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처럼 선 종탑 '매서운 순교의 성지'
미리내 성지 내 '한국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 성전'의 웅장한 모습.
7월 5일은 한국 천주교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대축일로 기념하는 날이다. 중국에서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돼 이 땅에 돌아왔지만 1846년 불과 25세의 나이로 형장의 이슬이 된 이. 천주교회는 그의 죽음을 두고 '한 점 흠결 없는 순교'라 칭송한다. 그 흠결 없는 순교로 인해 김대건 신부는 1984년 로마 교황청에 의해 천주교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웅장한 성전… 정결한 경당… 소박한 성 요셉 성당
피라미드처럼 경사진 기하학적 외벽 눈길
한국 첫 사제로 25세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 유해 안치
김대건 신부를 느끼려면 아무래도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있는 미리내 성지를 찾아야 한다. 안성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40분은 더 들어가야 나오는 산골. 19세기 초 조정의 탄압을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어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어 살았던 곳. 밤이면 그들이 밝힌 호롱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여 미리내(은하수의 순 우리말)라 불리게 됐단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온 삶을 내던졌던 이들의 신산(辛酸)이 그 이름에 녹아 있는 것이다.
미리내 성지가 성지가 된 것은 그런 사연에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장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성역화 사업이 시작돼 지금은 125만㎡의 넓은 지역에 광장과 수도원, 순교자 묘역, 순례자 공간 등 여러 시설이 들어섰다.
성지 입구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아늑한 숲길을 한참 걷다 보면 저만치서 웅장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1991년 봉헌된 '한국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 성전'이다.
성당과 종탑의 2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성당은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면적이 3천450㎡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다. 전체적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지만 외벽을 대리석으로 처리해 굳센 인상을 준다. 피라미드처럼 윗부분으로 갈수록 경사진 기하학적 외형. 이는 순례자들의 시선을 자연스레 위쪽으로 유도함으로써 순교로 성인의 자리에 오른 이들을 향한 경모의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그에 비해 종탑은 칼날처럼 수직으로 공간을 단절하고 내려서 있어 매서운 순교의 성지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 준다.
외부는 그렇게 생경스럽지만 내부는 전형적인 서구식 성당의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라틴크로스 형태로 가운데 정랑(正廊)과 양 측랑의 구별이 뚜렷한 점, 천장의 교차형 리브, 성당 내부를 두르고 있는 반원의 줄창 등이 그렇다. 서울 명동성당을 모델로 했다는 것이 성지 관계자의 말이다.
성당 내 제대에는 김대건 신부의 종아리뼈가 모셔져 있다. 바싹 말라 굉장히 가늘어진 뼈. 보는 이는 가슴이 뭉클해 진다. 그 제대 위 스테인드글라스가 돋보인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의 모습을 정교하게 표현한 순교 성인화다. 1976년 문학진 화백이 그린 원화(서울 혜화동성당 소장)를 바탕으로 했다. 빛으로 장엄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그림과는 또 다른 성스러움이 발산한다.
기념성전을 나와 위쪽으로 더 오르면 하얀색 벽면에 빨간 지붕을 인, 그래서 '참 예쁘다' 싶은 아담한 건물이 나온다. '한국순교자 79위 시복 기념경당'이다. 경당(經堂)은 경배와 기도를 드리는 작은 성당을 말한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정신을 현향하기 위해 1928년 건립됐는데, 아담한 크기지만 미리내 성지 순례의 절정이 되는 곳이다. 김대건 신부의 발뼈가 안치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묘소가 바로 앞에 있기 때문이다.
103위 시성 기념성전의 웅장한 모습과는 전혀 대조적으로 단순한 맛이 일품이다. 내부는 전체적으로 흰색 바탕으로 더 없이 정결(精潔)하다. 전면 제대 위에는 종탑 모양의 구조물에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고 주위 창문은 고딕 양식으로 되어 있다. 성인의 유해를 모셨다는 위엄과 함께 그런 단순함과 정결함이 종교적 경건함을 각별하게 해 준다.
경당을 지나 성지를 한 바퀴 둘러 본 뒤 입구 쪽으로 다시 내려오면 왼편 작은 언덕 위에 1906년에 건립된 '미리내 성 요셉 성당'이 있다. 이곳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던 강도영(1860~1929) 신부가 신자들과 함께 몸으로 지은 것이다. 전면의 종탑은 서구 고딕 양식을 본땄지만, 벽체는 돌과 흙으로 쌓은 뒤 지붕은 한옥 형태로 올렸다. 소박한 그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내부는 목조 기둥과 바닥으로 특별한 건축적 의미는 없지만 제대 아래 김대건 신부의 턱뼈가 모셔져 있어 100년 역사의 무게를 더해 준다.
김대건 신부는 처형당하기 보름전 보낸 한 통의 편지를 통해 교우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입으로 너희 입에 대어 사랑을 친구(親口)하노라." 죽음을 초월해 사랑으로 나아간, 성인(聖人)의 모습이 여실한 대목이다.
성지를 둘러보는 내내 성인의 그 전언이 귀에 속삭이는 듯했다. 미리내 성지는 그렇게 김대건 신부의 죽음을 곳곳에서 현재적 시점으로 온전히 부활시켜 놓았다.
부산일보 :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특이한 외형과는 달리 기념 성전의 내부는 전통적인 서구 고딕 성당을 구현하고 있다.
'미리내 성 요셉 성당'의 소박한 모습.
김대건 신부 묘소 바로 뒤에 있는 경당. 아담하지만 정결한 분위기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평전니임~~~
좋은자료가 있으면 가끔 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