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는 "나중에 갈 곳 없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살 것"이라며 "돈 많이 벌어놓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남편과 모처럼 일산 호수공원을 산책할 때면 "나 좀 업어달라"던 애교 만점의 부인이었다. 장사로 바쁜 와중에도 식사 때마다 청국장찌개를 기가 막히게 끓여내곤 했다. 남대문시장 옷가게의 상호(商號)를 막내 이름을 따서 '윤덕우네'로 정한 아이 엄마였다.
윤 경감은 부인의 장례를 치른 뒤 '더 이상 억울한 인명 피해가 없도록 스크린도어를 설치해 달라'는 탄원서를 서울메트로에 냈다. '스크린도어 같은 안전시설이 없으면 지하철역에서 나의 아내처럼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기고문을 언론사에 보냈다.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 아내를 위해 경찰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스크린도어를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을 확산시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었습니다."
재판 끝에 안씨를 숨지게 한 노숙자 이모씨에게는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윤 경감은 서울메트로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2년 반을 기다린 끝에 2005년 12월 서울메트로가 2억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추락방지시설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승객의 안전을 배려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윤 경감이 충남 보령경찰서 웅천지구대장으로 근무하던 2005년 10월 '서울메트로가 지하철 2호선 사당역에 처음으로 스크린도어를 설치해 가동을 시작했다. 스크린도어 설치 공사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윤 경감은 "하늘에 있는 아내가 내려준 선물"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 다른 지하철역에서도 스크린도어 공사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7월에는 "올해 안에 1~8호선 265개 전 역사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겠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나왔다. 윤 경감은 그 소식이 알려진 7월 9일 신문기사를 오려 가슴에 품고 부인이 잠든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납골당을 찾았다. "여보, 신문 봤어? 당신은 고통스럽게 갔지만, 그게 아주 헛된 일은 아니었나 봐."
윤 경감은 충남 서천군의 선영에 부인을 추모하는 작은 비석 하나를 세울 계획이다. 새겨 넣을 추모의 글은 미리 써 두었다. '갑작스러운 사고, 준비 없는 헤어짐. 슬픔의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소. 부부는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만남. 당신이 떠났지만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고 땅도 꺼지지 않았소. 다만 내 마음만 무너져 내렸소."
바삐 타고 내리는 승객들 사이에서 부인이 숨진 자리를 바라보던 윤 경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덕우 엄마, 이젠 편히 쉬어. 애들 걱정 그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