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쉰 여행2 - 난쉰호텔에서 난쉬구전(남심고진) 에 가서 운하를 거닐며 구경하다!
2023년 10월 30일 중국 절강성에 동양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수향마을 시탕(西塘) 에서 강남의 또 다른 수향
마을인 난쉰(남심)으로 가야하는데 대중 교통은 없으니 호텔에 부탁해 택시를 타고 근 한시간을 달립니다.
후저우시 난쉰전에 도착해 湖州南浔古镇亚朵酒店(호주남심고진업타주점)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는
30분을 걸어 강남의 10대 수향 마을에 속하는 난쉰구전(南浔古镇 남심고진) 서문으로 입장합니다.
여기 난쉰구전 (南浔古镇 남심고진) 은 입장권을 끊어 들어가는 퉁리, 저우좡이나 시탕과는 달리 쑤저우의
무두처럼 자유입장이며..... 이 안에서 중요 건물에 입장할때는 그때 마다 각각 입장권을 끊어야 합니다.
절강성 후저우시(湖州市 호주시) 남심진에 자리한 난쉰구전 (南浔古镇 남심고진) 수향 마을은 700년
역사를 가진 마을로 부자들의 동네라고 불리며 예로부터 비단 실크와 미인으로 이름났다고 합니다.
난쉰은 1년에 벼 3모작을 하고 실크를 생산하는 풍요의 고장이니 사조지부(絲組之府)
에 쌀과 물고기가 풍부해...... "어미지향" (魚米之鄕) 으로 불려 왔다고 합니다.
여기 중국의 남부 지방인 강남에서는 한국 과는 달리 남자들이 살림을 하는데.... 여자들이
드세다기 보다는..... 여자들은 섬세한 손으로 누에에서 생사를 뽑고 비단을 짜니
손가락이 상하면 안되는 지라 설거지와 뻘래등 집안일은 남자들이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손가락이 상하면 안되니 집안 일을 하지 못하는 여자는 난쉰 여인들 말고도
한국에도 있으니.... 김태희, 전지현, 한가인등 여자 연예인들의
손의 진짜 주인은 "최현숙" 씨라고이연주 기자가 기사를 올린게 떠오릅니다.
광고와 화보에 등장하는 여성 연예인의 손은 아름답다. 사람들은 손 까지 섬섬옥수
라며 열광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손은 남의 손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광고에서 본 대한민국 대표 여성 연예인들의 손은 대부분 최현숙(37) 씨의 손 이다.
그는 '손 전문 모델' 이다. 수많은 광고, 잡지, 제품 카탈로그에서 ‘손’ 출연을 했다. 여태껏
그의 손이 등장한 CF만 1,000편이 넘는다. 김태희, 전지현, 이영애, 김희선, 이나영,
한가인, 박신혜, 김희애, 윤아, 현아··· 대신하지 않은 여자 연예인을 찾는 게 빠를 정도다.
2000년 080 한국통신 광고를 시작으로 20여년을 하고 있는데 한달에 광고, 잡지, 카탈로그 를 합쳐 10~15건
촬영을 할 정도로 활발히 활동 중이니,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손가락 길이는 8cm, 손바닥은 10cm 다.
하지만 최씨는 각각 9.5cm, 8cm 로 손가락은 길고 손바닥은 작으며 뼈마디도 얇다. 점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에 손톱은 타원형으로 표면이 매끄럽다. “어릴 때 부터
손이 예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손으로 먹고 살아야겠다' 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우연한 계기로 손 모델을 시작했다. 일신여상 3학년때 일찌감치 취업한 최씨는 제일기획 안내
데스크에서 일했다. 업무 특성상 전화를 받거나 우편물을 전달해주면서 손을 내보일
때가 많았다. 그의 손을 눈여겨 본 제일기획 직원이 시안 촬영을 부탁했는데,
시안 촬영 이란 광고를 촬영하기전 광고주에게 확인을 받기 위해 만드는 사진이나 동영상이다.
“직원이 안내데스크로 내려와서 제가 핸드폰이나 음료수를 들고 있는 모습을 찍어갈 때가 많았어요.
실제 촬영도 아니고, 대충 찍는 거라서 돈을 받지는 않았죠. 어느날 ‘광고 촬영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게 픽스필름 박준원 감독님이 찍은 한국통신
CF 였어요. 모형 건물 사이를 걸어가면서 건물마다 ‘080’ 글씨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는 장면이었죠.”
이때‘손 전문 모델’이라는 직업을 처음 알았다. 이후 세 달에 한두 번꼴로 광고가 들어왔고 소문이
나면서 최씨를 부르는 곳이 많아졌다. 또 다른 광고대행사의 편집실로 이직하고, 퇴사 후
이미지메이킹 강사로 일할 때까지 병행했다. 수입이 불규칙해 모델만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화장품 브랜드 '헤라' CF. 최씨는 "전지현씨가 등장하는 CF 나 화보는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고 했다.
- 언제부터 손 전문 모델로 나서기 시작했나요? “갑자기 전화가 와서 다음날 광고 촬영 을 해야
할때가 많아요. 강사로 일할 때는 강의 시간을 정해놓으니까 일정 조정하는데 애를 먹었죠. 결혼후
2년 동안 고민하다 더 재밌는 일을 선택하자 싶었어요. 마침 임신을 해서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 부분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CF 에서는 손이 등장하는 장면의 비중을 따지면 10분의 1 정도일 겁니다. 손보다 연예인 얼굴과
제품에 더 눈이 가죠. 하지만 손이 등장하는 장면은 대부분 빅클로즈업 이예요. 숨 쉴때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도 다 보여요. 손 연기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고 연습도 많이 해야 해요.”
- 따로 연습도 하나요?
“그럼요. 손 연기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손으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어요. 립스틱 뚜껑을 부드럽게 열 수도
있지만 한번에 확- 하고 잡아당기듯 뺄 수도 있죠.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연예인이나 모델이 기쁜지
화가 났는지 알아야 하죠. 앞뒤로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알지 못하면 손 연기를 할 수 없어요.
사전에 전체 콘티를 보고 무슨 내용인지 파악해야 해요. 대기 시간에는 어떤 포즈를 취할지 연습합니다.
손만 나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신체 일부가 함께 나갈 때가 많다. 이럴 때는 출연하는 연예인과 같은 옷을
입고 촬영을 해야 한다. “대부분 여자 연예인은 44~ 55 사이즈이기 때문에 몸매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 설거지 할 때도 신경이 많이 쓰일 것 같습니다.
“그렇죠. 일을 하니까 집안일은 친정어머니가 도맡아 해주십니다. 물을 만질 때는 꼭 장갑을 낍니다.
손에 묻은 물이 증발하면서 수분을 빼앗아가요. 또 수압 때문에 피부가 거칠어져요. 칼 대신
가위를 씁니다. 특히 신경 쓰일 때는 고기 구울 때입니다. 기름이 튀면 거뭇한
자국이 오래 남고 자칫 상처로 남을 수 있어요. 종이도 무심코 베일 때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운하를 따라 걷다가 갈림길에서 다리를 건너 오른쪽 길을 걸으니
나룻배 중에 붉은 조화(造花) 로 장식되어 새빨간 배가 보이는데, 중국인들은 도교
의 영향으로 설날 세뱃돈 봉투나 집의 대문이며 결혼식때도 축하금 봉투에도 많이 씁니다.
이 배는 결혼식에 쓰는지 아님 축제에 쓰는지 혹은 그냥 관광객
들이 특별한 경험을 위해 세를 내는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는 어느집에 보니 호박에 칼질을 한게 보이는데 저건 핼로윈데이에 쓰는 걸까요?
다시 되돌아와서는 오른쪽으로 한참 걸으니 여긴 운하의 폭이 좀 넓은 것도 같습니다.
오래된 대저택이 보이는데 여기서도 유명한 小蓮莊(소연장) 이라는 주택인데 그 규모
가 어미어마한데...... 입장료를 받는지라 들어가지는 않고 외관만 구경합니다.
1840년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영국에 패배해 5개 항구를 개항하면서 인근 상하이가 개항
되어 생사 수출이 급증하게 되니 그 생사의 70% 는 여기 난쉰 인근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속어로 돈을 쓸어 담았으니..... 이로 이해 4코끼리 (유씨, 장씨, 방씨, 고씨), 8소, 72돈구 (누렁이?)
라는 거상들이 탄생하였으니 4 꼬끼리는 그 부로 철도, 부동산, 전당포 및 은행업을 일구었습니다.
샤오롄좡 (小蓮庄) 을 만든 유용은 15세에 면직물포에 견습공으로 힘들에
일하다가 생사(生絲) 도매상에 취업한 후.... 4년만에 자립하게 됩니다.
그후 화원인 샤오롄좡 (小蓮庄) 을 건설 했다고 하는데..... 태평전국 후에는 영업(鹽業)
에도 진출하니 광서제로 부터 낙선호시 편액을 하사받았으며 셋째 아들
유안생은 劉氏梯号(유씨제호) 를 지었는데 입구는 중국식이나 내부는 로마식 양식입니다.
여기 난쉰구전 안에 중요한 건물들을 소개해둔 안내판이 보이는데..... 소연장 외에도 유명한
백간루(百間樓) 에다가 장석명 구택, 장정강 고거, 남심 문원, 가업장제루에 문씨제호 등입니다.
난쉬구전에는 화려한 엣 주택이 20여채가 남아 있으며 특산물은 눈만두인데, 그 중에도
400년 된 백간루(百間樓) 가 유명하니.... 결혼때 신부가 100명의 하녀를
거느리고 온다고 하자 그들을 모두 기거할수 있도록 연이어 지은 집이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博陽開元(박양개원) 이라는 큰 호텔이 보이는데.... 연회실이며
침실과 거실이며 식당등 내부 모습을 찍어 내걸은게 참 화려해 보입니다.
운하를 떠다니는 나룻배와 송나라 옷을 입은 처녀들의 가벼운 발검을 구경하다가 문득 이준신 성균관대
교수가 동아일보 ‘이준식의 한시 한 수’ 칼럼에 쓴 “유학자를 향한 일갈” 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노나라 땅 노인들 오경(五經)을 논하지만, 백발이 되도록 경전 구절에만 매달린다.
나라 경영의 책략을 물어보면, 안개 속에 빠진 듯 흐리멍덩.
발에는 먼길 오갈 때 신는 무늬 새긴 신발, 머리엔 젠체하기 좋은 네모난 두건.
느릿한 걸음으로 큰길만 다니고, 걷기도 전에 먼지 부터 일으킨다.
진시황 때의 승상 이사(李斯)는, 도포 입은 선비를 홀대했었지.
그대들은 시대 변화에 잘 대처한 숙손통(叔孫通)도 아니니, 나와는 아예 가는 길도 다르지.
현실 상황에 통달하지 못할 바에야, 문수 강가로 돌아가 밭갈이나 하시지.
(魯談五經, 白髮死章句. 問以經濟策, 茫如墜煙霧. 足著遠遊履, 首戴方山巾. 緩步從直道,
未行先直塵. 秦家丞相府, 不重褒衣人. 君非叔孫通, 與我本殊倫. 時事且未達, 歸耕汶水濱.)
― ‘노나라 땅 유학자를 조롱하다 (조노유·嘲魯儒)’ 이백 (李白·701∼762)
벼슬길에 오르기 전 천하를 주유하던 이백은 전국 시대 노(魯)나라 땅인 산둥 지역에 머문
적이 있다. 현지 유생들을 접하면서 저들의 외골수 처신에 단단히 실망한 모양이다.
‘시경’, ‘ 예기’ 등 경전에 대해 논의해 보니 죽어라 문구에만 매달릴 뿐 도무지 현실 감각이
없다. 국가 경영의 지혜를 기대할 수 없는 데다 복장이며 행동거지가 허례(虛禮)에
경도되어 있다. 점잔 빼느라 느릿느릿 걸으며 긴 도포 자락으로 먼지 부터 잔뜩 일으킨다.
이런 유생들을 진시황은 철저히 배제했고 저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경전마저 불사르라
했다. 후일 한 고조 유방(劉邦) 은 개혁적 성향을 띤 유학자 숙손통(叔孫通) 을
중용했다. 숙손의 처세에 공감했던 이백, ‘백발이 되도록 경전 구절에만 매달
리는’ 유생들을 향해 ‘문수 강가로 돌아가 밭갈이나 하시라’ 고 일갈한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