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토리 여행3 - 큐쇼코엔을 거쳐 돗토리 성터에 올라 옛일을 회상하다!
희메지 에서 기차를 타고는 1시간 반만에 돗토리 鳥取(조취) 에 도착해 역 코인로카에
배낭을 보관합니다.
버스를 타고 동해(일본해) 바닷가 에 조성된 사막인 砂丘(사구) 를 보러 가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모래 사구 는 얼핏 사막 을 연상시키는데 그 너머 바다가 푸릅니다!
시내로 돌아 올 때는 루프 기린시 관광버스 를 탔는데 요금도 300엔으로 저렴할뿐더러
시내 주요 관광지를 순회 하니 여행자에게는 안성마춤이네요!
관광버스는 돗토리 시내 로 들어와서는 자그만 강이 나타나더니 이윽고 돗토리 성 이
있다는 큐소코엔 앞에 서기에 내립니다.
그렇다면 여기 이 강 은 예전에 돗토리성 을 둘러싸도록 팠던 해자 인 모양이네요? 하여
공원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여기 큐쇼코엔 久松公園 (구송공원) 은 벚꽃과 철쭉의 명소 라고 하는데, 공원 안에
서양식 건물 인 진푸카쿠 부터 찾아 봅니다.
진푸카쿠 仁風閣 (인풍각) 는 1,907년 돗토리성의 성주인 이케다 가문의 별장 으로
세워진 프랑스 르네상스 양식 을 도입한 건물입니다.
황태자(다이쇼 일왕) 방문시 숙소로 사용되었다는데.... 동쪽에는 에도시대 말기에
조성된 정원인 호류인 鳳龍院(봉룡원) 도 있답니다.
그러니까 진푸가쿠 (仁風閣 인풍각) 는 돗토리성의 성터 아래쪽에 지은 메이지 시대의
건축물로 영주의 영빈관 용도로 사용된 건물이라고 하네요.
메이지 시대의 일본에는 유럽의 문물 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는데, 우선 생각나는
것은 덕수궁에 지은 석조전 과 같은 류의 서양식 건물인 것이네요?
그러고는 다시 돌아나와 산길을 걸어 올라 돗토리성 을 찾아가는데..... 한 때 3천개 를
헤아렸다는 일본의 성 들의 운명 처럼 사라졌으니.....
전쟁으로 무너진 것 외에도 도쿠가와 막부에서 반란을 염려해 지방의 성을 허물고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다시 성들을 해체 하고 2차대전시 미군 폭격 을 맞는등....
해서 지금 일본에는 천수각을 갖춘 성은 전국에 겨우 20개 도 안된다는데.....
후쿠오카성 이나 다카마쓰성 처럼 여기도 천수각 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여기 돗토리조 鳥取城(조취성) 는 전국시대인 1,545년 영주 이케다 池田 가문 이
축성하여 메이지 유신 까지 12대에 걸쳐 거주 했다고 합니다.
텐슈카쿠의 흔적과 니노마루 터 를 둘러보며 옛일을 생각해 보노라니.... 이 성을
공격해 함락시킨 자는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시수길) 라!!!
1467년 오닌의난 으로 쇼군의 조카와 삼촌이 10년간 교토에서 시가전을 벌여도 승부가
나지않으니 무사들이 고향으로 귀향해서 자립해 분열된 300개 국가를 통일한 인물입니다.
히데요시 는 오와리(나고야)의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 로 들어가 북쪽 미노국
(美農國) 을 칠 때는 적을 포섭하는 재주 를 부려서 궁지에 몰아넣어 성을 함락합니다.
시바타 가쓰이에와 싸운 시즈가타케 전투 에서는 일부러 철수한후 이즈에서 작전하다가
미리 마을 주민을 포섭해 햇불과 물, 김밥 을 준비시킨후 밤새 달려 전장에 나타납니다?
1,570년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매제 인 오오미(교토) 의 아사이 나가마사 가 오다군의
배후를 공격해 왔을 때“신가리(뒤에 남는 희생 부대)”를 자임해 큰 공을 세웁니다.
적군의 공세에 밀려 아군이 퇴각할 때는 적의 추격을 막는 부대 를 남기는데 이 부대는
아군 본대를 구하기 위한 희생양 이니 대부분 죽을 운명인데도 스스로 지원 했다니???
히데요시는 마침내 장수가 되어 1581년 여기 난공불락이라 일컫는 돗토리성(鳥取城) 을
공격하면서 병사들의 희생을 줄이는 방법 을 고심합니다.
견고한 적의 성을 공격하는건 하지하책 이라 작전에 앞서 수개월전에 상인들을 시켜 공작
하니 값은 시세의 몇배를 주더라도 돗토리 주변 지역의 곡물 을 모두 사들이게 합니다.
곡물 값이 천정부지로 뛰자 돗토리성 안에 있던 비축 병량 마저 히데요시가 고용한
상인의 손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 사실을 확인한 히데요시는 병력을 이끌고 돗토리로 진군하면서 불을 지르는등 의도적
으로 농민들에게 가혹행위 를 자행해 겁에질린 농민들은 돗토리 성으로 몰려 들어갑니다.
이후 히데요시는 돗토리성을 포위하고 주변에 작은 성과 진지 를 구축한후 병사들에게
탄약과 철포, 군량미를 보급한후 공격을 전혀 하지않고 포위만 하게 합니다.
그의 목적은 성으로 어떠한 보급품도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으니.... 장기전으로 가서
성안에 있는 병사와 농민들을 모두 굶겨죽일 작정이었습니다.
포위된 100일 동안 성 내부에서는 군마와 소가 먼저 죽었고, 사람들이 그것을 다 먹은
후에는 마침내 "굶어죽은 시체인 인육을 먹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히데요시가 공격해 온다면 사생결단으로 싸울 생각이었으나 공격하는 시늉만 하고는....
끝내 총공격을 하지 않으니 속이 타들어 가다가 무느진 것이지요?
히데요시는 막대한 전비 를 쏟아 부었지만 돗토리성은 당시 히로시마 일대의 대영주인
모리(毛利)씨 수중에 있는.....
시마네현의 이와미 은광산(石見銀山) 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으니, 모리씨는 성의
함락을 막기 위해 해상과 육로로 보급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 합니다.
이와 유사한 예로는, 이듬해 히데요시는 모리(毛利) 씨의 명장 시미즈(淸水) 가 지키고
있는 비쥬(備中 오카야마) 의 다카마쓰성(高松城 고송성) 공략에 들어갑니다.
성안에는 5000명 병력 이 농성을 하고 있었지만 히데요시의 병력은 3만 이라 장마 를
앞두고 누구도 상상치도 못한 "대토목 공사" 가 벌어졌습니다.
1,582년 5월에 철야 작업 을 하여 높이 11m 폭 36m 의 제방 12㎞ 를 쌓았는데, 여기에
구축한 작은 성이 15개소, 동원 인원은 연10여만명 이었습니다.
동원한 인부는 고액의 보수 를 주고 일을 시켰으니 총경비는 전(錢) 63만 5040 관문에
쌀 6만 3500석 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동양에서 이런 전투를 할때 주민은 무보수로 강제 동원 하는게 관례였는데.....
히데요시는 임금을 쳐 준 것입니다? 놀랍지요! 놀라워.....
히데요시는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득" 이라고 생각했으니..... 강제동원은
비효율적인 작업 이 되고 완공 기일을 못마추게 되면 전투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지요?
적군과 아군의 예상보다 빠른시간 안에 둑이 완성되고 아시모리강의 물길 이 바뀌었으니
3면이 늪으로 둘러싸여 있는 다카마쓰성은 주변이 물바다가 되어 고립 됩니다.
모리군 이 성을 구하기 위해 멀리서 달려왔지만 물에 갇혀 성에는 접근도 할 수 없었으니!
히데요시는 전쟁의 개념을 종래의 전투 위주 에서 시장 장악과 토목공사 로 확장시킵니다.
히데요시는 그전에도 적의 성을 공격할때 앞에 방어용 성을 쌓는데 3개월 안에 완성한다고
장담해 맡았으니 상인에게 돈을 빌려 자재를 운반해온 사람들에게 바로 현금을 지불했다는?
이 돗토리성은 제대로 된 전투도 없이 마침내 항복 하는데,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도 영양 실조 로 인해 대부분 장님 이 되었다고 합니다.
히데요시가 전투를 지휘하면서 기상천외한 꾀 를 내어 적군을 격파한 사례는 수없이
많은데 물량공세의 뒷받침 으로 "아군 병사의 희생을 최소화" 하는게 목적 이었습니다.
성을 내려와서는 기차역이 그리 멀지 않으니 시가지를 천천히 걷는데, 타이뻬이 처럼
상가 옆 인도 까지 지붕을 덮어 더위와 비를 피하도록한 것이 인상적이네요!
그러고는 어느 가게에서 한글 간판 이 있어 화들짝 놀라는데 세상에나.... 음식점도
아니고 한복을 파는 가게네요? 그럼 한류 탓일러나....
또 다른 가게에는 한국 식품과 잡화 를 판다고 적어 놓았고.... 이어 꽃 가게와 100엔
숍을 지나 몇 블록을 더 걸어 돗토리역 으로 돌아 옵니다.
여기 돗토리현에는 나사시비나 라 부르는 축제 가 있는데 음력 3월 3일에 인슈 라고
부르는 일본 전통 종이인형 을 짚동아리에 올려 강에 띄워 보내는 행사 랍니다.
또 산산마츠리 라고 하여 8월 15일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우산을 든 4천명의 사람 들이
시가지를 행진하며 춤을 추는 축제 도 열린다고 하네요!
그 외에도 11월 카니 페스타 라고 하여 사카이항 에서 잡은 신선한 게 를 다양하고
저렴하게 즐기는 축제도 있다지만 우리가 방문한 시기와 맞는게 없어 아쉽습니다.
또 겨울 이라면 돗토리 역에서 2블록 떨어진 마츠히로토오리 末通り 를 중심으로
수질이 좋은 돗토리 온천 은 신견통, 류머티즘, 부인병과 소화기병 에 좋고....
그 외 키지마 온천과 모토유 온천 이 있으며 히노마루 버스로 20분거리 미사사 온천
지구도 유명한데 카와라부로 河原風呂 는 강변에 무료 남녀 공용의 노천탕 이라네요?
하지만 우린 이제 다시 기차를 타고 시마네현 마쓰에(松江 송강) 로 가야 하는데 도중에
구라요시 와 요나고 를 보고 갈 예정이라 시간이 없으니.....
이 모든 곳을 그냥 머리속으로만 그려보고는 돌아서자니 아쉽지만.... 구라요시 와
요나고 를 찾아갈 생각에 그만 마음이 바빠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