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얘기할 때 내가 제일 많이 화제로 삼는 게 뭔지 생각해 보니 몇 가지가 떠오르는데, 그중 하나가 커피와 커피숍이다. 스타벅스 같은 큰 체인점 말고 로컬커피숍을 가면 커피도 훨씬 맛있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라이트로스팅된 원두보다는 다크로스팅된 것이 카페인이 더 적으니 카페인을 덜 섭취하고 싶으면 후자를 선택하라, 커피원액과 우유의 비율에 따라 라테--카푸치노--플랫화이트--코르타도--마키아또--에스프레소의 순서로 진한 커피가 된다, 어느 커피숍이 널찍하고 눈치 안보고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다 등등의 얘기를 한다. 듣고 있던 상대방이 흔히 하는 오해가 내가 집에서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거나, 비싸고 다양한 커피추출 기구가 있거나, 다양한 원두를 사서 시음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집에서 매일 원두커피를 내려 마실 것이라는 근거있음직한 추측이다. 하지만 어느 것도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고, 심지어는 집에서는 커피를 거의 마시지도 않고, 어쩌다 한번 원두 한 봉지를 사더라도 유통기한 내에 다 못 먹어서 결국은 비싼 원두를 냉장고 탈취제로 쓰는 의도치 않은 호사까지 벌인다.
커피에 대해 아주 문외한은 아니지만, 커피매니아들의 눈에 나 같은 사람은 이도저도 아니면서 아는 척하는 얼치기로 보이리라. 다행히 아직은 어느 누구도 커피와 관련하여 나의 실체를 탐문해 온 적은 없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공부를 좀 해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뭔가에 관심이 생기면 그에 대해 쓴 책부터 찾기 마련이어서 원예 같은 분야는 심지어는 버섯에 관한 책까지도 눈에 들어 사놓지 않았던가, 커피에 관한 책 한 권조차 읽어본 적이 없다니 어찌 그럴 수 있나 자신이 괘씸하게까지 느껴졌다. 커피비평가협회 공식 추천도서라는 신임장을 달고 있는 <커피연구소>(숀 스테이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출판)는 이런 분을 삭히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기는 했다. 원예에 비유하자면 가뭄끝에 온 소나기이나 지표면만 흠뻑 적시고 그 밑의 흙은 여전히 푸석푸석해서 결국 비 온 생색만 내고 화초들이 해갈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비라고 하겠다. 그래도 일단은 책을 한 권 읽었으니 그 다음 단계로 집에서 원두를 한번 볶아본다든가, 아니면 이미 로스팅된 여러 원두를 구입해서 책에서 말한 대로 신맛, 과일맛, 감귤맛, 풀맛, 풋풋한맛, 약초맛, 재맛, 그을음맛, 탄맛나며스모키한맛, 쓴맛, 화학물질맛, 약맛, 탄맛나며매캐한맛, 톡쏘는맛 등등을 구별해 보려 애쓸 수도 있겠다.
무엇을 즐긴다면, 그것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좋을까? 전문가가 되고, 더 나아가 업으로 삼으면 더 좋을까? 어떤 사람들은 취미가 직업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도 하고, 또다른 사람들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있을 경우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삼으라고 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봐서는 후자의 견해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취미가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직업이 되고 보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즐기려던 갈망의 대상, 단조로운 일상과 구별되는 신성의 대상으로서의 지위가 격하되고 만다. 좋아하는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들이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있는 것을 보면 혹시 일자리가 없는지 묻고 싶은 유혹을 자주 느끼지만, 커피향을 질리도록 맡아 결국은 커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을 잃어버리는 끔찍한 사태가 올까봐 그 유혹을 물리친다. 바리스타가 우유거품을 내고 수증기를 쏘아 내는 칙하는 소리, 커피위에 하얀 우유거품으로 그려주는 하트나 나뭇잎 등의 라테아트, 강하게 쏘는 커피의 향, 시거나 쓴 에스프레소를 감싸는 부드러운 우유거품, 커피를 담은 용기에서 전해오는 따뜻함이나 차가움 등 커피점하면 연상되는 이 모든 감각적 이미지는 오늘 아침도 모닝커피를 찾는 나의 발길을 이끈다. 하루를 이렇게 즐거운 이벤트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첫댓글 일요일 아침!
아직 아침도 먹지않았지만 이 글을 읽을 수 있어서 특별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커피에 관한 양서 한권을 읽은 듯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걷는 곳마다, 마음 자락마다 꽃 피는 나날되십시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글쓴이로서 매우 기쁩니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모닝커피를 사러가는 발걸음이 가볍듯이 커피에 관한 글도 경쾌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하고, 연말 즐겁고 따뜻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매일 아침 아무생각 마시는 커피였는데, 내일 아침은 새로운 느낌으로 마셔 봐야겠어요.
제 글에 임팩트가 있었네요.^^ 기분 좋은 코멘트, 고마워요.
하루를 시작하는 즐거운 이벤트 ,.커피
수첩에 메모합니다
퍼가요~♡ (싸이월드식)
댓글 감사해요.
요즘 코로나 사태로 집에만 있는 상황에서도
"하루를 시작하는 즐거운 이벤트, 커피"
임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집에서는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었는데, 상황상 어쩔 수 없어 최근에 프렌치 프레스를 샀답니다.
처음 써보는 것인데, 간단한 기구이긴 하지만, 새로운 기구로 커피를 추출해 먹는 재미도 쏠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