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바삐 가시려고 그렇게 바쁘게 사셨습니까” | ||||||||||||||||||||||||
고 이경동 시의원 영결식 경주시의회 장으로 엄수 | ||||||||||||||||||||||||
2011년 10월 28일 1012호 [(주)경주신문사] | ||||||||||||||||||||||||
| ||||||||||||||||||||||||
궂은 가을비가 내린 가운데 열린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과 친지, 동료, 선후배, 시의회 의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박승직 경주시의회 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영결식은 백태환 문화시민위원장의 이 의원에 대한 약력소개와 장의위원장을 맡은 김일헌 시의회의장의 조사, 우병윤 경주시부시장의 추도사, 추모객 헌화, 유족대표 인사 순으로 영결식은 40분 동안 진행됐다. 김일헌 의장은 조사를 통해 “이경동 의원은 그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5대 경주시의회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6대 전반기 경주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막중한 책임을 모두 다 감당해 냈고 시정질문을 통해 관행적으로 내려오던 형식적인 투융자 심사 예산제도를 완전히 정착시켰으며 또한 행정사무 감사장에서는 시민의 복리증진과 정책 개선에도 잘못된 부분은 지적하시는 등 역동적인 의정 활동을 펼쳐 왔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의장은 또 “그동안 동료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한 몸에 받으며 모범적인 의원상 정립에 앞장서 왔으며 경주의 미래가 우리 손에 달려 있다며 집안일들은 뒤로 한 채 오로지 시민을 위하고 시의 발전을 위해 젊음을 불살라 열심히 해 보자고 약조한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인데 졸지에 먼저 갔다”며 “지역구 일, 민원 현장, 시의 현안사업 해결, 각종 행사 참여 등 잠시도 쉴 틈 없이 뛰어 다니었는데 이렇게 바삐 가시려고 그렇게도 바쁘게 사셨느냐”고 비통해 했다. 우병윤 부시장은 추도사를 통해 “이 의원은 올곧은 성품으로 공인회계사로 사회활동을 하면서, 일에 대한 큰 열정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회계질서를 바로 세웠으며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 왔다”며 “특히 회계업무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경주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의 중책을 맡아, 합리적이고 세밀한 업무추진으로 집행부의 잘못을 질책했고 참 민주주의의 뿌리인 지방자치의 진정한 실현을 위해 행정을 효율적으로 견제하였고 주민의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상호협력 했다”고 밝혔다. “더 많은 일을 할 사람을 너무 빨리 잃었다”
지하양은 또 “특히 장의위원회를 구성해 경주시의회장으로 치러주신 김일헌 의장님과 의원님들, 경주시장님을 비롯한 시 관계자분들께도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영결식후 경주시립화장장으로 이동해 화장을 한 이 의원의 유해는 영천 만불사 납골당에 안치돼 영면에 들어갔다.
이 의원은 지난 21일 오후 4시20분께 자신의 그랜저 승용차로 경주시내에서 보문단지 경주엑스포 방면으로 달리던 중 쓰레기매립장 입구 곡선길에서 빗길에 미끄러져 차로를 벗어나 건너편 가로수를 들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사고 현장에서 즉시119구급차에 의해 동국대 경주병원(응급실)으로 긴급 후송되었으나 오후 5시10분께 숨졌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4시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열린 2011 경북도민의 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의 사고소식을 접한 지인들과 학교 선후배들은 동국대 경주병원에 몰려가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으나 결국 이 의원은 유명을 달리했다. 후배 김 모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며 “경주시의회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서도 큰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을 할 사람인데 그렇게 허망하게 간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회계전문분야 전문성 발휘시 예산 사용 개선하는데 큰 역할 고 이경동 의원(1961년 6월 20일 생)은 여강 이씨 문원공 회재선생 15대 손이며, 회재선생 넷째손자인 수졸공 13대 손으로, 부 이원주, 모 손규락 여사의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부인 홍순한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 채형과 딸 지하, 지양 1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경주중·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골든 게이트 유니버스티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7년부터 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 근무, 1994년부터 경동세무회계사무소를 운영했다. 침체된 경주야구 발전과 지역 야구 중흥을 위해 야구 동호회를 결성하고 정기적인 대회를 개최해 왔을 뿐 아니라, 경주시 생활체육 야구연합회 회장을 맡아 지역의 야구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2006년 제5대 경주시의회 의원(한나라당/가 선거구-천북·용강·황성)에 당선된 후 각종 민원과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밤낮 없이 전력을 다해 시민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제5대 전반기 운영위원회부위원장을 역임했다. 2010년 제6대 경주시의회 의원(무소속/가 선거구-황성·용강)에 재선된 후에도 지역발전은 물론 제6대 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아 회계사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시 예산을 세밀하고 심도있게 심의해 잘못된 제도에 대하여는 집행부에 보완을 요청하여 개선하는 등, 경주시 예산집행의 효율성과 투명성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이밖에도 이 의원은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경주시 지역혁신협의회 위원,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가사민사 조정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등 지역사회 봉사자로써도 많은 노력을 했다. -능력으로 당당히 6대 경주시의회 진출 활동 고 이경동 시의원은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 경주시의원 가 선거구(천북·용강·황성)에서 처음 기초의원 정당공천제에 의해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제5대 경주시의회에 진출했다. 당시 가 선거구는 경주지역 최대 인구밀집지역인 황성동과 용강동을 끼고 있었고 정치적 성향이 다양해 경주의 정치 1번지였다. 특히 이 의원을 포함한 3명의 한나라당 후보와 열린우리당(이유형 후보), 민주노동당(정준호 후보), 10명의 무소속 후보 등 총 14명이 출마한 최대 접전지였다. 처음 출마한 이 의원은 최병준, 강익수 당선자(이상 한나라당)와 함께 최병준 당선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2905표를 얻어 당선됐다. 초선이었던 이 의원은 당파를 떠나 시정질문과 행정사무감사에서 회계사로서 전문성을 살려 왕성한 활동을 전개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가 선거구(황성·용강)에 출마한 이 의원은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뛰어 들었다. 당시 선거에서 한나라당 윤병길, 강익수 후보, 민주노동당 이종표 후보, 친박연대 성창용 후보 등과 무소속으로 일전을 벌인 이 의원은 한나라당 강익수 후보와 민노당 이종표 후보를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다. 당시 가 선거구는 윤병길 후보가 압도적인 1위를 달린 가운데 이 의원과 이종표 후보가 접전을 벌였다. 초반부터 이종표 후보와 이 의원이 피말리는 접전을 벌였고 새벽 3시20분 황성동 마지막 투표함 개표 전까지 100여 표를 뒤지고 있던 이 의원은 마지막 투표함을 개표한 결과 68표 차이로 극적인 역전을 했다. 당시 공천을 받지 않았던 이 의원은 이후 제6대 경주시의회에 진출해서도 한나라당에 입당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당당히 활동했다. | ||||||||||||||||||||||||
김장현 기자 http://blog.daum.net/k2mv1 |
| |||||||||||||||||||
|
첫댓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시는 길 편히 가시고 좋은 곳에서 큰 뜻 펼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잘가시게! 큰일을 할 사람을 너무 일찍 데려가는 하늘이 무심해요!
아까운 사람 부디 평안한 곳에서 영명하소서!
고인의 父(이원주님)께도 위로의 말씀 전하옵니다.
가시는 길이 못내 아쉬운 듯 비까지 내렸네요,,, 후배님 부디 좋은 곳으로 영면하시어,,, 못다 이룬 꿈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아울러 유가족님께도,,, 심심한 조의를 드립니다.
아직도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아까운 사람을 어찌 이리도 빨리 데려 가시는지....편안히 가소서!!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