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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늘 바라보는 세상은 경계가 없어 보인다. 지평선과 수평선의 경계도 그저 막연해 보일 뿐 고개를 움직여 돌아보면 모두가 연결된 경계 없는 둥근 세상이다. 고대의 선인들은 네모난 지구를 생각하여 지구의 어느 모서리 끝에 달하면 떨어진다고 믿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과거 이야기에 웃음 지으며 지구는 둥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현재,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면 둥근 지구위의 경계 없는 세상이 다양한 틀로 나누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눈에 낀 안경과, 햇살을 들여오는 창문, 사람이 오고가는 문, 거리를 메우고 있는 각종 건물들과 설치물들까지 다양한 틀에 의해 우리의 시야는 경계를 짓고 있다. 인간이 발명한 카메라는 사람의 눈을 닮았다지만 사람의 눈처럼 경계 없는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다. 파인더의 네모난 틀 속에는 선택된 세상만이 담겨질 뿐이다. 카메라로 세상의 모습을 담아야하는 사진가는 눈앞에 펼쳐진 넓은 영역의 세상을 선택하여 잘라내야 하는 ‘이미지 재단사’가 되어야 한다. 사진가 김석진은 이처럼 다양한 틀 너머 너머로 보여 지는 세상에 관심을 두며 창을 사랑하는 자이다. |
![]() [Toyko, 2002, C-print, 11x14] |
_ 아이러니한 공간 쇼윈도 “어느 잡지로부터 스트리트패션 촬영 의뢰를 받고 남포동 번화가로 길을 나섰었어요. 사람이 많은 시간은 촬영이 어려워 한적한 오전 시간에 거리를 거닐며 모델들을 찾고 있는데 사람이 적은만큼 적합한 인물을 발견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러던 중 막연히 시간을 허비하느니 현재 유행의 흐름이라도 파악하자는 생각으로 쇼윈도를 스케치하듯 촬영하게 되었죠. 처음 촬영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늘 스쳐만 보던 쇼윈도 세상이 모두가 비슷한 모습으로 단장되어 있어 무척 답답해 보였어요. 보여주기 위한 창이라는 뜻의 열린 개념을 지닌 쇼윈도가 정작 창에 갇혀 제한된 모습만을 보여주는 닫힌 공간처럼 느껴졌어요. 그때 이 아이러니한 공간을 사진작업의 소재로 선정하게 된 것 같아요.” 손길이 닿지 않는 닫힌 유리 속에는 시선을 사로잡는 마네킹과 제품, 소품들이 디스플레이어에 의해 꾸며지고, 사진가의 기호와 시선에 따라 경계를 마련하고, 카메라는 다시 한 번 네모난 파인더 속으로 선택된 이미지를 담아낸다. 사진가 김석진의 쇼윈도 사진에는 디스플레이어와 사진가, 카메라라는 몇 차례의 틀을 넘어 탄생된 이미지가 담겨져 있다. |
![]() [Toyko, 2002, C-print, 20x24] |
_ 순발력으로 접근 틈틈이 여행을 계획하며 즐기는 사진가 김석진은 카메라의 지참여부를 결정하고 여행을 떠난다 한다. 3년의 작업 기간을 통해 탄생된 그의 쇼윈도 사진은 사진가가 거주하고 있는 부산시에서 촬영한 것들도 있지만 여행을 통해 만들어진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국내의 복잡한 쇼윈도와는 달리 조명과 디스플레이 기법이 뛰어난 일본의 쇼윈도들에 시선이 사로잡힌 사진가는 동경, 오사카, 후쿠오카로 몇 차례 촬영을 나섰다고 한다. 처음에는 중첩되어 반사되는 이미지를 촬영하고자 시도했으나 생각처럼 반사의 응용이 쉽지 않아 오히려 구도가 복잡해지는 어려움을 겪은 그는 근접 촬영과 반사각을 이용해 반사를 제거했다. 그리고 관용도가 높은 칼라네거티브 필름을 사용하여 밝기나 색감을 인화과정에서 조절하였으며,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구도의 사진을 위해 낮은 조도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라이포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1/20초, 1/15초의 저속의 셔터속도에서도 흔들림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 숙련된 실력을 보여주었다. |
![]() [Toyko, 2002, C-print, 11x14] |
“쇼윈도 촬영은 상점주인의 간섭을 잘 피하고 대응하는 순발력이 요구되요. 한국과 일본에서의 촬영상황은 참 비교되더군요. 일본에서는 점원이나 주인이 우선 정중한 인사말로 건네 와서 사진을 찍는 상황과 이유를 설명할 여유가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는 높은 언성과 불쾌한 인상과 언행으로 무조건 사람을 몰아 부치죠. 이런 상황들을 겪다보니 밤 시간 촬영을 주로 하게 되었어요. 너무 어두운 밤은 쇼윈도의 조명이 일부 꺼져서 노출조건이 맞지 않을 수 있어요. 상점이 문을 닫기 직전 저녁 시간을 활용하면 적절한 조명상태에서 상점주인도 폐점준비로 분주하여 촬영하기에 적합했어요. 여담으로 일본에서 촬영하다가 핀잔을 들을 때면 말도 안 되는 중국말을 흉내 내면서 도망친 적도 있는데요, 그 순간만큼은 애국심이 생기던데요. (웃음)” _ 2/3의 준비 미시적인 관점으로 일상의 작은 공간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다보면 의미 없던 대상이 재해석되어 탄생되는 순간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는 사진가는 촬영 과정의 2/3 정도를 생각하고 계획하는 데에 분배하며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의미론적인 측면을 중시한다. 쇼윈도 촬영에 있어서도 무작정 쇼윈도 앞으로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상점의 분위기를 살펴보고, 쇼윈도의 전경을 임의적으로 프레임화하면서 구도를 잡아본 뒤 적절한 상황에 쇼윈도로 접근하여 촬영을 시도한다. 또한 그는 촬영 이후에도 데이터 정리와 포트폴리오 정리, 전시 기획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책임을 다한다. |
![]() [Fukuoka, 2001, C-print, 11x14] |
그가 건넨 작업노트에는 그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모든 요소들을 늘 기록하고 정리하고 보관하여 잠재된 자신의 감성과 지성을 단련시키고 있는 듯 했다. 사람의 얼굴은 모두 다른데 사진은 똑같다고 말하는 사진가 김석진은 자신의 얼굴을 닮은 사진을 만들고자 한다. 차이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와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빽빽이 꽂힌 서가로 대변되고 있었다. 작가소개 김석진 1970년 출생 경성대학교 사진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현재 부산에 거주하며 사진작업실 운영, 사진학과 출강 에이전시포토부산 운영 개인전 2001년 12월 SHINY WINDOWS [아트뱅크갤러리, 부산] 2004년 08월 FIXED MIRRORS [Canon Gallery, 부산] e-mail : oishi@neti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