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琵瑟山 1,083.4m) 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달성군지』에는 비슬산을 일명 포산(苞山)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포산은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란 뜻이다. 『내고장 전통 가꾸기』(1981년 간행)에 보면 비슬산은 소슬산(所瑟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인도의 범어로 부를 때 일컫는 말이며 중국말로는 포산(苞山)이란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시대에 인도의 스님이 우리나라에 놀러 왔다가 인도식 발음으로 비슬(琵瑟)이라고 해서 이름을 붙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유가사사적(瑜伽寺寺蹟)』에는 산의 모습이 거문고와 같아서 비슬산(琵瑟山)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설에 비슬산은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비슬산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진달래를 참꽃이라 부르는데 비슬산 진달래도 참꽃이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하는데 해발 1,000m 평원에 자리한 30만 평의 군락지에 피는 꽃밭이다.
대견사는 고지대에 세워진 조계종 사찰로 신라헌강왕 때 보당암으로 창건된 천년고찰인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기를 막는 혈자리라고 1917년 강제 폐사되어 2014년 다시 중창하는 역사의 아픔이 있는 사찰이다.
대견사에는 유형문화재(제42호) 대견사삼층석탑이 있는데 일제 때 폐사이후 흔적만 남아 ‘대견사지’로 불리다 1988년 원형 가깝게 복원되었으며 대견사 초입에 부처바위가 있고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대견사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오르려 매표소에서 표를 받았는데 3시간을 기다려야하는 13시50분 출발표다. 그 시간에 오르고 대견사에서 올라 진달래군락지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대견사에서도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겨우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하니 15시까지는 도저히 오기가 힘든 시간이란 생각이 들고 회원님들께 누가 될 것 같아 아쉽지만 자연휴양림 산책로를 걸으며 계곡도 둘러보고 귀가길에 옥연지송해공원을 들렀다.
↑셔틀버스 탑승시간이?
↑비슬산자연휴양림 표석
↑얼핏 적단풍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도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보각국사일연기념비
↑휴양림 숙소 입구
↑자연휴양림 물놀이장
↑자연휴양림 쉼터는 유원지 같았다
↑자연휴양림 쉼터
↑자연휴양림쉼터에서 보는 조화산
↑자연휴양림 산책로
↑휴양림 숙소와 샤워장
↑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 비슬산소재사 일주문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웠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등 달기에 여념이 없다
↑소재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은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4호
↑소재사 대웅전은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43호
↑대웅전 내부
↑주차장에서 본 비슬산 정상
참고 : 대견사(大見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비슬산 정상에 있는 절로 한 때는 폐사된 상태에서 삼층석탑만 달랑 있었기에 '대견사지'라고 불렀다.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사찰이라고 전한다. 전설로는 당문종(文宗)이 절을 지을 곳을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낯을 씻으려고 떠놓은 대야의 물에 아주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다. 이곳이 절을 지을 곳이라 생각한 문종은 사신을 파견하여 찾게 하였다. 결국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자 신라로 사람을 보내어 찾아낸 곳이 이 절터이다. 이 터가 대국(大國)에서 보였던 절터라 하여 절을 창건한 뒤 대견사라 했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지만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승과 선불장에 장원급제한 뒤 초대 주지로 부임해 22년 동안 지냈으며 이 곳에서 삼국유사를 구상했다고 한다. 1416년(태종 16년) 2월 29일, 1423년(세종 5년) 11월 29일 이 절에 있던 장륙관음석상(丈六觀音石像)이 땀을 흘려 조정에까지 보고되었고 종파는 교종(敎宗)에 속하였다고 한다. 절의 폐사에는 빈대가 너무 많아서 이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떠나 자연스럽게 폐사되었다는 일반적인 설화가 전래되고 있지만 그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로 전해지고 있기에 임진왜란 때 일어난 화재로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광해군과 인조 때 재건되었으며 1900년 영친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대한제국 축원을 위해 이재인(李在仁)이 중창했으며 관리를 안 하는 사이 1908년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1909년 다시 폐허화되었다.
결정적으로 일제강점기인 1917년 강제 폐사됐는데 당시 대견사의 대웅전이 일본 쪽으로 향해 대마도를 끌어당기고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이유로 조선총독부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강제로 없앴다고 한다.
그렇게 100년 가까이 삼층석탑만 남은 채로 방치되는가 싶었지만... 2013년 8월 15일 전체 사찰 부지 3633㎡에 대웅전을 비롯해 대견보궁, 선당, 산신각, 종무소, 요사채 등의 건물을 폐사 당시의 원형대로 최대한 복원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특히 대웅전의 대들보는 지름 60㎝에 길이 10m인 강원도산 소나무 황장목으로 만들어졌는데 수령이 500년 됐고 한 개 가격이 2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2014년 3월 1일 공사를 끝내고 복원 완료했다. 대견보궁에는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진신사리 1과가 모셔져 있다.
첫댓글 우리는 못가본 비슬산 휴양림 구석구석 공원같은 개울가 정겨운 모습이 넘좋아요 선각님 구경시켜줘서 감사
많은인파에 셔틀버스못타셔서 아쉬움은 남지만 수고하셨습니다 선각님
시시한 내용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하루의 기쁨이 된 내용이라 소중하게 생각하고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금요
문화해설사님~~
잘 보고 갑니다~~^^
흥미를 일으키기가 어려울 내용의 글인데도 읽어주는 고운 마음에 감사합니다.
셔틀버스로 대견사를 가려고 했지만 승차가 1시반이라해서
쉬엄쉬어오르다가 대견봉까지 가게되엇네요..선각님의 사진으로 휴양림의 이모저모를
실감하고 특히 소재사를 내려올때 도 못들렸는데 덕분에 대리 만족합니다.
수고하시엿습니다.
형님의 욕심과 열정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늘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슬산 안내도에 보면 대견사지라고도 나와 있어서 궁금했는데 선생님의 설명을 보고 대견사지라고 쓴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대견사 절을 새로 지은 것이 10여년 정도 되었네요.
늘 새로운 것들을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산행의 맛을 잃은지 한참이 되었나 봅니다. 산행팀에 늘 박수를 보내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에서야 짬 내어 .. ㅠ
선생님!
즐감했고요.
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