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운행일지
7월 21일(토)
대구서 후배 영달이와 함께 열차로 서울에 도착. 김포공항서 입국수속을 밟고, 오후 9시 25분 대한항공편으로 스위스 취리히로 출발. -- 병무신고, 화물 검사(26kg), 환전, 공항세 6,000원
7월 22일(일)
02:30(현지시간) 모스크바 도착, 03:40 모스크바 출발. 04:44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도착, 06:27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발. 07:40 스위스 취리히 도착.
취리히 공항 1층으로 올라가서 도로를 건너 지하 1층에서 샤모니 가는 열차표를 구입(79 s Fr, 58 us $)하였다.(Information에 가면 샤모니 가는 열차 시간표와 가격을 알려준다). 09:43 지하 2층 4번 홈에서 기차를 타고 샤모니로 출발. 서울서 같은 비행기를 탔었던 경대팀 전상호씨와는 공항서 헤어졌다. 후배를 기다렸다가 체르마트(마터호른)로 간다고 한다.
12:25 로잔 도착(3번 홈으로 뛰어가서), 12:31 로잔서 마르티니로 가는 열차를 갈아타고, 13:19 마르티니에 도착하여 11번 홈 옆의 작은 열차를 갈아타서 13:33 샤모니로 올라감. 마르티니 까지는 냉방되는 전철이었으나, 이 곳 부터는 덜컹덜컹 거리는 객차 3량의 작은 열차이다.
[* 마르티니 : 작은 마을인데 주변은 온통 산으로 둘러쳐져 있고, 푸른 산 윗부분은 바위 덩어리, 주변에 광산이 많은 듯, 편리가 잘 발달된 천매암 같아 보임, 테일러스가 주변 곳곳에 있음, 석회암도 보임]
14:11 핀호트 도착. 여기까지 철도를 어떻게 놓았는지 놀라움이 앞선다. 얼마나 깊은 협곡에 철로를 만들었는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신이 현기증이 다 난다. 경사가 급한 곳은 톱니바퀴를 이용한다. 여기서 안내서 몇 장을 얻는다. 집은 급경사에 몇 채씩 지어 놓았다. 배에서는 꼬르르 꼬르륵 소리가 들리고, 14:53 열차를 바꿔 타고 샤모니로 간다. 15:55 샤모니에 도착. 대합실서 긍열이를 만나, 한 참 걸어간 후에 띠띠네 집에 여장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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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열이는 그 동안 마산팀 신경써랴, 이상수씨 컨디션 부조 등으로 깨나 몸이 근질근질 했었나 보다. 혼자 이 계곡 저 산을 돌아 다녔는지 얼굴이 새까맣다. 아무튼 반갑다. 이상수씨도 잘 있으니 반갑다. 19:30 저녁 해먹고, 장비점에 가서 픽켈과 고리 그리고 선크림(118 us $)을 구입했다. 내일 오후에 그랑드조라스 밑에 가서 모레부터 긍열이와 이상수씨가 중앙릉을 할 예정이다. 그 후에 나도 긍열이와 워커릉을 할 예정이다. 오늘은 많이 피곤하다. 21:00 먼저 취침을 했다.
<사진 : 몽블랑 초등자 빠까르와 드소쉬르의 동상>
7월 23일(월)
05:30 기상. 시내 한 바퀴 조깅 겸 바람을 쇠이고 왔음. 08:00 조식(라면)을 해먹고, 엽서 구입하여 산악회와 가족들에게 보내고, 헬기 보험(190 Fr)에 들었다. 12:00 중식 후, 그랑드조라스 등반을 위해 출발. 13:30-14:00 샤모니 -> 몽탕베르역. 14:10-17:20 몽탕베르역 -> 렛쇼산장 도착. 텐트 치고 막영 준비.
몽탕베르역에서 바라 본 드류 모습은 너무 기가 찼다. 1000m 수직벽, 대단해 보였다. 메르데글레이서는 길지만 지겹지는 않은, 시원한 바람을 안겨주는 그래서 너무나 추위를 느끼게 하는 그런 곳이었다. 3시간의 걸음 후에 렛쇼산장(절벽에 얹혀있음)에 도착. 조립식 구조물인데 이 동네 사람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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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동의 텐트 속에 넣어둔 많은 장비 중 프렌드 12개, 잼 너트, 카라비너 몇 개가 분실 되었단다. 그럴수가 ! 산장주인 여자 왈 ‘3주간이나 그대로 놔두고 샤모니 내려갔다 왔는데, 나는 책임이 없다’라는 얘기다.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너무나 아깝다. 21:00 취침.
<사진 : 몽탕베르역에서 드류를 배경으로>
7월 24일(화)
06:00 기상, 조식, 장비 정리 정돈. 오늘 내일 날씨는 맑고 구름 약간 이란다. 08:30 출발하여 10:30 그랑드조라스(4,208m) 북벽 아래(긍열이가 이상수씨와 중앙릉 croz 루트를 할려고 함). 12:00 중식 후, 등반 출발. 14:00 200m 정도의 설벽을 끝내는거 보고 혼자 내려옴. 15:00 산장 도착.
긍열이와 이상수씨가 croz 루트를 하기 위해 어제 저녁부터 장비 및 식량 점검을 하고 출발했다. 나는 며칠 뒤 워커릉을 할 예정이다. 설벽(200m 정도, 경사 60도 정도) 등반시 자일을 매지 않아 몹씨 걱정했으나 그런대로 잘 올라가 주었다. 특히 이상수씨는 중식 하는 장소까지 올 때도 몹씨 힘들어했는데 무척 걱정이다. 1박 2일 예정으로 비박지 까지는 쉽게 생각하고 출발했는데, 저녁 8시가 되어도 비박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내일까지 다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상수씨의 컨디션이 걱정이다.
오늘 워커능에서는 75m 디에드르 위에서 3명이 헬기에 의해 구조되어 내려왔다. 우리 텐트 옆에서 비박하고 05:00에 출발한 독일인 2명은 페티드조라스 거의 정상까지 같다가 백 해서는 저녁 7시쯤 되어 산장에 돌아왔다. 9시가 넘어서 긍열이가 비박에 들어간다고 연락이 왔다. 예정한 장소보다 50m쯤 아래이다. 등반은 별 무리가 없었고, 낙석이 좀 많았다 한다.
7월 25일(수)
06:00 교신, 조식을 준비중이란다. 07:00 비박 장비를 어제 계획대로 벽 아래로 떨어뜨림. 등반 시작. 08:30 산장을 출발. 10:00 어제 중식 장소에 도착. 주변을 아무리 찾아도 위에서 떨어뜨린 배낭이 없다. 11:40-12:30 하산-산장.
배낭이 크레바스에 빠졌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오늘도 햇살이 대단히 따갑다. 고글을 끼고 출발했다. 어제 2시간 거리가 오늘은 훨씬 단축되는 것 같다. 하산도 한 50분만에 했다. 렛쇼산장(2,431m) 주변엔 에귀디따클(3,444m), 에귀디그레뽕(3,482m), 에귀디모안느(3,412m), 에귀베르트(4,122m), 레쿠르트(3,856m), 드류(3,730m), 페티드조라스(3,650m) 등 침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주변 곳곳에 산장이 있다. 어제 보았던 사람들은 등반 가고 없고, 오늘은 또 올라오고, 내일은 또 등반 나갈 것이다. 이러니 한달 가까이 날씨가 좋은데도 텐트 쳐 놓고 있으니, 산장 여자가 좋아 할 리가 없을 것 같다.
등반팀의 소식이 몹시 궁금하다. 교신은 오후 3시 되어 한번 했고, 망원경에 보인 것도 한 번 뿐이었다. 3시까지 올라온 만큼 또 올라가야 정상인데, 7시부터 8시간 등반한 거리를 오후에 다 할 수 있을까 ? 비박 장비도 없고 식량도 1박 2일만 준비해 갔는데...... 그래도 오늘 늦게라도 정상에 도달하겠지 하는 마음을 가져 본다. 내일도 이번 주도 날씨는 산장여자 왈 ‘good’ 이란다.
7월 26일(목)
06:00 기상하여 종일 산장에 있었다. 07:00 교신되었다가 무전기약 갈아 넣는 사이 교신이 끊겨 버렸다. 캠프에서 산장에서 도를 닦다. 긍열이는 아마도 오늘 이른 아침에 정상에 올라 뒤쪽(이태리쪽)으로 하산했을 것 같다. 많이 지쳤을 것이고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두 사람 다 수고 대단히 많이 했다.(그랑드조라스 croz 루트를 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기록될 것 같다.)
무엇을 할 게 없다. 어디 가볼까 싶어도 꿈적하면 왕복 3-4시간 이상이 걸리니 가고 싶지가 않다. 심심하면 산장에 올라갔다 오고 아니면 텐트에서 잠을 잔다. 여기에 며칠 있어보니 이 동네 사람들의 등반 패턴을 알 것 같다. 그랑드조라스 북벽을 할 것 같으면 샤모니서 날씨를 알아 본 후, 2-3일 날씨가 좋으면 점심 후 출발해서 렛쇼산장에 오후 5-7시에 도착한다. 그리고 비박 내지 산장에서 잠을 잔 후, 다음날 새벽 2-3시에 출발하여 5시 전후하여 등반을 시작해서, 1박 2일 정도에 등반을 끝내고는 뒤로(이태리쪽) 돌아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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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렛쇼산장 에서 바라 본
그랑드조라스 북벽>
어제도 다섯 개 팀(1팀당 주로 2명) 정도가 왔다가 다 출발하고, 오늘도 오후 5시 전후하여 5-6개 팀이 도착했다. 아마 내일 아침이면 전부 등반을 떠 날 것이다. 이 동네 사람들 인상이 굉장히 강렬하다. 서구인 체질인 모양인데, 얼굴의 윤곽이 뚜렷하고 주로 곱슬머리이며 얼굴색은 검붉게 탔는데, 마치 산지에서 보는 산악인들 같다. 원래 체질이 그런 모양이다.
긍열이가 오늘이라도 와주면 좋겠는데, 내일 모레 까지는 날씨가 좋고 그 다음날인 일요일은 폭풍우라고 어제 프랑스 친구가 얘기하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내일 새벽에는 등반을 시작해야 그랑드조라스 워커능을 끝내지 그렇지 않으면 그랑드조라스는 물거품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오늘 하산을 이태리쪽으로 했으면 오늘 중 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고 또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 피곤도 할 것이고 이상수씨가 샤모니에 있을 것 같으므로. 내 눈은 자꾸만 메르데 빙하 아래쪽으로 살피게 된다.
7월 27일(금)
06:00 기상. 12:40 긍열이 올라옴. 15:35-18:30-19:00 산장->몽탕베르역->샤모니.
간밤에(10:30-11:20) 약간의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있었다. 기다리다 지쳐 버렸는가 ? 오늘이라도 12:00 전후해서 긍열이가 올라온다면 오후부터 등반 가능 할텐데 마음속으로 생각해본다.
그런데 정작 반가운 긍열이가 왔는데, 운동화 차림에 맨 몸으로 왔다. croz 한다고 고생 많이 했다. 등등의 이야기 후, 맨 몸으로 올라와 아쉬움이 많다고 얘기했다. 모레(일)는 비가 와서 등반이 되지 않는데.... “croz 등반은 25일 종일하고 26일 02:30에 정상에 섰다”고 한다. 피곤에 지친 몸으로 이태리 쪽으로 하산하여 샤모니에는 오후 5시에 도착했단다. 낙석이 심하고 위험하고 하여튼 고생을 대단히 많이 했다.
짐을 챙겨 내려왔다. 내일 모레 이틀간 몽블랑을 등반할 예정이다. 그리고 월요일날 날씨가 좋다면, 등반 장비만 챙겨서 그랑드조라스로 가는거다. 만약에 다음 주 내내 날씨가 나
쁘다면 아이거로 가고. 샤모니 여관에는 한국 사람이 버글버글 끊는다. 울산팀, 동국대팀, 서울 2사람(윤길수씨 외 1명) 등으로 아무튼 반갑다.
7월 28일(토)
08:00 밥을 해먹었다. 09:30-10:30 몽블랑 올라가기 위해 짐 챙기고 식량 구입.(우리 나라 5일장 같은데서 산 우표 구입). 11:00-11:10 샤모니-플랑(2,033m) (케블카 이용, 왕복 50Fr) 11:15-14:30 플랑(2,033m)-그랑뮬레 산장(3,051m)
혼자 몽블랑 등반하기 위해 조식을 마친 후 작은 배낭을 꾸리고 식량을 구입하여 출발했다. 몽블랑은 별로 어렵지 않으리란 생각에 1박 2일 짐에 잠을 산장에서 자기로 계획하고 떠나왔다. 그런데 의외로 위험한 곳이 많았다. 산장 오기 전 보송 빙하를 지나는데, 많은 크레바스와 스노우(혹은 아이스) 브릿지 등이 사람을 섬뜩하게 한다.
올라가는 사람은 없고 전부 하산하는 사람들 뿐 이다. 2명 혹은 10명 이상씩 안쟈일렌을 해서 내려온다. 어떤 친구가 혼자는 위험하다는 충고까지 한다. 산장에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보니, 내일은 날씨가 정말 나쁜 모양이다. 다른 외국인 몇 사람이 있고, 하산 하려는 프랑스인 몇 명이 있었다.
일기예보에 내일은 비가 온다고 했는데 벌써(오후 6시) 비가 조금씩 왔다가 그쳤다 한다. 너무 경솔한 행동이 아니었나 모르겠다. 그래도 유럽 최고봉 등반인데. 아무튼 내일 02:00쯤 출발 예정이니까 가는데 까지는 한 번 가보는 거다.
케블카 타는데서 한국인들을 만났는데 부부와 얘는 프랑스서 공부하고 부모님이 오셔서 관광 왔단다. 플랑 케블카 스테이션에는 한국 처자들이 많았는데 단체로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먼 나라 산골 지방에 많으니 반갑고 우리나라도 많이 발전 했다 싶다. 산장 물가는 굉장히 비싸다. 하루 자는데 89Fr, 물 1L에 6Fr, 전부 샤모니의 2배가 조금 더 되는 것 같다.
7월 29일(일)
01:00 기상 01:30 산장 출발 07:10 정상능선 발로산장(4,382m), 고소로 휴식 및 잠. 10:00 하산 11:40 그랑물레 산장 12:30-14:50 산장-플랑 케블카스테이션, 샤모니로 내려옴.
간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01:00 되어 일어나야 하는데 영 잠이 오지 않는다. 누워서 몸만 뒤척뒤척 거리다 01:00 되어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산장을 나서니 01:30 이다. 칠흑 같이 어둡고 아무도 없이 혼자 랜턴을 밝히고 떠나니 무서움이 앞선다. 출발부터 눈사면의 경사가 가파르고, 크레바스가 여기 저기 많았다.
어제 올라와서부터 먹은 것이라고는 빵 몇 쪼가리뿐이라 배가 많이 고프고, 50 걸음 걷기가 힘이 든다. 처음 출발 시에는 하늘이 온통 구름으로 덮여 있었는데, 구름이 걷히니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나를 위해 빛나고, 샤모니의 불빛도 인간의 정감을 느낄 수 있어 혼자 가는 나에게 포근함을 준다.
처음에는 혼자 가는 게 두렵고 무서움이 있었지만, 1시간 이상 전진 후에는 혼자만의 즐거움이 있었다. 두 개의 유성을 보았고, 가다가 사진도 찍고 하였다. 그런데 여전히 배는 고프고 전진은 힘이 든다. 여기서 무엇을 좀 먹어야 하는데, 정상 능선 산장서 조식 겸 요기를 하려고 계속 나아갔다.
05:00쯤 되어 주위가 잘 보이기 시작해 랜턴을 끄고 전진했다. 05:30 능선상의 산장이 그리 멀지 않게 보였다. 06:00 이면 도착하겠다 싶어 전진을 계속 하는데, 설벽의 경사도 몹시 급한데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허기지고 지쳐있어 걷는 것 보다는 쉬는 게 더 많았다. 열 댓 걸음 걷고는 픽켈이나 스키 스톡에 머리를 푹 박고 헐떡헐떡 거렸다.
06:00가 지나고 06:30이 지나고 07:00가 되어서야 거의 산장에 도착했다. 정상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의 행렬은 06:00 쯤 부터 보이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이 구테 산장 쪽에서 오는 것 같았다. 그랑물레 산장에서 출발한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었다.
발로 산장에 들어가니 몇 명이 무엇을 먹고 있고, 몇 명은 누워 쉬고 있었다. 나도 무엇을 먹기 위해 배낭을 열고 제일 먼저 물 그리고 사과를 먹었다. 빵이나 초콜렛 등은 도저히 입으로 넣을 수가 없었다. 사과를 먹고 난 뒤, 그래도 배는 고프고 속도 좋지 않았다. 고소병이었다. 1986년 참랑 원정시 카라반때 한 번 구토했는데, 지금은 그 때 보다는 덜한데 속은 미슥미슥 했다. 결국 물하고 사과를 모두 토해 냈다. 그리고는 쉬기 위해 누웠다.
09:00 에 알람을 맞춰 놓고 누웠다가 또 한 번 구토를 했다. 노란물 까지 나왔다. 다시 잠이 들었다가 09:30 쯤 깨었다. 지금 상태로는 올라가는 것은 고사하고 집까지 내려 갈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자고 나니 상태가 좋아져 또 정상 생각이 났다. 정상까지 가는 시간을 물으니 1-1:30 쯤 걸린다 하는데, 마음은 당장이라도 정상에 갈 것 같은데, 지금 내 몸을 생각해보니 무엇을 먹고 원기를 회복하지 않는 한 힘들 것 같았다.
정상의 미련을 버렸다. 여기가 이 번 등반의 목표였다면 끝까지 밀어 부쳐 보겠는데, 이것은 쉬는 시간동안 여가 이용하기 위해 올라 온 것 아닌가. 비록 북벽을 하려는 녀석이 아마추어도 올라가는 몽블랑(4,808m)에 못 올라가 부끄러움이 앞섰으나 냉정히 하산을 했다. 내려오는 것은 경사가 심하고 설벽도 밟기가 좋아 쉽고 빠른 템포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오만 생각이 교차했다.
유럽 최고봉을 너무 경솔히 생각하고 등반에 임했다. 1박 2일은 무리인 것 같다. 첫날 고도를 2,300m 올리고, 둘째날은 5시간만에 1,400m을 올리니, 몸이 잘 견디질 못했다. 식량도 잘못 이용하고, 무엇을 먹지도 않았었다. 산장에서 출발 시(01:30) 많이 먹어야겠고, 낮은 고도에서 많이 먹어야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혼자는 너무 위험한 것 같다.
7월 30일(월)
울산 팀과 동국대 팀 그랑드조라스로 출발. 산악인 묘지 방문. 장비점에 가서 긍열이 아이젠을 하나 사주고, 지난번에 잃어버렸던 프렌드를 보충하기 위해 내 돈으로 4개를 구입. 경북대 팀이 도착했으나, 방이 없어 캠프장으로 갔다. 저녁에 이상수와 술 한잔. 낮부터 얘기를 했는데, 그랑드조라스 등반 후 자기는 따로 헤어져 산 구경 가겠다함. 마음이 생각과 같이 맞지 않고 몸이 등반 할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 2사람 드류 하러 떠나다.
7월 31일(화)
경북대 팀이 도착하여 숙박함. 낮에는 내일 등반 떠날 준비로 식량을 구입하고 장비를 점검함. 저녁에 시내 산책하고, 밤늦게 집에 전화를 함.
| 8월 1일(수) 이번 주말까지는 날씨가 좋다는 일기예보를 보고는, 오늘 중식 후 렛쇼 산장으로 올라가 내일 새벽 등반하기로 계획하고 13:00쯤 몽탕베르 역으로 올라갔다. 샤모니-몽탕베르역(48 Fr), 낯설지 않은 메르데글레이서(빙하)를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갔다. ‘내일이면 그랑드조라스 북벽 이다.’ 싶은 생각에. 렛쇼 산장에는 울산대 동국대 팀이 아레 올라가서 오늘 새벽 03:00부터 등반 중에 있었다. 3명이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등반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검은 슬랩을 오르고 있었다. 긍열이와 나는 ‘산장서 자고 내일 새벽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산장에는 자리가 없단다. 이미 예약이 다 되었다나. ‘Floor에서 자라’는 산장지기 여자의 말에 왠지 모르는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코리아를 깔보는 건지 아니면 진짜 자리가 없어 Floor에서라도 자라는 얘긴지 알 수가 없었다. 실제 예약제가 잘 되어 있다면 우리 무지의 탓도 맞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뭔가 그녀가 우리 한국팀에 대해 불순한지도 몰랐다. 내가 오기 전 20여 일간 마산 그리고 우리 일행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너무 한다 싶었다. 오후 6시쯤 저녁을 먹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지난번에 설치해놓았던 우리 텐트에 울산대 동국대 팀에게 빌린 슬링핑백으로 잤다. 그러나 당체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 등반 생각 그리고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어선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거리며 있는데, 21:00 쯤 천둥 번개가 치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는 날씨가 좋다고 했는데 어찌된 건가 싶었다. 아마 2시간쯤 지나 비가 그쳤는 것 같다. 그랑드조라스에는 지금 많은 팀(10여명)이 붙어 있는데, 고생 꽤나 하겠다 싶었다. 우리도 내일 떠날 수 있을까하는 의문과 하필 우리가 등반을 하려고 하는데 비가 오나 하는 원망과 그렇게 맑은 날씨가 많았는데 왜 그때는 하지 않고 지금 하려고 하는가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우리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랑드조라스가 나로부터 멀어 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리 저리 뒤척이다 긍열이가 ‘형 2시 입니다.’라는 소리에 일어났다. 8월 2일(목) 02:00 기상 03:00 산장 출발 06:00 북벽 등반 시작 21:30 비박 준비(검은 슬랩 상단)
어제 저녁을 지어주던 울산대 동국대 팀은 인기척 없이 자고 있었다. 오늘 출발시 먹으려고 했던 라면이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컵라면으로 대신 했다. 03:00 산장에도 텐트에도 인기척이 없는 가운데 준비를 마친 우리는 출발했다. 배낭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 벽 밑에 오니 5시가 조금 더 되었다. 배낭을 내리고 통조림으로 요기를 하고 벨트를 차고 정각 6시에 벽을 시작했다. 설벽 2피치 80여 m을 연등해서 올랐다. 그 다음부터는 거의 연등으로 낙석이 심한 너덜지대 바위를 한참이나 올랐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postfiles.pstatic.net%2F20110513_27%2Fgeo7319_1305245366617HJ6XB_JPEG%2F%25BE%25CB%25C7%25C1%25BD%25BA6.jpg%3Ftype%3Dw3)
<사진 : 75m 디에드르를 오르는 모습> 배낭이 무거워 힘이 많이 들었다. 우리 위에는 3명이 등반하는 팀이 있었다. 산장 출발시 벌써 벽을 시작하는 팀이 많았는데, 그들은 상당히 윗 부분을 오르고 있었다. 하켄이 나타나는 지점서부터 긍열이가 선등하기 시작했다. 약간 오버행진 부분을 넘어서고는 계속 전진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홀드와 스탠스가 굉장히 많은 곳으로 중간 중간에 고정 하켄들이 있었다. 긍열이는 암벽화를 신어서 경쾌하게 등반을 했다. 15m 쯤 내려서니 레뷰파 크랙이었다. 앞서간 3명이 등반 중에 있었으나, 톱이 크랙 중간에서 못 오르고 있었다. 긍열이가 먼저 배낭을 벗고 레뷰파 크랙 30m을 넘어섰다. 그리고는 그 녀석이 우리 자일에 쥬마를 걸고 올라섰다. 긍열이 배낭을 더불 자일중 9mm에 당기고 나는 11mm 자일에 쥬마를 타고 올랐다. 말로만 듣던 레뷰파 크랙인데 실제로 보니 상당히 어렵고 기존 하켄도 그리 많지 않았다. 크랙 위와 아래에는 비박 장소가 상당히 좋았다. 2-3명 이서 누울 수 있을 만큼 좋은 장소였다. 크랙 위에서는 우측으로 트레버스를 1피치하고, 그리 어렵지 않은 홀드 많은 곳을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올라갔다. 75m 디에드르를 2피치로 나누어 올랐다. 여기는 기존하켄이 많아 긍열이가 잘 이용해 올라갔다. 여기서도 긍열이는 자기 짐을 당겨 올리고, 나는 쥬마 등반을 해서 올랐다. 레뷰파 크랙보다는 쉬운 곳이었다. 디에드르를 넘어서 2피치쯤 전진했다가 20m쯤 트레버스 후 8m를 내려섰다. 그리고 대각선 방향으로 등반해 올라가니 검은 슬랩 아래였다. 말이 슬랩이지 페이스였다. 앞 팀도 그리고 우리도 어렵게 어렵게 올라섰다. 시간은 9시가 다 되어갔다. 아마 지금까지 제일 어려운 피치 였는 것 같다. 그 다음 한 피치를 마치니 10시 가까이 되고 어둠이 거의 다 내려와, 아주 좁은 장소에서 비박에 들어갔다. 말이 비박 장소이지 둘이 엉덩이로 앉기도 힘든 장소였다. 주위에 얼음도 눈도 없었다. 약간 남은 인삼 꿀차물에 생강차 2개 끊여 먹고는 저녁을 해결했다. 배는 고프지만 물이 없으니 할 수 없었다. 날씨는 의외로 춥지를 않았다. 8월 3일(금) 새벽 5시가 넘어서 등반 준비를 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1피치를 마치니 넓은 테라스가 나타났다. 앞서간 3명은 여기서 비박을 한 것 같았다. 누워 잘 수도 있는 아주 좋은 장소였다. 그리고 주위에는 얼음도 있었다. 그들은 아직 등반 준비가 되지 않아 긍열이가 먼저 등반에 들어갔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들어 1시간 가까이 소비했다. 그리고 난 뒤, 우리는 그 테라스에서 물을 끊여 라면을 해먹고 요기를 했다. 9시쯤 한 명이 나타났는데 솔로였다. 놀라웠다. 암벽화, 초크, 7mm 80m 자일, 그리고 작은 배낭 너무나 사뿐히 올라갔다. 어려워 보이는 코스를. 또 다른 팀이 지나갔다. 그리고는 우리도 등반을 시작했다. 첫 부분이 어려웠지만 가뿐히 넘어서니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꿀루와르까지 그리 어렵지 않게 진척이 빨랐다. 3피치로 된 꿀루와르는 얼음도 얼어있고 해서 힘들고 어려웠다. 그리고는 오른쪽으로 트레버스를 2피치하고 나니 정상 꿀루와르 였다. 거의 연등으로 5피치 정도를 올라 정상에 올라섰다. 촌스럽지만 회기를 내어 사진도 찍고, 능인고등학교 산악부기도 찍고, 故(고)이수형이 사진도 묻고, 슬링 하나도 묻어 두었다. 오후 7시가 못되어 올라서 8시가 되어 내려갔다. 낙석 지대를 지나 릿지로 갔다가 거기서 비박에 들어갔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postfiles.pstatic.net%2F20110513_109%2Fgeo7319_1305249109337jbuP2_JPEG%2F%25BE%25CB%25C7%25C1%25BD%25BA16-2.jpg%3Ftype%3Dw3) <그랑드조라스 북벽 정상에서> 8월 4일(토) 비박 장소 - 그랑드조라스 산장(이태리) - 이태리 - 2번 차를 얻어 타고 - 샤모니에 오후 5시쯤 도착함. 8월 5일(일) 울산팀 3대 북벽 성공 후 로마로 관광 떠남. 오후에 시내 수영장에 갔다옴. 내일은 ‘아이거’가 있는 스위스 그린델발트로 떠나려함. 8월 6일(월) 오전에 식량을 구입하고, 오후 1시 21분 발 그린델발트행 열차를 탐. 샤모니-핀호트-마르티니-브리그(157 Fr)-슈피체-인터라켄(동)-그린델발트(30 Fr s) 20:07 비 내리는 그린델발트 역에 도착. 역 지하 창고에서 1박함. 8월 7일(화) 08:18-09:10 그린델발트-클라이네샤데이크(왕복 30 Fr s). 찌푸린 날씨 속에 클라이네샤데이크에 도착했다. 주변이 온통 가스로 아이거 북벽은 온데 간 데가 없다. 자주 보아온 건물만이 아 여기가 아이거 북벽 및 클라이네샤데이크 이구나 싶게 만들었다. 한국팀 대부분이 막영 했던 그 장소에 우리도 텐트 한 동을 쳤다. 회기도 달아 놓고서. 멋진 장소였다. 겨울에는 이 주변이 온통 스키장이라 완전히 초원지대였다. 중식을 해먹고 역사 주변 상점을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온통 일본 사람 세상이었다. 우리 나라 사람도 몇 명이 보였다. 사진에서 보아온 알프스의 긴 나팔 부는 것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날씨가 어떻게 되려나 내일은 아이거글레쳐 역까지라도 한 번 가보야 될 것 같다. 제발 아이거야 나타나라. 8월 8일(수) 여전히 개스이지만 어제보다는 덜하다. 오후에 아이거글레쳐 역까지 갔다왔다. 원래는 오후 6시 30분 이 후는 터널에 기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제 2 갱도까지 같다오려고 했으나, 헤드랜턴을 갖고 가지 않아서 입구 주변에 있다가 돌아왔다. 군사 유학(해병대)온 가족을 만나, 중식으로 라면 3개을 얘들을 위해 끊여 주었다. 배낭 여행 온 우리 나라 대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postfiles.pstatic.net%2F20110513_175%2Fgeo7319_13052457844395dTJn_JPEG%2F%25BE%25CB%25C7%25C1%25BD%25BA7.jpg%3Ftype%3Dw3)
<사진 : 클라이네샤데이크 전경>
8월 9일(목) 맑음 08:45-11:20 B.C-그린델발트. 15:00-17:00 그린델발트-알피글렌- B.C 묀히 등반을 위해 첫 열차를 타기 위해서 일찍(06:00) 기상했다. 아침 공기가 너무나 차다. 날씨는 청명했다. 처음으로 아이거가 우리 눈앞에 다가왔다. 너무나 높고 장대해 보였다. 내 생각은 ‘오늘 묀히 등반 그리고 막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제2갱도를 들렀다 오는 것, 그리고 내일은 휴식을 취하면서 그린델발트로 내려가서 부족한 식량과 장비를 구입한다. 그리고 8월 11일 오후 막차(17:00)를 타고 아이거반트 역에서 내려 비박 한 후, 8월 12일 01:00에 벽 등반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긍열이가 묀히 등반을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럼 오전에는 햇빛 때문에 아이거를 도저히 정찰 할 수도 없고 하니, 오늘 그린델발트 내려 갔다와서는 내일 등반하러 출발하자고 했다. 긍열이 말대로 돈 벌기 위해 그린델발트까지 걸어 내려갔다가 올라오려고 했다. 그리고 운동 삼아.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내려가는 시간만도 2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시내에 가니 다리가 뻐근 거렸다. 역시 사람 많고 가게 많은 그린델발트가 사람 사는 동네 같고, 우리도 벽 등반을 한다는 외로운 생각이 사라지고, 그들 사람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하나의 인간이 되는가 싶었다. 슈퍼에서 식량 약간과 엽서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시내 벤치에 앉아 부지런히 글을 적었다.
빵으로 중식을 해결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파른 오름길은 보통이 아니었다. 결국 알피글렌에서 열차를 타고(10 Fr s) 올라왔다. 묀히 등반 보다 더 벅찬 하루였다. 긍열이가 내일 하루 더 쉬었다 모레 등반을 하자한다. 그리고 등반 개스도 이상수씨가 샤모니서 가져와야 한다 했다. 내일 떠나면 좋을텐데. 여기에 자꾸 오래 있는 게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날씨 맑겠다. 마음의 준비 되었겠다. 그런데 긍열이가 마음의 준비가 아직 덜 된 모양이다. 할 수 없지 그래 모레(8월 11일) 오후에 등반 출발한다. 그러면 나는 내일(8월 10일) 묀히 등반 떠나야겠다. 8월 10일(금) 맑음 06:30 기상 08:30-09:30 클라이네샤데이크 - 융프라우요흐 10:30-13:05 -묀히 정상 -14:40 -융프라우요흐 15:30-16:00 -B.C 첫 차를 타기 위해(08:02, 왕복 30Fr s)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나섰다. 하지만 조조라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08:30 열차를 탔다. 아이거반트(2,865m), 아이스메어(3,160m)를 거쳐 융프라우요흐(3,454m)에 09:30에 도착했다. 등반 준비. 그리고 길을 잘못 찾아 120m위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갔다. 10:30이 되어서야 설원에 나섰다. 스키장이 있는 분지였다. 클라이네샤데이크 반대편인데 너무나 대조적이다. 스키 대여는 1시간에 20Fr s 했다. 길은 설원차로 내어 놓았다. 50분 가량 걸어서 묀히 능선으로 접어들었다. 설원에는 개미 딱지 만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이 보였다. 아마 첫 차를 탔거나 아니면 여기서 1박한 사람들 같았다. 돌 능선, 가파르고 뾰쪽한 설능으로 이어진 등반로는 혼자 가기엔 굉장히 위험했다. 양쪽 어디로든 슬립하면 수백 m는 족히 떨어질 것 같았다. 몽블랑 등반을 되새기며 처음부터 많이 먹었다. 배는 고프지 않게. 등반로는 전체적으로 위험했지만,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눈 덮인 정상에 13:30에 섰다. 다른 한 팀 2명과 같이 섰다. 아이거를 바로 눈앞에 보고, 융프라우도 바로 앞에 보였다. 각각 산들의 사진을 한 장씩 찍고는 바로 하산을 했다. 오래 있을 이유가 없었다. 순식간에 몇 명을 추월해 14:40 쯤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곳에 위치한 우체국에서 엽서를 두 장(각 3.6Fr s) 사고 소인도 찍었다. 박영환씨(대구. 우표 수집인)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지. 열차를 타기 위해 아비규환(?)인 곳에서 겨우 15:30 출발하는 열차를 탔다. 내려오면서 제2갱도를 유심히 관찰했다. 내일이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니까. 16:00 클라이네샤데이크에 도착했다. 우리 텐트 옆에 막영 했던 서독일의 부자지간은 오늘 묀히 등반을 성공하지 못해 풀이 죽어 있는 것 같다. 샤모니서 이상수씨가 B.C로 왔다. 우리가 텐트를 치고 있는 클라이네샤데이크에서 보면 왼쪽으로부터 Eiger 3,970m, Monch 4,099m, Jungfrau 4,158m. 의 순으로 3개의 봉우리가 장대하게 솟아있다. 푸른 초원 위에 하얀 눈을 이고 있는 3개 봉우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그 자체이다. | 8월 11일(토) 맑음 17:30-17:40 클라이네샤데이크-아이거글레쳐 역. 19:00-19:50 -제2갱도 도착. 힘든 크랙 아래까지 정찰을 하고 80m 자일을 고정 시켜 놓은 후, 제2갱도에 돌아와 비박. 아이거 북벽을 등반하는 날이다. 오전 조식 후 sport haus(상점)에서 며칠 동안의 날씨를 알아보았다. 가게의 주인 할아버지께서 텔레비젼 모니터 같은 것을 리모콘으로 조작해서 화면에 날씨 적힌 것을 보고는 ‘오늘은 맑고, 내일(일)과 모레(월)도 맑겠고, 저녁에 약간 구름 끼겠다. 그리고 월요일에는 약간의 변동이 있을 것이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맑기는 맑으나, 변동이 좀 많이 있겠다’ 하면서, ‘북벽 등반은 좋겠다’라고 얘기했다. 흡족한 마음으로 텐트에 돌아와서는 긍열이 한테 그대로 얘기해 주었다. 중식 후 오후에 짐을 챙겼다. 우리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융프라우요흐 가는 막차(17:30)를 타고 아이거반트 역에서 내려 1박을 한 후, 다음 날 01:00에 제2갱도를 나서, 람프 끝난 지점인 브리틀렛지 아니면 신들의 트레버스 전에서 비박을 하고, 다음 날 정상에 올라, B.C까지 하산하는 것이었다.> 아이거 북벽 등반을 위해 준비한 장비와 식량 그리고 기타 품목은 다음과 같다. <공동장비> 자일 80m×8.5mm 1동, 카라비너 25개, 아이스하켄(스나그) 2개, 록 하켄-앵글 2개, 나이프 3개, 프렌드 2호, 2 1/2호 각 1개-2개, 너트-소형 2개, 슬링-다수, 무전기-1대(일제 Kenwood), 비박 플라이 1개, 버너와 콕헬-부착된 한 세트(캠핑개즈사 제품), 개스 2개, 수통(1리터) 1개. <개인장비 - 배효순> 런닝, 팬츠, 모 내의 상하, 고어텍스 윈드쟈켓, 고어텍스 오버트라우져, 파일 자켓 상의, 우모복 상하, 장갑(모장갑 1개, 면장갑 1개, 고무장갑 1개), 양말(면양말 1족, 모양말 장, 단 각 1족), 플라스틱 이중화(ASOLO 101) 1족, 아이젠(샤르레 모제 12치, 밴드형) 1개, 스패츠(국산 샤모니 제품) 1개, 아이스바일(로우) 1개, 안전벨트(페츨) 1개, 쥬마 1개, 헤드랜튼(페츨) 1개, 건전지 4개, 하강기(8자) 1개, 카메라(니콘 자동) 1개, 헬멧(에델리드) 1개, 배낭(밀레 35리터) 1개, 숫가락 1개.
<식량> 빵 2개, 우유(분유)-약간(1회용), 각설탕 7개, 미숫가루-약간, 초코렛 4개, 사탕-약간, 건포도-1봉지, 건포도 비슷-1봉지, 키위 통조림 1통, 스포츠매트(고칼로리) 6개, 소형 카스테라 8개, 소세지(6개들이) 2개. <의약품> 비타민(제텐C) 2알, 소화제 2알, 대일밴드 10개, 붕대(소형) 1개, 진통제 2알, 우황청심환 2알 <기타> 산악회기 1개, 능인고등학교 산악부회기 1개, 휴지 약간, 성냥 1개, 라이타 1개. 17:30 융푸라우요흐로 향하는 기차에 타서 승무원에게 아이거반트에 좀 내려달라 하니, ‘내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법으로 갱도 내에는 들어 갈 수도 없고, 들어가면 벌금 500 Fr s을 물게 된다’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아이거글레처 역에 17:40 쯤 내려서 역 부근에서 시간을 보냈다. 갱도에서 내려오는 마지막 열차가 18:30 이니, 그 이 후에는 걸어서 들어 갈 수 있다는 얘기를 다른 팀(경북대, 울산대)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우리도 기다리기로 했다. 19:00 갱도로 들어섰다. 갱도는 좁고 경사가 굉장히 급했다. 이 놈들 도대체 어떻게 여기를 뚫으려고 마음을 먹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분쯤 걸어 들어가니 제1갱도가 나타났다. 제2갱도로 가는 도중 밑에서 올라오는 열차를 만났다. ‘앗 이 시간에 올라올 열차가 없는데 ?’ 하지만 열차 1대가 올라왔다. 배낭을 내리고 벽에 딱 붙었다. 열차가 선다면 우리는 벌금형이다 싶어 시발 시발 욕했는데 의외로 지나가 주었다. 50분쯤 지나니 제2갱도가 나타났다. 짐을 놔두고 힘든 크랙까지 가보기로 했다. 자일과 벨트만 메고 제2갱도를 통해 벽으로 나왔다. 1피치 트레버스 후, 긍열이가 힘든 크랙 아래까지 올라가서, 80m 자일을 고정 시켜 놓고 내려왔다. 위에는 다른 팀이 등반하는 게 보였다. 제2갱도에서 돌아와서, 밑에서 해온 밥과 새로 끊인 라면 1개로 저녁을 먹은 후 22:00 취침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postfiles.pstatic.net%2F20110513_106%2Fgeo7319_13052473991737drr2_JPEG%2F%25BE%25CB%25C7%25C1%25BD%25BA8.jpg%3Ftype%3Dw3)
<아이거 북벽 전경. 점선은 등반로, 실선은 하산로. 0 표시는 비박 지점> 8월 12일(일) 맑음. 밤에는 천둥 번개. 01:45 기상 03:10 제2갱도 출발 힘든크랙 - 힌터슈토이서 트레버스 - 제1설원 - 아이스호스 - 제2설원 - 죽음의 비박 - 제3설원 - 람프 상단(워터폴크랙 아래)서 22:00 비박.
랜턴을 켜고 어제 픽스 시켜놓은 자일까지 올라간 후, 힘든 크랙을 고정 자일을 이용하여 정말 힘들게 쥬마링 한 후, 좌측 대각선 방향으로 좀 오른 후, 힌터슈토이서 트레버스를 했다. 매끈한 그러나 밴드가 나 있는 곳을 고정 자일을 이용하여 쉽게 통과 한 후 제비의 집 도착. 여기서 어제 비박한 팀을 만났다. 그 팀 출발 후 우리도 따라 갔다. 고정된 자일을 따라 눈 하나 밟지 않고, 제1설원을 통과 하였다. 원래 설벽 등반이나 지금은 눈이 거의 없었다. 아이스 호스 옆을 고정 하켄과 픽스 자일을 이용하여 올라갔다. 보통 때는 그 이후 아이스 호스를 빙벽 등반으로 쉽게 통과하나, 지금은 아이스 호스(얼음)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좌측으로 물이 흐르는 바위로 오르는데, 중간 중간 고정 하켄을 이용했으나 굉장히 어렵게 시간을 많이 소비하면서 통과를 하였다(1피치). 그 이 후 제2설원 아래까지 1피치 등반 후, 눈이 거의 없는 제2설원을 80m 설벽 등반하고, 좌측으로 80m 트래버스를 2번하고, 그리고 암벽등반 1피치 후에 죽음의 비박 장소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6시였다. 그 지점에는 우리보다 앞서간 팀이 비박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일 하산한다고 했다. 그리고 제비의 집에서 만난 서독인들은 아이스 호스 등반 시 낙석으로 한 사람이 팔을 다친 후 하산했다. 죽음의 비박지는 오버행 밑으로 3-4 사람이 비박 하기에 충분한 것 같았으나, 오버행 위에서 물방울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여기서 미숫가루를 좀 먹고, 제3설원으로 나섰다. 람프 상단(워터폴 크랙 부근)에 한 팀이 보였다. 제3설원은 설벽 트래버스를 75m 한 후에 람프 초입으로 들어섰다. 19:00 쯤 이었다. 람프를 4피치 등반 후, 워터폴 크랙 아래에서 비박 했다. 2 사람이 위 아래 2단으로 겨우 앉을 수 있는 그런 자리였다. 22:00쯤 되었는데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굉장히 겁이 났다, 쇠붙이를 바위 속으로 집어넣고는 우유와 빵으로 저녁을 먹었다. 23:30 쯤 잠에 들었는데, 하늘에 별은 보였으나 천둥 번개는 여전했다. 8월 13일(월) 맑음, 흐림, 폭설(17:30) 07:30 등반 시작. 워터폴 크랙 - 람프 설원 - 브리틀 크랙 - 신들의 트래버스 - 하얀거미 - 수정 크랙 - 엑시트 크랙 트레버스 지점서 1피치 등반 중 폭설, 그 자리서 비박(18:30). 가스통 레뷔파의 ‘별빛과 폭풍설’을 생각케 하는 그런 긴 밤을 보내고, 미숫가루로 아침을 먹은 후 출발했다. 아침에는 얼어 있다는 워터폴 크랙 이었으나 여전히 물탕 이었다. 1시간 가까이 등반을 한 후 그 위로 올라섰다. 고정 하켄이 많이 박혀 있었다. 아이젠을 신고 아이스 벌지 등반을 쉽게 넘어선 후, 람프 설원 오른쪽으로 붙어 브리틀렛지에 섰다. 그리고 트래버스 후 브리틀 크랙을 올라섰다. 20m 쯤 되는 크랙으로, 책으로 읽은 것보다는 쉽게 올라섰다. 그리고는 신들의 트래버스를 고도감 나게 횡단하고 하얀 거미로 진입했다. 하얀 거미는 긍열이가 직상하여 80m 자일 끝까지 올라갔다. 멋있는 설벽 이었다. 여기서 우리 보다 훨씬 앞서 갔었던 스페인 팀을 추월해 엑시트 크랙으로 진입했다. 2피치 등반 후 도저히 배가 고파 안되어서 미숫가루를 태워 먹고는 다시 출발했다. 수정 크랙 등반 후 좌측으로 트래버스를 한 후, 엑시트 설원으로 통하는 꿀루와르에 붙었다. 오늘 해 있을 때 까지는(21:30) 충분히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긍열이가 1피치 등반하는 중, 조금 전부터 개스가 끼던 날씨가 돌변하여 싸라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등반하는 곳은 정상 부분 설원에서 흘러내리는 눈들의 통로가 되는 곳으로,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싸라기가 눈으로 바뀌면서도 그 양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
얼마나 그렇게 버텼는지 모른다. 눈이 잠시 뜸할 때 긍열이가 재빨리 하강을 했다. 더 이상 전진 할 수도 백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비스듬한 사면으로 2 사람이 자일에 매달려서 겨우 서 있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 사면을 눈을 다져 배낭을 깔고는 엉덩이 한쪽씩 걸쳐서 겨우 앉았다. 그리고는 플라이를 덮어 섰다(18:00 쯤). 눈은 계속해서 한 없이 내리고, 천둥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해 쇠붙이는 자일에 메달아 전부 아래로 내렸다. 꼼짝도 할 수 없는 그 자세로 다음 날 오전 06:00까지 12시간을 그렇게 버텼다. 8월 14일(화) 여전히 흐림 07:00 등반 시작. 꿀루와르 1, 2, 3피치 - 엑시트 설원 1피치 60m, 2피치 70m - 정상 설원 80m. 14:50 정상 능선 15:50 정상 16:10 하산 시작 8/15(수) 01:30 클라이네샤데이크 B.C 여전히 개스가 짙게 낀 상태에서 등반을 시작했다. 신설이 살짝 덮인 꿀루와르를 정말 어렵게 어렵게 올랐다. 더욱이 스페인 팀이 등반을 잘 못해서 그들의 자일을 계속 픽스 시켜 주면서 올랐다. 꿀루와르를 벗어나니 엑시트 설원도 만만치 않았다. 얼음은 거의 없고 바위 위에 눈만 살짝 덮여 있어 등반이 쉽지 않았다. 짙은 개스가 여전한 가운데 정상 설원은 그리 어렵지 않게 등반하고, 정상 능선에 올라섰다. 너무나 지쳤다.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군가에게 감사드리고 싶었다. 어제 밤 비박시에는 과연 살아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다 들었다. 너무나 지치고 힘이 들어 칼날 같은 정상 능선을 어렵게 통과하여 정상에 올라섰다(15:50).
그랑드조라스 정상에서와 같은 기쁜 감동은 하나도 없었다. 어제 오늘 우리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지쳤고, 내려 가야할 하산 길도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정상은 짙은 개스에 쌓여 수 미터 앞이 보이지 않았다. 기념 사진 몇 장을 찍고는 하산을 시작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postfiles.pstatic.net%2F20110513_172%2Fgeo7319_1305249206756wqeP9_JPEG%2F%25BE%25CB%25C7%25C1%25BD%25BA17-2.jpg%3Ftype%3Dw3)
<아이거 북벽 정상에서> 개스가 낀 상태에서 너무나 강한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클라이밍 다운의 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시야가 좁아 바로 앞에 내려가는 긍열이가 보이지를 않는다. 너무나 답답했다. 하산길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날씨만 맑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느린 클라이밍 다운 그리고 자일 하강 수 차례 그리고 휴식 또 하강 하강.... 하여 아이거 글레쳐 역에 살아서 돌아오니 8월 15일 00:30 이었다. 8월 15일(수) 흐린 후 맑아 옴. 00:30 아이거 글레쳐 01:30 클라이네샤데이크 B.C 02:00 역 옆 호텔에서 취침 10:00 기상 12:00 레스토랑서 중식 14:00-17:00 B.C - 그린델발트 - B.C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이거 글레쳐 역에서 이상수씨와 재회한 후, 비를 맞으며 클라이네샤데이크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이상수씨가 잡아 놓은 호텔로 가서, 과일을 조금 먹은 후 그대로 잠에 빠졌다. 늦게 일어나 샤워 후 비싼 레스토랑 음식으로 중식을 먹은 후, 혼자서 그린델발트에 내려갔다 왔다. 돈이 있었다면 내려갈 필요가 없었는데, 환전 때문에 부득불 갔다 왔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취리히 대한항공 사무실에 전화를 걸기 위해, 저녁을 잘 해먹기 위해 등등의 이유로 내려갔다 왔다. 가족과 산악회 성원형에게 전화를 하여 여기의 사정을 얘기하고 안부를 전했다. 대한항공 사무실에서는 한국 직원이 내일 아침에 나온다기에 그 때 다시 전화하기로 했다. * 8월 16일 긍열이와 이상수씨는 샤모니로 돌아가고, 나는 취리히로 갔다. 긍열이는 샤모니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이태리 돌로미테산군으로 갔다. 그 곳에서 유학중인 차광수회원을 만나 마르몰라다 남벽을 중간쯤 하다 내려오고, 주변 돌로미테산군을 구경 다니다가 9월 20일 귀국하였다. 취리히에 도착한 나는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려고 노력했으나, 예정 귀국일 보다 빠르고, 성수기인 관계로 비행기 좌석 확정이 잘 안되었다. 현지 대한항공 직원이 두 번이나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아, 모든 짐을 싸고 공항에 나갔으나 두 번 다 탑승을 못하였다. 결국 8월 22일 대서양 건너 앵커리지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 할 수 있었다. 서울에는 8월 23일 도착하였고, 그 날 김포공항에서 가족을 만나 비행기를 타고 대구로 내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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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990 유럽 알프스 등반 보고서 4 - 운행 일지 3|작성자 화강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