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저널을 쓰려고 빈 화면에 ‘부모교육 및 상담세미나 14주차 저널’ 제목만 써 두고 한 주의 시간이 흘렀다.
‘과잉보호’와 ‘이중구속’, ‘디스카운트’는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 속에서 때때로 아니 너무 자주 나에게 결핍, 합리화, 방어 수단, 결핍의 욕구를 채우는 수단, 과시용으로 되풀이하며 사용했던 것으로 그 모든 것이 잘못 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는 것이 어렵고 하고 싶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늘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온 나의 인생이 모두 잘못된 것이고, 나의 삶 전체가 부정되는 기분으로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멈추지 않으면 어쩌면 나의 전부이자 최고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고, 비로소 멈추기로 마음먹었던 그때, 그 순간 나를 둘러싼 공기의 냄새와 색깔, 머리카락과 피부에 닿는 느낌 등 딱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로 느껴지는 것이 있었고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작은 종이 한 장에 표현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솔직히 흘러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아주 없지 않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이 나의 전부가 아닌 한 부분이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것을 멈추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살아갈 모든 순간이 행복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고, 수업 시간 교수님의 말씀처럼 ‘내가 여러모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나도 나의 주변인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나와 그들에게 적절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으며 일상에서 보호의 상태’를 온전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꽤나 불쾌한 경험을 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마땅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누군가로부터 이중 메시지, 디스카운트 경험이다. 본래의 나라면 ‘이 자리의 목적이 무엇이고 이 상황은 무슨 상황인지 명확히 따져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이 정도면 명예훼손인데?” 와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그런 상황을 따진다면 그 다음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생각이 들어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었다. 왜냐하면 상대방에게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지 않았고, 그들에게 게임을 지속하게 할 마음도 주도권도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상대방의 의도와 그들이 쥔 카드의 패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솔직히 그 순간은 매우 불쾌했지만, 괜찮다. 그들의 생각과 달리 나는 꽤 단단한 사람이고, 능력도 있으며 절대 그들이 원하고 예측한대로 결말을 맞이하지 않을 것이며 조용히 나의 목적도 이루고 꽤 괜찮은 인생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보다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격려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 그 순간 그들의 모습이 정말 어른스럽지도 멋지지도 존경스럽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주아주 오래 전 읽었던 전혜승 박사의 책에서 보았던 ‘덕승재’가 절로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덕이 재주를 이긴다.’, ‘덕은 사람을 이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것이 덕인데 말로 마음으로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능력이 출중해도 예의가 없고 덕이 없으면 쓸모가 없다.’
지난 금요일 남편, 아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아들에게 내가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기쁘고 감사한 말을 들었다. 올해 봄 군 제대 후 연말까지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는 아이의 의견을 우리 부부는 존중했고, 아이의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난 금요일 식사 시간 아이는 자신의 시간을 보내며 써 놓았던 짤막한 글들을 보여주며 “살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나에게 주고 싶었고, 전에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존재의 이유를 몰라 힘들었는데 하루만 더 살아보자! 그래도 괜찮아! 라는 마음으로 일단 왜 살아야하는지 이유를 찾으며 살다보니 이제는 이왕 사는 거 행복하게 살아보자 라는 꿈이 생겼고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예전의 저는 마이너스였다면 이제는 0이 되었어요. 이제 0이 되었으니 무엇이든 도전해서 플러스로 향해 될 수 있을 것 같고 이제는 하나씩 도전해 보려 구요.” 아이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지난 ‘완전한 자기긍정 타인긍정’ 교재를 시작하며 만난 6살 그레첸이 “엄마, 처음부터 다 다시 시작하면 좋겠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엊그제 올 봄 직장에서 퇴직하신 친정 엄마와 통화하던 중 “다음 주 외할머니를 뵈러 이모와 함께 가고 싶었는데 이모에게 일이 생겨 갈 수가 없게 되었고, 혼자라도 가 볼까? 싶었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아! 엄마도 두려움을 느끼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을 때 집안 사업 부도로 어린 삼남매와 함께 참 열심히 살아오신 엄마가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을 자식들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긴 시간 본인의 감정을 숨기고 살았구나. 싶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성적으로 부모님께 꾸중을 듣는 것도 부러웠던 때가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해도 크게 동요함이 없었던 엄마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했었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그 때 엄마의 사랑이 정말 큰 사랑이었고, 자녀들을 향한 믿음이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통화를 마치며 “엄마, 외할머니 치매 증상도 깊어지고, 홀로 돌보는 이모도 걱정이 되는 엄마 마음도 이해해요. 그렇지만 엄마도 내 엄마라 나는 엄마를 더 걱정하게 되는데, 서울에서 거리도 너무 멀고 외진 곳이라 혹시 엄마가 다녀오며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나는 솔직히 엄마를 걱정해요. 이제는 무리하지 말고 그냥 건강하게 손주들 재롱 보며 그렇게 사시면 좋겠어요.” 솔직한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엄마도 “그래야지. 나도 이젠 남은 시간 건강하게 살다 가는 거지. 그래야지. 생각해.”라고 말씀하셨다.
이 저널을 쓰기 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예전의 나는 ‘나’만 아는 사람이고, 내가 아팠던 것,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만 생각하고 그 결핍으로 부모와 남편과 자녀를 아프게 한 시간을 살았었지... 생각이 들었고,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며 이제는 내가 나를 돌보며 부모를 돌보며 남편과 자녀를 돌보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돌보려 노력하며 살아가는구나. 꽤 많이 성장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번 학기 교류분석을 공부하며 나에게 가장 마음에 담고 싶은 키워드를 묻는다면 ‘어루만짐’,‘보살피기’이다. 어루만진다는 것, 보살핀다는 것은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군가는 살아가며 경험을 선행하고 이론을 학습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론을 선행하고 경험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경험을 선행하고 이론을 학습했기에 공부를 하며 이해와 이겨내는 것이 용이했다. 반면 이론을 먼저 접하신 분들은 꽤나 힘들고 아픈 시간들을 보냈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나를 알고 이해하는 것, 내가 나를 어루만지고 보살피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나를 알아야 타인에게 눈을 돌리고 그들의 소리를 듣고 이해하며 어루만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의 경험이 결국 행복으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로 살아가며 우리는 현장에서 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나게 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며 ‘내가 나를 알고 이해할 수 있어야 나와 만나는 우리 아이들을 이해하고 마침내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돕는 순기능을 하며 결국 좋은 사회,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한다.
이번 학기 나를 위해 매 번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신 그분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과 더불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온 마음으로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교류분석을 배우며 단점이자 장점이라면 우리 반 친구들이 잘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바나나를 가지고 싶은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는 법’을 알려준 후 너무나 논리적으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어 서로의 의견 조율의 시간이 길어졌고,(어제는 코끼리 두 마리로 낮잠 시간 전 10분 넘게 의견 조율을 하다 서로 합의가 되지 않아 낮잠 후 다시 코끼리 두 마리를 가지고 10분을 대화 나눈 후 극적으로 합의가 되었다. ^^:) 때때로 너무나 정곡을 찌르는 반론으로 나를 당황시킨다는 것과 더불어 교사로서 멋지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자랑스럽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