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달이 밝다는 한가위..전야
충만한 추석이다. 이번 추석은 토요일을 포함 3일이 연휴의 모두..
금요일 오후부터 모든 곳이 추석맞는 분위기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종혁이네도 금요일 오후부터 추석 준비다. 솔이는 종혁아빠가 데리고 있는 동안 종혁이와 종혁엄마는 장을 준비하러 다닌다. 금요일 오후 종혁이를 데리러 가는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신호에 걸렸는데도 차들은 꼬리를 물고 붙는다. 사람들의 맘이 분주하게 느껴진다.
장을 보러 가서 오랫만에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동안 종혁이는 큰아빠와 시간을 보냈음(나중에 보니 종혁이는 큰아빠에게 또 커다란 8등신 로보트를 선물로 받은 것임..늘 받아만 오는 아들..)
2005. 9. 17
다음 날 아침..
혁이와 솔이를 깨끗이 씻기고 준비하니 10시가 훌쩍 넘는다. 시댁이 인천이라는 편안함과 애들과 오랫만에 만난 금요일 오후 시간의 피로가 늦잠을 불렀나 보다. 준비해서 출발..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지난 밤 천둥소리가 하늘을 울리더니 추석 연휴 시작부터 비를 본다.
그나마 시댁이 같은 주안인 것에 감사를 드린다.
종혁이네서 시댁까지 차로 10분정도 걸리는 거리를 20분 넘게 거북이처럼 달렸다. 차가 막히자 운전사인 종혁아빠 투덜대기 시작한다. 솔이는 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옹알이를 해 댄다. 종혁군은 축복의 통로라는 찬송가를 쉬지 않고 반복해서 불러댄다. 그러다가 솔이를 확 잡아 뽀뽀를 강제로 하는 종혁이..종혁이에게 눌린 얼굴 때문에 괴로워서 종혁이를 밀치는 박솔..
시댁에 도착했다. 어머님께서 아침을 주신다. 먹고..있으니 아주버님네 도착..
종혁이가 환성을 지르며 좋아라 한다. 종혁이는 큰아빠를 정말 잘 따른다.
종혁이는 큰아빠..솔이는 종혁아빠가 맡았다. 이제 추석준비다.
별로 할 것은 없다. 어머님께서 식혜와 묵...갈비도 재워놓으시고..우리는 전을 붙이고 나머지 상을 보는 일밖에 없다.
세째 언니 가족이 없으니 너무 허전하다. 기현이 가람이만 빠져나간 집이 왜 그렇게 허전하게 느껴지는지..어머니는 더 마음이 안좋으시겠지..
다들 마음이 그렇지만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입밖에 내지 않는다. 그게 불문율인것처럼..
점심을 준비해서 먹고..다과를 하고..또 솔이와 종혁이를 보다 보니 저녁이다.
솔이는 아무것이나 붙잡고 일어서고..하루 종일 아빠에게 붙어 있다. 종혁아빠는 솔이를 보다가 힘이 들면 아기띠로 안아버린다. 솔이는 아빠 배에 붙어서 마냥 좋아라 한다.
입으로 아아아 하면서 옹알이도 해 대고..
그러다가 엄마 얼굴보면 또 흥흥 하면서 울먹인다. 엄마에게 오겠다는 표현..
종혁이는 잠이 드신 큰아빠를 깨우려고 노력중이다.
끈아빠 일어나세요.
하지만 아주버님은 몹시 피곤하신듯 하다.
종혁이는 효자다.
아빠 자는 데는 손끝하나 안 건드리고..
또 엄마가 일을 하려고만 하면 울어댄다. 엄마 같이 가자 하면서.
이런 경우 90% 종혁이가 졸린 때다.
종혁이는 잠이 오면 말이 많아지고(자기 아빠와 꼭 닮았다. 또 엄마를 유별스럽게 찾는다)
솔이는 방바닥을 앉았다 기었다 하면서 염소처럼 종이도 뜯어 먹고..
심지어 집에서는 화초도 뜯어 먹는 엽기적인 일을 벌이고 있다.
솔이는 모든 사물을 입으로 입으로 가져만 간다.
2005. 9. 18
그렇게 하루가 갔다. 다음 날 ..주일이다.
아침에 추도 예배를 드리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가 예배 시간에 맞춰 교회로 향한다.
종혁아빠 집에 들어서며..
"야,,, 우리집에 젤 편하다."며 너스레를 떤다.
결혼 후 4년 -이제 집이 편해질 때인가?
하기야 나도 이제는 친정보다 우리 집이 편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비집을 떠나 남녀가 결합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을 기쁘게 여기셨나보다. 그렇게 우리를 창조하셨나 보다.
솔이와 종혁이를 씻긴다. 솔이를 조심스레 데리고 들어가 씻기려 하는데 종혁군이 갑자기 화장실 문을 쾅하고 연다.
종혁이는 엄마가 사라지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엄마 나도 씻을래"
아이구 또 두 녀석이 내 차지다.
솔이는 머리를 감겨주니 애애 하면서 좋아한다. 시원한가?
솔이를 씻겨 종혁아빠에게 내 보낸다.
종혁이를 씻겨 내보낸다.
부리나케 교회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종혁이 영아부 예배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냥 모든 가족이 2시 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1시 45분...종혁엄마가 네비게이션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교회로 향한다.
종혁엄마는 굉장한 길치다. 네비게이션은 그 이유로 너무도 감사한 문명의 혜택이라 할 수 있다.
종혁아빠 뒷 좌석에서 솔이를 안고 자다가 네비게이션으로 교회를 찾았다는 말에 코웃음을 친다.
그 까짓것으로 네비게이션을 쓰냐고..
종혁아빠는 모른다. 종혁엄마가 얼마나 길치라는 것을..
학교에서도 교실 잘못들어가기 일쑤고..
모든 커피숍을 앞문으로 들어갔다 뒷문으로 나오면 헤맨다.
마찬가지로 가던 길을 되돌아오면 또 모른다. 하여 대학교 때는 친구들이 늘 길거리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야 찾으니까...
종혁아빠는 늘 큰 건물을 기준으로 앞뒤를 살피라고 하는데 운전을 하면 더 시야가 좁아진다. 내가 길을 못 찾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국민은행 간판이 보이면 내리라는 ..초등학교..스쿨버스를 타고 내리는 정류장 바로 앞에 국민은행이 있었다. 그것이 입학하던 3월...
그런데 5월쯤 되었을까.
심정으로는 거기같은데 아무리 살펴도 국민은행 간판이 보이지 않는것..(나중에 보니 수양버들에 가려 안보였던 것)
주저주저 하다가 그만 정류장을 지나쳐 버렸다. 마침 한 학교에 친척분 한분이 선생님이셨는데 그날 버스지도를 하셨던 것이 행운이었다.
"이 녀석..너 안내리고 뭐 했어?"
우리 집은 중곡동이었는데 스쿨 버스는 구의동을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모 할아버지 손에 잡혀 구의동 어딘가에 내렸는데...바로 뒤에서 어머니께서 나타나셨다. 택시를 잡아 타고 스쿨버스 뒤를 20분넘게 쫓아오신 것이었다.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던 모녀..
그 이후로 난 늘 길을 못찾는다.
결혼 한 후
얼마 안되서 종혁아빠를 데리러 간 일이 있었다.
한겨울 2월의 바람은 매서웠는데..종혁아빠가 회식 후 많이 늦었다.
새벽 2시쯤 되서 오목교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겠다고 했다. 그 근처에서 회식이 끝났다고..
종혁엄마..그 길은 너무도 잘 안다며 데리러 가겠다고 덜컥 말해버린다.
사실 그 길은 너무 낯익은 길이다.
인천에서 제 1경인을 타고 직진으로만 달리면 되는 길이었기 때문에 잘못 들 이유가 전혀 없는 코스였다. 그런데 종혁엄마는 너무 마음을 놓은 나머지 목동 지하차도로 들어가기 전에서 너무 빨리 차선을 3차선쪽으로 바꿔버린것이다. 아이구 지하차도가 왼쪽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이정표는 김포공항..
이크...난 알지 못하는 길이었던 것..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지하차도 끝나는 지점인듯 한 부분에서 u턴을 해 버렸다. 지금도 그것이 불법인지..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지 못한채..
그래서 다시 인천으로 향하는 종혁엄마..
전화를 했더니 종혁아빠 오지 말란다. 그래도 한번 떠났는데 자존심이 있지..
부평으로 나가 물어물어 다시 서울행 고속도로로 진입..
오목교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종혁아빠 거의 얼어죽기 일보 직전이다.
그 이..후..
종혁아빠는 절대로 밤에 나를 부르는 일이 없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은 정말 내겐 감사한 기계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종혁이는 나와 다르다. 그 녀석은 길눈이 너무 밝다. 참말로 다행이다. 솔이도 엄마의 길눈을 닮지 말아야 할텐데..
교회에서 솔이는 떠들어댄다. 어떤 아이는 울어서 예배를 못본다고 하는데 솔이는 떠들어서 늘 나가야 한다. 종혁이는 여느때처럼 솔이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유모차는 언제나 종혁이의 차지..
솔이는 엄마도 종혁오빠에게 빼앗긴채..아빠 품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러다가 종혁이 자는 사이 종혁엄마가 솔이를 안았다.
예배실 밖에서 화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정달성 목사님이 지나가신다.
"박솔" 한번 부르시고 솔이 볼을 만지시고는 예배실로 들어가신다.
이름을 기억해 주시니 감사하다.
예배를 마치고 이번에는 친정행이다.
여자들에게는 이상하게 시댁보다 편한 곳이 친정이다. 시어머니에게 며느리는 딸이 안되는 것처럼 며느리도 시댁의 딸같은 존재가 되기는 어려운 것일까?
우리 집도 음식을 많이 하지 않으셨다고 하신다. 시댁에서 일하고 왔다고 설거지도 못하게 하시는 엄마..엄마에게 딸은 늘 아련한 느낌을 주는 여린 존재인가보다.
그래도 엄마가 일하시는 것을 보는 것은 내가 하는 것보다 더 불편한데..엄마는 그 마음을 받기만 하시는 것처럼 혼자 모든 것을 다 하신다. 아직 막내 동생이 장가를 가지 않아 늘 추석은 엄마가 도맡아 홀로 준비하신다. 친정에서 솔이는 잘먹고 잘웃고 잘잔다.
엄마가 솔이의 무표정한 얼굴 때문에 한편으로 걱정하셨다고 했는데 이번 추석에 솔이가 할머니를 향해 환하게 웃어준 이후로 그런 걱정을 한숨에 날아가 버렸다.
종혁이는 축복의 통로를 10번은 넘게 부르고 있다.
"아빠는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엄마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박소리는 하나님의...
똑같은 구절만 벌써 10번은 넘었다. 거기서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않는 종혁군의 노래..LP판이 튀는 것같은 노래 방식..녀석은 정말 특이하다.
그렇게 9시가 다 되어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집에 와서 다들 잠이 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솔이는 11시 넘어서..
혁이는 2시부터 깨어서 엄마 아빠를 교대로 밤새게 만들었다.
잠에서 깨면 늘 엄마를 찾는 종혁이.그래서 종혁이를 안고 있다가도 침대 위에서 솔이가 앵하고 울면 또 솔이에게 몸을 던져야 했는데..이번엔 두 녀석이 울어제끼니 장사가 없다.
처음에 솔이를 종혁아빠가 재우려고 노력했던 모양인데 두 녀석이 깨버리니 종혁아빠에게 다 맡기기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솔이를 보느라 밤을 새운 종혁아빠와 교대로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내가 불침번을 섰다. 결국 두 녀석은 5시가 다 되서야 잠이 들었다.
솔이가 집을 바꿔서 선잠을 자는 걸까?
다음날..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다.
아침 먹고 대대적인 집안 청소가 벌어졌다. 종혁아빠가 청소를 맡았다. 나는 부엌 담당...
솔이는 보행기를 타고 집안 탐사를 벌이고 있고.
종혁이는 솔이의 보행기 습격을 피해가며 놀고 있다.
그러다가 한마디 종혁이가 던진다.
엄마 물..
무슨 물...물줘?
아니 물있어. 바닥에
무슨 소리 하니? 물이 어디 있다고..
쳐다 보지도 않고 나와 종혁아빠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눈을 돌린다.
그래..솔이 기저귀를 채우지 않았는데..혹시..
그렇다 솔양이 쉬야를 하고 손으로 치대고 있는 중이시다.
솔이는 응가를 해도 울지 않는다. 그래서 늘 엉덩이가 벌겋게 짓물러 있다. 녀석이 응가를 하면 울어야지..대신 종혁이가 솔이의 상태를 보고한다.
엄마 박소리 응가했어 냄새 나..
그나마 종혁군이 이야기 해야 빨리 알아차린다. 아니면 수시로 기저귀에 손을 넣어봐야 한다.
아가씨가 이 모양이면 어떻게 하나?
솔이는 응가도 하루에 3번은 한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늘 나가면 응가를 하지 않으니 그것 참 신기하다. 종혁이때도 그랬는데 . 두 녀석은 응가를 가려서 해 엄마 아빠를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 감사하다.
엄마 박소리 꽃 먹어.
무슨소리???
정말 솔이가 집 안에 화초를 뜯어 먹고 캑캑 거리는 중이시다.
녀석 배가 고프면 울어야지 아무 것이나 먹으면 어떻게 하나?
솔이와 종혁이를 데리고 점심과 저녁은 시댁에서 보냈다. 언니들이 전화를 한다. 언제 오느냐구
우리들보다 혁이와 솔이를 보고 싶으신 게다.
혁이와 솔을 준비시켜 다시 시댁으로 향했다. 그리고 종혁이네의 추석은 그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