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매덕스 브라운 (Ford Madox Brown, 1821∼1893, 영국 화가) /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 1852~1855년, 82.5×75㎝, 버밍엄 미술관, 영국 버밍엄
자전거 경주 대회
요즈음 산골 초등학교 운동장은 학생 수가 적어서 썰렁하기 그지없습니다. 운동장만 썰렁한 것이 아닙니다. 수업을 하지 않는 교실에는 상담실, 벤드 연습실, 창의놀이 교실 등의 팻말이 붙어는 있지만 거의 비어 있습니다.
시멘트나 나무바닥이던 복도엔 카펫이 깔려 있고, 책상은 커다란 원형 테이블로 변했고, 칠판도 백묵 대신 마커를 사용하는 화이트보드칠판으로 바뀌었습니다. 수업환경만 좋아진 것이 아닙니다. 등하교는 스쿨버스가 있어서 자가용처럼 타고 다닙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일곱 살짜리 1학년도 10리 길을 걸어서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놀다보면 하루 10리 길 정도는 예사로 걸어 다녔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요일이었습니다. 또래들 3명과 장터에서 놀다가 한 친구의 제안으로 읍내에서 열리는 자전거 경주 대회 구경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 시절 자전거를 주로 타는 사람들은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파출소 순경, 출장을 다니는 면서기,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배달하는 술 배달부, 살아 있는 돼지를 새끼로 묶어서 자전거 짐받이에 싣고 다니는 돼지장수 정도였습니다.
면소재지 동네에서 자전거대회가 열리는 읍내까지 거리는 40리가 넘는 17km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무작정 신작로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길가에 있는 나뭇가지를 꺾어 칼싸움을 하고, 장난을 치고 도망치면 쫒아가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걸었습니다.
무려 3시간 만에 도착한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대목 장날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운동장에는 별의별 장사꾼들이 다 와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울타리 쪽에 진을 치고 있는 차일 밑에서 막걸리며, 국밥이나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주머니에 1원짜리 하나 없이 무작정 읍내까지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른들이 국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까 40리 길을 걸어온 뒤라서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 데다 빵 한 개 사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니까 배가 더 고팠습니다. 배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동네에 사시는 어른들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날은 왜 그렇게 더운지 늦봄인데 한여름처럼 더웠습니다. 아이스케이크 장사는 아이스케이크통 뚜껑을 닫기가 무섭게 다시 열어서 팔고 있었습니다. 배는 고프지, 날은 덥지 동네 어른들은 보이지 않지 대책 없이 읍내까지 걸어온 후회가 눈물이 나도록 밀려왔습니다.
집에 있었으면 점심을 먹고 산이나 들로 놀러 다닐 시간에 사람들 틈을 헤집고 다니고 있자니 점점 기운이 빠졌습니다. 웬만하면 동네 어른들을 만날 것도 같은데 운동장을 몇 바퀴 돌아도 한 분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물에서 물로 배를 채우고 나니까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졌습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물가에 앉았습니다. 흙먼지로 범벅을 한 얼굴에서는 땟국이 흐르고 있었지만 닦는 것도 귀찮았습니다.
“어! 느덜이 여길 웬일이냐?”
친구 중 한 명이 배고픔과 피곤에 지쳐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누군가 앞에 멈췄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술 배달하는 아저씨였습니다. 우리는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깜짝 놀랐다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구경 왔슈.”
“그려? 덥지. 아이스케이크 한 개씩 사 줄까?”
술 배달하는 아저씨는 야속하게도 점심 먹었느냐는 말은 묻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곁을 지나가는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불렀습니다.
“이따 장거리 경주하는 거 보고 갈 테지?”
술 배달하는 아저씨는 뭐가 바쁜지 아이스케이크 값을 지불하자마자 바쁘게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행여 한 방울이라도 떨어트릴까 봐, 아이스크림 밑에 손바닥을 대고 조심스럽고도 황홀하게 먹어치웠습니다.
아이스케이크를 먹고 나니까 위장이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 경기가 재개 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트랙 근처로 몰려갔지만 우리는 구경 따위는 포기해버렸습니다. 점심을 얻어먹는 건 글렀다. 지금이라도 집에 가느냐? 동네 어른들을 찾아서 버스비라도 얻어서 편하게 가느냐, 세 명이 의논을 했습니다. 결론은 동네 어른들을 요행히 만났다 치자. 술 배달하는 아저씨처럼 아이스케이크나 한 개씩 손에 들려주면 배가 고파서 집에 가는 길이 더 힘들게 된다는 쪽으로 났습니다.
세 명은 힘없이 교문 쪽을 향해 걸었습니다. 사람들 틈을 헤집으며 교문 앞으로 가다가 동네 어른을 만났습니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홍시처럼 빨간 얼굴로 우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구경 안 하고 어딜 가는 거냐?”
“지, 집에 갈려고유…”
“차비는 있냐?”
“어, 없슈…”
자전거대회 구경 가자고 제안을 했던 친구가 눈을 반짝이며 얼른 대답했습니다. 그분은 주머니에서 십 원짜리 석 장을 내미셨습니다. 버스 정류소가 있는 쪽을 손짓하시며 거기서 버스를 타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이걸로 짜장면 사 먹고 집에는 걸어서 가자.”
돈을 받은 친구가 교문을 나서자마자 제안했습니다. 다른 친구는 말이 없었고, 저는 밥은 집에 가서 먹고 버스를 타고 가자고 말했습니다. 교문 앞에서 한참을 다투다 나중에는 가위바위보로 결정을 하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짜장면을 사 먹자는 친구가 가위를 내고 저는 보를 냈습니다.
우리는 쭈빗 거리는 걸음으로 짜장면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니까 짜장면 가격이 15원씩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박수를 쳐야 했는데 짜장면 냄새를 맡은 뒤라서 짜장면을 먹을 수 없다는 점이 조금 서운했습니다.
“그냥 앉아라.”
주인아주머니는 우리들의 몰골이 불쌍해 보였던지 짜장면 가격을 10원씩만 받겠다고 했습니다. 주인아주머니의 배려로 우리는 짜장면 한 그릇씩을 말 그대로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습니다.
짜장면을 먹고 난 우리는 막상 40리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막막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 어쨌든 걸어가기는 가야 하는데 얼른 일어서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빈 짜장면 그릇을 앞에 두고 보리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눈치를 봤습니다.
그때 밖에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얼른 뛰어나가 보니 자전거를 탄 청년들이 힘차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자전거가 달리는 쪽은 우리 동네 가는 쪽이었습니다.
신사용자전거, 짐자전거를 탄 고등학생, 청년, 아저씨, 아주머니 등 나름대로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채우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술 배달하는 아저씨도 모자를 거꾸로 쓰고 힘차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술 배달 아저씨를 따라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퍼온 글] / 출처; 2019.12.18 06:58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필자소개; 한만수(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 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게발선인장
'비운의 동(東)투르키스탄'
중국 북서쪽의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는 고대 중국인들이 ‘서역’이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신장(新疆)이라는 지명은 ‘새로운 강토’라는 뜻으로 18세기 청나라가 이곳을 정복한 뒤 붙인 이름이다. 주민의 주류는 투르크 계통 유목민인 위구르족이다. 약 1000만 명에 달하는 위구르인은 투르크어계인 위구르어를 쓴다.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다.
이들은 신장을 ‘동(東)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른다. ‘동투르키스탄’은 위구르인들이 두 번이나 세웠다가 잃은 ‘비운의 나라’ 이름이다. 이들은 1933년 ‘동투르키스탄 이슬람공화국’이라는 독립국을 설립했다가 몇 달 만에 소련의 지원을 받은 군벌에 패망했다. 1945년에도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을 세웠으나 1949년 중국에 병합됐다.
한동안 숨죽이고 지내던 이들의 민족의식이 되살아난 것은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이 독립한 뒤 위구르족 분리주의 운동이 싹트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가장 경계한 것은 위구르인들이 종교를 토대로 독립운동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슬람교육과 예배를 금지하고,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 대신 공산당 이론을 외우도록 했다. 중국어 교육도 의무화했다. 독립운동에 나서는 반군을 색출하기 위해 당 간부들을 2개월마다 1주일 이상씩 위구르족 가정에 들어가 살면서 감시하게 하는 ‘일가친(一家親) 정책’까지 동원했다.
이에 반발하는 주민 100만여 명을 수용소에 감금했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면서 위구르 탄압은 국제적인 인권 문제로 떠올랐다. 엊그제는 터키계 독일인인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선수 메수트 외질이 이 문제를 비판했다가 중국 당국의 생중계 취소 등 거센 역풍을 맞았다. 앞서 홍콩 시위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중국이 미국 농구 중계를 중단했던 것과 비슷한 사태다.
이를 두고 “중국이 ‘대국몽(大國夢)’은커녕 ‘좁쌀몽’으로 전락했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중국은 외교부까지 나서 으름장을 놓고 있다. 위구르인들로서도 경제력을 다 빼앗긴 데다 자치구 내 중국 한족 비율마저 절반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당장 독립을 쟁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래저래 슬픈 ‘동투르키스탄 후예’들의 운명이다.
[퍼온 글] / 출처; 한경닷컴 / 고두현(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19.12.18 00:17
애기동백꽃
글로벌호크
항공의 역사는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됐고, 기술혁명이 대개 그랬듯 첫 사용자는 군(軍)이기 십상이다. 18세기 말 나폴레옹도 항공의 시작인 유인풍선, 즉 기구(氣球)가 나오자마자 군사적 활용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비행선, 비행기로 발전하면서 항공기는 처음엔 정찰용으로 이후 폭격용으로 이용됐다. 현대전에서, 특히 핵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전력이 24시간 전천후 감시와 실시간 경보를 가능케 하는 조기경보・감시능력이지만, 한국군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한국군의 감시능력은 휴전선 중심의 단거리 전술정찰 수준.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는 만큼 그 능력을 높일 수단이 바로 고고도 전략정찰기다.
▷미국 전략정찰기 U-2는 냉전시기를 상징하는 항공기다. 냉전 초 공군이 아닌 중앙정보국(CIA)이 개발해 냉전 종식과 함께 생산이 종료됐고,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대표적 장수기종이다. 1960년 미소 정상회담을 취소시킨 U-2 격추 사건과 쿠바 미사일 위기 때 활약상은 냉전사에 굵직하게 기록됐다. 최근 북한의 도발 징후에도 U-2는 최신 정찰기들과 함께 한반도 상공에 나타났다. U-2는 가늘고 긴 경량의 동체에다 극단적으로 긴 날개를 단 탓에 특히 이착륙이 매우 어렵다. 조종사는 우주복 같은 특수복을 입은 채 비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비행해야 하는 극한직업이다.
▷노후한 U-2를 대체하기 위해 무인기(UAV)로 개발된 것이 고고도 무인정찰기 RQ-4 글로벌호크다. 20km 상공에서 레이더와 전자탐지장비로 지상 30cm 크기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다. 작전반경은 3000km로 30시간 이상 운용이 가능해 인공위성에 버금가는 역할을 한다. 특정 표적과 이동 표적에 대한 정밀 감시가 가능해 북한의 주요 기지와 전력 이동을 추적하는 데 필수적이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도입을 추진했으나 미국의 판매 거절로, 이후엔 레이더장비의 성능 미달로 지연되는 등 10여 년의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 들어오게 됐다.
▷군은 글로벌호크 도입과 관련한 행사는 물론 인도 날짜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어제 스텔스 전투기 F-35A 전력화 행사도 비공개로 열었다. 그러니 당장 “아무리 민감한 시기라지만 북한 눈치를 너무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두 무기체계 모두 고도의 보안성을 요구하는 국가급 전략무기인 만큼 요란한 홍보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군의 설명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잇단 도발 협박에 가뜩이나 국민적 안보 불안이 큰 터에 그런 우려를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퍼온 글] / 출처; 동아일보 / 이철희(동아일보 논설위원) / 2019-12-18 03:00
애기동백
'읍참마속'의 속사정
[전쟁과 경영]
흔히 사사로운 정에서 벗어나 대의를 위해 측근을 쳐내는 일을 두고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사자성어를 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이 1차 북벌 실패의 결정적 요인인 가정전투 참패의 책임을 물어 총애하던 장수인 마속의 목을 베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보통 자신이 믿던 측근조차 눈물을 머금고 쳐낸 제갈량의 결단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실제 읍참마속이 벌어졌던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제갈량의 결단보다는 애초 전투경험이 전무한 마속을 선봉장으로 세운 제갈량의 실책이 더 두드러진다. 제갈량이 이런 무리한 인사를 단행한 이유에는 마속이 갖고 있는 정치적 기반이 한몫 했다. 마속은 제갈량과 함께 촉한 정권 구성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형주(荊州)'란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로, 동향인 제갈량과 이전부터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사진= 인천 차이나타운 삼국지 벽화거리)
실제 유비가 세운 촉한이라는 나라는 당대 중국의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든 연립정권이었다. 일단 유비와 관우, 장비 삼형제는 오늘날 베이징(北京) 일대인 탁군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후 유비세력의 이동경로를 따라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등용됐다. 오늘날 장쑤성(江蘇省) 일대인 '서주(徐州)', 후난성(湖南省) 일대인 '형주', 쓰촨성(四川省) 일대인 '익주(益州)' 등 수천 킬로미터씩 떨어진 지역 인사들이 유비 휘하로 들어와 촉한을 세웠다. 오늘날에도 이들 지역은 통역 없이 대화가 안될 정도로 말과 문화가 천양지차다.
제갈량 또한 마속과 같은 형주사람이었다. 제갈량은 마속의 형인 마량과도 형제처럼 지냈다. 이런 배경을 대신들이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유비가 마속을 두고 말만 앞서는 인물이라 크게 쓰면 안된다는 유언까지 남겼으나 제갈량은 유비 사후 마속을 중용했다. 가정전투는 마속이 제갈량의 계획대로 수비만 했다면 승리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공을 인정받기 좋은 선봉장 자리였다. 야전 경험조차 전무하고 행정만 도맡았던 인물을 선봉장으로 썼던 만큼 의도적인 자기 지역의 측근 챙기기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1차북벌 실패 당시 제갈량은 마속을 죽이지 않고는 단순히 군율이 서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향후 국정운영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제갈량이 북벌 실패 이후 자신의 벼슬 또한 3등급 깎고 한동안 칩거에 들어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능력이나 경험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벌인 측근챙기기용 인사가 얼마나 무서운 실패로 돌아올지 보여줬다는 점이 읍참마속의 진정한 교훈으로 남았다.
[퍼온 글] / 출처; 아시아경제 / 이현우(아시아경제신문 기자) / 2019.12.17 13:18
카틀레아
‘타다’ 너머
이종필의 제5원소
고전(classic)과 현대(modern)를 가르는 기준에는 여럿이 있겠지만 물리학에서는 이 기준이 비교적 뚜렷하다. 현대물리학은 상대성이론 및 양자역학과 함께 시작했다. 시기적으로도 우연히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태동했다. 고전물리학과 대비되는 가장 뚜렷한 특징을 꼽으라면 현대물리학은 인간의 감각 경험과 직관을 넘어서는 영역을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자연을 정확히 이해하고 기술하기에는 우리 인간의 언어와 감각과 경험이 대단히 부족함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에게 익숙하고 편리했던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이 이 우주를 기술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음을 알아냈다. 우주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이 우주의 근본적인 성질을 품고 있는 우주 본연의 언어를 이용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찾은 우주 본연의 언어는 광속이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우주 본연의 언어인 광속으로 인간의 언어인 시간과 공간을 재해석한 이론이다.
비슷한 일이 원자 이하의 세계에서도 일어났다. 19세기까지 잘 써 왔던 파동이나 입자라는 개념은 미시세계를 돌아다니는 전자나 빛 앞에 무력했다. 게다가 모든 게 확률론적이라니. 고양이의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다는 양자 중첩이나 유령 같은 원격작용을 사주하는 얽힘 같은 현상은 우리 일상의 거시적인 세상에서는 결코 경험해 보지도 못했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도 힘들다. 20세기 물리학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과학자들이 인간 언어와 감각 경험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규칙을 기꺼이 받아들여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 과정을 생각의 회로를 바꿀 정도의 지적 고통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거시적인 현상에 익숙한 우리의 감각과 언어와 사고방식은 최소한 수십만 년에 걸친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의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생각의 회로를 바꾸는 일은 진화의 압력을 이기는 일이다. 배고픔을 참으면서 다이어트를 해 본 사람이라면 진화의 압력을 이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이다. 현대물리학이 위대한 이유는 기나긴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진화의 압력을 거슬러 인류 자신을 탄생시킨 이 우주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 줬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중구에서 운행 중인 타다. 이한호 기자
고전과 현대의 차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물건이 바로 핵무기였다. 핵무기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집약체이다. 고전과 현대의 차이는 재래식 폭탄과 핵무기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는 지금은 여러모로 한 세기 전의 과학계와 많이 닮았다. 기존의 문법과 규칙이 무력화되고 있으나 새로운 패러다임이 완전히 들어서지 못한 과도기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 이전과 이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를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핵무기 이전과 이후가 다르듯이 스마트폰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 아마도 인공지능은 훨씬 더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요즘 한참 논란이 일고 있는 ‘타다’는 택시인가, 아니면 렌터카인가? 쿠팡은 물류 기업인가, IT 기업인가? 비트코인은 화폐인가, 21세기의 튤립인가?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은 택시니 렌터카니 물류 기업이니 화폐니 하는 말들이 타다와 쿠팡과 비트코인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다. 슘페터의 유명한 말처럼 “마차를 연결한다고 기차가 되지 않는다.”
타다는 타다이고 쿠팡은 쿠팡이다. 물론 나는 타다 서비스가 혁신적인 공유경제의 아이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택시라는 운송업의 패러다임 속에서만 타다를 규정하려 하면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남게 될지 걱정이다. 바로 다음 문을 열고 나가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기다리고 있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때는 더 이상 지금의 택시나 운송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대단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미 1년 전 미국에서는 자율주행차 상용서비스가 시작됐다. 아마 택시와 자율주행차의 차이는 재래식 폭탄과 핵무기의 차이보다 더 크지 않을까? 이른바 ‘타다 금지법’으로 알려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은 플랫폼 운송 사업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긴 하지만 기여금 납부나 면허총량제 등 큰 틀에서는 택시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택시라는 언어로 해결책을 찾는 것과 인공지능 및 자율주행의 언어로 새로운 규칙을 모색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낼 것이다.
택시기사들의 생존은 중요한 문제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입되면 운송업 전체에서 실직자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선의만으로는 이들을 구할 수 없다. 오히려 변혁의 소용돌이 속으로 한꺼번에 쓸려가 버릴 수도 있다. 지금의 여객법 개정안으로 이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유효기간은 길어야 10년이다. 비단 타다 문제만 이럴까 싶어 걱정이다. 정책의 방향은 현재에 발을 딛고 미래를 향해야 한다. 아쉽게도 여의도 시계는 거꾸로 가는 것만 같다. <중략>. 내일 모레면 벌써 2020년이다.
[퍼온 글] / 출처; 한국일보 / 이종필(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 2019.12.17 18:00
포인세티아
24층서 떨어진 고양이의 生死는?
[과학을 읽다]
담벼락을 타는 고양이를 보신적 있으신가요? 2~3미터 정도의 담 위에서 훌쩍 뛰어내리는 것은 별로 어려워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양이가 2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지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 아주 높은 건물에서 추락한 고양이가 살아남은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2014년 3월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 24층에서 추락한 고양이가 멀쩡한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생후 6개월 된 영국산 아비시니안종 암컷 고양이 '살구'는 베란다에서 혼자 장난치다 밖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깜짝놀란 고양이 주인은 황급히 1층으로 내려갔는데 살구는 아파트 화단 옆에 웅크리고 앉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진찰한 결과 살구는 골절상도 없고, 쉽게 치료할 수 있는 폐출혈 증세만 나타나 며칠이 지나 바로 퇴원했다고 합니다.
고양이는 관절이 아주 유연하고, 균형감각도 뛰어납니다. 30층이 넘는 고층아파트에서 추락했는데도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해외에서는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진 고양이가 생존한 경우도 있습니다. 2008년 12월 호주 골든코스트의 34층 아파트에 살고 있던 고양이 '부두(Voodoo)'가 아파트에서 떨어집니다. 평소 아파트 발코니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것을 좋아했다는데 이날은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셈이지요.
고양이가 갑자기 사라지자 주인은 추락했음을 깨닫고 죽음을 예감했는데 너무 생생한 모습으로 환단에 앉아 있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화단의 풀숲 사이에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부두의 털이 곳곳에 남겨져 있었지만 부두는 큰 이상이 없었습니다. 동물병원에서도 떨어질 때 나뭇가지에 긁힌 가벼운 찰과상 외 골절이나 장기파손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무려 60~85m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진 동물이 골절상도 없이 생존했다는 말입니다. 고양이들은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도 어떻게 생존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정위반사(Right reflex)'에 있습니다.
24층에서 떨어졌지만 살아난 고양이 '살구'.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한 학자가 고층건물에서 떨어진 후 동물 응급센터를 방문한 고양이 132마리를 대상으로 데이터를 수집・분석합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90%의 고양이가 생존했고, 37%의 고양이만이 응급조치가 필요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생존한 고양이 중에는 32층에서 떨어져 이빨이 부러지고 타박상을 입었지만 48시간 뒤에 생생한 상태로 퇴원한 고양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한 학자는 고속 촬영장비를 동원해 고양이가 추락할 때의 낙법을 분석했습니다. 고속 촬영된 사진을 보면, 뒤짚혀서 떨어지던 고양이가 몸의 앞부분을 시계방향으로 회전하자 몸의 뒷부분은 그 반대로 회전합니다. 이 모습이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보여주는 정위반사라고 합니다.
정위반사는 고등 척추동물이 추락시 머리를 항상 올바른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는 반사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높은 곳에서 거꾸로 떨어져도 머리를 올바른 상태로 유지하려고 자신의 몸을 비틀게 됩니다. 이때 떨어지면서 팔다리를 펴 공기가 닿는 표면적을 넓혀 공기의 저항을 받아 떨어지는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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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정위반사'를 고속 촬영으로 잡은 사진.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그런데 이런 정위반사가 이뤄지는 시간은 0.2~0.5초 사이의 찰나라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공기의 저항을 받아들여 낙하의 충격을 줄일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필요합니다. 정위반사가 이뤄지는 시간은 대략 고양이가 6~7층에서 떨어질 때 걸리는 시간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6~7층 이하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고양이는 오히려 큰 부상을 당하거나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낮은 곳이 오히려 고양이에게는 독이 되는 셈입니다. 최근 건물 옥상이나 6~7층 이하의 아파트에서 고양이를 키우면서 추락 방지장치를 하지 않는 가정이 많습니다.
어느날 고양이가 사라졌는데 나중에 화단 근처에서 사체로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합니다. 반려묘족이 늘고 있습니다. 난간타기를 즐기는 고양이가 집에 있다고요? 추락 방지장치를 반드시 설치하셔야 합니다.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생존할 가능성이 사람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불사신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생존 여부를 실험한다는 이유로 높은 곳에서 고의로 고양이를 떨어뜨리는 행위는 결코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퍼온 글] / 출처; 아시아경제 / 김종화(아시아경제신문 기자) / 2019.12.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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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꽃
데스 스트랜딩 - 우리는 네트워크다
[게임의 법칙]
◆ 모든 연결은 근본적으로 물리적 연결이다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 읽었던 뱀장어가 나오는 동화가 있었다. 아기 뱀장어는 너무 길어 머리와 꼬리가 보이지 않는 긴 엄마 뱀장어의 몸통 옆에서 살았는데, 엄마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유로 긴 여행을 시작한다. 검고 기나긴 몸통을 따라 끝까지 헤엄쳐 태평양을 건넌 아기 뱀장어는 끝내 엄마 얼굴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 기다란 엄마 뱀장어는 사실 뱀장어가 아니라 국제전화를 이어주는 거대한 통신 케이블이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동화였으니 국제전화 케이블이 등장했지, 요즘이었다면 그 케이블은 아마도 해저 광케이블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인터넷으로 글을 읽을 수 있고 아마존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배경에는 튼실하게 전 세계를 이어주는 거대한 해저 광케이블 연결망이라는 물리적 기반이 존재한다.
한국으로 이어지는 해저 광케이블 지도. 인터넷은 마치 가상공간의 마법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 물리적인 연결을 필요로 한다.
네트워크라는 개념은 다소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다가오지만, 그 본질은 대단히 물리적 기반에 기초한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저 네트워크망이 물리적으로 끊어지면 실제로 대한민국 인터넷이 순식간에 마비될 수 있다. 우리는 늘 사이버 스페이스를 가상공간이라고 부르지만 그 연결 기반은 여전히 물리적 연결에 근거한다.
◆ 해저케이블, 대륙횡단철도, 그리고 카이랄 네트워크
'데스 스트랜딩'이 이야기하는 연결은 정신적・정보적 연결이면서 동시에 마치 오늘날 해저케이블처럼 실제로 물리적 연결을 요구하는 네트워크다. 주인공 샘 포터는 연결이 끊어진 각 셸터와 센터를 직접 찾아가 연결하며, 구성된 네트워크로 전송이 불가능한 실물은 직접 배송해 연결한다. 이 개별의 연결 과정은 무너진 미국 동부에 있는 캐피털 시티에서 시작해 대여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해변'이 존재하는 미국 서부를 향하며, 게임은 동부에서 서부까지를 이어가는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과 같은 전개를 취한다.
실제로 동서 간 연결은 미국 대륙을 상정할 때 이미 연결 그 자체로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으로 의미가 부여됐다. 1869년 5월 처음으로 개통된 미국 대륙횡단철도는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네브래스카 오마하까지를 잇는 2800㎞가 넘는 대연장을 자랑한다. 동부와 서부에서 서로 다른 회사가 각자 이어나가며 중부에서 서로를 연결한 이 대공사를 통해 미국은 비로소 서부를 개척이 아닌 영토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됐다('레드 데드 리뎀션 2'가 다루는 서부개척시대 말엽이 1899년에서 1900년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데스 스트랜딩'은 대륙횡단철도와 같은 의미에서 흩어진 미국 대륙을 다시 이어가는 과정을 이야기 전개의 중심축으로 삼는다. 철도의 연결과 동축・광케이블의 해저 연결, 그리고 가상의 물질인 카이랄 네트워크를 통한 연결까지 이 모든 연결은 공통적으로 연결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통합환경이 아니라 그 연결을 만드는 과정이 무척 험난하며, '데스 스트랜딩'에서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극복의 대상, 곧 난이도는 바로 이 건설의 험난함에서 온다.
◆ 연결의 인프라는 특정한 개인, 기업의 노력에 근거하지 않는다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플레이어가 달려야 하는 필드에는 평탄한 이동이라는 게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평야도 온통 바위투성이라 오토바이도 돌부리에 걸리기 십상이고 트럭 같은 경우는 아예 바퀴가 바위에 걸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국도를 제대로 깔기 전까지 모든 배송 루트는 험난하며, 아차 해서 등에 맨 짐이라도 쏟으면 화물이 피해를 본다. 후반부에 다가가면 대폭설이 쏟아지는 산마루를 올라야 하고, 올라갈 수 있는 루트를 찾지 못하면 산 중턱에서 눈만 맞으며 빙빙 도는 경우도 속출한다.
이 연결의 험난함을 돕는 것이 바로 다른 플레이어들의 설치물들이다. 온라인을 통해 연결되는 경우 '데스 스트랜딩'은 게임 안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미리 설치해 둔 여러 시설물을 게임 안에 등장시킨다. 절묘하게 건너갈 수 없는 지형에 놓인 다리 하나, 빙 돌아갈 필요가 없게 설치한 사다리 하나가 주는 고마움은 게임 안에서 직접적인 '좋아요'를 누르는 피드백을 통해 표현되며, 이 '좋아요'는 실제 게임 레벨업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험한 산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대신 누군가 미리 설치한 집라인을 타면 몇 초만에 정상까지 도달한다. 연결은 혼자 이뤄내는 것이 아니며, 별도의 보상이 없어도 이루어지는 상호부조를 통해 완성된다.
국도와 다리, 중간중간 타임폴을 피할 수 있는 셸터와 숙소, 후반부에 이르면 높은 산을 순식간에 돌파할 수 있는 집라인 설비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지형을 극복하는 다양한 연결수단은 '누군가 깔아둔', 혹은 '내가 직접 설치한' 개념으로 게임 안에서 나타난다. 자연은 근본적으로 연결에 호의적이지 않으며, 그 자연을 극복 대상으로 두고 이어져 온 것이 철도망 연결이고 해저케이블 연결이었으며 '데스 스트랜딩'의 카이랄 네트워크 연결이었다. 초창기 미국에서 철도 부설 노동에 종사했던 수많은 노동자, 해저케이블 설치와 보수를 위해 오늘도 밤낮으로 일하는 케이블 노동자, 카이랄 네트워크를 연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샘 포터는 험난한 연결을 수행하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초 인프라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선상에 선다.
베이스캠프를 토대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탐험대처럼, 험난한 지형을 뚫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게임은 편리한 연결을 만들기 위해 쏟아야 했던 노력이 결코 한두 사람의 개인적 노력이 아닌, 수많은 사람 간에 상호부조로 일어나는 것임을 상기한다.
◆ 이윤 없는 상호부조: 인터넷 초창기의 메타포
이 험난함을 뚫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뜻 보기엔 농담처럼 말하는 '쿠팡맨' 같은 배송업체 직원, 혹은 인터넷 설치기사와 같은 현대 노동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데스 스트랜딩'에서 연결에의 노동은 조금 더 이상적인 설정하에 놓인다. 이들이 서로 만들어가는 협동은 그냥 협동이 아니라 상호부조다. 게임 설정은 지속적으로 '포터'라는 그 연결의 매개자들이 특정한 기업에 소속돼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발적으로 움직이며 별도의 보수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플랫폼 기업에 속해 이윤하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점과 점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딱히 별다른 개인적 이익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기틀을 만드는 과정으로 게임 속 포터들이 설정된 것은 실제 인터넷상에서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쌓아 나가는 네티즌의 모습을 담아냈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요즘에 와서는 그러한 노력들이 여러 플랫폼 안에서 광고수익이나 게재료 등을 통해 개인의 보상으로 이어지고 있고 또 그 수익도 어마어마하지만, '데스 스트랜딩'이 바라보는 연결의 긍정적 측면은 그러한 네트워크 수익화가 아님이 포터라는 집단에 대한 설정을 통해 드러난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와중에 누군가가 자료를 모아 리스팅한 포스트를 작성하고, 위키피디아에 자발적으로 정보를 정리해 올리는 온라인 상호부조는 개인의 결과물에 머무르지 않고 그 자료를 딛고 나가는 다음 사람의 초석으로 기능하며 비로소 네트워크로서의 의미에 이른다.
◆ 우리는 네트워크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3부에 걸쳐 '데스 스트랜딩'이라는 게임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해 왔다. 정리하자면, 이 게임이 이야기하는 것은 연결이라는 이름이지만 조금 더 동시대적 구체성을 포함해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인터넷이라고 부르는 수단을 사용하게 된 뒤에 얻게 된 거대한 연결망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곧 '데스 스트랜딩' 주제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네트워크는 촘촘한 해저케이블이라는 물리적 기반하에 이뤄졌고, 그 설치 과정은 매우 험난했으며, 설치 이후 구성된 네트워크의 의미는 자발적이고 상호부조적인 네티즌의 이윤 없는 협조로 이뤄졌다. 그러나 그 네트워크는 단지 우리에게 긍정적인 의미만을 제공하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게임 속에서는 '뮬'이라는 존재를 통해, 게임 밖에서는 쉼 없이 쏟아지는 가짜 정보와 트롤링, 악플과 비난으로 서로 고립돼 가는 개별 그룹들의 변화를 통해 깨닫는다.
캐릭터의 선과 악을 떠나, 우리는 모두 새로운 연결의 시대를 살아가며 상호작용하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곧 네트워크다.
'데스 스트랜딩'은 그 연결된 전체에 대해 좋다 나쁘다는 식으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여러 메타포를 통해 게임은 '연결된 세계' 그 자체를 계속 은유하려고 시도한다. 연결하는 행위 자체도 개별 플레이어들을 고립시키기보다는 협력시킴으로써 이뤄지고, 모든 연결은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없으면 시간에 따라 결국 소모되고 부식된다. 그나마 남아 있는 가치판단을 종합하자면, 오늘날 우리 세계의 연결은 모든 구성원의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건설되고 유지되는 것이며 이러한 연결은 어떤 이상적인 지고지선이라기보다는 선과 악을 함께 품는 필연의 과정이라는 정도일 것이다.
이따금씩 인용되는 한자 '사람 인(人)'의 의미에 대해 두 사람이 서로 기댄 모습이라는 해석부터 연결된 사람들이라는 의미는 시작돼 왔다. 부족과 도시를 이루고 국가를 만들어 온 연결의 과정은 한편으로는 효율을 높이고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폭제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독과점과 전쟁을 부르는 참상이기도 했다. 과거의 연결이 걸어온 길처럼 오늘날의 연결 또한 맥락에서 다르지 않다. 자본과 이윤을 초월한 자발적 상호부조가 인터넷 위에 쌓아 가는 지식과 소통의 흐름은 타인을 몰래 비방하고 거짓된 이야기를 조작하는 일들과 함께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의 네트워크를 미래로 상상한 '데스 스트랜딩'은 카이랄 네트워크라는 소재를 통해 역으로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온 연결의 이야기를 되짚는다. 기쁨과 슬픔, 선과 악, 가능성과 좌절을 모두 포함하는 이 이야기는 그래서 한편으로 단순하다. 단절이 곧 멸종이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곧 네트워크로부터 살아가고 죽어가는 공동체적 운명에 놓여 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네트워크다.
[퍼온 글] / 출처; 매일경제신문 / 이경혁(게임칼럼니스트) / 2019.12.18. 06:03
백합
올해의 사자성어 '공명지조'
[신문과 놀자! / 피플 in 뉴스]
어느 날 여우가 두루미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여우는 자신이 먹기 좋게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담아 대접했죠. 부리가 긴 두루미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두루미는 여우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입이 긴 병에 음식을 담아 내밀었습니다. 부리가 없는 여우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 내용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먹기 편한 그릇만 고집함으로써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을 꼬집은 거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교훈을 줍니다. 나아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일깨워줍니다.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옛말도 있습니다.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끼워 맞춰 자기주장을 합리화한다는 뜻입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의 견해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15일 ‘교수신문’은 전국의 대학교수 10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습니다. 공명지조는 아미타경 등 여러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새로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 새의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납니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이에 질투심을 느낀 다른 머리가 화가 난 나머지 어느 날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어버렸습니다. 결국 이 새는 죽게 됐습니다.
동양화가 박준수의 ‘공명지조’
공명지조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는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자기도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어 선정하게 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공명지조는 정치권이 자기의 이익을 따라 편을 가르고 싸우는 것을 넘어 국민들까지 이 싸움에 동조해 분열하고 있는 현실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을 모르고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국회는 이미 그 정치적 기능이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피로감뿐 아니라 혐오감까지 느끼는 지경입니다. 계층 갈등, 노사 갈등, 남녀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간 갈등 등이 중첩돼 현실은 더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접점을 찾지 못하고 긴장이 높아지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핵 협상, 무역 갈등과 과거사 문제로 얽혀 있는 한일 간의 경색 국면도 공명지조와 같은 운명일지 모릅니다. 자기중심적 주장만을 되뇌고 상대방의 처지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공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지난해 선정됐던 사자성어는 ‘짐은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다’는 뜻의 ‘임중도원(任重道遠)’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는 ‘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선정됐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세월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파사현정이 이루어졌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임중도원의 현실은 여전합니다.
여우와 두루미 사례와 같은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채 지속되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나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상대가 공명지조와 같은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는 성숙한 정치 문화를 기대해 봅니다.
[퍼온 글] / 출처; 동아일보 / 박인호(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 2019.12.18. 03:04
Abstract Painting The Futuristic Peo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