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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11. 22 19:50 개성, 통일참모본부
"중국의 북해함대는 완전히 소멸됐습니다. 수중의 어뢰플랫폼과 공군의 2차에 걸친 공습으로 함대와 상륙부대,그리고 전투기들을 모조리 수장시켰습니다. 이제 해군력에서는 우리가 앞설 수도 있습니다. 적은 항모가 하나도 없으며, 구축함과 프리깃함의 수에서는 차이가 역전되었습니다."
양 석민 중장이 화면의 내용을 바꿔가며 자신있게 보고하자 참모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모든 참모들이 평양 근해의 상륙전에 대비하여 무인어뢰 시스템을 장비한 인민군해군의 박 정석 상장의 주도면밀함에 대해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피스에서 파견된 짜르도 박 상장의 기가 막힌 무기운용과 공격 타이밍 선정에 혀를 내둘렀다.그러나 북해함대의 사령인 린 제독과 개인적으로 친했던 박 상장은 오랜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친구를 이긴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박 상장은 자신이 서해함대 사령관일 때 상부에 건의하여, 비싸지만 확실한 무기인 스퀄어뢰를 러시아에서 대량으로 수입했다. 서해 각지의 수중에 이들을 배치하고, 남포 북쪽인 용강군에 있는 산의 동굴에서 이들을 무인조종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1997년의 통일원년에 남북은 통일이냐 전쟁이냐의 갈림길에서 협상과 동시에 군비증강에 열을 올려 각자 세계 여러나라에서 각종 무기를 수입했었다. 이 시스템도 97년에 개발된 것이었다.
"이 기회에 우리가 중국의 해안을 완전히 봉쇄해야 합니다."
피스의 짜르가 강력히 주장하며 중앙화면을 자신의 모니터와 연계시킨 후 보고를 했다. 반전전사 집단인 피스의 연락관으로 파견된 짜르는 통일한국군 해군 중장의 계급과 동시에 통일참모본부 국제연락 담당 참모의 직함을 받았다.
평양 방어선에 투입된 피스의 지상군은 대장인 싱 이 통일한국군 육군 중장의 계급을 수여받았고 남지나해에 파견된 피스의 의용군과 용병들도 계급과 군번을 받았다. 이들이 교전당사국의 군인이 되어야 국제관계에서 하자가 없고, 포로가 되었을 경우 정당한 포로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의 젊은 인 한수 예비역 중위가 짜르의 통역을 하고 있었다. 인 대위는 대학생 때부터 그린 피스와 국제사면위원회의 회원이었는데, 전쟁이 나자 피스의 요청으로 통일참모본부에 배속이 되었다. 젊은 사람 치고는 뚱뚱하고 배가 많이 나와 풍채가 있어보였으나, 군복이 너무 꽉끼어 허릿살이 삐져나와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면 웃기부터 했다.
"현재 남지나해의 상황입니다. 우리 함대는 중국의 2개 분함대와 전투를 수행중입니다. 화력은 우리가 앞서지만 하이난섬(해남도)에서 출격하는 전투기들 때문에 완전한 해상봉쇄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피스함대의 놀라운 화력과 기동력에 한편으로 놀라며 참모들이 아쉬워하자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나섰다.
"중국은 800대의 해군항공대 소속 항공기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항속거리가 짧고 구형이지만 해상봉쇄 함대에게는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함대가 직접 중국 산둥반도나 북경의 입구인 천진을 공격하고 싶어도 이들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대공미사일을 갖춘 몇 척의 구축함을 피스 함대에 배속시켜서 남지나해의 해상 봉쇄를 강화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참모들이 찬성하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국해군의 심 현식 중장을 보았다. 심 중장이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일본 때문에... 함경도쪽 인민군, 아니, 병력은 철수가 취소되어서 이제 그쪽으로 함대를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만, 러시아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항로를 지켜야 하고, 더 큰 문제는... 최근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아니, 일본 아새끼들이 또 어드레케 하디요?"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이 흥분해서 평안도 사투리가 마구 튀어나왔다.
"독도는 일단 한일간의 정치문제화하고 있습니다만, 독도를 점령하고 나서도 일본함대에 의한 영공과 영해침범의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오늘만 해도 동해함대와 일본 자위대함대가 조우전을 벌일 뻔 했습니다. 걱정하실까봐 말씀은 안드렸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동해함대의 구축함을 뺄 수도 없기에 말씀드립니다."
참모들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전쟁 전 정보사단의 보고에서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할 경우, 일본도 같이 한반도를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를 했었다. 그리고 일본에 관한 각종 정보보고에 따르면 일본의 자위대가 한중전쟁 발발 이후, 일부의 호전적 여론을 입고 정치권의 명령을 공공연히 무시한다고 했다.일본 정가에서는 쿠데타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었다.
"만약 일본이 우리를 친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가장 좋겠소?"
이 차수가 참모들을 진정시키고 간단한 질문을 했다. 양 중장이 즉답을 했다. 너무나 많이 토의한 문제였다.
"중국의 한반도 침략 초기나, 한중 양국의 전력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소모된 때 입니다."
"그렇소. 지금은 아직 아니오. 독도는 일단 내버려 두시오.하지만 독도를 잊지는 맙시다."
이 차수가 분노하는 참모들을 진정시켰다.
1999. 11. 22 19:40 평안북도 영변
영변은 인민군 2군단이 공격을 맡고 있었다. 평안남도 개천에서 청천강을 건너다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치열한 저항에 부딪혔다. 이들은 하루 밤낮을 싸워 겨우 도강에 성공하고 영변을 향해 신속 전진중이었다.
인민군 7사단은 영변과 희천 사이의 방어선을 뚫어 영변을 고립시키기위해 영변 동쪽에 집중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영변 남쪽을 방어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제 231사단의 연락군관인 쿠젠모우 중위가 사륜구동차를 타고 급히 전선의 연대로 가는 도중에 길뒤쪽에서 들리는 여자의 비명소리에 놀라 차를 세우게 했다. 여자의 비명은 계속 들려왔다. 쿠 중위는 차에서 내려 소리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쿠 중위와 동년배인 운전병이 뛰어가는 쿠 중위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는 차안에서 담배를 피워물며 쿠 중위의 결벽성을 걱정했다. 길 뒤의 작은 계곡에서는 5명의 인민해방군 병사들이 젊은 여인 한명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다리 하나씩을 잡고, 그 중 한명이 막 못된 짓을 시작하고 있었다.
쿠 중위가 권총을 빼들고 서서히 이들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옆에 누가 오는지 신경도 안쓰고 킬킬대며 하던 일에 몰두했다.
"너희들 뭐하는거야?"
병사들이 깜짝 놀라 돌아봤으나 아군인 것을 확인하자 킬킬대며 웃었다. 허리 운동을 하던 상사는 젊은 중위를 힐끗 보고 그 자세로 거수경례를 하고는 하던 짓을 계속했다. 여인은 이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했는지 얼굴 곳곳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수치와 고통으로 눈을 감은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보면 모르십니까? 히히~ 군관동지, 잠깐만 기다리십시요. 두번째 순서를 드리겠습니다."
오른쪽 다리를 잡고 있던 중사가 말하자 병사들이 쿠 중위를 보고 킬킬댔다. 분노로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 쿠 중위가 허리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이를 본 병사들의 얼굴이 갑자기 노래졌다. 그가 여인의 몸위에 있던 상사를 쏘았다.곡에 총성이 울리고 상사의 머리에서 피와 뇌수가 튀었다. 상사는 여인의 몸위에 힘없이 쓰러지고 병사들이 놀라 튀듯이 일어났다.
열병이 중위에게 총을 쏠까 말까 망설였으나 그는 지금 어깨에 총을 메고 있는 상태여서 망설였다. 고참인 상등병이 그 열병을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중위가 다시 총을 쏜다면 이들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을 기색이었다. 쿠 중위가 이들에게 권총을 들이댔다.
"이게 무슨 짓들이야! 인민해방군 전사로서 부끄럽지도 않나?"
한 명의 군관과 네 명의 병(兵)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총을 겨누고 있는 쪽은 군관이었다.
"모두들 구덩이를 파서 상사를 묻어!"
병사들이 살게됐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서둘러 야전삽으로 땅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쿠 중위가 여인을 보았다.찢어진 인민복으로 몸을 가리고 삽질을 하는 병사들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쿠 중위는 그녀가 인민복을 입었다는 것은 게릴라전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여자들까지 자발적으로 전쟁에 나서는 이 나라가 무서워졌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쿠 중위가 얼른 외면했다. 쿠 중위가 어떡할까 고민했다. 이 여인을 놓아줄 경우 인민해방군의 치부가 알려질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이 여인을 살려줄 경우 지금 땅을 파고 있는 병사들이 자신의 등뒤로 총을 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권총을 그 여인에게 겨눴다. 여인이 쿠 중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인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계곡에 다시 총성이 울려 퍼졌다.
1999. 11. 22 20:30 평안북도, 박천
한국군 제 9 기갑사단이 팬텀의 공중지원을 받으며 박천에 형성된 인민해방군의 남쪽 방어선 일부를 돌파하자 해병 1사단이 이 뚫린 구멍으로 쇄도해 들어갔다.대공미사일의 보급을 받지 못한 중국군은 공중지원도 받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쓰러져갔다. 박천은 한밤중인데도 각종 포화와 조명탄, 그리고 곳곳에 일어난 화재 때문에 대낮처럼 환했다.
"1시 방향에 저격병!"
차장이 외치자 포수가 주포를 2층건물의 창문을 향해 조준했다. 조준기로 보니 창문 안에서 중국군 저격병이 단발 사격을 하고 있었다. 레이저가 발사되어 그 저격병의 이마가 조준기 중심선에 들어왔다. 거리는 340미터라고 계기판에 디지틀로 표시되어 나왔다. 포수가 방아쇠를 당기자 K-1 전차의 육중한 120밀리 포가 발사되고 차체가 울렁거렸다.
"명중! 대구리에 정학~히 맞았습니다, 마."
포탄은 창문에 서있던 저격병의 두개골을 관통하여 이층의 벽을 뚫고건물 바깥에서 폭발했다. 섬광이 번쩍이고 충격에 건물이 무너졌다. 차장용 조준기로 보고있던 전차장이 잘했다며 포수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해병 1사단의 전차대대는 다른 해병대원들과 함께 건물을 하나씩 점령해 나갔다. 제 9기갑사단의 전차들은 박천 남쪽에서 대기하며 해병대의 연락을 받아 포격지원만 하고 있었다. 9기갑사단의 전차들은 아직도 1200 마력 엔진에 105밀리 포를 갖춘 개조되기 전의 K-1 전차들과 방호력이 떨어지는 구식 M-48 전차로 구성되어, 통일참모본부로서는 전선에의 투입을 꺼려왔다.
그러나 이 부대는 K-1 전차들의 잦은 고장에도 불구하고 중국군 보병부대를 상대로 그런대로 잘싸워왔다. 대신에 정비병들은 죽을 맛이었다. 구난차들이 고장난 K-1 전차를 끌고 후방의 정비
소를 바삐 오갔다.
1999. 11. 22 20:45 평안북도 박천 상공
F-16 조종사 김 종구 중위는 연일 계속되는 출격으로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다. 한국 공군은, 특히 F-16 전투기들은 개전 초부터 너무 혹사 당해왔다. 공군에 있다가 예편한 민간 여객기 조종사들이 급히 현역으로 복귀했지만 이들은 대부분이 팬텀이나 F-5를 몰던 조종사들이었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같은 전투기를 조종사들이 교대로 탑승하여 효율적인 전투기 운용을 할 수 있었지만, 한국 공군에게 F-16은 비교적 신예기라 숙달된 조종사들이 너무 부족했다. 일부 F-5 전투기 조종사들을 F-16의 교대병력으로 하려는 안(案)은 F-5도 바쁘기 때문에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사고도 잦았다.길고 긴 초계비행과 공중전 후에 강릉 기지로 귀환하던 F-16 한 대가 기지 근처 논에 그대로 쳐박히고 말았다.
편대장이 무선으로 조종사를 계속 호출했으나 대답이 없었다는 보고가 있어, 그 조종사는 졸다가 사고를 낸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것과 같은 기록으로 2건이 더 있었다.
성남에서 이륙한 F-16 한 대는 이륙 후 얼마 가지도 못하고 성남시내로 추락해 큰 인명피해가 났다. 조종사는 탈출했지만 전투기가 주택가로 떨어져 20여명의 민간인들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이 사고는 잦은 출격으로 인해 기체의 피로도가 한계에 달해 발생한 것으로 조사결과 밝혀졌다. 사람보다 기계가 이 극한상황을 못버틴 것이다.
그리고 부품의 조달이 원활치 못해 완벽한 정비를 바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공군본부에서는 조종사의 안전을 위해 전투기에 이상이있을 때는 기체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가능한한 빨리 탈출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전쟁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지침이었다.
박천 2만 피트 상공에서의 공중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공격기를 엄호하던 전투기들끼리 맞붙었다. 처음에는 전투기들끼리 서로 공중전을 피하며 아군 공격기의 엄호에만 치중했다. 그래서 박천전선에서는 양측 전투기들은 공중에서 구경만 하고 지상은 서로의 공격기가 폭격을 하는 묘한 상황이었다. 간간히 한국군측 진지로부터 스타버스트 지대공미사일이 하늘을 향해 발사되었고, 그럴 때마다 하늘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그러다가 중국 전투기들이 싸움을 걸어왔는데, 이는 중국 지상군의 종용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공군이 폭격을 함에도 상공의 중국 전투기들이 움직이지 않자 화가난 중국군 사단장이 병단 지휘부에 연락을 하고, 상공의 우군기를 향해 얼마 남지 않은 용감 812형 지대공미사일 하나를 날렸다. 중국 전투기 편대의 지휘관은 한국공군의 F-16 전투기들과 공중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지만, 중국군의 편제상 공군과 해군은 전시에는 각 1급군구에 소속되어 있어 지상군의 명령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전에서는 중립을 지킬 수 있었어도 전시인 지금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국 공군은 가능한한 공중전을 피하라는 명령이 있기 때문에 지상의 아군이 폭격을 당하고 있어도 중국 공격기들을 요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양측의 공격기 편대는 적 지상진지와 엄호 전투기 편대 사이의 낮은 상공에서 불안하게 폭격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신사 협정은 무너졌다.
서로 20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긴장 속에 대치하고 있던 한국군의 F-16과 중국군의 미그-23들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먼저 레이더 유도형의 공대공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미사일 사격 후에 계속 미사일의 유도를 하지 않아도 되는 파이어 앤 포겟(fire and forget)능력이 있는 AMRAAM과 그 능력이 없는 PL-10의 효과는 극명한 차이를 가져왔다.
계속 목표에 레이더를 비춰줘야 하는 PL-10은 이 미사일을 발사한 중국 전투기가 AMRAAM미사일의 목표가 되자 유도를 중지하고 긴급히 선회하는 바람에 유도를 잃고 제멋대로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사정거리에서의 차이가 너무 컸다. SAR(반능동 레이더 유도)방식의 PL-10은 사정거리가 15km 밖에 되지 않았다. PL-10은 중국 영토 내에서 자체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단순한 숫적 우위로써 성능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고공에서 숨을 곳을 찾지 못한 미그-23 전투기들은 마하 4의 AMRAAM을 피하기 위해 채프를 뿌리며 급선회를 반복했다. 하지만 피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 한 기체를 노리는 6기의 암람을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상공에서 피어나는 불꽃이 늘어났다.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워진 중국 엄호기들의 편대장은 후퇴를 명령했다. 살아남은 중국 전투기들이 도망가자 중국 공격기들도 연락을 받고 북쪽으로 날아갔다.
F-16 전투기들은 팬텀과 F-5로 이루어진 아군 공격기들의 폭격이 끝나자 기지를 향해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근접전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한국공군의 최근 공중전은 계속 이런 양상이 지속되었다.
김 중위는 전투가 너무 싱겁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적기 1대를 격추시켜서 이제 그의 전투기에 그려질 킬마크는 8대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많은 격추수를 기록했던 다른 두 명의 조종사는 이미 전투기를 몰 수 없었다. 한 사람은 지대공미사일에, 한 사람은 6기의 미그기에 포위되어 격추되었다. 미사일을 맞은 전투기는 공중 폭발했고, 추락하는 기체에서 탈출한 조종사는 적에게 포로가 되었다. 언제 자신의 차례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김 중위는 올봄의 멋있었던 드라이브를 생각했다.
단 한 대의 피해도 입지 않고 상공 엄호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낸 편대장은 기지에 남은 AMRAAM과 스패로 미사일의 수를 계산해 보았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다. 조종사들은 무선을 개방한채 다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졸음을 쫑기 위한 필사적인 노래였다. 몇 곡을 부른 후 점호가 시작되었으나 김 중위가 응답하지 않았다. 편대장이 즉시 김 종구중위를 호출했다.
"강남제비! 강남제비, 들리나?"
중국과의 전쟁이후 한국과 북한 공군의 콜사인은 모두 한국어로 바뀌었다. 영어와 러시아어로 되어있던 남북의 콜사인을 중국군이 도청할까봐 아예 한국어로 바꾼 것인데, 한국 공군은 출격임무 때마다 콜사인을 바꾸던 방식에서 이제는 아예 개인이 정하도록 바꾸었다. 김 중위는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는 제비를 택했다.
"강남제비!!"
편대장이 김 중위를 계속 부르다가 그의 전투기 바로 위를 비행했다.
야간에 전투기끼리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했지만 그의 기체에 충격을 주어 깨우려는 노력이었다.
김 중위는 자신의 차를 몰고 경춘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청평을 지나 가평군에 접어들었다. 주로 강을 따라서 난 낭만적인 46번 국도 양옆에는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고 있었다. 시속 170 km로 달리는데도 스치는 바람은 너무 부드러웠다. 옆에 앉은 여자가 너무 좋다고 비명을 질렀다.
김 종구는 괜히 여자를 데려왔다 싶어서 짜증이 났다. 지난 주에 같이 왔던 경희는 한시간여의 드라이브에도 경치에 정신이 팔려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었다. 경희와 같이 올 것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혜영이와 노는 이유는 계속 이 정도의 관계는 유지해야 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혜영이는 아직 건드려보지 못한 여자애였다. 미개척지에 대한 탐험은 모험가로서의 당연한 본능이다.
김 종구는 계속 재잘대는 혜영이의 짧은 치마 사이로 손을 넣었다. 혜영이는 잠시 움찔했으나 가만히 있었다. 손이 허벅지를 더듬다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스타킹을 하지 않은 허벅지는 부드러웠다. 김 종구는 왼손으로 운전하면서 혜영이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12톤짜리 덤프트럭이 엇갈려 지나가느라 바람이 세차게 그녀의 머리를 날렸다.
"강남제비!! 제발... 김 중위!"
편대장이 계속 그를 호출했으나 응답은 들리지 않았다. 김 중위의 기체는 수평비행을 계속했지만, 1분 후면 서울 상공의 전시 대공방어망에 들어갈 거리에 있었다. 체크포인트인 북한산이 바로 아래에 있었다. 서울 상공을 우회하여 수원비행장에 착륙해야 하는데 여기서 선회하지 못하면 아군의 지대공미사일에 김 중위의 기체는 추락하게 되어 있었다.
편대장은 이미 지상의 미사일기지에 연락을 했지만, 서울상공의 엄호가 제 1의 임무인 수도방위사령부의 대공지휘관은 예외를 용납하지 않았다. 서울상공에 침입하는 비행기는 아군기든 적기든 가리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아군으로 위장하고 서울을 폭격할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대공지휘관으로서는 당연한 의무였다. 멀리 야간등화관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는 서울의 불빛이 보였다.
편대장이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편대기 전원의 선회를 명한 다음에 편대장이 애프터 버너를 키고 속도를 내어 편대 앞쪽으로 나갔다. 짧게 선회를 한 다음에 김 중위의 기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이것이 마지막 시도였다.
김 종구는 혜영이의 치마 속에 넣은 손을 더 위쪽으로 옮겼다. 매끈한 피부가 느껴졌다. 팬티의 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 위치에는 맨살이 느껴졌다. 가운데쪽으로 더듬어갔다.
"노...? "
김 종구가 웃으며 치마를 들어 속을 보았다. 혜영은 못본체 하며 아래를 가리지도 않았다. 김 종구는 근처에 러브호텔이 있나 둘러보다가 다시 치마 속을 자세히 보았다. 혜영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어느새 바로 앞에 커다란 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피하기는 이미 늦었다. 혜영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연신 비명을 질렀고 김 종구는 핸들을 우측으로 잽싸게 꺾었지만 이미 늦었다. 강한 충격이 전신을 때렸다.
"김 종구 중위!"
편대장이 콜사인을 생략하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잠시 후 편대장이 들은 것은 잔뜩 졸린듯한 목소리의 비명이었다.
[으으....... 혜영이 괜찮아? ]
편대장이 한심하다는듯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장난끼가 발동했다.
"자기, 난 괜찮아. 자기는?"
잠시의 침묵이 지나고 김 중위의 당황한 듯한 응답이 들려왔다. 편대원들이 계속 개방하고 있는 편대무선망 여기저기에서는 억지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편대장님... 아니, 푸른 산, 여기는 강남제비! 죄송합니다.]
"즉시 3시 방향으로 선회해! 위험지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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