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9일 (금) 촬영
청와대 본관 세종실과 인왕실에서는 청와대 개방 1주년을 맞아 전 대통령들을 추억할 수 있는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이 입었던 한복이 제일 앞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영문타자기.
한국 최초로 개발한 항공기 '부활(復活)호" 모형.
1953년 공군기술학교 정비교육대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항공기에 이승만 대통령은 '부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54, 4, 3).
이 대통령은 6, 25전쟁 동안 군의 전력, 특히 공군력 부족에 큰 아쉬움을 느꼈다.
부활이라는 이름에는 그의 염원과 의지가 담겨 있다.
윤보선 대통령
윤보선 대통령의 여행용 가방과 에든버러대학 재학기념패,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약하던 1921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전공은 당시 유행했던 정치학, 법학이 아닌 순수과학인 고고학이다. 가방은 중국, 일본, 유럽 등 그의 많은 해외 경험을 말해준다.
구 본관 청기와 / 1920 - 30 / 30 x 30 x 9, 박관용.
1993년 헐린 청와대 구 본관(1948~1991년 사용)에서 유일하게 남은 청기와.
박정희 대통령
파독 광부의 헬멧, 파독 간호사의 청진기, 1960년대 박정희 정부는 독일 (당시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대규모로 파견했다. 이 물품에는 가난 극복과 외화 획득을 위한 감동과 투혼의 사연이 담겨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 컬럼비아대학 전자공학과 교수인 김완희 박사에게 쓴 귀국 요청 손편지.
최고 권력자와 세계적인 전자공학자의 의기 투합은 한국 전자공학 발전의 본격 출발점이 됐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는 1965년 박 대통령과 존슨 미국 대통령의 한미 동맹 확장의 산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쓰던 각궁(角弓,뿔활)과 화살, 화살을 담는 전통(箭筒, 화살통)
그는 충남 아산의 현충사(충무공 이순신 사당)를 찾을 때마다 취미인 활 쏘는 시간을 가졌다.
전통 아래쪽에 이순신 장군의 진중(陳中) 한시가 각인돼 있다.
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풀과 나무가 안다)
박정희 대통령이 현장 시찰 때 갖고 다닌 드로잉 수첩과 망원경, 경부고속도로 건설 구상이 스케치로 그려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애용하던 카메라, 사진 찍기 대상은 다양했다.
그의 카메라 앵글에는 청와대의 일상과 가족, 겨울의 대관령 등 풍광 뿐 아니라 국정 현장이 포착 됐다.
이탈리아 이젤, 1970년, 100 x 100 ㅌ 150,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최규하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의 사저에 걸려 있던 한자 문패,
최규하 대통령은 물건을 버리지 않았다. 1950년 대 생산된 선풍기,
'골드스타'(LG의 전신 금성) 로고가 부착된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전화기, 각종 필기구 및 문방용품까지 보관했다.
문패도 그중 하나다. 그 물품들은 시대상을 담은 역사의 기록이 됐다.
1971년 6월 박정희 대통령이 5년여 간의 외무부 장관을 마친 최규하에게 준 공로패, 최규하 대통령은 농림부에서
공직을 시작했으며 1951년에 외교부로 부처를 옮겼다. 박정희 대통령은 최규하의 성실, 과묵, 절제의 자세를 높이
평가 했다. 그는 대통령 외교특별보좌관을 거쳐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최규하 대통령이 1980년 5월 샤베르 쿠웨이트 국왕으로부터 선물 받은 은제 모형 돛단배.
그는 우리 국가 원수로는 최초로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를 방문했다.
그의 짧은 대통령 재직 중에 남긴 원유 확보를 위한 현장 정상외교의 흔적이다.
최규하(1919, 7, 16 ~2006, 10, 22), 제10대 대통령(1979~1980)
최규하 검소함의 절정 연탄보일러를 끝까지 때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1979년 국무총리 최규하는 강원도 장성 탄광의 막장에 들어 갔다. 그는 "여러분들이 힘들여 캔 탄을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때겠다"고 했다. 지금은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서울 서교동 최규하 가옥'에는 서민적 체취가 남아 있다.
최규하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연탄보일러를 때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응접실에는 오래된 에어컨을 달았다. 장남이 미국에서 쓰다가 가져온 것이다.
그 집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촬영 장소였다. 그의 검소함은 절제와 꼼꼼함으로 표출됐다.
1979년 12, 12 쿠데타 때다. 최 대통령은 신군부의 정승화 육참총장 체포 결재를 요구받았다.
그는 서류에 서명 시간을 적어 넣는 꼼꼼함으로 후일에 대비했다.
전두환 대통령.
1981년 세계권투평의회(WBC) 서울 총회를 개최한 한국권투위원회가 만들어 전두환 대통령에게 선물한 기념패,
전 대통령은 국정운영에 있어 '스포츠와 국력'의 관계를 중시했다.
재임 중 열린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선수단은 복싱 12체급 전 종목 금메달을 석권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썼던 봉황 장식이 있는 방한모, 1982년 1월 그는 6년 만에 야간통행금지 해제 조치를 발표했다.
통금 조치 이후의 현장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방한모를 쓰고 경찰서를 돌았다.
싸인 축구공 / 1985년, 지름 22, 대한축구협회.
노태우 대통령
1988년 9월 17일 잠실 주 경기장에서 열린 제24회 서울올림픽 대회 개회식을 장식한 굴렁쇠.
노태우 대통령이 5공화국 시절부터 열정을 쏟은 88올림픽에는 소련, 중국과 동유럽 공산 국가들이 대거 참가 했다.
이전의 모스크바, LA의 반쪽 올림픽과 달랐다. 이어령 선생의 상상력이 담긴 굴렁쇠 소년은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노태우 대통령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중절모,
199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현 러시아) 대통령은 양국 수교에 합의했다.
그 정상회담은 노 대통령의 북방외교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과시하는 장면이었다.
중절모는 6개월 뒤 노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받은 것이다.
전통 관악기 / 노재현.
인왕실.
김영삼 대통령.
대도무문
1993년 청와대 상춘재, 김영삼 대통령은 '大道無門(대도무문)' 붓글씨를 쓰고 지켜보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뜻을 묻자 박진 통역비서관(현 외교부 장관)은
"큰길에는 문이 없다(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스타일로) "고속도로엔 톨게이트가 없다(A freeway has no tollgate)"라고 비유를 덧붙이자
클린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철거한 옛 총독부 건물의 대리석으로 만든 기념석.
김 대통령의 삶의 주요 구성요소인 단호한 역사의식이 작용하였다.
1926년 건립한 조선총독부는 해방 후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였다.
조깅화 / 20.5 x 27.5 x 9.5.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
김대중 대통령
2000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노벨평화상 메달과 기념주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리고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업적을 기렸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2000년 6월 김 대통령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한 정상회담을 했으며,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다.
2002년 월드컵 응원을 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썼던 붉은 색 모자. 4강 신화를 이룬 현장에 김 대통령도 '붉으 악마'가 돼
'대 ~한 민국!'을 외쳤다. 거스 히디크 당시 한국 대표팀 감독은 2022년 인터뷰에서
'16강 전 전날 선수들의 군 면제를 시켜주겠다는 김 대통령의 전화를 직접 받았다"고 비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삼성 휴대전화.
1998년 6월 김 대통령은 빌 게이츠와 소프트뱅크 사장 손정의와 만났다.김 대통령이 IMF 상황 극복을 위한 조언을 구하자
두 사람의 답변은 같았다. 브로드밴드(초소속인터넷).
직후 대통령령으로 IT기본법'이 제정되고, 전국 모든 학교에 인터넷 회선이 깔렸다.
원예 가위 / 11.5 x 19 x 2. 김대중도서관.
자전거 헬멧 / 1999, 21 x 25 x 16. 김상헌.
노무현 대통령
2003년 4월 11일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문무대왕함 진수식에서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진수선을 자르는데 썼던 기념 도끼.
노 대통령은 축하 연설에서 "제2의 국토인 영해를 지키고 평화와 번영의 바닷길을 수호하는 신성한 임무를 완수해 달라"고 했다.
2004년 12월 자이툰 부대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장병들에게 선물한 기념 시계,
한국과 현지(이라크) 시간을 함께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프랑스 공식 방문을 마친 뒤 비행기의 기수를 돌렸다.
최고 통수권자의 예고 없는 방문에 병사들은 환호 했다.
이병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쓰던 테니스 라켓, 테니스는 대통령들의 운동 취미에 많이 등장 한다.
"테니스 대회를 했다면 어느 대통령이 우승했을까"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관저 침실을 보고 "테니스를 쳐도 되겠다"고 비유할 정도로 테니스를 좋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원래 안경을 쓰지 않았다. 2010년 2월 백내장 수술 후 눈 보호를 위해 1~2주 안경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EBS를 방문해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한 여고생이 "안경을 쓰시니까 더 멋있다"고 조언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안경과 리더십 이미지'를 고민했다. 그는 이후 안경을 계속 썼다.
2011년1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던 당시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가 받은 국민포장.
이명박 대통령은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을 위한 '여명작전' 때 청해부대에 협조하다
중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국민훈장 동백장)과 이국종 교수(국민포장)를 격려 방문하고 나중에 훈, 포장을 수여 했다.
박근혜 대통령
2016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남수단(에디오피아 옆)에 파병된 한빛부대 장병들로부터 받은 소형 실내등 '한빛정'
부대 장병들이 만든 이 기념품은 '조국을 위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박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장병들을 초청해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진짜 주인공은 여러분이다. 노고에 깊이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한빛부대 열정을 남수단의 평화로! 대한민국 한빛부대
박근혜 대통령의 필체가 담긴 노트 사본.
박근혜 대통령이 쓰던 누비 공예 지갑,
2013년 3월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에서 박 대통령이 누비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후 '박근혜 누비 지갑'은 인기를 끌면서 시중에 품절 사태를 낳았다.
2014년 12월 23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 완공식 기념 식수를 하면서 썼던 삽,
박 대통령은 "세종청사는 국토 균형발전의 상징"이라고 했다.
<나의 어머니 육영수> , 1999, 15.5 x 22.5 x 1.5
저도 휴가 , 2013
문제인 대통령
2020년 5월 대통령 취임 3주년을 기념해 만든 등산스틱,
문제인 대통령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을 정말 좋아한다.
거의 산악 유전자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라며 등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발행한 2,000원 기념은행권과 마스코트 수호랑.
기념은행권 앞면엔 스피드 스케이팅의 역동적인 경주 모습이,
뒷면에는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가 그려져 있다. 호랑이는 마스코트로 등장했다.
2018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선물 받은
앤디 워홀의 1983년 판화 작품 '시베리아 호랑이'
팝아트 거장 워홀은 이 작품을 포함하여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 시리즈 10종을 그렸다.
첫댓글 역사의 산실
가볼만한
청와대 설명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