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것만 햇수로 4년 차일 것이다. 그들을 처음 본 게 3년 전 도서관에서였으니 말이다. 올해 발령을 받아 고향으로 왔는데 그 젊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을 다니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걸 출퇴근 시간에 가끔 보게 된다. 그들이 내가 처음 도서관에서 보기 전부터 공부를 했으면 그들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4년 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는 늦은 밤 마음이 울적해 근처 해수욕장을 걷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공부를 마치고 기분 전환을 하려는지 거리가 먼 그곳까지 가방을 멘 채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 가고 있었다. 좀 더 걷다가 그가 근처 호텔 풀장 옆 도로 한쪽에 자전거 안장에 앉은 채로 멈춰 서서는 야외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카페 가수를 멀뚱히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가수는 둘째치고 그의 눈에 그 가수의 노래를 듣는 풀장 안 파라솔 탁자의 여유로운 휴가객들이나 모래사장에서 맥주를 마시는 젊은 남녀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난 그가 내뿜는 담배 연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한 편에서 9급 공무원이 그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할 만큼 가치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9급 공무원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까하는 의문도...
결혼에 대해 물어보면 결혼한 사람들은 대개 시댁이나 친정과의 관계, 양육비, 주택 문제, 자녀 교육 문제, 등 결혼은 고생문의 시작이다, 배우자 외모는 잠깐 뿐이다, 등등 결혼에 대한 냉정한 현실론을 펴는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결혼은 60억 인구 중에 단 두 사람만이 만나 이루어지는 위대한 결합이고,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옆에 고요히 잠든 배우자가 누워 있는 모습은 이 세상 모든 걸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은 만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아름다운 배우자를 만나 결혼 하면, 아침에 일어나 옆에 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하늘에 감사하는 눈물을 매일 흘릴 것 같은 내게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얘기는 그렇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내 입장을 생각해 보면 공무원을 불평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해 못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취준생이든 현직자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나 난 결혼 시장에서 상품성이 거의 소멸된 폐기품에 가까워진 입장이긴 해도 결혼에 대한 환상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 결혼한 것이 인생에서 절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는 사람도 있다. 배우자 얘기를 하면 분노와 증오의 감정부터 드러내는,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은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결혼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이들의 비율이 훨씬 적기에 결혼을 하지 못하고 홀로 남아 있는 내 현재의 상황에 대해 위안을 삼을 명분이 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결혼이 반드시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생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면 결혼이 반드시 행복의 필수 조건은 아닌 것이다. 결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만 그렇다고 이상을 품지는 않는다.
공무원 사회의 냉정한 현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더 웃긴 건 결혼은 한다, 안(못)한다,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한 부분이다(물론 연애만 한다. 등등 다른 선택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직업은 공무원이다 아니다의 이분법적 선택지가 아니라 공무원 외에 무수히 많은 직업이 있다. 왜 공무원이 절대적 가치로 수렴돼야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간다.
사직을 한다, 내일 일하러 가기가 두렵다, 공무원 들어와서 인생을 망쳤다, 등 안타까운 내용을 보면서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는데 대안을 제시 할 수 없어 뭐라 댓글을 달지는 못했는데, 물론 선택의 문제는 본인들의 몫이다. 밖이나 옆에서 봤을 때 당장 뭔가 결행을 못하고 불평만 하는 사람들이 못마땅해 보일 수는 있어도 어차피 이곳은 푸념하라는 곳일 수도 있는데 왜 그리 이상하게 보는지 난 일단 그게 더 이상하다.
특히, 공장 다녀봤냐, 힘든 일 해봤냐, 등등의 이야기들...세상 더 힘들고 어려운 일도 얼마든지 있으니 감지덕지 하라는 얘기인데, 사실 공무원 이라는 직업도 자살하는 사람 여럿 나오는 직업인데 너무 일방적인 얘기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사람들의 논리를 보면 인생이 공장노동자(지옥) 아니면 9급 공무원(천국) 둘 중 하나인 사람들이다. 즉, 행복지수를 좌표로 그린다면
-100<------------0--------------->100
(공장, 고깃집 알바 등 육체노동) (9급)
인데, 근데 이건 자기들 생각이고,
<------------------------0------------------------>
-100 -90 100
(자살) (9급)
이런 경우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지옥(공장노동자), 천국(9급 공무원)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는 지옥1(공장노동자), 지옥2(9급)가 될 수도 있다. 이 친구들 논리대로라면 사형선고 받은 사람은 지옥이고 무기징역 받은 사람은 천국이라는 설명인데, 실제 과거 무기수들 중에는 자살자가 적지 않게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목숨만 부지하는게 축복이 아닌 거다. 목숨 붙어 있어도 희망이 없는 삶에 대해 절망하기 때문에 자살을 하는 거다. 어떤 두 대상의 차이가 유효한 값을 갖지 못하면 상대적인 게 의미가 없어 진다. 몇년 전 무기수가 특별휴가 나왔다가 복귀 하지 않고 야산에서 목매 자살한 경우가 그렇다. 감옥에 평생 갇혀야 하는 삶이 그에게는 사형선고보다 더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던 거다.
게다가 공장노동자와 고깃집 알바 하는 사람들이 9급 공무원보다 반드시 불행하다고 볼 근거가 어딨나? 자기 일에 맞고 만족하면 행복한 거지.
극단적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행복할 수 있는 해법은 빠따질 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삶에서 항상 행복한 경우가 없다. 또라이 과장이 발령 와서 결재 안 해주고 욕설로 괴롭히기 시작한다. 너무 열받아 밖에서 담배를 핀다. 그럼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 자리에서 바로 야구방망이로 빠따질 100대를 갈기는 거다. 그럼 또라이 과장이 갑자기 훌륭한 사람이 되고 '아, 내가 왜 짜증을 내지? 봐 방금 전에 빠따 100대 맞는 것보다 차라리 과장 욕설 듣는 게 훨씬 더 행복하잖아?" 이런 식의 행복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게 정상적인 문제 의식인가?
(물론 개인적 추측이지만...9급 지원 하는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전체 인구분포에서 성향이나 성격이 순응적이고 순종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지원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의 현실 안주적 견해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들에게 행복한 삶을 위한 도전이나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가기 위해 동굴 밖을 나서는 용기 있는 결단은 무모한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상대적 행복론이 성립하려면 그 차이가 큰 유효 값을 가져야 한다. 사형과 무기징역이 큰 의미차가 없거나, 공장생활과 공무원 생활에 큰 의미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공무원은 의미가 없는 거고 불행한 현실이 될 수 있는 거다.
공무원을 객관적으로 그렇게 볼 만한 직업이냐는 논란이 가능할 텐데, 글이 너무 길어 간단히 말하면, 사람은 직업에서 물리적 보상만 바라지 않는다. 정신적 보상도 충족돼야 행복한 직업 활동이 가능하다. 공무원 보상 체계는 기본적으로 물리적 보상인데, 9급 초봉으로 이게 보상이 되는지도 의문이고, 더 문제는 기본 체계가 물리적 보상 외에는 업무 특성이나 구조상 정신적 보상이 안 되는 구조다. 공무원에 부정적인 사람들, 특히 동굴 안에서 생물학적 유통기한이 지나면 생이 끝날 것 같다고 두려움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정신적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이 직업에 절망하기 때문이다.
행정 업무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내가 볼 때 이건 적성이 안 맞는 사람에게는 중앙제어시스템(?)의 명령에 따라 규정이나 절차, 서류 정리 등 평생 거대 시스템의 수족이 되어 강방증만 앓다 끝날 일이다. 프로그래밍 된 시스템 대로 움직이는 대표적인 게 바로 자동차 공장의 조립 로봇이다. 결국 내 생각에 9급은 그런 존재다.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의 조립 로봇이 자기가 정신적 만족을 느낀다고 하던가?
마지막으로 다른 얘기 한 마디만 덧붙이면, 이것도 추측이긴 한데, 이런 불만족스런 사람들이 자꾸 나오는 건 직업이나 삶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사람들이 과거보다 이 직업에 들어 오는 비율이 더 높아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80년대 정도로 해야 하나, 당시 9급은 상고 정도만 나와도 들어 오지 않았을까 싶은데 업무 시스템은 인터넷 도입으로 전자화된 측면이 있긴 해도 업무의 기본적인 내용이나 성격에는 변동이 없는데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학력 인플레 등으로 고졸-전문대-4년제 등으로 입직자들의 학력이 높아지는 변화가 있다는 거다. 학력 높은 사람이 삶의 기대치가 높다는 건 어떻게 보면 편견일 수 있으나, 이 업무에서 요구하는 적정 수준의 직무 능력과 문화적 소양이 있는데 고용 환경이 너무 안 좋은 현실인데다, 나이 제한 까지 없어지면서 쓸데 없이 눈만 높은 사람들이 과거의 고졸이나 전문대 졸 수준의 사람들을 '밀어내기'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물론 현재 대한민국 국가 및 지방직 행정 인력의 줄기를 이루는 세대들이 고졸 이상이면 할 수 있는 단순 직무 능력으로 국가 체제를 유지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잘 안 선다. 행정 업무라는 게 꼭 우습게 볼 만한 건 아니라서...그렇다면 내 견해는 잘못된 견해다. 즉, 당시나 지금이나 공무원 하는 사람들의 능력은 학력과 무관하게 큰 차이가 없다는 거다. 어떤 게 맞을까? 분명한 건 그들의 무식하고 허접한 문화는 전혀 신뢰가 안 간다는 거...
첫댓글 좋은 견해 잘 봤습니다
글 정말 잘쓰시네요
"정신적 보상이 안 되는 구조다" 확실히 공감되네요...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봤습니다.
공무원 숫자가 약 백만명이나되니 그중 자살자도 나오고 힘들다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잉여도 많고 사기업체에 비하면 괜찮다고 봅니다. 조직의 비효율, 비합리는 논외로 하고... 명동, 님대문시장가서 공무원하기 힘들다고 외쳐대면 손가락질 받는게 현실이죠.
동의합니다. 사실 근로기준법 상 최소 기준으로 볼 수 있는 복리 제도(토요일 휴무나 연가, 병가 등) 등을 보면 그렇지 못한 직업도 많은 현실에서 공무원 좋은 측면이 있습니다. 게다가 외부의 여러 현실적인 경제 여건 등도 그렇고...근데 그렇다고 공무원 하면 무조건 감지덕지 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너무 일방적인 거 같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어려움 호소하는 거 보면 문제 있는 측면도 볼 필요가 있다고 보거든요. 개인의 주관적인 불평으로만 볼게 아니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서로 평가를 하면 좋다 나쁘다 견해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전 공무원 좋다는 분들의 견해에 대해 일방적으로 반박을 못하겠더군요. 왜냐면 그분들 견해가 현실적으로 타당한 측면이 있고, 말 그대로 사람마다 가치관이나 관점이 다르니요. 근데 공무원 만족 못한다는 견해에 대해 전혀 이해 못할 개인적인 불평으로 모는 건 좀 동의가 안 되네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평을 하면 그건 거기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거든요. 뭐 평가는 각자의 몫이지만 일방적으로 모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필력이 대단하세요~~ 옳은말씀이에요!! 정신적 보상도 안되고 물질적 보상도 안되는거에 절망하고있었어요..
글 잘쓰시네요. ㅎ 도움받고갑니다^^
되게 글 잘 쓰시네요
몰입해서 읽었어요!ㅋㅋ
정말 좋은글 읽었습니다! 글 넘나잘쓰세요
철학수업 한 편 들은 것 같군요...
저도 햇수로 4년차입니다
안정적인거 보고 들왔고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이직도 해보았지만 9급으로시작하면 다 거기서 거기고 보람? 이런거 잘 몰겠고 현실안주파가 되어가네요. 조직의 단점도 보이기시작하고~
그래서 이것저것 취미생활 찾고 여행다니고 소시민의 삶을 사네요
딱 거기 까지인듯
퇴근후 자유로운 시간, 육아휴직3년후 복직할수 있는 권리, 빵빵한 연가 이것만해도 나름 만족할만함 ㅋ
가끔씩 자아성취욕이 충족 안되서 상위직 공부나 다른자격증 공부도 하면서 꿈도꾸고 자기위로도하며 살아가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8.21 23:56
공무원들은 틀에 박힌 사고를 잘하고 보수적이다.. 이건 선발할때부터 4지선다 정답맞추기로 세뇌되기를 잘해야 하는 구조와 들어가서도 법집행의 엄격함... 지침 등등 실제적으로 재량이란게 거의 없고 주어진 틀에서 주어진 일들만 반복적으로 하는 구조다 보니 사람들이 좀 매너리즘 내지는 무사안일에 빠지기 쉬운거 같다...
창의력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기 어려운 업무 구조 내지는 조직구조다 보니... 그 틀에서 자기 자신도 결국 붕아빵틀에 녹아져내리고... 관료주의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복지부동적인 업무태도등... 어떤 사안에 대해서 틀에박힌 사고를 하기가 쉽다...
그래서 개혁도 어렵고 조직구조의 위로 갈수록 더욱더 보수적인 사고로 점철되어지는것 같다... 피터의 원리 또한 어떻게나 그렇게 잘 맞는 이론인지...
내가 공무원 업무에 대해서 혀를 차며 정말이지 실망한거... 데이타 베이스에 다 저장되어 있는 내용들을 A4용지 끄트트머리에 연필로 카운팅 적어서 서류 정리 해야 하는게 업무랍시고 그것도 계장도 아닌 장애인 도우미한테 업무 지시 받아가며 그딴 일같지도 않은 일을 해야 하는 현실에 절망감이 들어서 정말이지 X같았음...
그것도 민원대에서 민원 받아가면서 틈틈히 그딴 일같지도 않은 일을 장애인 도우미한테 명령받아가며 하고 있는데 지는 이너넷 쇼핑몰이나 하고 자빠졌고...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담당자가 하는거라고..지는 업무분장에 장애인 업무만 보조하게 되어있다고 대꾸하고 자빠졌다는거... 공직에는 싸이코들 천지다 윗대가리나 밑에나...
앞으로도 공무원에게는 더욱 더 저주가 있을것이다.. 밖에 사람들은 배부른 소리 말라고 하겠지만 이 조직은 변화되기 어렵기에 앉아서 타이핑으로 일만들기 쉬운 구조로 일하는 척 하는 사람들때문에 밑에 하위직들은 오늘내일 할것 없이 X뺑이 처야 할 것이다...
근로기준법 상 최소 기준 운운하지만 차라리 토요일 까지 근무하더라도 행복한 조직이 있을수있는거다.. 공무원 조직에서는 토요일 출근안해도 한주간 쌓인 피로로 아무일도 할수 없이 번아웃 되는게 현실...
대다수 하위직급들이 그런경향을 보이나여?? 아님 국7급 이상도 그러던 가요??
선배님도 글 잘쓰시네요... 공감합니다
와닿습니다...와닿아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글 잘쓰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