이꽃 한 송이를 / 가슴 깊숙이 숨기고 살아가는 이유(「미루나무 숲」 중에서)’라는 그의 그리움에 대한 불망(不忘)의 이미지가 아직도 그의 뇌리에서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의 원로 김남조 시인은 말한다. 시는 쉽사리 단안을 못 내리는 사념의 발열, 심층심리 안의 문답, 외롭게 회귀한 개성적 심상(心象), 선명하지도 밝지도 못한 사고의 교착(膠着), 암시, 모든 잠재의식과 꼬리가 긴 여운, 시인이 버리면 영영 유실 되는 것, 시인이 명명하지 않으면 영영 이름이 붙지 못하는 것, 원초의 작업 같은 혼돈에의 투신과 첩첩한 미혹, 그리고 눈물나는 긴 방황이라고 그의 글 「시인의 주소」에서 피력한 바가 있어서 우리들은 시의 위의와 시인의 위상에 대해서 교시적인 감명으로 깊이 새기고 있음을 유념하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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