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전국 정읍사랑 시(詩) 공모전 심사평
2019년 ‘정읍 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처음으로 실시한 제1회 전국 정읍사랑 시 공모전의 예심을 거쳐 본심에 보내온 편수는 총 143편이었다. 응모기간이 두 달도 채 안 되는 중에도 전국 각지에서 모두 6백여 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고 한다.
심사는 3인의 심사위원이 전체 작품을 전량 읽어서 입상 가능권에 포함될만한 작품을 일차적으로 선정하고, 그것을 다시 읽으며 58편을 추렸다. 남은 작품을 3인이 재독하고, 심사 기준을 통과한 입선작을 먼저 뽑았다. 이어서 장려상, 우수상을 선정하였다. 최종적으로 최우수상과 대상작을 두고 3인이 다시 윤독하고 의견을 교환한 뒤 선정하는 절차를 밟았다.
심사한 결과, 응모작의 수준은 낮지 않은 편이었다. 그 중에는 근자에 들어와 각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백일장마다 출현하는 듯한 작품이 없지 않았다. 그 반면에 대부분의 작품은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하여 순수하게 정읍과 관련한 체험을 작품 안에 눅이고자 노력하고 있어서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주최측에서 제시한 공모 주제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것을 소재가 아닌 주제로 육화하기를 바라는 것은 여느 심사위원이나 견지하는 공통된 의견이다. 또 심사위원들은 ‘정읍사랑 시 공모전’이니 만큼, 대회 취지에 부합하는 정읍에 대한 사랑이 행간에 녹아들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사랑’이 관념적 차원에서 허사로 메아리치는 듯한 아쉬움을 가졌다. 이 점은 회를 거듭할수록 개선되리라 기대한다.
대상작으로는 「연못을 읽다」와 끝까지 경합한 「눈 내리는 정읍 들판에 서서」를 선정하였다. 전자는 시적 형상화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역사의식이 후자에 비해서 약하고 시적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하였다. 이에 비하여 대상 당선작은 정읍의 산야에 흥건히 배어 있는 역사적 자흔을 바닥에 깔고 시상을 전개한 점이 윗길이었다. 더러 군더더기 같은 설명투의 시구들이 이미지의 연결을 저해하는 것은 아니나, 다른 작품들보다 강렬한 역사성을 주제화하여 정읍사랑을 시화하여 정읍의 정체성을 고양하려고 애쓴 점은 가산점을 받을 만하였다. 앞으로 아픔마저 객관화하면서도 주제의식을 행간에 은닉할 줄 아는 수준으로 나아가기 바란다.
2019. 10.
심사위원: 강인한 (시인), 장지홍 (시인), 최명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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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전국 정읍사랑 시 공모전 대상 당선작〉
눈 내리는 정읍 들판에 서서
최낙운 (정읍)
사선으로 휘날리는 눈발을 등에 지고
하얀 들판을 보라
가을 추수에 잘리어진 벼 밑동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병사들의 묘비처럼
나란히
하얀 눈 속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숙연한 들판을 보라
이름 하나 쓸 수 없는
무명용사의 묘비마냥
하얀 눈 거센 바람 맞으며
밤을 지새울 겨울 들판에 서서
묘비처럼 서 있는 벼 밑동을 보라
이 차가운 들판에서
이름 없이 산화해 간 농민군의 함성 소리
내리는 눈발 너머로 들어보라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들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은 왔는지
쏟아 붓는 눈발은
아직도
슬프고 아픈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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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전국 정읍사랑 시 공모전 최우수상〉
연못을 읽다
황보람 (김포)
내장사 건듯 부는 바람이
성큼 내려와 이끼를 만지며 구름을 읽어요
홍단풍 그늘 아래
부신 햇살이 물비늘 호흡을 읽고
소금쟁이 허리에 댓글을 남길 즈음
허방 짚던 돌멩이 하나
우화정 허리 맞고 못으로 뛰어들어 첨벙!
물결 번지는 행간이
못의 넓이 눈으로 재게 하지만
드높은 하늘 한켠, 어떻게 좁은 못에 앉았을까요?
산 그림자에 싸인 진신사리 와르르 쏟아질 것 같아요
핏빛 단풍이 못을 통과하는 가을
사리 하나 주울 수 없는
나의 안간힘만 바닥을 기고
못을 읽는다는 것은 말간 물빛 담는 일이나
물결 문양 흔든 내가
왠지 찢긴 아기단풍의 배후 같아서
비늘 벗겨진 물고기 등을 닮아서
그림자만 방생한 저녁답
별빛 움트는 소리만이 한 우주를 열며
아껴 먹을 풍경을 내장산에 두고 가란 듯
물의 중심 흔든 허물을
법고의 범종소리로 새기라 하지요
제1회 전국 정읍사랑 시(詩) 공모전 입상자 발표
* 입상자 성명의 가나다 순.
한 사람이 여러 편 중복 입상한 경우에는 상위 1편만 뽑았음.
대상 눈 내리는 정읍 들판에 서서 / 최낙운 (정읍)
최우수상 연못을 읽다 / 황보람 (김포)
우수상 단풍미인 / 김영화 (서울)
우수상 각시다리 가는 길 / 이갑상 (정읍)
장려상 꽃의 혁명 / 박하성 (김천)
장려상 정읍을 지나다 / 최복무 (전주)
장려상 정읍의 가을 / 최형만 (여수)
장려상 물들다 / 한인숙 (평택)
입선 가자, 정읍으로 / 강우림 (목포)
녹두장군 나가신다 / 강은아 (인천)
정읍에 가면 / 고영금 (광주)
호남의 금강, 내장산을 오르며 / 고영석 (서울)
정읍사 / 권도연 (남양주)
구절초 / 권수아 (대전)
구절초의 기도 / 김금례 (인천)
정읍 / 김대민 (익산)
정읍 / 김도현 (함양)
당신의 계절 / 김명은 (서울)
정읍 / 김목 (광주)
단풍이 된 사람 / 김미나 (구리)
단풍 터널 속으로 / 김민지 (전주)
그리움의 사계 / 김상현 (대전)
녹두꽃 / 김수정 (정읍)
녹두 찬가 / 김수진 (서울)
정읍 / 김영욱 (남양주)
내장사 붉은 사과 / 김은철 (제천)
정읍사 답사(答詞) / 김인득 (전주)
정읍 그 맑은 물, 샘으로 솟아 / 김지영 (양산)
망부상, 그리움 훔쳐보기 / 김현묵 (서울)
정읍 / 김현태 (광주)
내장산 / 김혜정 (인천)
샘고을 시장 이야기 / 김희성 (광주)
벽련암 산사의 봄 / 박경춘 (정읍)
가을, 정읍 / 박경희 (창원)
사각기와무늬 / 박덕은 (광주)
마중물 부르는 밤 / 박종익 (고양)
하늘이 산다 / 배두순 (평택)
정읍사(井邑詞) / 설재훈 (인천)
황토현에서 부르다 / 안경희 (대구)
구절초 꽃 한 두름 / 오소후 (광주)
내장사 / 원기자 (서울)
정읍 별곡 / 유연준 (전주)
구절초 축제장에서 / 유영희 (파주)
정읍사 / 유지호 (서울)
정읍에 놀러 오지 않으시렵니까 / 윤국현 (함평)
구절초 익어가는 정읍에는 / 박진옥 (진주)
흔적을 찾아서 / 이순동 (목포)
외앗날 / 이은영 (울산)
피향정 연가 / 임창선 (부천)
구절초 속에서 만나는 정읍 / 전대진 (목포)
녹두꽃은 붉었다 / 정덕길 (대구)
정읍애(愛) / 정설연 (서울)
내장사 연가 / 정성수 (전주)
쌍화차를 마시며 / 주경하 (정읍)
정읍 실록(井邑實錄) / 채산아 (고양)
피향정(披香亭)의 선비들 / 허정진 (함양)
무성서원 / 홍영수 (부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