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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조계사
조계사의 창건은 각황사(覺皇寺)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각황사는 1910년 창건되었으며 그 전에 원흥사(元興寺)에 있던 조선불교중앙회사무소를 옮겨와 한국 근대불교의 새 불교운동을 이어가게 했던 중심 사찰입니다.
당시 일본은 총독부가 조선사찰령이라는 것을 선포하여 우리나라의 모든 사찰을 그들의 일본사원인 장충단의 박문사(博文寺)에 귀속시키려 하였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해인사 주지 회광, 마곡사 주지 만공, 그리고 용운스님 등이 31본산주지회의를 열게 되었고 그때 만해 용운스님이 ‘조선불교의 개혁안’을 통하여 조선불교의 통일기반인 총본산제도를 주창했습니다.
다시 1941년 조선의 사찰 및 승려를 통합하는 조선불교 조계종 총본사 태고사법의 인가를 받아 조선불교 조계종이 발족되었고 제1대 종정에 한암스님이 취임합니다. 그러다 광복 후인 1945년 9월 이곳에서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하여 일본강점기 때 만들어진 사찰령 및 태고사법 폐지를 결의하고 새로이 조선불교 교헌(敎憲)을 제정합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사찰정화담화문>이 발표되는 것을 계기로 석우, 효봉, 동산, 금오 등의 선사와 청담, 경산, 구산, 탄허, 지효 등의 중견 수좌들은 앞장서서 '왜색화된 불교를 척결하고 비구 스님 중심의 전통 회복'이라는 목표로 불교정화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이 와중에 태고사는 조계사로 이름이 개칭되었습니다. 1954년 11월 5일 당시 안국동에 있는 선학원을 중심으로 정화운동을 펼쳐나가던 비구 스님들이 태고사에 들어오면서 조계종의 이름을 따서 조계사라고 간판을 고치게 됩니다. 이후 비구와 대처 양측의 세력에 따라 조계사, 태고사라는 간판이 서로간에 붙여지게 되었고, 최종적으로는 비구 스님들 중심의 조계종이 성립되면서 현재의 조계사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조계사는 한국불교와 그 대표종파인 조계종의 주요 사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조계사 법당은 불교 행사의 중심장소로서 거의 일년 내내 법회나 강좌, 제사 등 다양한 의식들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한국불교 1700년 역사와 전통을 대표하는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이 자리하고 있는 조계사는 한국불교의 1번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조계종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고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전법도생(傳法度生)을 종지로 하고 있다. 소의 경전은 금강경(金剛經)과 전등법어(傳燈法語)이며, 간화선인 참선수행을 근본으로 하고 간경과 염불, 주력수행을 포용하여 통불교의 전통을 수용하고 있다. 조계사 경내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이 있으며 2005년 11월 한국불교 역사문화 기념관이 준공되어 명실상부한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조계사는 1백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파란만장한 근대 한국불교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조선조 숭유억불 정책으로 산속에 은거하며 기복 여성불교로 전락하며 그 명맥을 이어오던 불교는 개화기를 거치면서 스님들의 도성출입이 해제 되었다. 1908년 당시 불교계의 대표자들이 현재의 조계사 뒤편 수송공원 자리에 각황사를 창건한 것이 조계사의 출발점이다. 그후 1938년 현재의 대웅전을 완공하면서 태고사라는 이름으로 태고 보우국사에서 조계종의 전통을 찾으려 하였다. 이후 조계산 보조 지눌국사를 중흥조로 도의국사를 창종조로 전통을 정립하게 되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하여 일제 잔재를 일소하고 한국불교 전통을 세우려는 운동이 일어나 1954년 대대적인 불교정화 운동으로 이어져 1962년 4월 대한불교 조계종이 탄생하면서 조계사도 그 위상을 갖게 되었다.
조계사는 국제문화도시인 서울의 도심 한가운데서 휴식과 여유를 느끼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누릴 수 있는 면모를 갖춘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계사대웅전
조계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조계사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대웅전은 '큰 영웅을 모신 집'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큰 영웅이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의미한다. 서울시 지방 유형문화재인 조계사 대웅전은 조선말기 전통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그 규모는 경복궁 근정전(勤政殿)보다 크다.외벽에는 부처님의 일생이 그려져 있으며 현제 보수불사 중이다. 조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교구의 본사(本寺)이자 총본사로 중앙총무원·교육원·포교원·중앙종회(中央宗會) 등이 있는 한국 불교의 중심지이다.
조계사의 창건은 각황사(覺皇寺)에서부터 비롯된다. 각황사는 1910년에 옛 중동고등학교(현 한국일보 신관) 자리에 세워진 절로서 그 전에 원흥사(元興寺)에 있던 조선불교중앙회 사무소를 옮겨와 한국 근대 불교의 새 불교운동을 전개했던 중심사찰이었다. 1937년 각황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기는 공사를 시작했고, 이듬해 북한산에 있던 태고사(太古寺)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하여 절 이름을 태고사로 하였다.이 조계사 대웅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을 취하고 있다. 외부 5출목, 내부 7출목으로 짠 다포식 7량의 구조이며, 내부 전ㆍ후면에 내진주(內陳柱)를 각각 6개씩 모두 12개를 세웠다. 기단 윗면에는 화강암을 전(塼)처럼 다듬어 깔았고, 주춧돌은 네모난 이중 받침 위에 정교하게 다듬은 둥근 주춧돌이며, 기둥 하단은 돌기둥을 끼워 넣었다. 벽에 있는 모든 문(門)은 꽃 모양으로 장식된 채색의 문살로 되어 예술적 화려함과 정교함을 지니고 있다.
광복 후인 1945년 9월 이곳에서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하여 일제강점기에 들어진 <사찰령(寺刹令)>을 폐지하고 새로운 교헌(敎憲)을 제정하였고, 1954년 <사찰정화담화문>의 발표를 계기로 불교정화운동을 벌이기도 한 곳이다. 이 정화운동이 일단락된 1955년 태고사를 조계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대한불교조계종의 중심 사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곳이다.
조계사 대웅전은 1937년에 한용운(韓龍雲)·박한영(朴漢永) 등이 중심이 되어 현재의 위치에 불교의 총본산을 건립하는 불사를 추진할 때에 세워졌다. 그러나 이 건물은 본래 전라북도 정읍의 신흥종교였던 보천교(普天敎)의 법당인 십일전(十一殿)으로 1922년에 세워진 건물이었다. 1936년 보천교 교주(敎主) 차경석(車京錫)이 죽은 후 이를 매입하여 1937∼1938년 사이에 옮겨지은 것이다.
대웅전 내부의 불단에는 도갑사(道岬寺)에서 옮겨온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이 봉안되어 있으며, 불단 뒷벽에는 1938년 대웅전을 중건할 때 그려진 후불탱화(後佛幀畵)와 최근 1970년대에 그려진 천불탱화(千佛幀畵)가 걸려 있다.이 대웅전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고, 내부가 155평이나 될 정도로 규모도 커서 한 때는 중앙청 건물과 종로 사이에서 가장 높이 우뚝 선 건물로 사방의 거리를 짐작하게 해 주었다고 한다. 20세기초에 조선시대 말기의 건축양식을 충실하게 이어 받으면서 규모를 대형화한 것이 큰 특징이다.
대웅전 석가모니불(大雄殿釋伽牟尼佛)
석가모니 불상은 나무로 만든 목불(木佛)로서,1938년 전남 영암 도갑사(道岬寺)에서 이전하여 현 조계사 대웅전에 봉안(奉安)하였다. 조성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장대하고 건장한 골격과 갸름한 얼굴형을 하고 있으며 자료에는 불상 봉안자는 31본산 대표자 명의로 되어 있음을 비추어 볼 때, 당시 전 불교계가 합심하여 모신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시 지방유형문화재 126호인 석가모니 불상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우견편단(右肩偏袒)을 취하고 있다. 항마촉지인이란 오른손을 땅을 향하고 있는 자세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마군을 항복시킬 때 취한 모습이다. 우견편단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냄을 의미합니다. 불상의 크기는 102.5㎝이고 무릎이 넓고 체구가 장대한 편이다. 갸름하고 우아한 얼굴, 뾰족한 육계(肉桂), 장신의 늘씬한 체구, 특이한 옷 무늬, 둥근 앙, 복련 등은 조선조 초기 15,6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세부 묘사에서 고태(古態)가 없는 새로운 기법이 엿보이고, 가슴의 주름진 내의 등 새로운 수법도 표현되어 있음을 짐작하여 1900년경의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불상은 전반적으로 조선시대 불상양식을 보여주면서도 그 자세가 허리를 세워 반듯하고 신체비례에서 비교적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가슴 위로 주름진 내의가 표현되어 있어 새로운 요소가 나타나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보아 조선시대 불상양식에서 벗어난 근대 작품으로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의 미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불상 이름을 조계사목조석가여래좌상으로 표기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대웅전신중탱화(大雄殿神衆幀畵)
대웅전천불탱화(大雄殿千佛幀畵)
대웅전편액(大雄殿 篇額 )
대웅전후불탱화(大雄殿後佛幀畵)
조계사대웅전후불탱화는 석가모니가 영축산(靈鷲山)에서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도설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도상을 살펴보면 크게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이 협시하고 주위에 여러 청중들이 묘사되고 있는 군도(群圖)의 형식이다. 협시보살이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인 점을 감안하면 본존의 명호를 아미타여래로 보는 것이 합당하겠으나 대웅전의 후불탱화라는 점, 조계종단이 선종(禪宗)을 표방하여 선사(先師)로서의 석가모니를 교조(敎祖)로 한다는 점에서 석가모니불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상단의 중앙에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이 크게 묘사되고 있는데,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은 겹 테두리로 마감하고 있으며, 두광은 짙은 녹색으로, 신광은 녹두색과 같이 하되 명암의 정도를 달리함으로써 빛이 발하고 있는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협시하고 있는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은 동그란 얼굴을 취하고 미소년(美少年)의 형태로 묘사되고 있는데, 머리에는 안이 들여다보이는 검은 천으로 제작된 두건을 쓰고, 양어깨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는 형태이다. 영락으로 장식되고 녹색ㆍ 적색ㆍ청색ㆍ갈색이 두루 사용된 법의의 채색과 자연스러운 옷 주름의 표현 등이 주목된다.관음보살상은 화불(化佛)이 묘사된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영락 등의 갖은 장엄물로 치장되어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흰색의 가사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마치 백의관음(白衣觀音)의 형상을 보는 듯하다. 상단의 좌우측 화면에는 제자상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자유자재한 포즈를 취하며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석가모니의 무릎 좌우에는 4구의 보살중(菩薩衆)이 묘사되고, 그 안쪽으로 아난과 가섭존자가 자리하고 있다. 화면의 하단부에는 사천왕상이 좌우에 각기 2구씩 그려지고 있는데 아래 그려진 2구의 천왕이 수염을 휘날리며 역동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반면 위에 그려진 2구의 천왕은 작고 수동적인 형태로 그려지고 있다.
극락전
설법전
대웅전 오른 편으로 근래에 세워진 조계사 극락전이 있다. 극락전 2층을 설법전이라 하는데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이다. 조계사 극락전에는 본존불로 아미타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좌측으로 약사여래불,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우축으로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본존불과 여러 보살 앞으로 지옥 중생을 다스리는 시왕(十王)과 판관서기, 인왕들이 모셔져 있다. 지장신앙은 '지옥에 중생이 단 한 명이라도 남아있더라도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대서원(大誓願)에서부터 비롯된다. 불자들은 돌아가신 부모나 친척, 가까운 이들, 더 나아가서는 제 명을 다 살다 가지 못한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과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마음에서 지장보살을 염원합니다. 2층에는 큰 설법전(說法殿)과 작은 설법전이 있어 신도 교육과 문화강좌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괘불(掛佛 )
괘불은 야외 불교행사때 법당의 앞마당에 걸어 예불을 드리는 거대한 불화로 행사의 성격에 따라 그림의 내용이 다른 것이 원칙입니다. 조계사의 괘불은 아미타삼존도로 이단구도입니다. 상단에는 서방극락의 주재자인 아미타부처님과 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있으며, 하단에는 무독귀왕과 도명존자와 보살이 합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에는 사천왕들이 각각의 지물들을 들고 나란히 줄지어 서있는데, 왼쪽(향우)부터 보검을 쥐고 있는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비파를 들고 있는 동방의 지국천왕(持國天王), 보탑을 들고 있는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 용을 잡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이 있습니다. 색채는 전체적으로 붉은색으로 비단위에 그렸습니다.
교육관
범종루(梵鐘樓)
조계사 범종루는 원래 1층 목조건물이었던 것을 1993년 8월에 육바라밀을 상징하여 2층 6각으로 개축한 것이다. 범종루에는 신라계통과 중국계통의 범종양식을 절충한 높이 154cm, 구경89cm인 연대미상의 범종이 있는데 용문산 상원사에서 옮겨온 것으로 그 소리가 은은하기로 유명하다. 범종루는 불교의 법구(法具)인 사물(四物)을 모셔놓은 전각(殿閣)이다. 불교의 사물(四物)은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의 네 가지를 말하며, 각기 나름의 뜻을 지니고 불교 의식에 사용된다.
범종(梵鐘)은 절에서 쓰는 종을 가리키며,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위해 소리를 낸다. 중생이 종소리만 들어도 번뇌가 없어지고 지혜가 자라나며, 지옥에서 벗어나고 삼계(三界)에서 윤회하는 일도 없이 중생들이 제도되어지는 힘을 갖고 있다고 한다.
법고(法鼓)는 절에서 아침 저녁으로 예불(禮佛)할 때와 의식을 치를 때 치는 북을 일컫는다. 북소리가 널리 퍼져나가는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퍼져서 모든 이에게 언제나 참다운 이치를 전하여 준다는 뜻이 있으며, 짐승 세계의 중생들을 위하여 소리를 내는 것이다.
목어(木魚)는 나무를 잉어 모양으로 만들어 속을 파낸 것으로 조석(朝夕) 예불할 때와 경전을 읽을 때 두드린다. 절에서 의식할 때 사용하는 목탁은 목어가 변화된 것이다. 물속에 살고 있는 모든 고기들을 위하여 소리를 내는 것이다. 물고기는 밤에도 눈을 감는 일이 없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자지 않고 열심히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만들어 졌다고도 한다.
범종루범종(梵鐘樓梵鐘)
백송
조계사 대웅전 옆에 백송(白松)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령은 약 500년이 되었다. 높이는 10m, 둘레가 1.67m입니다. 이 나무로 인해 수송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백송은 중국의 북부가 원산지이고, 잎이 3개씩 뭉쳐난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껍질이 벗겨져 회백색으로 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백송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서울과 고양, 이천, 밀양, 보은, 예산 등지에 몇 그루 밖에 없는 귀중한 나무이다
법륜석(비지정성보문화재)
법륜은 불타의 가르침을 전륜성왕(轉輪聖王)이 가지고 있는 윤보(輪寶)에 비유한 말입니다.화강암으로 조성된 화려한 법륜(法輪)의 중앙에는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조각되어 있으며 바퀴살들을 연꽃모양으로 만들어 그 사이에 팔정도(八正道)를 새겨 넣었습니다. 바퀴둘레는 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의 기단 앞면에는 팔정도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뒷면에는 시주자의 명단이 적혀 있습니다. 팔정도란 불교의 실천 수행하는 중요한 종목을 8종인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으로 나눈 것을 말합니다. 즉, 팔정도는 욕락(欲樂)과 고행(苦行)등의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이며 올바른 깨침에 인도하기 위하여 가장 합리적인 올바른 방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봉향각
조계사 정문 오른편에 있는 건물은 불교용품점 봉향각 이다. 봉향각에서는 불교서적, 불교용품, 공양품 등이 판매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전통등(燈)을 판매해 호평을 받고 있다.
2층에는 조계사와 관련된 자체 행정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종무소가 있다.
부설기관
-서울노인 복지센터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어르신 문화의 중심지인 탑골 공원의 성역화 작업에 따라 어르신 문화의 발전과 노인문제해결을 위한 어르신 복지공간으로 설립되었다. 2001년 서울특별시가 설립하고 대한 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조계사가 위탁운영하고 있는 어르신 전문사회복지기관이다.
어르신들의 자유로운 만남과 활기찬 미래를 위해 프로그램의 자율 이용을 주도하고 있으며 모든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는 각 프로그램실 별로 전산통계처리를 회원증 하나로 간편하게 하고 있으며, 회원어르신들의 이용만족도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개발에 힘쓰고 있다.
위 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운동 90-3
경로급식사업: 일일 2,000명 무료급식제공
기획연구조사사업: 노인문화캠페인, 사회복지실천가를 위한 워크숍, 어르신포럼 외
노인정보지원사업: 노인상담, 노인자활, 재취업교육, 정보제공사업
문화복지사업: 생활지원서비스, 어르신학교, 취미여가, 교양강좌
의료복지사업: 양방진료, 물리치료, 운동처방교실, 치과진료, 외부무료진료 등
후원개발사업: 후원사업, 자원봉사, 전산개발
http://www.swcs.or.kr
-낙산 어린이집
1981년에 시립 시범 유치원으로 개원하여 새마을 유아원을 거쳐 현재 어린이집으로 자리 잡은 낙산 어린이집은 대한불교 조계종 조계사에서 위탁 운영하는 구립 어린이집이다. 02-765-1268
급변하는 사회, 도시화. 산업화에 따른 가정의 핵가족화 및 취업 여성의 증가로 어린이들의 보육과 교육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인격형성의 중요한 시기인 영,유아기의 어린이들이 보다 적합한 환경에서 적절한 교육을 통해 건전하고 조화롭게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하고, 취업 여성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위치 : 종로구 창신동 건평 : 74평(245㎡) 인원 : 교직원(7명), 원아(52명)
반편성 : 바다반(7세) 하늘반(5-6세) 호수반(4세) 쌈지반(4세 이하)
보육 및 교육시간 : 오전 9:00-오후 3:00
직장일 하시는 부모님의 어린이들은 오후 7:30분까지 돌봐 준다.
석가삼존도(釋伽三尊圖)
석가세존 진신 사리탑
대웅전 앞에는 7층 석탑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조계사에 모셔놓은 경위는 “석가세존 진신사리 탑비명”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 비명에는 달마바라(達摩婆羅)라는 인도 실론 섬(현재 스리랑카) 스님이 전 세계의 부처님 성지를 두루 순례하던 중, 1913년 8월 20일 우리나라에 와서 환희심을 내어 곧 바로 본인이 모시고 있던 사리 1과를 불교계에 전해 주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리는 1914년 각황사에 모셨으며, 1930년 지금의 7층 석탑을 세워 모시게 된 것이다.
2002년 3월 도량확장 불사의 일환으로 탑을 이운하는 과정에서 탑안에 모셔졌던 진신사리 친견법회를 봉행하고 사리함을 보수하여 다시 봉안하였다.
원래 탑(塔)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하신 이후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데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탑은 불교에서부터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 사찰은 본존불을 모셔놓은 전각 앞에 1개, 혹은 2개의 탑을 모셔놓았다. 조계사 역시 이 전통을 따르고 있다.
석등(石燈)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한국민족사의 중요한 근간이 외어온 한국불교 1700년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조망하고 앞으로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대 원력으로 세워졌다. 2002년 4월 30일 2천만 불교들의 염원을 담고 첫 삽을 뜬 이래 3년 여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05년 11월 14일 준공식을 갖고 개관을 하게 되었다.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은 연건평 5085평 규모로 한국불교문화를 한눈에 파악 할 수 있는 불교 중앙 박물관을 비롯하여 각종 범패 및 공연예술을 관람하며 체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예술공연장, 불교문화전승관,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불화 및 범패 전승관이자리하고 있다. 또한 불교의 각종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도서실 및 열람실, 종단의 기록물 보존관리를 위한 기록관, 사찰음식 보급을 위한 전통사찰음식연구소 및 식당과 각종 불교 관련 민원상담을 위한 불교종합민원쎈터등 다양한 시설이 상주하고 있다.
한국불교역사문화 기념관은 도시화, 기계화, 개인화 되어가고 잇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부처님의 정법을 바로 알리고 민족문화의 보고인 불교문화를 홍보를 통해 이해를 돕는 공간으로 21세기 문화시대를 선도하는 장으로 활용 될 것이다.
회화나무
서울시 지정 보호수로 수령이 450년이 넘고 높이가 26m, 둘레가 4m에 이르는 회화나무가 웅장하게대웅전 앞에 서 있다. 회화나무는 계절의 변화에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조계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옛적에는 회화나무군이 이 근처에 형성되어 조계사 부근의 지명이 회화나무 우물골이라 불리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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