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등이 따스하고 배가 부르면 평안하다는 삶의 기준일 때가 있었죠. 그때 기준으로 보면 요즘 사람들이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사치스럽겠죠. 그건 말세의 현상으로서 무엇이 없어서가 아니라 급변하는 세상에 쥐고도 그 가치가 사라지는 박탈감에 의해서입니다. 전에 바라던 걸 가지자마자 더 좋은 것이 나와서 가지고도 빼앗긴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족을 해 보려고 해도 사회의 환경과 시스템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안 따라가면 열등감이나 부끄러움에 견딜 수 없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늘 불안합니다. 그걸 이용해서 마귀는 주님 없이도 사회의 통념이나 안전망을 통해 세상의 변화만 잘 따라가면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꾸밉니다. 그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세상의 평안은 삶의 조건이나 환경으로부터입니다.
그건 마취제일 뿐입니다. 좋은 집도 자동차도 여행도 취미도 일순의 마취제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마취방법이 많으니 천국에 들어가려 않겠지요. 가짜 평안에 대한 마취제가 많으니까요. 속지 마세요.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야말로 그분과 하나 된 자들에게 끼치는 겁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늘 평안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래서 은혜와 평강이 한 세트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로부터입니다(엡 1:2) 그 은혜 안에 머물면 평강이 임합니다. 근심이 되고 두려움이 오는 것은 지금 은혜 안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다 그들의 방법대로 따르면 평안을 얻는다고 유혹을 합니다. 우리 몸은 이미 그 체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환난입니다. 급속도로 유행이나 상품이 바뀌면 가지고도 빼앗기는 환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환난의 세상에서 이기는 비결을 시범으로 보이시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 16:33) 딱 한 마디하십니다. 변화무쌍하므로 무력해지고 초라해 지는 세상에서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소유나 자격으로 맞대응하면 안 됩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느니라’ 여기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주님으로 말미암아 의가 나타나고 평강과 희락이 뒤따르는 겁니다(롬 14:17) 그러려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님이 우리를 고아처럼 두지 않으시고 우리 속에 다시 임하신 겁니다.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임금과 관계가 끊어진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의 영과 생명은 끼쳐오는 평안입니다. 왜 근심하고 두려워하세요? 하거나 왜 주님을 믿지 못해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왜 안 듣죠 묻기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